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안동김씨 시조-평장사(平章事) 휘 숙승(叔承) 소개

 

<평장사공 기록 각종 자료>-각종 자료에 숙승(叔承)은 <淑, 淑承, 叔興> 등으로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1) <국사대사전>(교육도서. 1988. 유홍렬 감수. 284p) : 金叔興은 金叔承임

(2) <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 1992년. 124p) : 金叔興은 金叔承임

(3) <한국사연표>(역임사, 1991, 이만열저) 金淑興란 : 1011년에 거란이 침입해 오자 구주에서 거란군 1만 여 명의 격멸시켰으며 그 해 거란의 성종이 이끄는 대군에게 중과부적으로 순절했다.  

(4) <고려사, 고려사 절요> : 叔興으로 기록.

 

가)족보(안동김씨 기미 대동보. 1979년 간) 기록 내용

생년 및 몰년 미상.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 고려조 때 공부시랑(工部侍郞), 평장사(平章事) 역임. 안동김씨(先)의 시조로 모신다.   

 

나)국사대사전(교육도서. 1988. 유홍렬 감수. 284p) 기록내용

金叔興(?--1011. 현종2).

고려시대 무신, 귀주별장(龜州別將)으로 있을 때 거란의 군사를 중랑장(中郞將) 보량(保良)과 함께 1만여 군사를 베었다. 그러나 거란 성종의 군사와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전사했다. 후에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의 호를 받고 장군(將軍)으로 추증되었다.

 

다) 디지털 한국학 기록 내용 (http://koreandb.empas.com/) (2008. 4. 11. 항용(제) 제공)

(김숙승(金叔承)은 김숙흥(金叔興)으로 본다는 <경주김씨 계보연구회>의 연구 결과에 따른 조사 자료)

김숙흥(金叔興)  ?∼1011(현종 2). 고려의 무장(武將).

1010년(현종 1) 거란의 성종이 친히 40만대군으로 침입하여 개성을 함락시키고 돌아갈 때, 구주(龜州)의 별장으로서 중랑장 보량(保良)과 함께 거란병을 쳐서 1만여명을 베고, 이어 거란의 선봉을 애전(艾田:지금의 의주)지방에서 격파하여 1천여명을 베었으나, 갑자기 거란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아 당시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였던 양규(楊規)와 함께 전사했다.

 

그 공으로 장군에 추증되었으며, 어머니 이씨에게는 한평생 해마다 조 50석을 상으로 주었다. 1019년 공신녹권(功臣錄券)이 내려졌고, 1024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에 녹권되었다. 또한, 문종이 즉위하자 그 공을 추념하고 표창하여 장려하기 위해 그 형상을 공신각(功臣閣)에 도형(圖形)하도록 하였다. (高麗史, 高麗史節要. 〈河炫綱>)

 

라)<경주김씨 계보 연구회 연구자료> 김숙승 행장에서 (2008. 3. 25. 항용(제) 제공)

*행장 자료 구성 기초 자료

 1) 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간. 1992년)-강감찬란, 김숙흥란

 2) 계림지(사단법인 경주김씨 계보회. 2004. 7.)

   <金公淑承將軍(龜州別將) 行狀>

김공(金公) 숙승장군(淑承將軍)은 955年(?) 대안군(大安君, 母는 文英 崔彦撝의 女)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이때 고려 조정의 제4대 광종(光宗. 재위 949-975)은 지방 호족(豪族)의 세력을 억제하고 나라의 기강과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북방 방어에 힘썼으며, 특히 광종은 황해도 중요 방어 기점을 비롯하여 압록강 하류인 평안도 삭주(朔州), 구주(龜州), 태천(泰川), 정주(定州), 선천(宣川), 박천(博川), 철주(鐵州) 등에 축성(築城)을 견고(堅固)히 하였고 압록강 북쪽에서 출몰하는 거란족과 항상 대치하였다.

 

975년에는 광종이 승하(昇遐)하고 제5대 경종(景宗)이 즉위하였다. 이때 김부대왕(金傅大王-敬順大王)은 따님을 경종(景宗)에게 납비(納妃-獻肅王后)하였으며, 대왕에게는 상부도성령(尙父都省令)으로 삼고 식읍(食邑) 일만호를 더하였다.

 

장군께서 일찍이 24세에 공부시랑(工部侍郞)으로 출사(出仕), 축성(築城) 등 토목공사(土木工事) 실무(實務)에 임(臨)하고, 이 방면에 역량(力量)을 발휘하였다. 경종(景宗) 3년 978년 무인(戊寅) 4월 4일, 조부(祖父) 경순대왕(敬順大王)은 유화궁(柳花宮)에서 서거(逝去)하시니 향수(享壽) 97이시었다. 이듬해 979년 경종 4년에는 시세(時歲) 등 발해(渤海) 유민(遺民) 2만여명이 투항(投降)했을 때 북방(北方) 종군(從軍)에 나섰다.

 

982년에는 왕건 태조의 원당(願堂)인 봉은사(奉恩寺)에서 김부대왕(金傅大王)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대안군(大安君)과 셋째 아들 염(濂)의 자(子)인 심언(審言)과 함께 회록(回祿)과 절일(節日)에 제(祭)를 올렸다. 이때(983년) 강감찬(姜邯贊)이 문과(文科) 장원(壯元)하고, 989년은 병마사제도(兵馬使制度)가 처음 시행되었다.

 

993년 거란 장수 소손령(簫遜寧)이 침입하자 중군사(中軍使) 서희(徐熙)는 적진에 들어가 화약(和約)을 이끌어 냈다. 994년 구주성(龜州城)을 견고히 증축하였다. 996년에 처음으로 주철(鑄鐵)을 만들어 유통(流通)하였다. 공부시랑(工部侍郞)으로 승진(昇進)하였으며, 998년 이후인 7대 목종(穆宗) 재위중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구주별장(龜州別將)으로 재직 중 1010년(현종(顯宗)1) 거란의 성종(聖宗)이 목종(穆宗) 시해(弑害)를 문죄(問罪)한다는 구실로 내침(來侵)하여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 강조(康兆)를 잡아 죽였다. 거란군이 회군(回軍)할 때 구주성(龜州城) 길목에서 숙승장군(淑承將軍)은 거란군 1만여명을 목 베었다.

 

1010년 8대 현종(顯宗) 10년, 공신(功臣)에 녹권(錄券) 되고 1011년 신해(辛亥) 현종(顯宗) 2년, 세천(世阡)하셨다. 뒤에 삼한벽상공신(삼한벽상공신)의 호를 받고 장군으로 추증(追贈)되시었다.  

 

<상기 내용 요약>

   (1) 935년(경순왕 9) : 출생, 부-대안군, 모-文英  崔彦0의 딸

   (2) 958년(24세,광종9) : (공부시랑? 추정 )

   (3) 978년(44세.경종3) : 조부 경순왕 흉(98세)   

   (4) 979년(45세.경종4) : 발해유민 투항시 종군

   (5) 996년(62세.성종15) : 공부시랑(승진? 추정)  

   (6) 998년(64세.목종1) : 평장사     

   (7) 1010년(66세. 현종1) : 구주별장 재임시 거란군 침입.  회군할 때 구주성 길목에서 거란군 1만여 명 참수. 세천,  공신에 녹권.  

   (8) 1020년(76세,현종11) : 삼한벽상공신 추증, 장군 추증

 

   <디지털 한국학과 행장과의 비교 분석>

   *상이한 점 : 어머니- 한국학에서는 이씨,  행장에서는 최씨.     

                    돌아가신 해-한국학에서는 1011년,   행장에서는 1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