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89) 제49회 산행

             (2008. 1. 22. 글-상석, 사진-발용. 제공)

 

제49 회,안사연 정기산행 후기 - 삼척일대      

                  겸 신년하례식(영식대장님 총괄기획)

                  겸 홈페이지 운영평가회(홈 관리자 항용님 자료작성 및 진행)

                  답사자료(영환님의 최근 게시판 자료로 엮음)

 

 월요일 아침, 뉴스를 접하니 서울 경기는 물론 관동지방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설로 두 자 가량의 적설량을 보이며 계속해서 눈발이 그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인 19일과 20일, 양일간에 걸쳐 강원 삼척일대의 설원에서 펼쳐진 안사연 제49회 정기산행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을 뒤로하고 이제 또 하나의 전설로 남아 대관령을 넘나들고 있으리라 여기며 대략의 답사 전말을 보고합니다.

 

-함께하신 분들(존칭생략)

 

 행순(시간의 물레),영환내외님,영윤,재구,우회내외님,은회,발용,진회,태우내외님,태영내외님,항용,영식,용주내외님,상석가족-이상 22명.

 

 토요일 아침, 아홉 시에 종합운동장을 출발한 아시아관광 버스는 하남의 만남의 광장에서 영윤,발용,진회님과 동승하여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가는 중에 영식대장님으로부터 이번 행사의 진행절차와 숙박안내에 이어 본 홈 관리자인 항용님의 진행으로 <홈페이지 운영평가회>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2000년 12월 20일 등재 후 오늘이 있기까지의 전반적인 과정과 운영형태의 변화가 소개되었다.

 

 참석자들은 1일 평균 223명 접속(방문자수), 평균 게시물 8.92개를 치닫던 2003년을 정점으로 홈에 대한 사랑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운영상 문제점 및 향후 대책마련 등이 거론되었다.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서면이나 이메일을 통해 평가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하고 자체평가회를 끝내고 나니 어느덧 차는 대관령을 넘어 동해방면으로 새로 난 길가로 접어들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 삼척시 신기면 신기리에 위치한 <강원 종합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 늦은 점심시간을 갖고 특정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의 이모저모를 관람하였다.

 

 잠시 후에 삼척을 대표하며 최근 개방한 <대금굴>은 일정상 지나치고 곧바로 환선굴(幻 仙 窟 )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미지의 세계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조명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도 미개방 구역을 남기고 일부만 개방을 하여 철제계단과 출렁다리로 통로를 확보하여 보여주고 있었는데 자연이 빚어 낸 기기묘묘한 절경이 남아있는 곳엔 어김없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고 그 아래엔 형상과 어울리는 제목을 붙인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높낮이를 따라 맑은 물이 괄괄거리며 흐르다가 소에서 잠시 멈추었다. 수억만 년 동안 빛을 볼 수 없었던 생명체들이 눈이 멀어 바글거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더욱 더 어둠을 헤치며 오그라들다가 사라졌다.

 

 네 시 사십 분에 굴속을 빠져나오니 해가 길어진 깊은 산속 석굴 입구는 아직도 관광객들이 찾아와 술렁거렸다.

 

 금방 산골마을에 어둠이 깔리고 눈밭에 갇혀있던 촌가는 잔뜩 웅크리고 앉아 군불을 지피는지 이른 저녁 준비를 하는지 소리 없이 잿빛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 조모의 묘소인 준경묘와 영경묘가 있었다.

 

 길이 막혀 인근의 준경묘는 들르지 못하고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성계의 5대조모의 묘로 불리는 영경묘(永慶墓)를 찾아 비탈진 언덕길로 접어들어 어둠이 깔리고 잔설이 남아있어 미끄러웠으나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묘소 아래 능선 초입의 홍살문 위로 재실과 비각이 있었고 조선조의 흥망성쇠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달빛이 송림사이로 스며들다 홍살문을 흔들어댔다.

 

 홍살문이 열렸다.

 

 재실을 돌아 가파른 능선에 석축을 쌓고 봉분을 높이 한 묘소를 찾아가니 묘전은 흰 눈으로 덮여 있었고 양지바른 봉분에서 녹아내리던 눈이 반짝거리다가 이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자 솔숲에 납작 엎드렸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모래시계로 뜬 <정동진일출>은 저리가라인 <추암일출>을 보고자 깊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다. 산소탱크인 강원도의 아침 호흡은 역시 상쾌했다.숙소가 있는 산자락은 자욱한 안개가 깔려있었고 는개가 흩뿌리며 고요함을 깨웠다.

 

 찬란한 동해의 일출광경이 으뜸인 추암일출은 너무나 장관이라서 애국가의 동영상 자료로 쓰이고 있기에 아쉬운대로 추암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는개는 어느새 추적추적 가느다란 빗줄기로 변하여 해맞이 고개를 내려오며 일출을 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버리고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인파속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아! 얼마나 많은 선인들이 이곳을 찾아와 말머리를 돌리고 갔던가!

 

 아침을 먹고 애랑이와 덕배의 러브스토리가 있는 <해신당>을 찾았다.

 

 바닷가 언덕에 곱게 차려입은 애랑이를 모시는 해신당과 어구와 선박 등의 변모 등을 보여주는 기념관을 관람하였다.

 

 <죽서루>로 가는 길엔 공양왕릉과 함께 두 아들의 묘군(墓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공양왕은 실묘로 고증된 것은 아니라고 표지판에 설명을 하고 있었다.

 

 11:00, 드디어 시인묵객들의 교류장소며 조선시대엔 객사로 쓰였던 관동 제일경인 <죽서루>에 닿았다. 죽서루는 깍아지른 오십천가의 기암절벽에 기세등등하게 우뚝 솟아있었다.

 

 비록 와수교와 출렁다리는 오간데 없었지만 죽서루에 남기고 사라진 선현들의 발자취와 시문학만큼은 아직도 기둥과 대들보에 고스란히 그 체취가 남아있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부여잡고 있었다.

 

 12:00,삼척김씨의 시조인 <실직군왕릉>묘를 답사하고나서 마지막으로 <천은사>를 찾아 나섰다.

 

  순탄하지 않은 귀경길, 버스안에서 '과수원길'을 선곡하여 <2008,신쟁반노래방>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운영하였는데 이번 행사에 청소년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슬빈양(중3)과 선응군(초6)의 엄격한 심사로 진행되었다.

 

 안사연 가족과 함께한 2008년 첫 정기산행,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아름답고 소중한 답사길을 함께 해주신 회원님들께 깊이 머리숙여 감사의 말씀 전해올리며 가내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