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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2008년 제7회 안사연 여름캠프(고창, 부안, 계룡) 후기

             글-상석  사진-발용

 

◇일시 : 2008. 8. 15~8. 17(2박 3일)

◇장소 : 전북 고창, 정읍 일대

◇참석(파별, 존칭생략)

  •군 사 공 파 : 재구, 발용, 태영, 태우 내외분

  •문 온 공 파 : 영환 내외분, 재만, 윤만

  •도평의공파 : 은호 대구청장년회 회장

  •제 학 공 파 : 상천 파종회장 내외분, 상석, 항용

  •안렴사공파 : 영만 파종회장, 관묵 대종회 전사무총장, 주회

  •익 원 공 파 : 재영, 명회 대종회 부회장, 은회

  •익원공파 고창 현지 종친 : 재효, 삼랑, 수은

 

 2002(안동•의성), 2003(안동•포항), 2004(괴산•증평), 2005(연기•홍성), 2006(파주•문산), 2007(진주•통영)에 이어 2008년 여름캠프는 군사공파 태우님의 총괄기획으로 안렴사공파 웅회님의 도움을 받아 광명관광버스를 이용해 2박 3일간 고창, 부안을 향해 대장정에 올랐습니다.

 

<8월 15일(금)>

 

 아침 09:00시에 잠실종합운동장을 출발한 버스는 12:00시가 되어서야 천안휴게소에 도착하여 영만 안렴사공파 회장님과 주회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배웅 차 함께 나오셨던 남응 대종회장님은 한참을 기다리시다 잠시 전에 되돌아가셨고 영만 회장님은 기다리시는 동안 <일본정벌군-1>을 읽고 계셨습니다.

 

 천안을 벗어나니 차량은 비교적 빠른 속도를 냅니다. 고창에 도착하기 전 버스 안에서 윤만님의 전반적인 자료집 해설에 이어 재영님께서 별도로 일목요연하게 총천연색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해 오신 익원공 관련 자료와 선계도를 직접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고, 명회 부회장님은 익원공 영정과 부조묘의 이전 경위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계속해서 “역사는 숨기지 말고 밝혀야 한다.”는 상천 회장님과 “열정을 더 가져라!”는 관묵님의 간곡하신 부탁 말씀, “지나온 문중 종사에 애를 먹었노라.”는 영만 회장님의 질박하신 어조, ‘보정 김정회 행장’을 태영님이 재정리해 주셨고, 끝으로 영환님께서 <금수정> 관련 기록과 <문온공 종택복원>에 대한 경과보고를 마치고 나니 차는 어느덧 고창으로 접어드는 국도를 끼고 돕니다.

 

 반도를 타고 바다를 연모해 호남으로 휘날리던 모든 산맥들은 섬을 만들기 전에 잠시 웅크렸다가 다시 일어나 작은 구릉들을 만들었고, 산촌을 따라 들이 넓게 펼쳐져 풍요롭기만 합니다. 가을날 황금들판을 꿈꾸며 텅 빈 들판을 휘돌아가는 옅은 바람에는 물기가 어려 있습니다.

 

 14:40 - 고창읍성에 내리자 는개가 깔리며 서편제가 구성지게 들려옵니다. 음식점 미향(味香)에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계셨던 대구의 은호님과 재만님, 현지의 익원공파 영모당 후손이신 삼랑 좌랑공(휘 貴德)문중 회장님과 수은 현종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늦은 점심을 삼계탕으로 대접 받습니다.

 

 15:30 - 식당을 출발하여 도산마을에 있는 <김정회 고가>로 이동합니다. 고가 초입에는 못(池) 가득하게 연화(蓮花)가 만발한 채 연밥이 영글고 있었고, 발산하는 연꽃의 향기를 따라 대문으로 가는 길에는 돌담 사이로 박석이 깔려 있어 마치 정원을 산보하는 듯합니다.

 

 주인 경식님은 출타 중이시고 안채 마루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계시던 노모께 인사를 드리고 구석구석을 둘러봅니다. 안채 뒤에는 당을 따로 지어서 4대의 위패를 봉안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을 안에 <보정 김정회(1903-1970) 경모비>와 비군(碑群)을 살펴보고 마을 입구의 폴리텍 V대학 담 옆에 위치한 불망비까지 돌아보고 도산마을을 빠져나옵니다.

 

 17:10 - 익원공 부조묘(불천위 사당)는 좌측에 하마비(下馬碑)가, 우측에 갑촌마을을 알리는 표지석 사이로 난 길을 지나자 우측에 홍살문이 바로 보입니다.

 

 명회 부회장님의 집례로 <익원공 부조묘>와 <도암사-영모당 휘 質 선조님을 주벽으로 영모당의 증손 은송당 휘 景哲, 현무재 휘 益哲을 배향>에 참예합니다.

