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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제62회 안사연 정기산행(운길산) 후기

                 글-김항용,  사진-김발용

 

◈ 일시 : 2009년 3월 8일. 10:00-15:00시

◈ 장소 : 남양주시 운길산

◈ 참가 : 윤만. 태우. 항용. 발용(부부)

 

  경로 : 운길산역 만남--운길산 등산--수종사--정상(610m)--하산--하남시--귀가

 

 3월초의 봄볕은 따뜻했다. 일요일 아침 옥수역 플랫홈에는 등산복 입은 이들 약 200여 명이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우님과 이곳에서 조우하여 운길산역으로 향하는 전철 안은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릴 여유도 없이 가득했다.

 

 10시 경 운길산 역에 도착하여 역을 빠져 나오는 길은 그야말로 대장관이었다. 다양한 칼라의 등산복을 입은 약 2000여 명이 온 역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평상복은 찾을 수가 없다. 온갖 물감이 다 칠해져 있는 역사 앞에서 만난 일행은 단촐했다. 모두 5명.

 

 발용님이 타고 오신 차로 운길산 아래까지의 발품을 크게 덜었다. 이곳은 전철역이 생기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음식점들이 많아졌다. 풍속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잠시 출발 준비를 하고 수종사로 오르는 급경사길을 타기 시작했다. 힘든 줄 몰랐다. 길은 차도로도 쓰이는 것이라 넉넉하여 좋았다.

 

 가끔씩 숲길로 들어갔다가 다시 도로로 나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며칠 전 일본으로 <충렬공 일본 정벌 답사>를 다녀오신 발용님과 태우님 두 분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었다. 불과 1시간 만에 수종사에 올랐다.

 

 수종사(水鍾寺)는 긴 역사를 간직한 채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서 긴 국토를 위 아래에서부터 흘러 와 만나는 장엄한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예술처럼 서 있었다. 등산객들로 가득한 절 안은 활기가 넘쳤다. 일행은 이곳저곳의 역사물과 예술품들을 열심히 촬영하고 감상하다가 명물인 은행나무 아래서 멀리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한참을 감상에 빠졌다.

 

 두물머리를 감상하는 찻집-손님이 너무 많아 못들어 갔다.

 

 1439(세종21년)에 세운 태종 태후 정의옹주의 부도, 1460년(세조6)에 세운 오층석탑, 단아한 대웅보전 문살의 멋, 범종, 은행나무, 어마어마한 오석에 새긴 수종사 사적기---

 

 이윽고 다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르는 길엔 다산선생의 시가 새겨진 목판들이 이정표와 함께 서 있다. 한결 정스럽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여유있는 산행이 되어 좋았다. 첫 이정표 목판에 새겨진 시는 아마도 1801년(순조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장기(長鬐)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되어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다가 돌아와 지은 시인 것 같다. 옮겨 본다.

 

갑자기 고향 마을에 이르고 보니

문 앞에선 봄물이 흘러가누나.

기쁜 듯 약초밭 다다라 보니

예전처럼 고깃배 눈에 보이네.

꽃들이 어우러져 산집은 고요하고

솔가지 늘어진 들길은 그윽하다.

남녘땅 수 천리를 노닐었으나

어디에서 이런 언덕 찾아보리오.

 

 오랜 유배길에서 돌아와 아름답고 정겨운 고향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어 조금 더 오르니 작은 정상이 보이며 절상봉(522m) 표석이 고목을 배경으로 하고 서 있다. 정상  전 350m와 310m 전방에도 이정표와 함께 다산의 시가 나의 발길을 잠깐씩 잡는다.

 

 이곳을 지나자 넓은 공간이 나타나며 약 200여 명의 등산객들이 모여 시산제를 모시거나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시 약 5분 여를 더 오르니 정상(610m)이 나타났다.

 

 그런데 한 옆에서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들린다.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잘 만들어진 나무 데크 내부를 보니 한 60대쯤 보이는 신체 건강한 남성분이 줄넘기 하나를 들고 음악에 맞추어 운동인지, 서커스인지, 무용인지, 사교춤인지 알 수 없는 종합 예술을 펼친다. 보는 사람들이 더 신났다.

 

 이곳에도 다산의 시가 있다.

 

 <결혼 60년>

60년 풍상의 세월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가

복사꽃 활짝 핀 봄 결혼하던 그 해 같네

살아 이별이나 죽어 이별이 늙을수록 재촉하나

슬픔 짧고 즐거움은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

오늘밤 목란사는 소리 더욱 좋을씨고

그 옛날 붉은 치마의 유묵 아직 남아 있네

쪼개졌다 다시 합한 것 그게 바로 우리 운명

한 쌍의 표주박 남겨 자손들에게 맡겨 두노라

 

 정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기념 촬영을 하고 다시 적당히 하산하여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약간 달리하여 하산했다.

 

 하산길의 김영랑 시

 

 발용님 내자님께서 운전하시는 차로 하남시로 돌아와 한참이나 토론과 정담을 나눈 뒤 귀가하는 길은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