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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제 20회 산행을 겸한 여름캠프 답사대회

              

 1. 일시 : 2005. 6. 12. 08:00--20:30

 2. 장소 : 충남 연기군 전의면 일대, 공주시일대

 3. 참석자 : 안사연(10명) : 항용, 태영, 은회, 윤식, 윤만, 발용, 용주, 진회, 행순, 상석

                현지종친 : 전서공파3명(근성,수회,승회), 안렴사공파3명(태동, 용식, 재은)

 4. 내용 : 각종 유적지 탐방

   <답사 후기> (2005. 6. 14. 발용(군), 행순 제공)

 

6월 12일 일요일 이른 아침! 조금은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입속말로 "오늘은 힘들어서 못가겠습니다"라고 연습해봅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소란을 피웁니다. 지각대장 행순이가  못미더워 발용님과 윤식님께서 저희 집 앞으로 직접 오셨습니다. 순간 힘이 불끈 솟아오릅니다. 힘들어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혼자 힘든 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산행은 공고했던 것과 같이 여름캠프 답사를 겸한 것입니다.

 

  아침 8시 2분 정확하게 항용, 태영, 은회, 윤식, 윤만, 발용, 용주, 진회, 행순 9명, 이제 출발합니다. 출발하자마자 태영님께서는 지난번 실시했던 성희안 신도비 탁본을 큼지막하게 하나씩 실사출력해서 나눠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집결지 잠실 종합운동장 앞

 

  이번에도  발용님은 우리의 발이 되어주셨습니다. 수원계시는 태우님을 태우기 위하여 우리들의 수레는 잘도 달립니다. 벌써 마음은 천안까지 갔습니다. 상석 대장님은 미리 내려가셨습니다. 너무나 철저하십니다. 수원에서 태우님을 태우고 또다시 수레는 달립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충남 연기군 전동면 미곡리 학당동에 모셔진 典書公派 시조인 金成牧 선조님의 묘소참배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정안IC로 빠져나와 23번 국도를 타고 천안쪽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다가 조치원쪽으로 꺾어져서 전의로 빠져나갑니다. 이정표가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상석 대장님을  전의면사무소에서 만나, 10시 20분쯤 도유사 수회님이 나와 계신 곳(소방서 앞)으로 가봅니다. 벌써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두 여섯 분-근성 전서공파 회장님, 승회님(전), 도유사 수회님(전), 태동님(안), 용식님(안), 재은(안)님이 마중 나오셨습니다. 서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일도 바쁘신 어른들께서 종사일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을 흔쾌히 반겨주십니다. 또한 전서공파 회장님은 상중이신데도 나오셨습니다. 많은 곳을 둘러보고픈 마음에 서둘러 典書公 金成牧 선조님의 묘소로 이동합니다. 모두 17명, 5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움직입니다. 맨 앞에서 도유사 수회님께서 안내를 해주십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하루종일 안사연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  여름캠프 1차 집결예정지 - 전의면 사무소 앞

 

 

 ▲  도유사 수회님을 만나고...

 

 

 ▲  전서공파 회장님. 상중이심에도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典書公 金成牧 선조님의 묘소 찾아가는 길은  전의면사무소 뒷길로 개천을 끼고 한국콜마를 지나서  천주교 성당을 지나고, 691번 지방도로(독립기념관과  성남방향)로 가다가  운주산성으로 우회전하여 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다가 선진 축사 지나 다리에서 우회전, 조그만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500m 거리의 언덕 고갯길을 넘어서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재실이 보이고 탁 트인 곳에 산중턱에 넓게 자리하고 계신 典書公 金成牧 선조님 묘소가 보이면 조그만 삼거리 갈래길, 김휴 유허비 옆길로 좌회전하여 들어갑니다.

