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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온공 친필 암각문-청원정 소개

 

 가. 사진 소개 (2006. 11. 10. 발용(군) 제공)

 

  나. 암각문 소개 (2006. 11. 13. 영환(문) 제공)

 

 척약재 친필 암각문-청원정에 얽힌 이야기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가야리에는 이곳 龍宮全씨의 중시조이신 菊波 全元發 선생을 모신 서원이 있다. 국파 전원발 선생은 고려말에 원나라에 들어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원나라 벼슬이 영록대부 병부상서 집현전태학사에 이르렀던 분으로 당시 원나라에서 과거에 합격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 였으며 더욱이 몽고인이 아니면 벼슬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였던 시절이었고 아울러 병권을 담당하기란 몽고인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고려에서는 가정 이곡선생, 그리고 그의 아들인 목은 이색선생이 원나라에서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하시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곡선생이나 이색선생은 널리 알려졌으나 전원발 선생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움이 든다.

 

 전원발 선생과 척약재 김구용 선조와는 각별한 사이었으며, 더욱이 우리 안동김문의 장손은 方慶-小宣- 資- 爲- 得男- 精으로 이어오다 金精공은 척약재의 아우인 金齊顔공과 더불어 신돈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김정공의 후손은 수안김씨로, 김제안공의 후손은 사천김씨로 분적하였다. 바로 안동김문의 장손인 김정공의 배위가 국파 전원발선생의 따님이었다. 소천서원은 낙동강의 상류인 성화천이 휘돌아나가는 경치 좋은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름답기로는 청원정이라는 정자가 으뜸이다. 청원정 정자는 임란시 소실되고, 그 후 복원하였는데, 정자의 편액은 원래 척약재 김구용 선조께서 쓰신 것이어서 이를 다시 복원하려 하였으나 원본을 잃어버렸고, 또 척약재 유묵이 가야리 창벽위에 새겨져 있었으나 떨어저 나가 강가운데로 묻히어 버렸으므로 도저히 고증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강속에서 자주빛이 밤마다 비추어서 본토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강속을 샅샅히 살펴보니 커다란 돌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그 글씨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건져 올려서 다시 절벽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문중에서 이는 선조의 도움으로 청원정의 현판을 다시 척약재 필적으로 하라는 계시라 여기고 모사하여 청원정의 편액으로 달았다고 한다

 

 다. 척약재 김구용 필적 탐구 (2002. 1. 23. 주회(안) 제공)

 

 문온공 친필 遺墨 암각문 .

* 소재지; 경북 예천군 용궁면 가야리 소천서원 내

* 소천서원 정자 편액이 淸遠亭인데 이 글씨는 절벽에 새겨진 척약재 선조의 친필을 탁본 보필하였다.

 

청원정 重修記에 이르기를

山이 있어 千丈을 우뚝 솟아 옮아 오니 武夷라 한다. 물이 있어 三江에 會合하니 洛東江 上流를 省火라 하고 亭子가 있어 날아갈 듯이 가장 웅결한 곳에 서 있으니 이름하여 淸遠이라(香遠益淸-예기에서 온말-에서 준 말로 맑지 않음이 세속이라 이를 멀리하여 인생을 맑게 살아 심오한 진리를 머물게 하는 곳이란 뜻)

실로 竺山君 菊坡 全元發선생이 만년에

休老하신 때 지은 것이다. 그 위에 淸遠亭이라 三字를 새긴 것이 있는데 이는 척약재 김구용선생의 平筆이라.

소천서원은 낙동강의 상류인 성화천이 휘돌아나가는 경치 좋은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름답기로는 청원정이라는 정자가 으뜸이다.

청원정 정자는 임란시 소실되고, 그 후 복원하였는데, 정자의 편액은 원래 척약재 김구용 선조께서 쓰신 것이어서 이를 다시 복원하려 하였으나 원본을 잃어버렸고, 또 척약재 유묵이 가야리 창벽위에 새겨저 있었으나 떨어저 나가 강가운데로 묻히어 버렸으므로 도저히 고증할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강속에서 자주빛이 밤마다 비추어서 본토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강속을 샅샅히 살펴보니 커다란 돌위에 글씨가 새겨저 있는데 그 글씨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건져 올려서 다시 절벽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문중에서 이는 선조의 도움으로 청원정의 현판을 다시 척약재 필적으로 하라는 계시라 여기고 모사하여 청원정의 편액으로 달았다고 한다.

 

 라. <예천군지> 기록 내용 (2002. 6. 26. 윤만(문) 제공)

예천군지/예천군지편찬위원회/1988.

