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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9회 정기산행 (시흥 소래산)

            (2004. 6. 15. 주회(안), 발용(군) 제공)

 

□ 산행개요

ㅇ 일시 : 2004. 6. 13(일)

ㅇ 장소 : 경기도 시흥시 소래산

ㅇ 참가 : 9명

(상석☆, 윤만, 은회, 발용, 주회, 태영, 태우, 항용)

 

1. 부천역 남부광장에 내려서서

 

아침 8시. 지하철을 타고 오늘의 집결장소인 부천역으로 가고 있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전철안은 텅텅 비어 있다. 겉추장스러운 격식을 집어 치우고 간편한 복장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으니 아주 홀가분하다. 달콤한 일요일 아침을 억지로 일어나 나왔더니 곤한 잠이 쏟아진다. 한 30분 지하철 안은 잠이 덜 깬 듯 고요하고 푸근하다.

 

부천역 남부광장에 내려서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날아갈 듯하다.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가득한 광장은 깨끗하고 화창하다. 태영, 발용, 은회, 주회, 윤만, 항용. 자랑스런 오늘의 역군들이 모여든다. 울긋불긋 복장들이 화창하고 가벼워 보인다. 반갑게 손을 잡는 표정들도 가볍고 화창하다.  

 

입에 맞는 서울 막걸리를 찾아서 부천역 앞 대로를 20여분 헤매고 있다. 끝내 서울 막걸리는 찾지 못하고 아쉬운 데로 일동 막걸리 10병, 맥주 큰 거 2병, 생수 몇 병, 오이 몇 개를 챙긴 다음 버스 정류장에 들어선다.

 

2. 부천서 시흥가는 여우고개를 넘다.

 

시내버스에 오르자 시골여행 가는 기분이 소록소록 배어난다. 모두들 얼굴이 화안하다. 시끌벅적해지고 말도 많아진다. 갑자기 시내버스 안이 소란해지고 생기가 돈다.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우리 역군들을 태운 시내버스는 시흥시 신천동 가는 여우고개를 넘고 있다. 발용 님은 눈빛이 젖어든다. 부천에서 초중고 학교를 다녔고, 지금 지나는 길에 외할머니. 할아버지 묘소가 보이고, 지금 도착하는 곳이 10년전 신혼살림을 하던 곳이라고.....

 

시흥시 신천동 전기안전공사 인근에서 태우, 상석 님이 차를 대령하고 기다리고 있다. 태우 님은 오랜만에 함께 하여 더욱 반갑고, 상석 님은 몸이 불편한 데도 불구하고 정성이 지극하다.

 

3. 왕릉처럼 웅장한 하연 선생 유택에 오르다.

 

금 새 시골길로 들어서는 가 했더니 고풍스런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진양하씨의 세거지이면서, 김맹렴 선조님 처가동네이고 증손 참판공(김언묵)과 그 손자 만헌공(김효갑)의 유택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마을 입구를 정려각이 지키고 있고, 마을 가운데를 자그마한 진양하씨 종친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하연 선생을 배향하는 소산서원이 자연구릉을 따라 자연스럽게 올라 서 있다. 쏟아지는 햇살을 피하며 소산서원을 끼고 돌아 오르는 발길이 가볍다. 시골 소풍 가는 기분이다.  왕릉같은 웅장한 묘역이 나타난다. 김맹령 선조님의 장인이신 하연 선생의 묘역이다. 하연 선생은 조선 세종조에 영의정을 지냈다 하는데 명성에 걸맞게 묘역도 대단하다. 눈도 가슴도 탁 트이는 것이 명당 터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항용 님은 재배를 올리고 있다. 20대조 할머니 친정아버지께.  뒤에서 바라보는 눈이 찡하다.

 

 

 

 

 

 

 

 

 

 

4. 드디어 참판공(김언묵), 만헌공(김효갑) 묘역에 오르다.

 

익달-고-맹렴(영상 하연 사위)-철균-수형-언묵(묘 소래산)-석-효갑(묘 소래산)

 

하연 선생 묘역에서 5분 정도 소로 길을 오르자 약간은 퇴락해 보이는 묘역이 우리를 기다라고 있다. 하연 선생의 사위 김맹렴 선조님의 증손이 되는 참판공(김언묵)과 그의 손자 만헌공(김효갑) 묘역이다.

 

 

 

 

 

 

 

 

 

 

참판공 묘소는 홀로 계시고 배위께서는 괴산의 아드님(김석) 묘 바로 위에 있다고 한다. 자그마한 묘표(세로84*가로33*두께11cm)에는 “從士郞金彦默之墓”라 적혀 있고, 상석(가로104*세로75*두께18)과 문관석(높이110) 두 개가 좌우로 자리하고 있다. 直孫 되시는 상석 님의 헌작으로 일행의 참례가 이어진다.

 

아래 묘소는 쌍분인데 참판공의 손자이시고 괴산 5甲의 둘째이신 만헌공(김효갑)의 묘소이다. 방손 되시는 항용 님의 헌작으로 일행의 참례가 이어진다.