 

  참으로 잘 가꿔놓으셨습니다. 먼저 참배를 하고 도유사 수회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습니다. 이 묘소는 위에 金玖 선조님의 단묘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아드님인 전서공 김성목 선조님의 묘소가 있습니다. 1992년에 대대적으로 사초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서공의 원 봉분은 그대로 두고 숯을 채우고 다시 봉분을 넓고 높이 세웠다고 합니다. 원형을 그대로 보존코자 그랬다고 합니다.

 

 윤식님은 둘레를 재어봅니다. 30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초작업 당시 도유사 수회님은 사초작업에 매달리시자 미처 축사를 살피지 못해 키우던 돼지 100여 마리를 잃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애석한 일입니다. 이날도 우리는 도유사 수회님의 안내에 하루종일 감사하며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  전서공 묘역 오르는 길

 

 

 ▲  휘 구(諱 玖) 선조님 설단 - 忠肅公 諱 承用의 아들

 

 

 ▲  구 비(舊碑)

 

 

 

 

▲  전서공파 근성 회장님과 항용종친.

 

 

 

 ▲  전서공파조 휘 성목(成牧) 선조님 묘소 전경

 

 

 

 

 

 

 

 

 

 

 

 

▲  묘역 조성 경위를 설명하시는 도유사 수회종친님

 

 

▲  전서공 묘소 측면

 

 

 

 

 

 

▲  학당 휘 휴 선조님 묘소 전경

 

 

 

 

 ▲  우측 문인석.

 

 

▲  좌측문인석

 

 

▲  구비(舊碑)의 거북좌대

 

 

 

 

▲  학당 선조님 유허비(國譯碑)

 

 

 

 

▲  전서공파 재실 학당재(學堂齋)-학당선조님이 사시던 실제 집터라고 함.

 

 

 

 

 

 

 11시 30분, 전서공의 묘소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에 전서공의 아드님 檢校公 學堂 金休 선조님의 유허비를 둘러보았습니다. 유허비에는 포은 정몽주의 문하생인 학당 김휴 선조님께서 정몽주가 순절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강학하면서 일생을 마쳤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지들이 세워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두꺼비 두 마리가 유허비를 지키고 있습니다. 유허비는 연안 金鑛 序, 李采 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잠깐 머리 숙여 참배하고 전서공파 회장님께서 모친상을 당하였으나 문상을 하지 못하였기에 조문을 하고 조위금을 전하였습니다.

 

 

 

 

 ▲  학당 김휴 선조님 유허비

 

 

  ▲ 弔問

 

 

 

 

 ▲  신작로에서 보인는 묘역 원경

 

  또다시 도유사 수회님의 댁(신방리)로 가서 보관중이신 <김제정 정려 현판>을 보았습니다. 이를 본 안사연 여러분들은 이런 역사 유물들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선 어서 <안동김씨 박물관>을 짓자면서 보존을 위해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 양곡리 입구에 있는 쌍효자문으로 갔습니다. 쌍효자는 김휴의 아들 김익정과 김익정의 현손 김사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조조와 명종조에 받은 정려문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윈래 김사준님의 정려문이었는데 몇 해 전 앞마을(앞실-양곡2리)에 있던 김익정님의 정려현판을 이곳으로 옮겨 와 합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양곡2리 전서공파 묘역으로 갑니다. 양곡리 압골에는 위에서부터 金龜年-金師俊-金師秀묘소와 조금 아래로 내려와 金瓛(김환)의 묘가 위치해있습니다. 묘소로 올라가기 전 길가에는 김환의 부인 남양홍씨의 열녀문이 있습니다. 김귀년선조님의 묘에는 풀이 없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너무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은회님은 그러십니다. 종인들이 흙 한 삽씩 가져다가 토양을 바꿔서라도 잔디를 살려야 한다고 넌지시 말을 던집니다. 金師秀 선조님의 묘갈명은 한석봉의 글씨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항용 선생님은 福昌君 金壽寧 선조님은 문장에 능하여 단종 때 장원하여 세조, 예종을 거쳐 성종까지 4명의 임금을 모셨으며, "국조보감", "동국통감" 등의 편찬에 참여하셨다고 준비하신 자료를 읽어주셨습니다.

