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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안사연 제6회 산행 (청주 일원)

              (2004. 3. 22. 윤식-후기, 발용-사진 제공)

 

◇일시 : 2004년 3월 21일(일요일)

◇장소 : 충북 청주일원

◇답사 코스 : 서울·대구 → 상당공원 → 청주박물관 → 상당산성 → 단재 선생 사당 → 보한재 사당 → 일문사충 정려 → 식파정 → 현감공(휘 자균) 묘소 → 서울·대구

◇참석자(무순, 존칭 생략) : 10명-영환, 상석(在항), 영회(제학공파종회 이사), 발용(會항), 주회, 태영, 진중(植항), 항용(植항), 정중(植항), 윤식

◇합류자 : 영윤

 

1. 서울(07:20) → 청주시청(09:35)

바람 끝자락에 매달린 서늘한 기운이 시원한 아침입니다. 전날 밤 일기예보처럼 하늘이 맑게 개었습니다.

15인승 렌트 카를 몰고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발용 종친께서 잠실운동장 건너편에 도착하고, 곧이어 참석자들이 하나둘 모였습니다. 아쉽게도 등반대장이신 윤만 종친께서 갑작스런 감기몸살로 참석하기 어렵다는 연락을 해 오셨답니다. 속히 쾌차하시기를 빕니다.

예정시간보다 20분 늦은 07:20분 청주를 향해 출발합니다. 비슷한 시각, 대구에서는 정중 종친께서 조치원역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이른 시간에 나오느라 다들 아침을 들지 못해 고속도로로 들어서기 전 만남의 광장에 들어가 요기를 하였습니다. 그 사이 시간이 꽤 흘러 08:10분이 되었습니다.

오창IC에 들어서기 직전, 청주시청에서 기다리던 영회 종친과 주회 종친께서 연락을 해 오십니다. 오창IC를 통과해 청주시청에 도착하니 09:35분, 반가운 인사를 나눕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대구의 정중 종친께서 도착하였습니다. 정중 종친을 맞이하느라 주회 종친의 부인께서 직접 조치원역으로 마중을 나가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서울에서 출발한 진중 종친과 대구의 정중 종친은 형제간이며, 진중 종친께서는 시인이시기도 합니다. 지난 번 제4회 정기 산행(1월 25일)에는 5형제 중 운중, 진중, 정중 종친 등 3형제께서 참석하신 바 있습니다. 형제분께서 거듭 참여해 주시니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시청 옆 상당공원으로 향합니다.

 

2. 상당공원(09:40∼09:55)

상당공원 입구에는 서봉 김사달 박사님께서 쓰신 '上黨公園' 표지석이 우리 일행을 반깁니다. 높이는 한 길이 채 안 되나, 폭은 3.5보에 이르는 큰 돌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차례 서봉 박사님 필적을 대한 까닭에 어느덧 눈에 익은 필체입니다.

주회 종친께서는 서봉 박사님 장례식 때 고향인 충북 괴산으로 운구되던 중 이곳 상당공원에서 노제를 지냈다고 들려주십니다.

주회 종친의 안내로 상당공원에 들어서니 한봉수(韓鳳洙) 의병장 동상이 첫눈에 들어옵니다. 이 일대는 국권을 강탈당한 한말에 항일의병을 양성하던 본거지였답니다.

이때 한봉수 의병장과 손잡은 우리 문중의 상익(相翊) 어른께서는 다섯 아드님(世應, 漢應, 貞應, 聲應, 洛應)과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공로로 4째 아드님 성응 종친께서 충청북도 초대 내무부장을 역임하셨는데, 애석하게도 6·25 동란 당시 납북되어 순국하셨다고 합니다. 상익 어른의 손자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김태길 박사입니다.

 

 

 

 

3. 청주박물관(10:07∼10:40)

09:55분 백곡(휘 득신) 할아버지 유고집인 <백곡집> 판목을 친견하기 위해 국립청주박물관으로 향합니다. 꼬불꼬불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을 넘어가는 길입니다. 태산준령은 아니지만 제법 산세가 가파르고 사방이 툭 트여 청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백곡집> 판목은 청주박물관 별관의 <김연호(金然鎬) 기증 문화재 전시실>에 전시돼 있었습니다.