 

17년전 30대 중반의 시절에 족보 기록만을 들고 묘역을 찾으려고 3일동안 이곳 소래산 일대를 헤매다가 3일째 되는 날 찾아냈다는 항용 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참판공과 만헌공의 행적과 묘소를 이곳에 쓴 이유 추정에 대하여는 다음을 다시 한번 검색해 보세요

 

□ 작성자 :김항용  작성일 : 2004/06/10 14:34 (from:211.114.248.253) 조회 : 80

 

제9회 안사연 산행지 소래산에 있는 제학공파 선조님 두 분  

 

이곳 참판공 만헌공 묘역은 1920년대부터 병천의 제학공파 후손들이 관리해 오고 있다고 한다. 묘역 일대 2정보(2천평)도 문중 재산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묘역 아래에 개발계획이 있어 이장해서 모셔야 할 상황이 되었은데, 배위 묘소가 있는 괴산으로 모셔야 할지? 지금까지 위토조성과 묘역관리를 해온 병천으로 모셔야 할 지? 고민 중에 있다고 한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아올지 몰라 사진을 여러 컷 찍었다. 직손 되시는 상석 님과 항용 님은 별도로 사진을 더 찍어 두었다.

 

 

 

5. 소래산 정상(299.4M)에 오르다.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길을 가파랐지만 몸들이 가벼워서 인지 힘든 기색 없이 성큼성큼 올라선다. 다만 몸이 좀 불편하신 상석님은 사모님의 경호를 받으며 산을 오른다. 산행하면서 몸이 좀 풀려서 호전되기를 빌어 본다.

 

 

꽤 높아 보였는데, 정상 표고가 299.4M로 되어 있는데, 금방 도착했다. 산행을 하다가 만 듯하여 약간은 서운한데, 정상에 올라서 보니 시흥시내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 시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고, 문학 경기장도 저멀리 보인다. 정상이라 시원한 바람과 함께 머리도 마음 속도 온 몸에 시원한 바람이 가득하다.

 

 

 

정상 아래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든다. 벤치도 놓여 있고, 옆에는 아이스께끼 아줌마도 여럿이다. 께끼 하나씩을 물고 앉아 배낭을 열어젖힌다. 막걸리, 맥주, 노가리 안주, 오이, 포도 등이 모두 나온다.

 

막걸리가 한순배 두순배 돌아가고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진다. 나오는 얘기는 보나마나 뻔하다. 모두가 종사 이야기다. 관심들이 거기에 다 가 있는 사람들이니..... 각 파종회 역사 정리, 문중 달력 제작 등의 의견이 나오고, 산행계획도 줄줄이 이어진다. 7월 인왕산, 8월 북한산, 9월 고려산(강화도), 10월 팔공산(대구), 11월 명성산(철원)

 

6. 소산서원으로 내려오다

 

배낭에 들어있던 먹을거리가 다 떨어져서야 자리를 일어선다. 내려오는 길에 내연사 라는 조그만 암자를 지나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하연 신도비가 있다. 南智 撰, 金敎直 序幷篆으로 세운 것인데, 말미에 ---次適 安東人 監察 金孟廉--- 이라 되어 있다. 즉 김맹렴 선조님은 하연의 둘째 사위이시고 감찰을 지내신 것을 알 수 있다.

 

 

 

 

 

 

 

소산사원 아래 집에 정자 비슷한 곳에서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찾아 들었다. 손진태 라는 분으로 일전에 중앙일보에 “소래산 지킴이”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항용 님과는 안면이 있는 눈치다.

 

7. 소래 포구에서

 

벌써 시간이 오후 2시 반을 넘기고 있다. 일행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소래 포구로 찾아 들었다.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포구에 자리를 잡고 조개구이 두 상을 시켜 놓고 둘러앉았다. 짜릿한 바다 내음과 조개구이를 앞에 두고 술이 빠질 수 없다. 술병이 돌기 시작한다. 상석 님과 태우 님은 운전 때문에 재미가 별로 없으신 듯하고. 술잔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빠른 듯하더니~~~~~

 

8. 구로동 몽마르뜨에서

 

눈을 떴다. 차 안에 나홀로 남겨져 있다. 이미 날은 어둡고 밖이 시끌벅적하다. 소래포구에서부터 꿈 속을 헤맨 것 같다. 밖을 내다보니 야외에 식탁과 의자가 가득하고 사람들로 가득하다. 왁자지껄 사람들도 자유스러워 보인다. 마치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알고보니 윤만님 아파트 아래 상가 앞이다. 예술인 아파트라고 하더니 분위기 자체가 예술적이다. 가로등이며 분위기며 사람들이며 모두 예술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윤만님 사모님도 나오시고 아들 태경이도 뒤이어 나왔다. 태경이는 알랑드롱 저리가라다. 얼마나 이목구비가 뚜렷한지 태경드롱이라 부르고 싶다.

 

생맥주에, 골뱅이 버무린 얼큰한 국수에, 통닭 바베큐에, 먹거리가 풍성하다. 윤식 님 전화가 걸려 오고, 항용님 사모님 전화도 걸려 오고. 오는 전화마다 붙들고 전화기가 돌아간다.

 

 

 

윤만님 사모님께 폐만 잔뜩 끼치고 되돌아 나온다. 남부 우회도로를 따라 사당동으로 나오는 도로 주변 건물과 불빛이 화려하고 이국적이다. 파리 교외의 외곽도로를 달리는 듯 했다. 終

 

<글, 김주회  사진, 김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