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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제53회 정기산행

                 (2008. 5. 11)

 

제 53 회,안사연 정기 산행 청량산(남한산성)후기           글-상석, 사진-항용

참석자(존칭생략)

대구종친-영화(익,대구 청장년회 전회장) 내외분, 경회(익,대구 청장년회 초대회장)내외분,  

             순회(익,대구 청장년회 4,5대 회장) 내외분, 재만(문,대구 청장년회 직전회장)  

안 사 연-영환내외분,재구,윤만,우회내외분,태우,태영,항용,영식,준용,상석(자녀-슬빈,선응)

하산 후(벽수장)-영윤 내외분, 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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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6(병자)년 12월, 북계의 정황을 알리는 도원수 김자점의 장계가 편전을 두드렸다. 어전에 입시한 정승과 판서들이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침묵하였고 보름달이 고드름을 흔들며 어른거려 용상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영의정 김류가 두루마리 장계를 읽었고 이판 최명길이 궁을 버리자고 아뢰었다. 서안을 응시하던 임금(인조)의 눈은 어두웠고 몸은 더욱 더 쪼그라들어 이제 막 마흔을 넘긴 나인데 환갑을 훨씬 넘어 송장에 가까웠다.  

 

 당상관들은 적의 숫자가 십만이라고도 했고 십 오만이라고도 했다. 중과부적이었다. 적들이 비어 있는 앞길을 파죽지세로 내려오며 개성에 이르자 왕실은 정묘호란(1627년-인조 5년) 때 강화도에 싸들고 갔던 종묘의 신주를 다시 꺼내 지게에 실었다.

 

 임금과 문무백관이 고개를 숙여 수구문을 빠져나와 송파에 닿았다. 사공이 언 손을 비비며 삿대를 밀었다. 얕은 얼음이 뱃머리에 부딪쳐 사그락거리며 부서지다 달빛을 받아 반짝거릴 뿐 어느 누구도 입을 열어 말을 흘리지 않았다. 승지들과 상궁들은 얼음이 두꺼운 곳을 골라 걸어서 강을 건너 어가 행렬을 쫓아 길을 따랐다.

 

 강 건너 민촌에서 임금의 할아버지(선조)까지 들먹거리며 임금의 뒤통수에다 욕지거리를 퍼부었으나 말울음에 섞여 임금은 듣지 못했고 걸어서 건너던 6품 관원이 눈을 흘기며 귀를 씻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조선의 임금이 반정 후 이괄의 난을 수습하고 손을 보아 둔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이다.

 

 오월의 푸르른 날에 14명의 안사연 일행은 마천역에서 합류하여 서문을 향해 걸었다.

 

 명분인지 의리인지 모를 것들을 지키며 산성의 오목한 행궁에서 임금 스스로 명(明)에 망궐례(望闕禮)를 올렸고 예판 김상헌이 명을 받아 온조사당(今숭렬전)에 제사를 지냈다. 입성한지 보름이 지난 설날, 닭 냄새가 나는 연기를 피워 올리던 민가는 조정이 달 반을 버틴 덕분에 기르던 개까지 다 잡아먹은 까닭으로 더 이상 연기를 피울 수 없었다.

 

 성안에서 내리는 임금의 교서는 시오리를 가지 못하고 되돌아오거나 혹은 당도하였다 해도 청병에 의해 길이 막혀 교지를 받들 수 없었고 부릴 사람과 병장기가 턱없이 부족한 수령들은 그나마 부녀자들이 날라다 준 짱돌이라도 갖고 성문을 굳게 잠그고 버텼다.

 

 도망가지 못한 병사들이 겨우내 동상에 썩은 손가락으로 말가죽을 벗겨 삶았다. 국물에 뜬 마른콩에서 말 비린내인지 손가락에서 나는 비린내인지 알 수 없는 냄새가 풍겼고 강화의 소식을 들은 임금은 말을 더듬거리며 숨죽여 울다가 소현세자와 신료들을 데리고 1637(인조15)년 1월 30일 바로 이 서문을 빠져나온다.

 

 서문이 붐비고 있었다.

 안사연 일행이 서문에 이르자 인조는 ‘삼전도로 가는길’이라 했다. 묻지도 않은 길, 길 없는 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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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로 초입에 있는 상관(제,在항,병천고향. 휘 時進 후손) 종친집에 들러 칡즙을 한 잔 하고 대구 종친들과 약속한 수어장대로 길을 잡았다.

 

성곽을 따라 마라톤 행사가 있었고 피어나는 꽃들은 서럽게 울어 벌겋게 충혈되어 들마다 융단을 깔며 몸부림을 쳤다. 나무들은 온조의 역사를,고려의 역사를,조선의 역사를 숨기려고 애쓰는지 기둥을 감추며 잎새를 키우고 있었다.

 

 수어장대 앞에서 대구 청장년회의 전회장단 일행과 합류하여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함께 하였다.

 

 남문을 지나 동문에 닿을 때까지 가파른 성벽을 따라 발길을 옮기며 생각한다.

 

 걸어서 목적지를 두고 가는 산행길도 이처럼 발걸음이 천근만근인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이 땅의 역사에서, 병장기를 들고 피아간 접전을 했던 이들의 순간순간을 말하여 무엇하랴.

 

 벌봉에 올랐다. 전하는 말에 용골대가 왔다고도 하고 청의 칸이 황제라 칭하고 여기에 올라 성안의 행궁을 보며 신년하례식을 가졌다고도 한다. 그 후 한 달을 삼전도에서 기다리다가 인사를 받고 북으로 갔다던가.

 

 대구 종친님들과 훗날을 기약하고 헤어져 안사연 일행은 엄미리 계곡으로 내려오다 의안대군(방석墓)를 둘러본다. 표지판을 보니 한동안 실전했다고 쓰여있다. 아마도 청병들이 성을 에워쌀 때 다친 모양이다.

 

 묘소 아래의 재실을 지키던 아낙과 <대왕 세종>이야기를 하며 방석의 후예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그만 지체하여 벽수장에서 배웅나오신 발용님의 차에 올라 타 호사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