 

<부조묘> 헌관 : 상천 제학공파 회장, 좌집사 :윤만, 우집사 : 은호 대구청장년회장

<도암사> 헌관 : 영만 안렴사공파 회장, 좌집사 : 태영, 우집사 : 태우

 

 효충문(孝忠門)과 녹권함을 모신 봉안각을 뒤로 하고, 영모당(도암서원) 마루에서 도기록을 작성한 다음 익원공파 고창 재실로 이동합니다.

 

 18:30 - 인근에 위치한 경선재(敬先齋)를 찾아갑니다. <경선재>는 익원공의 손자이신 부령공 휘 宗漢 이하의 선대조를 모신 사당입니다. 재실 아래에 살고 계시는 재효(在孝)님께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여 주십니다.

 

 호남 땅의 길고긴 여름해가 해안선을 따라 멀어져 갈 때 고창의 현지 종현들과 경선재에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이어 멀리 영남 땅에서 오신 은호, 재만님과 함께 서둘러 상경하시는 명회 부회장님과 재영 부회장님을 배웅한 다음 하룻밤 묵어 갈 선운사 유스호스텔로 향합니다.

 

<8월 16일(토)>

 

 날이 밝아 선운사 사하촌(寺下村)에서 일찍 아침식사를 하고, 잘게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받으며 <선운사>를 찾아갑니다. 서기 577년 백제 위덕왕 때 세운 선운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한때 89암자에 3,000승려가 수도했다고 하니 국내 제일의 대찰이었을 것입니다.

 

   일행이 묵은 선유산 유스호스텔

 

 산사 입구에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메타스퀘어 아래로 소나무 습지에 있는 부도군(群)에서 추사 김정희의 굵직한 묵필을 보았고, 천왕문을 지나자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고색창연한 본전 건물들과 어우러져 생명의 화려함과 세월의 무상함이 조화를 부렸으며, 국태민안의 염원을 담은 처사들의 기원은 대웅보전 앞의 탑신을 타고 천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미당 서정주가 노래한 걸쭉한 육자배기를 잘하는 막걸리 집 여자를 만날 수 없어 마을 아낙이 권하는 복분자주를 한 잔 나누고 발길을 돌려 숲을 빠져 나옵니다.

 

 11:30 - 산문에 이르는 길에 전나무숲이 궁륭처럼 버티고 서 있는 내소사는 대웅보전과 고려동종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창건된 고찰의 사천왕문에는 마치 백제의 흥망성쇠를 알려 주기라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중생들을 구제하느라 그랬는지, 동쪽을 관장하여 준다는 지국천왕이 손에 쥐고 있는 무딘 목검의 날이 빛을 발하지 못한 채 휘어져 있었습니다.

 

 내소사는 본전인 대웅보전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함께 연화문, 국화문양 문살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불상 뒤에 그린 관음보살상은 사찰에 그려진 것 중에서 제일 크다고 합니다.

 

 수령 천 년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본전 뜰에 우뚝 서서 담장의 벽오동에 그늘을 주고 있었습니다.

 

 12:30 - 산사를 벗어나 검모포(지금의 곰소)로 길을 잡았습니다. 검모포는 1274년 여몽연합군의 1차 일본정벌 때 전함을 만들었던 곳으로 우리에게는 매우 뜻깊은 곳입니다. 지금은 곰소만을 가로질러 길이 나 있었고, 만에 기대어 염전시설이 아직도 그때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만(灣)은 깊고 넓었습니다. 일본에서 인양한 그 당시의 침몰어선과 어구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복원한 함대의 길이가 40m라고 하니 충렬공 할아버님께서 수백 척의 배를 만들 당시에는 이 넓은 만을 수많은 전함으로 가득 채우고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이 땅의 역사에서 으뜸 가는 반민족 부원배 홍다구(대순-복원-다구, 군상)가 4개월이라는 시간적 제한으로 조선(造船)에 동원된 부역자들을 얼마나 혹사시켰던지 사서(史書)에는 전쟁을 치루기도 전에 죽어간 자가 부지기수라 전하기도 합니다.

 

 저 멀리 곰소만을 감싸안은 산자락에서 울부짖는 환청이 귓가를 스쳐 지나갑니다. 막 떠나려는데 발이 썩어 문드러져 구더기가 핀 수부(水夫)가 와서 이르기를, 다구가 얼마나 다그쳤는지 그때 떠나지 못하고 밀물과 썰물을 오가고 있다고 합니다. 전함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더니 고흥의 천관산에서 오는 일행과 합포(지금의 마산)에서 만나기로 했다던가! 아, 734년 전의 일이 생생하게 스쳐갑니다.

 

 그 무렵 남송이 무너진 뒤 얼마 안 가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도 쪼개졌고, 몽골도 홍건족 출신의 주원장에 의해 고비사막으로 도망을 가지요.