 

▣ 소천서원(蘇川書院) pp770~771

--용궁면(龍宮面) 무이리(武夷里) 금천변(錦川邊)에 있으며 국파(菊坡) 전원발(全元發)을 제향(祭享) 했다. 숙종(肅宗)은 그의 공을 기리고 향리(鄕里)의 성화천(省火川)을 되살린다는 뜻에서 왕(王) 22년(1696)에 소천(蘇川)으로 고치게 하였으며 5년 뒤인 숙종 27년(1701) 2월 19일에 소천서원(蘇川書院)을 세웠다.

--당시 숭덕사(崇德祠)와 전교당(典敎堂)을 세워 후학을 양성해 왔으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폐쇄되었다가 1918년 향의(鄕議)에 따라 서원의 서편에서 공(公)이 강의하던 자리에 청원정(淸遠亭)을 재건했고 1966년 서원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전교당(典敎堂)은 정면 4칸, 측면 15칸(1.5칸의 오기로 추정됨) 팔작지붕이며 숭덕사(崇德祠)는 정면 3칸, 측면 1.5칸 맞배지붕으로 진사 김해(金楷)가 상량문(上樑文)을 찬(撰)하였다.

 

▣ 청원정(淸遠亭) pp788

--용궁면(龍宮面) 무이리(武夷里) 소천(蘇川)마을에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5칸 목조와가(木造瓦家) 팔작지붕으로 국파(菊坡) 전원발(全元發)의 유덕을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1918년에 재건된 정자이다. 초창연대(初創年代)는 조선 초기로 알려지고 있는데 퇴계(退溪)의 시와 의성(義城) 김소락(金紹洛)의 중수기(重修記)가 있고 뒷 편에 있는 바위에는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이「청원정(淸遠亭)」삼자(三字)를 전서(篆書)로 음각(陰刻)해 놓았다.

 

☞ 청원정 중수기[역문] (출전 : 문온공파 임신세보 권1)

--산이 있어 천장(千丈)을 우뚝 솟아 소백(小白)에서 옮아 오니 무이(武夷)라 한다. 물이 있어 삼강(三江)에서 회합(會合)하니 낙동강(洛東江) 상류(上流)를 성화(省火)라하고 정자(亭子)가 있어 날아갈 듯이 가장 웅결한 곳에 서 있으니 이름하여 청원(淸遠)이라(예기의 『향원익청(香遠益淸)』에서 온 준말로『맑지 않음이 세속인지라』이를 멀리하여 인생을 맑게 살아 심오한 진리를 머물게하는 곳이라) 실로 축산군(竺山君) 국파(菊坡) 전원발(全元發)선생이 만년(晩年)에 휴노(休老)하실 때 지은 것이다. 그 위에 청원정(淸遠亭)이라 3자(三字)를 세긴 것이 있는데 이는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의 평필(平筆)이니라. (이하 생략)(현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가야리 소천서원 역내) ※ 소재지가 군지는 무이리, 파보는 가야리로 상이한 이유 확인 요.

 

 마. <청원정>의 문화재 지정 (2008. 4. 14. 영환(문) 제공)

 

   *기사 내용 출처 : 2008. 4. 27. <데일리안> 대구·경북 김종렬 기자 자료

 

경북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 소재 청원정(淸遠亭·사진)이 최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3호로 지정됐다.

 

청원정은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국파 전원발(1288~미상)이 환국했을 때 원나라 원제에 조공을 감면케 한 공로로 축산부원군에 봉군되고 지금의 소천강 일대를 하사받아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청원정에는 척약재 김구용(1338~1384)선생이 쓴 ‘청원정’이라는 글씨가 현 청원정 옆 암벽에 음각돼 있어 이를 청원정의 창건 근거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918년 복원됐다.

 

청원정의 평면은 일자(一字)형 1칸 규모의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측에 마루방을 각각 1칸 씩 두고 전면에 툇마루를 설치했으며 상부는 후면 평주와 내진주 사이에 대량을 걸고 내진주와 툇마루 전면의 평주 사이는 주두 위에 퇴량을 걸었다.

 

청원정은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온돌 양협 칸에 마루를 둔 건축 평면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정자건축에 있어서 건축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곳에 보존돼 있는 청원정중수기, 청원정중수상량문, 퇴계의 시문, 성화천 동안의 금석문(청원정, 국파전선생) 등은 당시 연구에 좋은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천군은 국가명승 제16호로 지정된 예천 회룡포를 비롯한 석송령, 윤장대를 비롯해 국가지정문화재 26점과 도지정문화재 55점을 포함해 총 81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