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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보(戊戌譜)

<무술보 추정(대종회 소장) 사진>

  

 

  (가)발간일시 : 1778년(조선 정조 2년) --기미보 39년 후

  (나)책수 : 20책

  (다)서문

 

무술보서문(戊戌譜序文)  (2007. 2. 21. 태영(군) 제공)

주역(周易)에 말하되 “물건이 커진 연후에야 볼만하다”하더니 그것은 오직 우리 김씨(金氏)를 두고 한 말이다. 하늘이 우리 김성(金姓)을 점지할 때 실로 금궤(金櫃)속에서 이인(異人)이 탄생(誕生)하신지 어느덧 一천년이 되는 동안에 三十五차나 왕위(王位)를 선양(禪讓)하는 미덕(美德)이 있었으나 급기야(及其也) 국운(國運)이 다함에 있어 민생(民生)이 도탄(塗炭)에 빠짐을 참아 보지못하고 송경(松京)의 손(賓)이 된제가 드디어 五백년이 되었다. 누대(累代)를 지나서 이조(李朝)에 이르니 파(派)의 흐름이 멀어져도 벼슬은 끈임없이 이어내려 왔으며 수 많은 자손(子孫)들이 오래도록 더욱 번성(繁盛)하여 방손(傍孫)과 지손(支孫)과 외손(外孫)들이 두루 국내(國內)에 퍼졌으니 무릇 그런즉 임해벽촌(臨海僻村)이라도 의관(衣冠)하고 행세(行勢)하는 사람은 누가 김씨(金氏)의 자손(子孫)이 아니겠는가?

 

아! 장하고 또 크도다. 오직 우리 충렬공 선조(忠烈公先祖)께서는 하늘이 지용(智勇)을 주셔서 나라가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충성(忠誠)으로 말하면 하늘을 감동(感動)시켰고 위풍(威風)으로 말하면 중화(中華)와 오랑캐를 움직였으니 그 위대(偉大)한 공적(功績)은 다만 당세(當世)에서 미개(未開)함을 면하게 했을뿐만 아니라 백세(百世)를 두고도 하나님은 지인(至仁)하시도다 그 보응(報應)으로 말하면 어찌 자손(子孫)이 억(億)일뿐이며 복록(福祿)이 백(百)일 뿐일까? 이로 인하여 초손(肖孫) 명인(名人)들이 속출(續出)하여 향화 제사(香火祭祀)는 영세(永世)토록 변함이 없으니 세간(世間)에서 잠깐동안 전(傳)하다가 잠깐 동안에 끈어지고 별안간 성(盛)했다가 졸지에 망(亡)하는 자를 본다면 그 길고 짧은것과 얕고 깊은것이 과연 어떠한가 비록 세태(世態)가 문란(紊亂)하며 풍기(風紀)가 쇠퇴(衰退)하고 도덕군자(道德君子)와 문장재사(文章才士)가 옛적 성현(聖賢)에게는 미치지 못해도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충렬공(忠烈公)의 원손(遠孫)이라고 하는 자는 귀천(貴踐)을 막론(莫論)하고 포악(暴惡)한 자는 절대(絶對)로 없고 근졸(謹拙)한 자가 많았으며 잔질(殘疾)한 자가 나지않고 장수(長壽)하는 자가 많으니 이는 선조(先祖)께서 적덕(積德)을 하고 길이 하나님께 기원(祈願)하고 후손(後孫)에게 음덕(蔭德)을 내리신 것이며 고금(古今)을 통해서 후손(後孫)을 위해 힘쓰신것을 우리 선조(先祖)의 자손(子孫)들은 분명(分明)이 알것이다. 전대(前代)에 이렇게 이루신바는 다름이 아니라 어질고 후(厚)하심이요 충성(忠誠)과 효도(孝道)하신 까닭이다. 집에서는 시예(詩禮)로서 근본(根本)을 삼고 조정(朝廷)에 나가서는 풍절(風節)로써 노력하사 하늘이 주신 인(仁)에 변함이 없으므로 영세불변(永世不變)의 복(福)을 누리게 되는것이니 어진분의 후손됨이 부끄럽지 않을것이다. 그 혹시나 향화(香火)의 면혁(綿爀=대대로 빛나는것)과 혈통(血統)의 내려옴을 생각지도 아니하고 세덕(世德)을 실추(失墜)시켜서 자포자기(自暴自棄)하거나입신사군(立身事君)함에 자기 분수를 다하려고 하지않고 공(公)을 잊고 사(私)만 따라서 쓸데없는 명의(名義)뿐이 라면 충렬공(忠烈公)께서 “나의 후손들에게 뒤에오는 보응(報應)이 장차(將次)어찌 될까?”고 말씀하실 것이다.

 

아!! 선조(先祖)의 전형(典型)은 날로 멀어지고 인재(人才)는 희소(稀少)해지니 잘못되게 날뛰지 말며 마음으로 맹서하고 스스로 분발하여 선조위업(先祖偉業)을 따라서 우리 왕조(王朝)를 도움으로써 우리의 후예(後裔)를 왕성(旺盛)하게 하면 힘차게 달리지 못하드라도 얼마나 그 서민(庶民)의 면(免)함을 얻을 것이다. 무릇 우리 족보(族譜)를 같이한 여러분들은 각자(各自)힘을 써야 할것이다.