<백곡집>은 구당 박장원(朴長遠)이 자신의 문집을 만들 때 반드시 백곡의 문집을 먼저 만들라는 유언을 후손들에게 남겼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우리 홈 게시판에 주회 종친과 항용 종친 등 여러분께서 올리신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백곡집> 판목 앞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이런 귀한 유물을 수집, 기증하신 김연호 씨도 대단한 분이라고 일행은 이구동성입니다. 박물관 내에 비치된 안내문에 따르면 김연호 씨는 1952년생으로 수의사라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관리인이 몇 차례 드나듭니다. 백곡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하자 관리인도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박물관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영회 종친께서 작별인사를 청하시며 경비에 보태라고 5만원을 건네주십니다. 긴히 참석하셔야 할 자리가 있는데도 행사에 참석해 주신 것만 해도 송구스러운 일인데.......거듭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4. 상당산성(10:45∼12:39)

청주박물관에서 상당산성까지는 불과 5분 거리였습니다. 잘 가꾼 잔디밭 위에 그림 같은 상당산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잔디밭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가 우뚝 서 있고, 시비에는 상당산성을 노래한 <遊山城>이라는 그의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산성 앞 구멍가게에서 청주산 막걸리를 사 들고 산성을 향해 올라갑니다. 완만한 비탈길입니다. 상당산성의 현판은 모두 서봉 박사님께서 쓰신 것들입니다. 산성도 산성이거니와 서봉 박사님의 친필을 직접 찾아보는 기쁨이 벅찹니다.

게다가 10리가 조금 넘는 산성을 따라가며 펼쳐지는 풍광이 봄날의 상쾌함을 더욱 강렬하게 만듭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폭설로 쭉쭉 벋은 소나무들이 허리가 꺾여 있었습니다.

상당산성에 관한 글은 주회 종친께서 올리신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일행은 남문(공남문)으로 들어가 서문인 미호문(弓+耳虎門)으로 향합니다. 미호문은 이 지역 산세가 호랑이와 같아서 이를 제압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미호문은 성벽을 바깥쪽으로 쑥 내밀어서 옹성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한 점이 특징입니다.(미호문 가기 전에 암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그곳에서 내다보는 풍치가 기막힙니다.)

미호문을 둘러보고 아래쪽 양지바른 곳에 모여 막걸리 한 잔씩을 나눕니다. 다른 지역 막걸리보다 달짝지근한 걸 보니 이곳 물맛이 단가 봅니다.

잠시 다리를 쉬었다 북문을 생략하고 산성마을로 가로질러 동문으로 향합니다. 남문, 서문, 동문의 현판 모두 서봉 박사님의 필적입니다. 동문에 도착하니 영환 종친께서 그렝이 기법으로 쌓은 성벽을 설명해 주십니다.

다시 성벽을 따라 보화정(輔和亭)으로 향합니다. 보화정은 동장대로서 사방을 내려다보기 좋은 곳에 자리잡아 병사들을 지휘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보화정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한낮입니다. 다들 웃옷을 벗고 차창을 엽니다.

 

 

 

 

 

 

 

 

 

 

 

 

 

 

 

 

 

 

 

 

 

 

5. 단재 선생 사당과 묘소(13:00∼13:25)

선생에 관해 설명드리는 것 자체가 구구할 것 같아 생략합니다. 선생의 유택은 선생이 나서 자라신 고향집이라고 합니다.

마을 이름이 귀래리(歸來里 :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니 "왜놈들 발길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해서 강물에 뿌려 달라." 하셨던 선생께서도 그런 연유로 고향집으로 돌아오셨나 봅니다. 주회 종친 설명으로는 선생께서는 3번 고향에 돌아오셨는데, 마지막 즉 3번째 돌아오신 것이 바로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신 다음 혼백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일제는 선생께서 순국하신 다음에도 묘를 쓰지 못하게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만해 선생과 오창 선생이 마련한 묘표를 신석우 선생이 저들의 눈을 피해 이곳으로 가져와 세워야 했고, 묘를 쓰도록 눈을 감아준 당시 낭성면장도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받아야만 했답니다.

사당은 1960년 신씨 문중에서 낭성면 관정리에 세웠으나, 1978년 청원군에서 이곳 귀래리 선생의 유택 앞에 조촐한 맞배지붕집을 짓고 영정을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당 뒷문을 통해 선생의 묘소로 바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의 묘소 앞에는 작은 장명등과 망주석 1쌍, '丹齋申采浩之墓'라 쓴 조촐한 묘표와 상석, 그리고 '丹齋申采浩事蹟碑'가 서 있습니다.

사당 옆 기념관에는 선생의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선생의 나라사랑, 겨레사랑에 견주면 정부의 지원이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집니다.

이제 관정리 보한재 사당을 찾아갈 순서입니다. 시간을 보니 13:00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귀래리를 벗어나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작은 학교를 스쳐갑니다. 폐교가 되었는지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는 모양입니다. 혹 이곳이 단재 선생께서 계몽운동을 하시면서 설립한 산동학당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6. 보한재 사당(14:50∼15:10)

미리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주회 종친께서 부지런히 부인께 전화를 겁니다. 이런 화창한 날에......송구하기만 합니다. 덕분에 맛깔스런 점심 배불리 먹었습니다.

