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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제 33회 안사연 정기산행(강릉) 후기

             (2006. 7. 10. 글-상석, 사진-윤만, 항용)

 

 1. 일시 : 2006년 7월 9일(日)07:00-20:00시

 2. 장소 : 강릉시 익원공파 주부공(휘 기) 묘소 및 정려각, 허난설헌 생가지

 3. 참석자(존칭생략)

  가. 안 사 연:영환,재구,상석,윤만,발용 내외분,진회,태우,태영,항용-10명

  나. 문단공기념사업회:태훈(회장),영식(총무)-子형민,용주(사무총장),상용,형남-子진교-7명

  다. 강릉종친회;원구(회장),재흥,철회(부회장 2인),재현,인회(총무),태견,용식-7명

 

 아침 7시가 되자 휴일 한산했던 종합운동장 입구가 갑자기 시끌벅적 야단입니다.17명의 안김이 금번 7월 정기산행에 <문단공기념사업회>에서 지원해 주신 노란색 24인승 마이크로버스로 모여듭니다.일행들이 모두 같은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꼭,걸려든 먹이감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드는 거미의 동물적인 본능을 보는 듯 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이번 행사를 함께하실 <문단공기념사업회>와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차례로 자기소개의 시간을 갖습니다.인사가 끝나고 영환님께서 강릉과 관련한 문온공(휘 九容) 선조님의 시 소개와 아울러 모소주회사의 상표로 유명했던 "山水甲天下"에 얽힌 아련한 기억들을 들려 주십니다.

 

 뒤를 이어 태영님께서 준비해 오신 강릉지역 선조님 관련자료 해설을 경청하는 사이 차량은 어느새 난설헌(허초희) 할머님의 음택을 지납니다.에어컨 바람이 싫어 조금 열어 놓은 창문틈으로 할머님은 잘 보이지도 않는 거미줄 같은 실 끝을 필자에게 슬며시 건네 주십니다.

 

 여주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마치고 08:30 후텁지근한 바깥공기를 차에 싣고 원주를 지나 용평에 이르니 분사하듯 차창으로 물방울을 들이댑니다.변덕스런 일기와 기압의 차이로 이따금 구름속을 거니는가 싶기도 하고 무릉도원을 거니는가 싶기도 한 게 관동으로 가는길은 항상 묘미와 설레임을 가져다 줍니다.

 

 차량으로 질주하는 오늘날에도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흔들어 놓으니 우마로 고개를 넘던 옛날 옛적의 선인들을 말해 무엇합니까!.이 험준한 산맥을 넘나들며 사임당이 율곡을 키웠고 초당(허 엽)선생께서 피로 얼룩진 당쟁속에서도 성,봉,초희,균을 조선의 대문장가로 키워냈으며 선생의 후손들은 소금을 취할 수 없는 물리적인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여 해수를 이용해 두부를 만드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처럼 3%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바다가 썩지않는다는 과학적 지식이 없던 시절에 발휘된 해수를 이용한 두부의 완성이기에 그 지혜가 빛이 되었고 지금은 방방곡곡에서 인기있는 먹거리로 후손들과 지역주민을 살찌우는 소금이 된 것입니다.

 

 

<강릉 I.C에서>

 

 서울을 출발한 지 세시간 반,흩뿌리던 가는비가 멈추고 동해가 시야에 들어옵니다.강릉IC를 빠지자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시던 <강릉종친회>에서 반겨주십니다.현지에서 차량을 인도하여 그곳의 입향조(주부공 諱 기)의 배위이신 강릉김씨 묘소가 있는 장현동의 모산초등학교 뒷산(모산봉104M)에 도착하여 예를 올립니다(헌관:상석).

 

 

<김기 선조님 배위 강릉김씨 묘역 입구>

 

 

<모산 아래 주부공 묘소 앞의 안내표>

 

 

<모산 아래에 있는 재실>

 

 직사각형의 석곽으로 잘 조성되어 단정하게 자리한 할머님묘소의 혈은 좌우로 능선이 둘러 쌓여 있고 움푹한 모양을 한 것이 마치 여인이 누워 출산을 하는 형상입니다.그리고 앞으로는 우측에서 좌측의 비행장쪽으로 물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입니다.그런 연고로 직계후손만 천여 세대가 발복을 하고 있다고 전해 주십니다.

