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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보(乙亥譜)

 

 

 

 1)출판년도 : 1935년

 2)총 권수 : 총 28권 (22× 34Cm)

 3) 구성 : 권1-수권,  권2-군사공파,  권3.4-전서공파,  권5-부사공파,  권6.7-대사성공파,  권8-대사성공파, 안정공파,  권9-도평의공파,

권10-도평의공파, 대호군공파,  권11.12-제학공파  권13-제학공파,판삼사공파,  권14~19-안렴사공파,  권20~27-익원공파,  권28-서운관정공파, 정의공파)

 

을해보 서문(乙亥譜 序文) (2007. 2. 27. 태영(군) 제공)

교남(嶠南=경상도) 사람과 관북(關北=함경도)사람이 서로 여관(旅館)에서 만났을 때 서로의 거리(距離)가 천여리(千餘里)나 되고 평생에 또한 만난 일이 없는 처음보는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그저 길가는 사람처럼 보다가 이미 그 주거지(住居地)를 물어서 그가 옛날에 동향(同鄕)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정의(情誼)가 자연히 남과 다르고 또 그 성(姓)과 본관(本貫)을 물어서 그가 같은 조상(祖上)의 자손(子孫)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로서 친애(親愛)하는 교의(交誼)가 물에서 젖(乳)을 얻음과 같고 자석(磁石)이 쇠를 당기는 것 같아서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천 리(天理)와 인정(人情)의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족보(族譜)가 없이 따진다면 또한 어찌 그가 우리 족친(族親)임을 알고 계세(系世)를 따질수 있겠는가.

 

보계의 법(譜系之法)은 주(周)나라 관원(官員) 소종백(小宗伯)에서 시작(始作)된 것인데 보(譜)라는 것은 넓다는 뜻이니 즉 그 근본(根本)을 존중(尊重)하고 선조를 추모(追慕)하는 정성과 효도(孝道)하고 공경(恭敬)하며 우애(友愛)하고 화목(和睦)하는 길을 보급(普及)시켜서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삼고져 함이니 옛 선왕(先王)의 시대(時代)에 종친(宗親)에 관(關)한 법(法)과 정치(政治)에 대한 법(法)이 서로 다른 것도 진실(眞實)로 이 때문이다.

 

우리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족보(族譜)는 선조(宣祖) 경진년(庚辰年=서기一五八O즉 기미년으로부터 三九九 년전)에 처음으로 시작(始作)하여 마지막 고종 임인년(高宗壬寅年=一九O二)까지 출판한 것이 모두 六회가 되는데 임인년(壬寅年)에서 지금까지는 또 三十년의 오랜 세월이 되었고 보첩(譜牒)의 보수중간(補修重刊)은 이에 당면한 임무(任務)이므로 근자(近者)에 충렬공 선조(忠烈公先祖)의 영역수호(瑩域守護)하는 일로 인하여 여러분들과 상의가 있었는데 “족보(族譜)를 하지 않으면 힘을 얻을 수가 없다”하여 마침내 통문(通文)을 하고 축차(逐次)로 수단(收單)을 접수한 지 여러 해를 거쳐 비로소 한 질(帙)이 되었으니 현재(現在) 생존자(生存者)로서 수록(收錄)된 인원은 수 만명(數萬名)에 달하였다 일을 거의 끝마침에 이르러 제족(諸族)들이 나에게 마무리하는 일에 책임(責任)이 있다하여 사공(史公)의 서문(序文)을 위촉(委囑)하니 나도 그 일을 중대(重大)하게 여겨서 감히 굳이 사양치 못하고 말하건대 요새에 족보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례히 조상(祖上)을 위하고 일가간에 화목(和睦)해야 한다고 입으로는 떠들지마는 결국 그 귀추(歸趨)의 소재(所在)는 벼슬 꽤나 하는 문벌(門閥)에만 치중(置重)하는 일이 많았다. 같은 할아버지에 근원(根源)이 같은 친족(親族)으로서 저울에 물건을 달 듯이 차별(差別)하여 문득 귀한 자에게 아부하고 천(賤)한 자는 업수이 여기는 수가 많으니 그 저의(底意)가 이와 같아서야 어찌 전사(前事)를 빛내고 후손(後孫)을 비호(庇護)하며 영원(永遠)한 복록(福祿)을 누릴 수가 있겠는가?

 

한 가지의 자손이 번영하는 것은 실로 사랑스러운 일이나 한 뿌리의 자손이 쇠퇴(衰退)함은 의리상(義理上) 마땅히 서로 동정(同情)해야 할 일이며 우리 종족(宗族)들이 돈후(敦厚)한 마음을 가지고 흠(欠)이 없게 보전(保全)해야 할 것이다. 근래(近來)에 와서 성(盛)하고 쇠(衰)함이 고르지 못한 한탄(恨歎)이 있으나 그러나 차(滿)면 기우는 법이고 줄면 회복(回復)되는 법(法)이다. 우리 김씨(金氏)가 동방(東方)에서 먼 근원(根源)이 있어서 세상에서 이르기를 왕공장상(王公將相)과 충효열절(忠孝烈節)과 고문걸필(高文傑筆)이 일찍부터 겸비(兼備)하여 역사(歷史)에 찬란(燦爛)하다고 말하나 천하(天下)에 어찌 대대로 왕사(王謝=예전 晋나라의王垣之와 謝安을 말함)와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강(强)한 쇠뇌(弩)라도 멀리가면 힘이 약(弱)해지는 법이니 그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세상 일이 뒤바뀌는 것은 오직 그 사람에게 있을 뿐이다 옛날에 방손지(方遜志)라는 사람은 말하되 “훌륭하고 어진 군사가 있으묘 벼슬과 지위가 있더라도 군자(君子)가 없다고 하면 씨족이 성(盛 )할지라도 오히려 쇠(衰)한 것이다”고 하였으니 우리 김씨의 근심하는 바는 높은 벼슬과 지위가 없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군자(君子)가 없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별다른 사람이 아니라 다만 사람으로서 마땅히 할 만한 일을 할 뿐인데 마땅히 할 수 있는 길은 수 백가지나 되어 이루 다 형용할 수가 없다. 충렬공 선조(忠烈公先祖)의 묘소(墓所)와 의절사업(儀節事業=비석같은 것을 세우고 治墳하는 일)등은 물론이요 학회(學會)를 설립(設立)해서 유능(有能)한 자제(子弟)들을 양성(養成)시키는 것은 현시(現時)에 곧 해야 할 일로 되어 있으니 마땅히 할 일을 다한 연후에야 비로소 조상을 위하고 종친간에 친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함부로 족보(族譜)의 완성(完成)만으로써 능히 일이 끝났다고 말한다면 심히 오늘날 족보를 편제(編製)한 본의(本意)가 아니고 또한 여러 종친들에게 구구(區區)하게 기대(期待)하며 바라는 바도 아니니 여러 종친들께서는 다같이 인간의 도리(道理)로서 재삼(再三) 힘써 주기 바라는 바이다.

 

을해(乙亥) 맹동(孟冬)

충렬공(忠烈公) 二十三대손 외부주사 문연(文演)은 삼가 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