 

 그 후 칸의 후손 몇몇이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여 오늘날의 몽골 초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해상왕국 고려도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지 못하고 왕실의 기강이 무너져 역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한편, 중원에서는 명나라가 창업하고, 이 땅에서는 조선이 개국합니다. 일본 열도는 한참 동안 어수선하다가 주원장과 엇비슷한 출신의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이란 자가 일본을 통일하여 쿠빌라이가 남송을 비우듯 굴복한 군졸들을 비우러 “명나라를 치려 하니 조선에선 길을 빌려 주시길 간절히 바라나이다(征明假道)”란 핑계를 대고 선전포고를 해옵니다. 1차 조일전쟁(임란)입니다.

 

 선조조에 이르러 칼을 겨누고 대한해협을 거슬러 올라온 왜구는 남해안을 두드리고 본토를 피로 물들게 하다가 2차 조일전쟁(정유재란) 후 섬으로 돌아갔습니다.

 

 1281년 여몽연합군의 2차 일본정벌 후 311년이 지난 어느 날, 철갑을 두른 귀선을 피해 안동에 들어온 왜구가 숫돌 감을 찾다가 어느 신도비로 숫돌을 삼았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그랬다면 아마도 진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상고(相考)할 수는 없는 일일겝니다.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에서는 에도막부를 열었고 삼국간의 각축전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중원은 누르하치가 나타나 청나라를 세우고, 조선은 용케도 광해가 명청(明靑) 교체기를 넘겨 열성조를 이었으며 인조반정을 지나 병자호란 후 한참 만에 또다시 왜구가 왔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지시대라 했고 유신(維新)을 주창하던 군사정권 때 우리는 ‘한일합방’이라 배웠습니다.

 

 지금은 ‘한일합방’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경술국치’로 고쳐 쓰게 하고 왜정(일정, 일제시대)도 ‘일제강점기’로 바꾸었고, 13~14세기에 몽골이 동아시아를 아우를 때의 고려조 역시 속국이니 부마국이라 하지 않고 에둘러 ‘원간섭기‘라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의 아픔이 절절이 묻어 있는 낱말들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신라와 백제에 이은 해상 대제국 고려가 주체가 되어 도원수 충렬공 김방경이 이끈,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병력과 장비가 투입된 두 차례의 일본정벌은 각별한 아쉬움을 남깁니다.

 

 태풍에 앞서, 흔도와 홍다구가 휘하 장병으로 투입되었거나, 1차 정벌을 앞두고 고려에서 국장(원종의 죽음)과 함께 충렬왕의 즉위식으로 출정이 지체되지만 않았던들……. 2차 정벌 시 강남(양자강) 출항을 앞두고 강남군을 이끌 최고사령관이 바뀌게 되어 결국 집결 날짜를 어겼고, 그나마 항장 범문호가 끌고온 강남군이 집결지마저 변동시킨 점은 두고두고 천추의 한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남송 병력들은 쿠빌라이가 비우려 했던 투항한 오합지졸이거나 농민들로 구성되어 사기도 저하되어 있었고, 전투 시엔 인해전술의 하나로 화살받이나 참전 숫자로 활용하고, 승전하면 섬에서 곡식을 생산하게 될 작업병으로 쓰려는 쿠빌라이의 철저한 용인술이었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작용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계절풍 등 바다의 변화에 따른 태풍, 아직도 일본에서 신풍(神風)으로 둔갑돼 떠받들고 있는 태풍, 그 태풍을 피하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돌아간) 자가 극히 적었다고 <고려사>, <원사>, <일본사>에 전해져 옵니다.

 

 아! 어찌하랴 다시 쓸 수 없는 역사를! 역사는 앙갚음의 순환이요, 치욕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인 것을.

 

 곰소의 구진마을 표석을 뒤로 하고 만을 따라 한참을 나와 수평선이 보이는 곰소(검모포)만의 입구인 모항(茅港)에서 점심식사를 한 다음 딸만 아홉을 두었다고 하는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습니다. 딸 부잣집 근처의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에는 귀선(龜船) 한 척과 왜선(倭船) 세 척이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8월 17일(일)>

 

 아침 일찍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도착해 <무성서원>을 둘러보고, 인근의 <태산선비문화사료관>에서 사료관에 근무하시는 안성렬님의 안내를 받아 사료관의 전시물을 관람하고 성황산 동쪽에 있는 송정(松亭)으로 올라갑니다.

 

 송정(松亭)은 광해의 폐모에 항소한 세속 7광(狂)과 10현(賢)을 기리는 영당으로 군사공의 9세손 부휴재공 휘 감(堪)께서 이곳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송산사(松山祠)는 1788년 창건하여 부휴재 휘 堪, 김대립, 김응윤, 김급, 김정, 송치중을 향사하였는데 고종 때 훼철되었다가 1954년 성황산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후송정(後松亭)은 조선 고종 때 송정 10현을 추모하여 지은 정자로 1985년 새로 고쳐 지었습니다.

