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령(金億齡) 1529년(중종24)∼1589년(선조22)--(익)

     

 자(字)는 중노(仲老). 익원공(휘 사형)의 후손으로 문정공 김질의 증손자이며 판결사공 김언의 차남이다. 생원 진사과에 모두 합격한 후 1552년(명종7년) 24세에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승정원 좌승지 지제교를 거쳐 강원도와 황해도 충청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고 이조판서 겸양관대 제학(吏曹判書兼兩館大提學)에 추증(追贈) 되었다.   

 

 공은 문중사에도 관심을 기울여 1580년(선조13년) 경진년에 우리 안동 김씨 족보의 효시인 안동 김씨 성보(安東 金氏 姓譜)발간을 주관하고 그 서문을 찬술하였다. 이것이 경진보(31cm×38cm)이다. 대종회에 원본 1부가 보관중인데 일부 훼손된 부분을 대종회에서 안렴사공파 김윤회 전부회장 주관으로 복원하여 영인본을 1982년과 2003년에 발행하여 후예들에게 배포하였다.

 

 <공주 공산성의 충청도 관찰사 불망비> (2005. 6. 17. 안사연 탐방 촬영 제공)

 

 

 

 <관찰사 不忘碑>-1649년(인조 27년) 경에 충남 공주군 공주 공산성에 세웠던 것인데 훼손 분실됨. 이에 1992년 안동김씨 공주문중회에서 주관하여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문중 역대 선조 4위 관찰사 불망비를 세움. 우로부터-金悌甲, 金億齡, 金時獻, 金素

 

<공산성 입구 비석군>

 

 

<공산성>

 

<주요 자료 소개>

 

 1. 안동김씨 최초의 족보 경진보 제작  (2002. 10. 발용(군) . 2003. 1. 14. 태서(익) 제공))

 

<안동김씨의 최초의 족보-경진보>

 

2.  <관찰사공 묘소 참배 및 참배기> (2003. 12. 15. 윤식(문) 제공)

◇일 시:2003년 12월 14일(일요일)

◇장 소 : 경기도 시흥·안산 일대

◇참석자:11명(무순, 존칭 생략, ☆ 표시는 부부 동반) 윤만, 발용, 주회☆, 태우, 태영, 태서, 항용, 정중, 윤식☆

 

 2003년 송년회 행사 후 안사연에서는 경기도 시흥과 안산 일대의 선조님 묘역을 참배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 날 행사는 대종회의 '경진보' 제2차 영인본 발간을 계기로 관찰사공(휘 억령) 할아버지 묘소와 인근에 계신 할아버지 묘소를 답사해 선조님들의 높은 뜻을 되새기기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잘 알고 계신 것처럼 경진보(庚辰譜)는 우리 문중 최초의 족보로서 조선조 선조 13년인 1580년 여름(孟夏)에 간행되었습니다. 경진보 발행에는 관찰사공(휘 억령) 할아버지께서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

경진보는 단권(單券)으로서 본문이 44장(張:88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판형은 A3 크기와 비슷합니다.

그 후 1982년 4월 10일자로 제1차 영인본이 간행되었으나, 워낙 소량인 데에다 경진보 소장을 원하는 종친들의 요청으로 제2차 영인본이 2003년도에 간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진보 수단 당시의 기록은 매우 희귀하여 어떤 과정을 거쳐 경진보를 모시게 되었는지 자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다행히 이에 대한 기초자료 중 하나로 태영 종친께서 우리 홈페이지에 '홍의재 영건기(弘毅齋營建記)'를 올려 주셔서 그 일면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게시판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경진보 내용은 발용 종친께서 '경진보' 전체를 정성들여 촬영, 우리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전 10시 집결장소인 서울시 삼성동을 출발한 일행은 10시 30분경 서운관정공파 광곡재실 인근의 순환도로 위에 도착하였습니다.

잠시 길섶에 차를 세우고 장령공[掌令公 휘 장(풀草머리 밑에 長)]과 서운관정공[書雲觀正公 휘 수(綏)]의 영단, 유연재공[휘 희수(希壽)] 묘소, 동고공[휘 노(魯)] 묘소를 바라봅니다.

길 아래로 내려서면 바로 묘역에 이릅니다. 이곳에 관련된 자료는 우리 게시판에 윤만 종친을 비롯한 여러 종친들의 답사기와 안사연의 참배 보고가 올라가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사진 역시 발용 종친께서 소개드린 것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멀리 대구에서 오신 정중 종친이 발용 종친의 안내로 눈 덮인 산길을 내려가 참배를 합니다.

 

잠시 서운관정공파 할아버지 묘역을 둘러본 일행은 다시 길을 달려 11시 25분경 시흥시에 있는 대사헌공종회 재실에 도착하였습니다.