14:30분 식당(선녀와 나무꾼)을 나와 가덕면 인차리의 보한재(신숙주) 사당에 도착하니 14:50분입니다. 선생의 18대 후손이신 신수영 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등반대장 윤만 종친께서 미리 기별을 넣은 뒤라 바로 인사를 나누고 사당으로 들어갑니다. 사당 뒤편은 야트막한 산(구봉산)입니다. 사당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두리기둥에 초익공집입니다.

이 사당 옆에 옛 보한재 사당이 퇴락한 채 서 있었습니다. 옛 사당은 좀더 구봉산 쪽으로 올라가 있는데, 진입로가 불편해 조금 밑에 새로 사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보한재께서는 우리 문중의 쌍계재(휘 紐) 할아버지, 문도공(휘 수동)과 친분이 두터우셨습니다. 그런 연유로 쌍계재 할아버지께서 <보한재집서>를 지으셨으며, 보한재께서는 한명회의 종사관으로 함길도로 나가시는 문도공 할아버지를 전송하는 시를 지으신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정공(휘 질) 할아버지와는 정치적 동반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자료는 윤만 종친과 태서 종친께서 게시판에 올리신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당에 들어가 예를 표한 다음 사당 앞 계단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아직 이른 봄날이라 길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신수영 님께 조촐하나마 향촉대를 드리고 작별인사를 나눕니다. 멀어지는 우리 일행을 보한재 후손께서는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동네 어귀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정중 종친께서 작별 인사를 나눌 차례입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느라 아쉬운 마음이 크기만 합니다. 이번에도 주회 종친 부인께서 조치원역까지 정중 종친을 배웅하시는 수고를 맡으셨습니다.

 

 

 

 

 

 

7. 안동김씨 사충문(16:00∼16:15)

15:15분 일문사충(一門四忠) 정려문(旌閭門)과 백곡저수지의 식파정(息波亭)을 향해 인차리 보한재 사당을 떠나 진천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청주한씨 집성촌인 대머리를 지나갑니다. 대머리는 '큰 마을'이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청주한씨들이 세거해 온 곳(청주시 용암2동)입니다. 이 일대는 '대머리공원'으로 잘 가꾸어져 있는데 둘러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기만 합니다. 대머리공원을 끼고 우회전해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이 바로 주회 종친 자택이라고 합니다.

16:15분 사충문에 도착하였습니다.(충북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775)

이 정려문은 충신 가선대부 김천주(金天柱)와 아우 천장(天章), 아들 성추(聲秋), 조카 성옥(聲玉 : 휘 천장의 아들) 등 네 분 할아버지를 기리는 유적지입니다.

이 네 분께서는 영조 4년(1728년) 이인좌의 난으로 청주와 진천이 함락되었을 당시 이지경이 진천현감을 자칭하면서 백성들을 괴롭히자 이에 분연히 궐기하여 맞서 싸우시다가 순국하셨습니다.

당시 이 4분께서는 동지들을 규합, 무기도 없이 괭이와 쇠스랑을 들고 용전(勇戰)하시다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쇠스랑 충신'이라고도 칭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된 글은 주회 종친과 태서 종친께서 올리신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빛나는 선대 할아버지가 되셨지만, 한날 한시에 형제분과 아드님, 조카가 순국하셨으니 그 슬픔을 무엇에 비하겠습니까.

정려각은 소담해서 위압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갈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목조 기와집입니다. 정문에는 서봉 박사님의 휘호가 진본 그대로 걸려 있어 판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충문을 떠나 길상사로 향하는 순간, 정중 종친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곧 대구행 열차가 들어올 거라며 작별 인사를 하십니다. 몇 마디 인사를 나누는 순간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옵니다. 먼길 무사히 귀가하시기를 빌면서 아쉬운 통화를 마칩니다.

 

 

 

 

 

 

 

 

 

 

 

 

 

 

 

 

 

 

 

 

 

 

8. 길상사(16:18∼16:24)

사충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김유신 장군의 사당인 길상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길상사 입구에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표지석이 서 있습니다. 이 표지석에 한글로 새겨진 '길상사'도 서봉 박사님께서 쓰신 겁니다. 높이 1길, 폭 5보, 두께 0.5보의 자연석에 새겨진 정갈한 글씨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잠시 길상사로 들어가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고 다시 큰길로 나와 백곡저수지로 향합니다.

