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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회곡리 충렬공 유허비 좌대 이건행사 실시

               (2005. 12. 10. 글-윤식(문), 사진-발용(군) 제공)

 

경북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의 충렬공 유허비 옛 좌대 임시 이건행사가 2005년 12월 3일 실시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임시 학술발표회 겸 2005년도 송년회 행사’ 이후에 보고한다는 안사연 결정에 따라 이제야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점 널리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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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05년 12월 3일(토요일)

■ 장소 : 경북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

■ 참석 : 12명(무순, 존칭 생략)

   현지 : 봉회, 봉수(泰항 도유사), 광득(寶植)

   대구 : 광남(재화), 정중(植항)

   서울 : 영환, 영윤, 발용(會항), 태우, 태영, 항용(植항), 윤식

 

이번 행사는 우리 안동김문의 성지(聖地)인 회곡리 입구의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영환 종친의 발의로 긴급히 추진되었습니다. 회곡리 입구 고개의 협소한 2차선 도로 가에 충렬공유허비의 옛 좌대가 있었습니다.(임시 학술대회 내용 참조)

 

12월 2일, 아침부터 날씨가 꾸물거리더니 저녁 나절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가는 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걸 보니 꽤 많이 내릴 모양입니다. 강설(降雪) 지역이 전국적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안동 가는 길이 걱정스러웠습니다.

 

12월 3일 07:00시 정각, 서울 도곡동 영환 종친의 자택 인근에 태우, 태영, 항용, 윤식 종친이 모여 영윤 종친과 발용 종친께서 기다리시는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주요 간선도로와 고속도로에는 염화칼슘을 뿌려서인지 걱정한 것보다는 덜 미끄러웠습니다. 중부고속도로 입구 만남의 광장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다음 08:00시 정각 회곡리로 향합니다. 중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안동으로 가는 도중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여러 번 목격되었습니다만, 선조님들의 보호 덕분에 우리 일행은 무사히 10:25분에 서안동IC를 통과해 10:39분 회곡리에 도착하였습니다. 불순한 날씨 때문에 예상보다 훨씬 지체되었습니다.

 

회곡리에는 도유사 봉수 종친을 비롯해 상락재를 관리하시는 봉회 종친, 청년 시절부터 종사에 심혈을 기울이신 광득 종친, 그리고 대구의 광남 종친과 정중 종친께서 일찍부터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광남 종친께서는 교장과 교육장을 역임하시는 등 평생을 교육계에 헌신하셨습니다.

 

종친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다음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할머니 단소로 올라가 큰절로 인사를 드리고 유허비각 안에 모셔져 있는 유허비를 실측했습니다(세부내용은 학술발표 내용 참조). 안산에 있는 옛 좌대가 정말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산에는 응달인 데에다 협곡이라 귀를 에는 칼바람이 품속을 파고듭니다. 만에 하나라도 옛 좌대가 상하지 않도록 여러 종친들이 달려들어 좌대를 파냅니다. 다행히 땅 속 깊이까지는 얼어붙지 않아 30여 분 만에 옛 좌대 언저리를 파낼 수 있었습니다. 파내고 보니 옛 좌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 미리 준비한 포크레인으로는 옮기기 어려워 가장 큰 06형 포크레인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현 유허비 및 좌대 실측

 

 

 ▲ 옛 좌대, 한파로 인하여 돌도 땅도 얼어붙었다.

 

 

▲ 옛 좌대 이건을 위한 첫 삽

 

 

 

 ▲ 도로공사를 알리는 깃발

 

 

 

 ▲ 옛 좌대 실측

 

 

 

 

다른 포크레인이 도착하기까지 우리 일행은 상고산으로 올라가 충렬공께서 낙동강을 완상하시던 고산정(孤山亭)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상락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를 중심으로 상고산을 샅샅이 뒤졌으나 700여 년 전의 일이라 단 한 번의 시도로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낙동강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 고산정 터이겠으나, <영가지>에 “외로운 산이 강과 시내가 합치는 곳에 있으니 여기가 충렬공(忠烈公)이 정자를 지은 곳이다.”라 기록돼 있으니 혹시 회곡리의 실개울이 낙동강으로 빠져나가는 곳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여하튼 한 번으로는 부족한 일이고 여러 번 발걸음을 하다 보면 고산정 자리도 찾으리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 고산정을 찾아서 상고산으로..

 

 

 ▲ 상고산에서 바라본 상락대

 

그러는 사이 새로운 포크레인이 회곡리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옛 좌대를 얽어맬 체인이나 와이어가 없어 영윤 종친께서 포크레인 기사를 대동하고 급히 풍산읍으로 나가 5톤까지 견딜 수 있는 바(bar)를 구해 와야 했습니다.

 

여러 종친들께서 달려들어 포크레인에 달아맨 다음 맞은편 상락재 인근으로 옛 좌대를 옮깁니다. 포크레인이 상락재 입구로 들어오는 동안 또 한 번 종친들이 애를 먹습니다. 포크레인이 크다 보니 전깃줄이 길을 가로막습니다. 장대와 낫을 이용해 포크레인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한 뒤에야 상락재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옛 좌대를 안치할 장소를 결정해야 할 차례입니다. 도유사 봉수 종친을 비롯한 현지 종친들의 의견을 따라 상락재와 충렬공 유허비 사이의 계단 왼쪽에 임시로 옛 좌대를 안치하기로 하였습니다.