 

 

<묘소로 오르는 길, 잘 다듬어진 인도>

 

 

<묘소 전면>

 

 

<묘소 측면>

 

   

<묘소 앞 좌우측의 묘비>

 

 

<묘역 우측의 묘비석>  

 

 

<묘소 호석의 문양-특이한 문양이다>

 

 

<묘소 앞의 향로석-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묘역 좌측의 묘역 정비기>

 

 

<장명등>

 

 

 

 노송으로 둘러싸인 묘하의 오솔길을 내려와 길을 되짚어 돌아나와 양양방면으로 오죽헌을 조금 못미쳐 대로변의 왼쪽에 자리한 <안동김씨 삼세 삼효 이열각>에 들러 묵념으로 예를 표합니다. 건너편 야트막한 산자락에 선대묘소와 모선재가 있습니다.

 

<성곡마을 표석>

 

<정려각>

 

 

<정려각 현판>

 

 

 

 

 오죽헌에 들러 박물관 옆에 위치한 비석군을 살펴봅니다.혹시나 강릉지역에서 벼슬하신 안김 선조님들의 불망비나 공덕비 등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아쉬운 맘을 달래며 주차장을 빠져 나옵니다.

 

<오죽헌 내의 비석군>

 

<비석군 해설판>

 

 강릉지역의 대표적인 전통명문가옥인 선교장을 지나 13:00가 되어 난설헌 할머님의 생가인 초당에 도착하였습니다.아까부터 시나브로 감아왔던 실타래가 한 다발이 되자 초당 입구의 우물이 보입니다.다른쪽 실 끝을 놓으며 난설헌 할머님이 어릴적 초희의 모습으로 안채에서 나오시며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십니다.음택에서 부터 감아 온 실의 처음과 끝이 우주안에서 공생하는 혼(魂)과 백(魄)의 존재일 것이라 생각하며 소담스런 화단을 지나 사랑채로 건너갑니다.

 

 사랑 앞에 둘러서서 항용님께서 낭송해 주시는 "閨怨"을 가슴으로 듣습니다.또한 학계와 여성계에서 평가하는 목소리들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조선조 반가의 총명한 규수(허초희)가 일찍부터 학문을 통해 접한 사상과 철학을 억누르지 않고 짧은 생애에서 지혜롭고 어진 아내로,여성으로서,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로서 시대상황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시를 통해 사회에 던진 메시지의 위력이 컸다는 것을-----그리하여 구태의연한 이들의 반발과 졸장부들의 시기를 샀다는 것을-----.

 

<허난설헌 생가터 일각문>

 

<허난설헌 생가터 안채>

 

<안채 옆면과 후면>

 

<안채 화단과 곳간채>

 

<내외담과 사랑채>

 

<사랑채>

 

<사랑채 마루방과 온돌방>

 

<사랑채 홑처마와 원기둥>

 

<사랑채 불밝기창>

 

<솟을대문>

 

<담장>

 

 

 

 

<석류 등 허난설헌 생가터에 피어 있는 꽃>

 

 조선조 대표적인 여류시인,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진 난설헌 할머님을 뒤로하고 <강릉종친회>에서 제공하신 강릉고 앞의 초당엄마손순두부에서 늦은 점심을 합니다.식전에 안사연에서는 경진보(영인)와 강릉답사자료집,충렬공 소설<붉은바다 열전 김방경>과 기념품을,문단공 기념사업회에서는 <국역 우암 김주문집>을 <강릉종친회>에 전달하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담소가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일가가 아니면 이렇게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경포 안내판>

 

 자주 갈 수 없기에 경포대엘 들러봅니다.성급한 이들이 벌써부터 백사장에서 젊음을 불태우며 여름을 즐기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상경을 서두릅니다.대관령을 넘자 먹물을 머금고 있던 하늘에서 장대같은 빗줄기를 뿌려 댑니다.

 

<오리바위 십리바위>

 

 

<경포대 해수욕장의 모습들>

 

 이 글을 빌려 환대해 주신 <강릉종친회>와 <문단공기념사업회>에 감사의 말씀 전해 올립니다.

 

<패러그라이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