 

 

9. 백곡저수지 식파정(16:45∼17:50)

 

백곡저수지를 끼고 완만하게 경사진 도로를 달립니다. 멀리서는 작아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꽤 큰 저수지였습니다. 백곡저수지 인근은 우리 문중 안렴사공파와 양성이씨의 세거지이기도 합니다. 백곡저수지 안쪽에 <일송정>이라는 음식점이 있는데, 주인이 우리 일가분이시라고 합니다. 일송정 식당이 면해 있는 쪽 산들이 모두 안렴사공파 내의 소파 종산이라고 합니다.

식파정 가는 길은 백곡저수지를 끼고 산길을 달리다가 왼쪽에 <식파정>이라 쓴 표지석을 찾으시면 됩니다. 이곳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므로 50∼100m쯤 더 가서 도로 왼쪽에 <사정마을>이라고 쓴 큰 표지석을 보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소로로 들어서면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곡가든>이 있는데, 왼쪽으로 산길이 나 있습니다.(눈에 잘 띄지 않아 지나치기 쉽습니다.)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차량 한두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만......운전이 서툴거나 비가 온 경우에는 <백곡가든> 인근에 주차하시는 게 좋습니다.

낯선 길이라 길 찾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처음 가 본 곳인 데에다 우리 일행도 길을 잃어 설명드리기가 난감합니다.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산길 중에서 큰 길을 따라 한참 가시다가 왼쪽으로 꺾어지시면 양성이씨 묘소가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그 산길을 따라 저수지 쪽으로 내려가시면 식파정에 다다릅니다.

<식파정>은 효종 4년(1653년) 양성인 이득곤이 지은 것으로 그의 호를 따서 식파정이라 하였답니다. 이분은 우리 문중의 백곡(휘 득신) 할아버지와 친분이 깊어 백곡 할아버지께서 <식파정기>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글은 영환 종친을 비롯해 윤만, 주회, 태서 종친께서 올리신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식파정은 본래 양성이씨 집성촌인 두건리 앞 냇가에 있었는데, 백곡저수지가 생기면서 현재는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곡 할아버지의 <식파정기>를 보면, <식파정>이 있던 곳은 그야말로 무릉도원 같은 절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10여m 저수지 쪽으로 쑥 내밀어 정취가 보통이 아닙니다. 한여름 텐트 치고 며칠 머물렀다 가고픈 곳입니다.

정자 내부에는 백곡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식파정기>를 중심으로 빙 둘러 송시열, 최명길 등 유명인과 양성이씨 후손들이 지은 시가 걸려 있습니다. 물론 <식파정기> 외에 백곡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시도 한 수 걸려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 지은 <식파정>은 비례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허술해 보이고, 집 지은 이의 정성도 빠진 듯해 그 옛날 백곡 할아버지께서 찬미했던 그 모습이 아니어서 씁쓸하기만 합니다.

<식파정>에는 우리 일행보다 먼저 정취를 즐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진중 종친과 안면이 있는 시인이신가 봅니다.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걸 보니 사람의 인연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사람의 핸드폰을 통해 우리 차를 이동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인적 드문 산길이어서 설마 했는데, 그 산길을 타고 올라간 차가 있었나 봅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던 발용 종친께서 산길을 되짚어 달립니다. 미안한 마음에 숨을 몰아쉬며 도착해 차량을 빼주었더니 상대방이 더 미안해하더랍니다.

 

 

 

 

 

 

 

 

 

 

 

 

 

 

 

 

 

 

10. 현감공 묘소(18:20∼18:35)

원래 답사 코스에는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진천으로 들어오는 길에 주회 종친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현감공(휘 자균) 묘소로 향했습니다.

현감공께서는 문온공(휘 구용) → 부사공(휘 명리) → 사인공(휘 계우) → 진천현감공(휘 자균)으로 이어지십니다.

그렇잖아도 날씨 좋은 때 할아버지 뵈오러 올 참이었는데 답사길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기꺼이 배려해 주신 일행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11. 뒤풀이

한강변의 갈래여울 마을로 가는 길에 영윤 종친께서 합류하여 20:30분 예약한 음식점에 도착하였습니다. 주회 종친은 부인께서 준비했다며 들기름을 한 병씩 나누어 주십니다. 염치없지만 귀한 선물 뜻깊게 받겠습니다.

다들 출출하신지 맛있게 민물매운탕을 들고 가볍게 반주를 나눕니다. 하남시에 살고 계신 영윤, 발용 종친을 돌아보며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향합니다.

뜻깊은 봄날 하루였습니다. 다들 무사히 귀가하시기를 빌면서 환한 얼굴로 돌아갑니다.

 

 

이상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