 

 

 

 

 ▲  김환 처 남양홍씨 열녀비 정려

 

 

 

 

 

▲  휘 귀년(龜年) 선조님 묘소

 

▲  쌍효자문의 주인공 휘 사준(師俊) 선조님 묘소.

 

 

 

 

▲  휘 사수(師秀) 선조님 묘소의 석물들 - 안정된 배치가 돋보인다.

 

 ▲  휘 사수(師秀) 선조님 묘소

 

 

▲  휘 사수(師秀) 선조님 묘소의 묘비를 살펴보는 참례단 - 한석봉 필적

 

 

 ▲ 풍화로 인한 마멸이 상당히 진행 된 묘비.

 

 

 

  배고픔도 잊은 채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선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 다니다가 2시가 되어서 金흔 장군의 연기대첩비가 있는 고복저수지 근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들 늦은 점심이기에 더더욱 맛있게 먹고 전서공파 회장님과는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일행은 또다시 발걸음을 전적비로 옮겼습니다.  

 

  金忻 선조님의 연기대첩비는 2곳에 있습니다. 국촌리의 고복저수지에 있는 전적비는 2000년도에 군에서 건립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서면의 방촌리 길가에 있는 대첩비는 싸우시던 그 장소에 1997년 전서공파에서 세운 것입니다. 대첩비 주변에는 망초꽃이 가득했습니다. 종친님들 한 포기씩 뽑아내니 어느새 훤하게 대첩비가 보입니다.

 

 

 

 

 

 

 ▲  연기종친회에서 설립한 연기대첩 사적비

 

 

 

▲  앞에 보이는 산이 연기대첩의 전투지인 정화산

 

시간은 흘러 어느덧 4시 넘었습니다. 종친님께서는 음료수를 아주 많이 준비하셨는데 급하게 다니느라 헤어지는 자리에서야 전해주셨습니다. 마침 더웠는데 정말 시원하게 마셨습니다.

 

 이곳 대첩비에서 승회, 태동, 용식, 재은, 용주 종친님과 헤어지고, 우리 안사연 일행은 마곡사로 도유사 수회님의 안내로 출발합니다. 맘이 급해졌습니다. 도유사 수회님은 비상등을 켜고 마구마구 달립니다. 집에 두고 오신 돼지와 타조들이 걱정이 되시는가 봅니다. 우리 일행은 뒤쫓아 가기에 바쁩니다. 발용님 졸립다고 걱정을 하시다가 앞에서 도유사 수회님께서 지방도로를 100키로 가까이 쌩~~ 잠이 확 달아났다고 하십니다.

 

  마곡사에 도착해서 도유사 수회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돼지와 타조가 무사하길 바랍니다. 아이스크림 한 개씩 먹고 힘내서 마곡사는 안내지도만 보고, 우리는 다시 공산성으로 향했습니다.

 

 공산성 입구에 도착하니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벌써 시간은 5시 40분 공산성입구에 세워진 47개(?)의 불망비 중에서 안동김씨 문중에서 세운 4개의 사적비가 입구 맨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모두들 김씨 성의 불망비가 몇 개나 있는지 세어 봅니다.

 

 

 

 

 

  산성 안쪽으로 들어가니 고목들이 컴컴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시원하였습니다. 준비해 간 맥주 한 캔씩 나눠 마시며 안사연 여름캠프에 대해 논의 하였습니다.

 

▲  여름캠프의 일정을 조율하는 시간.

 

오후 7시쯤 공산성을 내려와 상석 대장님은 안양으로 가시고, 나머지 일행은 발용님 차에 타고 버스전용차로를 올라탔습니다. 서울을 올라오는 길은 뿌듯하기만 합니다.

 

 8시 20분, 교대부근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술 몇 잔을 곁들이고, 마냥 행복했던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글 김행순   사진 김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