 

 

 ▲ 장비투입

 

 

 

 

 

 

그런데 옛 좌대를 들어올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축대 위로 들어올리려니 5톤까지 견디는 밧줄이건만 ‘투두둑’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탁’, ‘탁’ 하며 밧줄이 터져 나갑니다. 간신히 밧줄 두 개를 엮어 정말 어렵게 축대 위로 들어올려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옛 좌대를 무사히 옮겨놓고 주변까지 말끔히 정돈하니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합니다. 13:46분 기념사진을 찍고, 안동 시내로 나가 늦은 점심을 들었습니다. 송구스럽게도 광남 종친께서 점심값을 치르십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말씀 올립니다.

 

 

 

 

 

 ▲ 위로부터 광남종친, 항용 정중종친, 윤식종친, 영윤종친.

 

 

 

 

 

 

 

 ▲ 유허비각을 배경으로... 이건된 옛 좌대

 

 

 

이제 의성 사촌으로 향해야 할 시간입니다. 사촌은 도평의공파의 중심지이자 우리 문중의 최대 집성촌 중 하나로서 병신의병(1896년) 전만 해도 ‘영남의 와해(瓦海)’로 불릴 정도로 와가(瓦家)가 처마를 맞대고 이어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송은(휘 광수) 선조님을 비롯해 만취당(휘 사원), 독수헌(휘 사형), 후송재(휘 사정), 천사(휘 종덕) 선조님 등 퇴계 학맥의 정통을 이어온 걸출한 대학자를 연이어 배출하였으며, 문과 급제자 11명을 비롯해 대과와 소과 급제자가 무려 50명을 넘어서 전국적으로도 으뜸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벼슬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과 수련에 더욱 정진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의병으로 나아가 적과 맞서니 그 높은 뜻은 우리 민족의 참다운 선비정신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촌마을 출신이신 광남 종친과 정중 종친의 안내로 14:55분 안동에서 출발해 약 30분 뒤에 사촌에 도착합니다. 죄송스럽게도 창회 종친께서 3시간 전부터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추운 날씨 탓에 좁은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셨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정중 종친의 연락으로 공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사촌마을 자료전시관’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나와 계셨습니다.

 

사촌마을은 연차적으로 총 80여억원의 정부 자금이 투입돼 옛 모습으로 복원되는 중입니다. 이 복원공사가 완료되면 하회마을을 능가하는 전통마을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송은 선조님의 외손자인 서애 유성룡 선생이 사촌마을에서 태어났으니 사촌이 옛 모습을 완전히 되찾게 되면 사촌과 하회가 안동의 전통마을로 더욱 부각될 것입니다.

 

사촌마을 자료전시관은 천사 선조님의 옛 집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시멘트 콘크리트조입니다. 목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화재나 보안문제 때문인 듯합니다. 전시관 안에는 사촌마을 소개에서부터 사촌의 역사적 인물, 각종 문집 등 진기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문집 또한 대부분이 사촌문중 선조님들의 문집이라 더욱 뿌듯했습니다.

 

 

 

 

전시관 부지는 350평, 건평은 30평으로 11억 5,000만원이 투입되었답니다. 2004년 10월 착공해 1년여 만인 2005년 11월 중순 완공되어 현재 내부공사를 마치고 정식 개관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우리 일행은 전시물들을 유심히 살펴본 다음, 영환 종친께서 안동김씨대종회 정식 홈페이지인 ‘안동김씨홈페이지’ 30만 번째 접속자인 정중 종친에게 대종회장님을 대리해 기념패를 전달하였습니다.

 

이어 후산정사(後山精舍)로 이동해 최근 복원된 후산사(後山祠)를 참배하였습니다. 후산사는 만취당(휘 사원) 선조님을 기리는 사우(祠宇)로서 고종 6년(1868년) 국령(國令), 즉 흥선대원군의 사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검게 타 버린 주춧돌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4년도에 국가에 의해 후산사가 복원돼 137년 만인 2004년 9월 19일 만취당 선조님의 위패를 봉안하여 ‘후산사 복향 고유제’를 봉행한 바 있습니다.

 

 

 

 

 

 

 

이미 우리 종친들은 2002년 제1회 안동김씨 여름캠프를 통해 사촌마을을 방문할 당시 사촌마을 종친들의 따뜻한 환대를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 정갈한 모시옷 차림으로 후산정사에 모이신 사촌문중 어르신들께서 “조금 더 머물다 가시라.”며 손을 잡아 주시던 한 할아버지의 자손으로서 그 혈육의 정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항용 종친이 서울에서의 중요한 약속이 기다리고 있고, 해가 지고 나면 길이 얼어붙어 귀갓길이 위험할 것 같아 서둘러 사촌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복원된 사촌을 둘러보지 못하고 떠났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만을 바랍니다.

 

16:15분, 해가 서산 마루로 내려앉을 즈음 사촌마을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서울로 향합니다.

 

이상 충렬공 유허비 옛 좌대 임시 이건(移建)행사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추기>

 

이번 행사 중에 광득 종친께서 충렬공 신도비각 건립과정, 안동에 거주하시는 익원공파 종친들께서 이곳에 터를 잡으신 내력, 1985년 충렬공 유허비 이건 과정 등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할머니 묘소와 관련된 귀중한 정보를 주셨기에 특별히 별도 기록합니다.

 

■ 화림촌 -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할머니 묘소가 있는 화림촌은 군자리 광산김씨 집성촌 뒤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