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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제10회 정기산행(서울 인왕산) 보고

              (2004. 7. 19. 발용(군), 윤식(문) 제공)

 

◇일시 : 2004년 7월 18일(일요일)

◇장소 : 서울 인왕산

◇참석자 : 9명(존칭 생략)

상석(在항), 윤만(會항), 은회, 발용(會항), 주회, 태우, 항용(植항), 충국(植항), 윤식

 

기다란 선 하나를 따라간 하루였습니다. 광화문에서 바라본 나지막한 인왕산은 올라가 보니 의외로 강렬한 산이었습니다.

 

09:00 정각, 사직공원 입구에 모인 일행은 총 9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충국 종친께서는 멀리 부산에서 천릿길을 달려오셨고, 상석 종친께서는 몸이 불편한데도 기꺼이 참석하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인근 수퍼에서 간단한 물품을 준비한 뒤 사직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정사각형으로 좌우에 조성된 사직단은 조형적으로는 반듯한 직선과 직선의 연결입니다. 신도(神道)도 다른 곳보다 훨씬 짧아 더욱 강렬한 직선으로 다가옵니다.

 

단(壇)으로 오르는 계단은 물론 주위에 아무런 장식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 반듯한 선들이 교차하면서 간결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사직단 옆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만이 그 팽팽한 긴장을 늦춥니다.

 

 

 

 

 

 

 

사직단을 둘러보고 09:48분 등반대장 윤만 종친을 따라 사직공원 뒤의 황학정 가는 길을 따라 인왕산으로 오릅니다.

 

오락가락하는 부슬비가 어깨를 적십니다. 구름이 잔뜩 낀 탓에 시계가 맑지 못합니다. 저 아래 고층건물들이 어슴푸레합니다.

 

황학정(09:48)에서는 궁사 한 사람이 시위를 당기고 있었습니다.

궁사 발치쯤에 ‘習射無言’이라 적힌 까만 표석이 눈에 띕니다.

쉬-익

살이 공기 가르는 소리만 짧게 납니다.

잠시 그 소리를 듣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산길을 오릅니다.

 

 

 

09:59분, 이내 인왕산으로 오르는 찻길이 보입니다. 인근이 청와대 등이라 경호요원들이 배치돼 있습니다. 하긴 인왕산을 자유롭게 오르게 된 것도 1993년부터라고 하니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도로표지판에는 왼쪽 자하문, 오른쪽 독립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하문 방향으로 꺾어 오르막을 따라갑니다.

 

고갯마루에는 작은 초소(10:02)가 있고 그 고개를 넘어가면 자하문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 길 오른쪽에 아주 작은 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문이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초행이신 분은 초병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한 20분쯤 오르니 작은 봉우리에 제법 널찍한 공터가 나옵니다. 험준한 북한산 줄기라 그런지 오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이 일부 복원돼 있었습니다. 그 성벽을 따라 구불구불 선이 이어지면서 산 이쪽과 저쪽이 나누어집니다.

 

산 이쪽, 시내 쪽으로 청와대와 경복궁, 세종로, 종로 일대와 남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산 저쪽에는 무학고개에서 북쪽으로 뻗은 통일로가 산과 산 사이 협곡으로 내달립니다.

 

 

 

 

 

 

  

게서 20여 분을 더 가 10:42분 인왕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사직단에서 불과 1시간 거리인데 땀은 비 오듯 합니다. 등으로 흐르는 땀이 뼛속으로 흐르는 것만 같습니다.

 

인왕산 정상에는 어른 가슴 정도 높이의 바위가 하나 박혀 있어 특이합니다. 그 옆에 쉼터가 마련돼 있어 가족들과 함께 와서 김밥 드셔도 좋을 듯합니다.

 

정상 발치쯤에서 준비해 온 음료수를 꺼내 목을 축입니다. 윤만 종친께서 준비해 온 자료를 배포하고 인왕산에 대한 설명을 들려 주십니다.

 

인왕산은 한양의 백호에 해당하는 곳이라 멀리서 보면 웅크린 호랑이 형상이라 합니다. 이어 여름 캠프에 대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그 사이 제비 서너 마리가 머리 위를 날쌔게 날아갑니다. 이제는 귀해진 제비가 눈에 띄는 걸 보면 제법 살 만한 곳인가 봅니다.

 

12:00 정각, 창의문 쪽으로 산을 내려옵니다. 발 아래로 구불구불 곡선들이 펼쳐집니다.

 

5분쯤 내려와 커다란 바위 아래쪽으로 돌아서 인근 초소 근처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경비 근무 중이던 전경들도 같이 했습니다.

 

 

 

산길을 내려오니 12:20분 다시 큰 도로가 나옵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오른쪽 낡은 아파트는 철거 작업 중입니다. 5분쯤 더 걸어내려가니 창의문 지붕이 보입니다.

 

곧바로 창의문으로 가는 길이 없습니다. 거기서 길 건너에 차량 대여섯 대가 주차해 있는 공터가 있습니다. 그 안쪽에 좁은 골목길을 따라 계속 우회전하면 다시 큰 길이 나오고, 바로 창의문(12:34)이 길을 막습니다.

 

길을 건너 창의문 쪽으로 가니 1.21사태 당시 순직한 고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정종수 경사 순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일대는 사진촬영 금지구역이라 현역 군인들의 검문이 잠시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의 강력한 항의 때문인지 창의문만은 간신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창의문으로 올라가 누각 안에 걸린 현판을 살펴봅니다. 1623년 인조반정 당시 공신이었던 낙서공(휘 자점) 할아버지와 그 아드님(휘 연) 할아버지의 휘자가 없는 것을 재확인합니다.(이에 관한 글은 윤만 종친께서 우리 홈에 올리신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시내로 들어가 13:00분 칠궁을 지나 청와대 광장 쪽으로 향합니다. 광장 남서쪽에 대고문(大鼓門)이 있는데 그 안에 큰 북이 걸려 있습니다.

 

광장에는 연달아 관광버스들이 들고나면서 국내외 관광객들로 가득합니다. 관광버스가 서는 곳, 잔디밭에 팻말이 하나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임사 중에서 발췌한 것이라 합니다.

 

우리의 자유는 공동체를 위한 자유여야 합니다.

백범 선생님의 말처럼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여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사 중에서

 

 

 

13:10분 광장에서 다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경복궁을 거쳐 동십자각에서 길을 건너 세종로 뒷길을 타고 청진동 국밥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13:41분입니다.

 

산 위에서는 허기가 져서 맥이 풀렸는데 든든하게 한 그릇 비우고 나니 힘이 솟습니다.

 

12:00 정각, 부산에서 올라오신 충국 종친께 인사동을 안내해 드릴 겸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운영하는 찻집 귀천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산행 중에 못다 한 여름캠프 세부사항을 논의한 뒤 일부 계획을 보강하고, 충국 종친으로부터 우리 홈페이지 개선사항 설명을 들었습니다.

 

홈페이지 개선안은 매우 체계적이고 보기에도 산뜻해 그 동안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를 실현하기에는 상당한 고충이 뒤따를 것이 분명해 긴 시일을 두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논의사항을 다 끝내고 왁자지껄한 인사동 거리로 나오니 16:00정각입니다. 오늘 산행은 주행(酒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정 아쉬운 분들만 간단하게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정도로 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상 제10회 정기산행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글 김윤식,  사진 김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