 

지나간 기미(己未)년에 보사(譜事)가 잘 완성(完成)되어 양년(兩年)동안에 九질(帙)이 훌륭하게 되어 천파백지(千派百枝)가 상락(上洛)으로 귀종(歸宗)하고 시림(始林)으로 소급(溯及)하지 않음이 없으니 매우 성대(盛大)한 일이었다. 그것이 어느덧 四十년이 되는 동안에 자손(子孫)이 번성(繁盛)하고 변천(變遷)이 많아서 부가불(不可不) 때를 맞추어 상의(相議)하려든 바 후손(後孫) 남곤(南閫). 영수(永綬)가 먼저 그 실마리를 말하고 불초손(不肖孫) 광국(光國)이 그 의론(議論)을 널리 통고(通告)하니 이제야 각도(各道)에서 여러파(諸派)의 수단(收單)이 차례로 구름같이 모여서 힘이 크고 일이 많아서 공(功)을 이루기가 어렵더니 종인(宗人) 득현(得顯)과 낙풍(樂豊)이 전심(專心)으로 공역(工役)을 관장(管掌)하면서 고증(考證)을 자상(仔詳)히 하고 제본(製本)은 오직 근실(謹實)을 취해서 七개월만에 二十권(券)이 완성되니 이는 실로 우리 김씨(金氏)의 다행(多幸)한 일이다.

 

그 범례(凡例)같은데는 삭제(削除)와 가첨(加添)이 없지는 않았으나 구보(舊譜)의 큰 뜻을 잃지 않기 위해서 배위(配位)는 사조(四祖=父.祖.曾.外祖)를 가추니 내외당(內外黨)이 뚜렷하고 선남후녀(先男後女)로 본손(本孫)과 지손(支孫)의 계통(系統)이 확실(確實)하게 되었다. 부록(附錄)의 번잡(煩雜)한 사가(史家)의 전해온 의문(疑問)을 싫어하지 않고 기록함은 후대(後代)에 이로 미루어 천명(闡明)하기 바라는 바이다. 누단(漏單)이 된것은 가혹하지 않게 추후(追後)로 기다리고 역매어 두었다가 스스로 그 선세(先世)에서 끈어지게 해 두었다.

 

제가 방주(諸家旁註)가 혹은 몹시 간략(簡略)함을 위주(爲主)로 하고 혹은 길게 늘어 놓기도 한데 이르러서는 자기(自己) 조상의 일을 위해서 각자의 손으로 써 낸것이니 지적(指摘)함을 기다리지 안아도 그 뜻을 가히 알것이다. 그밖의 착한 일로 표창(表彰)을 받고 악한 일로 벌주(罰誅)를 당한 일은 자연히 필자(筆者)에게 달린것이니 비록 동원지친(同源之親)이라 할지라도 감히 조금의 용서(容恕)가 없고 책을 펴서 한번 보면 자신(自身)도 모르게 자연히 효심(孝心)이 일어나고 몸에 사무치도록 두려움을 알것이니 그 세도(世道)에 다행(多幸)함에 어찌 도움이 적겠는가 도리켜 그 업적(業蹟)을 찬양(讚揚)하고 그 과정(科程)을 서술(敍述)함에 불초(不肖)는 실로 그 적임자(適任者)가 못되나 하루라도 나이 많다고해서 여러 종친(宗親)이 끈질기게 부탁(附托)하고 놓지 않으니 불초(不肖)는 같은 문사(門事)에 의리(義理)로 보더라도 감히 글이 좋지못하다고 사양(辭讓)할 수 없어 역사(役事)를 하게되여 세수(洗漱)하고 상고(詳考)해서 위와 같이 그 사실을 기록하노라.

숭정기원후 三무술(세번째 무술년)五월 하순(仲夏下澣) 후손

가선대부 행 승정원 도승지겸 경영참찬관 수찬관 예문관 직제학 상서원정 광국(光國) 근서(謹序)

 

   <무술보 소장처 조사> (2009. 8. 22. 태영(군) 제공)

  1. 일시 : 2009. 8. 4.

  2. 장소 : 대구 계명대 동산 도서관

  3. 조사자 : 김태영(군)

  4. 내용 : 도서관을 찾아 무술보 견학 및 일부 사진 촬영

  5. 무술보(戊戌譜)소개

◈표     제 : 안동김씨족보 / 김광국金光國(朝鮮)

◈판 사 항 : 목활자본(木活字本)

◈발행사항 : 正祖 2 (戊戌 1778년)

◈형태사항 : 東裝20卷20冊 四周單邊 半郭 26.5*17.5 有界 橫5行, 內向3葉花紋魚尾: 33.6*21.0

◈주기사항 : 崇禎紀元後三戊戌仲夏下澣後孫嘉善大夫行承政院都承旨兼經筵參贊官藝文館直提學尙瑞院正光國謹書

◈所 藏 處 : 啓明大學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