대사헌공 재실은 시흥시 연성동에 있는 시흥시등기소를 바라보고 오른쪽 언덕을 넘어서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2층 양옥집 형태입니다. (시흥 지도 참조하세요)  

 

태서 종친의 안내로 대사헌공재실로 들어서니 며칠 전에 대종회 사무총장의 연락을 받으신 태집(대사헌공종회 총무) 종친께서 반가이 맞아주십니다. 재실 관리는 영수 종친께서 맡고 계십니다.

태집 종친께서는 안사연의 답사행사를 맞이하기 위해 일부러 서울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우리 일행은 재실로 들어가 반가운 인사와 따끈한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대사헌공 할아버지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재실에서 나와 언덕 아래쪽으로 뻗은 사거리에 '강희맹 묘소'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있습니다. 그 사거리 바로 옆 산기슭에 잘 단장된 묘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성중학교 앞에 자리한 이 묘역은 대사헌공 셋째 아드님이신 판결사공[判決事公 휘 언(삼水변+焉)]과 그 후손 묘역입니다.

이곳에서 길을 따라 200여 미터쯤 더 들어가면 강희맹 공 묘역이 나타납니다. 강희맹 공 묘소 입구에는 금호아파트 연꽃마을이 있어서 찾기 쉽습니다.

강희맹 공 묘역 바로 왼쪽 산록이 대사헌공(휘 誠童) 할아버지와 그 후손들의 묘역입니다. 대사헌공의 배위는 진주강씨 할머니이시며, 그 부친이 바로 강희맹 공이십니다. 즉, 대사헌공께서는 강희맹 공의 사위가 되십니다. 이런 연고로 대사헌공께서 이 지역에 자리를 잡으신 듯합니다.

대사헌공종회에서 소유한 임야는 대사헌공 묘역을 비롯해 총 15만 평에 달하는데, 본래는 사패지지(賜牌之地)로서 물왕리저수지까지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사헌공 묘역이 있는 연성동은 강희맹 공께서 사신으로 중국 남경을 다녀오면서 붉은 연꽃 씨앗을 가져와 이곳에서 처음 재배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앞의 아파트 이름에 연꽃이 붙은 것도 그런 사연 때문이겠지요.

 

연꽃마을 아파트 바로 앞에 '궁전떡방앗간, 금호사진관' 등이 있는 작은 상가건물이 있습니다. 그 오른쪽 산길로 올라서서 포도밭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맨 위에 대사헌공 할아버지 묘소가 있습니다.

대사헌공 묘소는 쌍분으로 묘비 2기(신·구 각 1기), 문인석 2쌍(신·구 각 1쌍), 장명등, 상석 등의 석물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묘비와 문인석 각 1쌍은 2000년도에 비문을 개수하면서 새로 세운 것입니다.

 

대사헌공 할아버지께 인사를 올린 일행은 대사헌공의 둘째 아드님이신 부호군공[휘 려(濾)] 묘소로 자리를 옮겨 참배를 하였습니다.

부호군공 묘소 역시 묘비 2기(신·구 각 1기), 문인석 2쌍(신·구 각 1쌍), 상석(신)가 있습니다. 그런데 묘소 왼쪽에 좌대와 비슷하게 생긴 보기 드문 석물이 눈길을 끕니다. 이 석물은 아직 정확히 고증되지 않아 대사헌공종회에서 연구 중에 있다고 합니다.

 

참배를 마치고 그 옆의 묘역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태서 종친께서 묘역 맨 아래에 계신 묘소로 다가갑니다. 태서 종친의 14대조(휘 료)와 13대조(휘 이경)의 묘소라고 하십니다. 우리 일행은 다 함께 재배로 인사를 드립니다.

다시 길가로 내려온 일행은 앞에서 말씀드린 판결사공 묘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마침 태집 종친께서 묘하에 살고 계신 향묵 종친을 소개해 주십니다.

 

맨 위쪽에 자리한 판결사공 묘소는 3분상으로 판결사공 할아버지와 배위 2분의 묘소입니다. 판결사공 묘소에는 오래 된 묘갈과 문인석 1쌍, 상석 등이 있습니다.

판결사공께서는 득령, 억령, 백령, 구령 등 4형제를 두셨는데, 묘하에 승지공(휘 백령) 할아버지 묘소가 모셔져 있습니다.

승지공께서는 성균 생원이셨는데 아깝게도 29세의 젊디젊은 연세에 알 수 없는 돌림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안타까운 사연이 비석에 새겨져 있어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림에서는 대사헌공을 일러 "장차 영의정이 되시고도 남을 분"이라 하였는데 안타까운 연세에 돌아가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휘 백령 할아버지는 그보다 더 젊은 연세에 돌아가셔서 더욱 절통합니다.

대사헌공과 그 후손들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태서 종친을 비롯한 여러 종친들께서 우리 홈페이지에 수차례 소개하신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익원공 이하 대사헌공 및 그 후손들에 관한 계보도는 우리 홈페이지 <각파 문중회 소개>에서 <익원공파> 중의 <2. 익원공 파계도>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대사헌공 묘역과 판결사공 묘역 참배 후 우리 일행은 태집 종친의 안내로 인근 음식점에 들어가 따뜻한 음식으로 언 몸을 녹였습니다. 맛나게 점심을 들고 난 일행은 대사헌공 재실 입구에서 태집 종친 등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관찰사공[휘 억령(億齡)] 할아버지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출발하면서부터 찾아가는 길을 자세히 기록하려고 하였으나, 초행길이고 낯선 곳이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헤아려 주시기 바라며, 추후 상세한 길 안내도를 만들어 보고드리겠습니다.

