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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安東金氏)에 대한 개괄적 소개

  

<우리 성씨의 명칭에 대해>

안동김씨라 하면 일찍이 고려조부터 우리 안동김씨만을 일컬어 왔다. 그런데 조선 중기에 후안동김씨(後安東金氏, 일명 新安東金氏)가 생겨나 혼동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안동김씨라 함은 우리만을 일컫는 것이 원칙이나 두 안동김씨를 구분해야 할 경우에는 우리를 선안동김씨(先安東金氏, 또는 舊安東金氏)라고 부른다.

 

옛날,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안동의 다른 명칭을 살려 상락김씨, 화산김씨, 영가김씨, 고창김씨, 복창김씨, 또는 선안동김씨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종전에는 우리 성씨를 先 安東, 또는 舊 安東으로 혼용해 왔으나 본 홈페이지에서는 2001. 11. 11.부터 先安東이란 명칭을 가능하면 주로 사용하기로 함.)

 

안동김씨는 신라김씨의 시조이신 대보공(大輔公) 휘 알지(諱 閼智)의 후손 중 한 성씨이다. 평장사공(平章事公) 휘 숙승(諱 叔承-경순왕의 손자)을 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경순왕의 8대손으로서 고려조에 출장입상(出將入相)으로 높이 추앙받는 충렬공(忠烈公) 휘 방경(諱 方慶)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충렬공은 안동에서 출생하여 고려조에 삼별초를 평정하고 고려 도원수로서 일본 원정에 나선 뒤 돌아와 최고 관직인 추충정난정원공신 벽상삼한 광정대부 삼중대광 첨의중찬 판전리사사 세자사(推忠靖難定遠功臣 壁上三韓 匡靖大夫 三重大匡 僉議中贊 判典理司事 世子師)로 치사(致仕)한 후 가자(加資)되어 첨의령(僉議令)에 이르렀으며, 상락군(上洛郡) 개국공(開國公)에 봉해지고 안동을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몰 후 선충협모 정난정국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宣忠協謀 定難靖國功臣 壁上三韓 三重大匡)에 추증되고 시호 충렬(忠烈)을 받으셨다.

 

안동김씨는 신라 왕손이며 고려왕의 외손(外孫)으로서 고려 500년간 대대로 공경장상(公卿將相)이 끊이지 않았다. 고려가 망하자 많은 사람들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을 지켜 각 지방에 흩어져 은거하였고, 그 후 형성된 세거지(世居地)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도 태종조에 좌정승을 지내신 익원공(翼元公) 휘 사형(諱 士衡)을 비롯한 4분의 정승(政丞-士衡, 石質, 壽童, 自點), 6분의 호당(湖堂-壽寧, 澍, 弘度, 瞻, 緻, 德龍), 5분의 청백리(淸白吏-碔, 延壽, 斗南, 睟, 時讓), 두 분의 충무공(忠武公-時敏, 應河), 5분의 장신(將臣- 應海, 世翊, 重器, 흡(水+翕), 善弼) 등이 배출되었고 수많은 고관대작(高官大爵)과 충신열사(忠臣烈士)가 끊이지 않았으며, 모름지기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서의 명분을 지켜왔다.

 

근대에 들어와 일제 강점 시절에는 많은 분들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으며, 특히 상해 임시정부의 주석으로서 평새토록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백범 김구(金九)선생이 배출되어 문명(門名)을 크게 빛냈다.   

 

 

*<안동김씨 인구>

1)2000년 통계청 발표 : 425,000여명(전체의 0.9%). 인구 순위 18위.

2)안동김씨 대종회의 기미보(1979년 간 대동보) 기준 자체 추정인원 : 약 60만명(2000. 12. 현재. 재외교포 포함)

 

 

*<통계청 발표--2000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집계결과>

1985년 조사결과 398,240명(전체의 1%), 인구 순위로는 18위 에서 이번 조사시 425,000여명(전체의0.9%)으로 인구순위는 변동없이 18위이며, 안동김씨 인구는 6.8% 증가한 2만 7천여명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