 

 11:20 - 후송정을 나와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계룡IC에서 가까운 곳에 군사공 10세손 학생공 휘 명량(鳴亮) 묘소의 선영하에 직계 선조님을 합사하여 묘역을 수호하고 있는 군사공파 태우님의 선대묘역을 찾아 예를 올립니다.

 

 14:20 - 길가에 광산김씨 묘역을 마지막으로 돌아봅니다. 잘 지어진 재실 뒤로 신도비각을 지나 맨 위에 조선 예종조에 우의정을 지내고 성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김국광(國光)의 묘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문온공의 아드님이신 부사공 휘 명리(明理)의 따님께서 김철산(金鐵山)에게 출가하여 아들을 낳으시니 장자가 김광국입니다. 광김은 조선후기 효종조에 이판 익희를 비롯하여 3대(만기-진규-양택)에 걸쳐 대제학을 내고 숙종조 예판 만중과 함께 고종 때 상현, 영수까지 무려 7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명문입니다.

 

 15:30 - 청주에서 안렴사공파 영만 회장님, 주회님 일행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이틀 전에 떠났던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버스를 보내고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며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갈증을 풉니다.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잊고 선조님들의 행장을 쫓아 다녀온 올여름 캠프도 뇌리에 남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녀온 지 사나흘 지나니 벌써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계절의 깊이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자연이 머무르지 않고 순환을 계속할 때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과 잊혀져 가는 주옥같은 편린을 찾아 떠났던 길이 벌써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아 잊기 전에 삼가 그 전말을 기록하오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2008년 여름, 산문에 남기신 거룩하신 뜻과 호남기행을 기억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끝으로 여름캠프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남응 대종회장님, 군사공파 칠정문중회의 중묵 회장님, 제학공파 상천 회장님, 안렴사공파 영만 회장님, 익원공파 고창 영모당문중의 삼랑, 수은 현종, 서운관정공파종회, 멀리 대구에서 오신 은호, 재만님, 그리고 더운 여름날 함께해 주신 참가자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말씀 올립니다.

 

 고추잠자리 나는 날 금초 잘 하시고 모두 몸성히 가을 맞이하시길 빌며 다음 정기산행을 기다리며 졸필을 놓겠습니다.

 

   <여름캠프 백일장 제출 작품>

            (등위 없음. 게재순서  무순)

 

詩題 : 부조묘송산사(不祧廟松山祠)

 

1. 김주회(안)

부산 떨던 일상사 벗어 던지고

조상 따라 찾아 든 전라도 고창땅

묘(廟)냐 사(祠)냐 새 옷 입은 익원공 부조묘 산뜻하고

송사 기우만 보정 김정회 생가 연꽃에 가득하네

산 넘고 물 건너 정읍땅 7광 10현 송정

사돈 댁 신도비 눈부셔라 성천 부사공 광산 김국광

 

2. 김윤만(문)

부원군 상락백 김사형 할아버님

조상의 빛나는 얼 오늘에 되살리려

묘재의 영정 앞에 엎드려 기원하네

송충이 깨무는 소리 정조의 효심같이

산거하는 후손 모두 지극 정성 다하여

사랑하고 숭모하세 김사형 할아버님

 

3. 김상천(제)

불초한 이 후손이

조상의 문화탐방

묘소 앞에 잔 올리고

송구한 마음

산소 앞에서

사과 올리네

 

4. 김관묵(안)

부조묘 찾아 뵙고 참배하며

조상님의 은덕 생각하니

묘연(杳然)한 마음 가슴 저미네

송구스럽게도 이제사 찾아 뵈오니

산란한 마음

사정을 누가 알리

 

5. 홍인숙(군)

부족하고 못난 내가

조상님을 뵙고 나면

묘한 일일세!, 묘한 일일세!

송사리같은 내 마음에

산이 되라, 나무가 되라

사랑을 듬뿍 심으라 하네

 

6. 김태우(군)

부족함이 많아서

조리요리 생각다

묘한 생각 떠올라

송정사당 드높혀

산림칠광 십현들

사상 따라 충효예

 

7. 김항용(제)

부조묘(不祧廟) 모셔진 고창의 익원공선조

조상 대대 이어온 위패 영정 아름답고

묘(廟)아래 영모당(永慕堂)엔 효심새겨 숙배(肅拜)하네  

송산사(松山祠) 찾아간다 정읍칠보 무성마을

산 아래 사당정자엔 부휴재공(浮休齋公-휘 堪) 향기서려

사서(史書)에 전해오는 칠광십현(七狂十賢) 헤아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