 

관찰사공께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문중의 최초 족보인 경진보 발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관찰사공 할아버지께서 영면하고 계신 곳은 속칭 '버대'라는 곳으로 안산시 양산동입니다. 할아버지 묘역 입구까지는 길이 잘 닦여 있으며, 묘소로 올라가는 길 역시 순탄합니다.

마을 뒷산을 따라 얼마 올라가지 않아 산 중턱에 잘 정돈된 묘역이 나타났습니다.

 

관찰사공 묘역은 기묘한 돌이 묘역 곳곳에 솟아 있어 범상치 않은 기운이 넘치는 곳입니다. 좌청룡 우백호가 둘러싼 아늑한 곳에 자리한 관찰사공 할아버지 묘소는 주위를 둘러싼 산줄기 너머로 높은 산들이 멀리 외곽에서 호위하는 듯한 형상입니다.

지리와 천문에는 전혀 아는 바 없지만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곳입니다.

 

윤만 종친을 비롯한 여러 종친들께서 소개드린 바와 같이 관찰사공 할아버지의 손자가 그 유명한 낙서공(휘 자점) 할아버지십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관찰사공 할아버지 묘소는 오랜 세월 돌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낙서공 할아버지 계열뿐만 아니라 우리 문중의 많은 종인들이 전국 각처로 흩어지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방손들께서 묘역을 잘 정비 수호하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우리 일행은 관찰사공 할아버지께서 420여 년 전에 심혈을 기울이셨던 경진보 영인본과 함께 약소하나마 정성껏 준비한 주과포를 진설한 다음 재배를 드렸습니다.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흐믓한 마음으로 후손들을 지켜보시리라 믿습니다.

 

관찰사공 묘하에는 남쪽으로 빙 둘러 아드님과 손자들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찰사공 묘소에는 묘비, 망주석, 동자석, 문인석, 상석 등이 잘 세워져 있습니다. 상석은 옛 돌 그대로이나 고석 등은 근래에 새로 만든 것입니다. 아마도 상석의 양식이 달라진 까닭에 그리 한 듯합니다.

상석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크기로 전면 2보, 측면 1보, 두께 1뼘을 훨씬 넘는 규모입니다. 묘비의 글은 13대 방손 재면(在冕) 종친께서 쓴 것으로 1995년에 5월에 건립되었습니다.

묘비 오른쪽에는 시향합동제단비와 함께 상석을 마련해 합동으로 관찰사공 후손들의 시향을 모실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선항이신 윤만 종친을 비롯해 방손인 태서 종친께서 각각 잔을 올린 뒤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다시 되시긴 다음 참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후 우리 일행은 산을 내려와 소래포구 바로 옆 월곶포구에서 조개구이와 함께 정담을 나눈 뒤 주회 종친과 윤식 종친을 시작으로 귀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에 막 들어오니 정중 종친께서 방금 대구행 기차에 오르셨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먼 길 무사히 내려가시기를 빕니다.

멀리서 오신 주회 종친과 정중 종친의 무사 귀가와 함께 서울 지역의 여러 종친들께서도 편히 댁으로 돌아가시기를 빕니다.

 

미흡하고 잘못된 내용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로잡아 주시기 부탁드리며 2003년도 송년회 및 시흥 일대 선조님 묘소 답사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3. 관찰사공 시 소개 (2005. 2. 6. 태서(익) 제공)

 

 用企齋韻送聽松還山(용기재운송청송환산)

 

                       金億齡(김억령)  

 

기제의 운을 써서 청송이 산으로 돌아가는 것은 보내줌-金億齡(김억령)

 

寂寞荒村隱小微(적막황촌은소미) : 적막한 황폐한 고을에 숨어사는 몸

蕭條石徑接柴扉(소조석경접시비) : 쓸쓸한 돌길이 사립문으로 이어져있다

身同流水世間出(신동유수세간출) : 이 몸은 흐르는 물처럼 세상에 태어나

夢作白鷗江上飛(몽작백구강상비) : 꿈속에서 백구 되어 강 위를 난다

山擁客窓雲入座(산옹객창운입좌) : 산은 객창을 에워싸고 구름은 집안까지 들어오고

雨侵書榻葉投?(우침서탑엽투위) : 비는 책상까지 뿌려지고 나뭇잎은 휘장에 떨어진다

飄然又作投簪計(표연우작투잠계) : 훌훌 다 틀어버리고 또 투잠계를 짓노니

塵土無由染素衣(진토무유염소의) : 세상에 흰 옷 물들여 더럽힐 이유 없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