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석(金公奭)  1477(성종3)∼1553(명종8)--(안)

      

 자(字)는 주경(周卿), 안렴사공(휘 사렴)의 후손. 1477년(성종3) 성의 3남(공량, 공석, 공망)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507년(중종2) 무과(武科)에 급제, 호조(戶曹)·공조(工曹)·형조 (刑曹)의 참의(參議)를 거쳐, 강릉부사(江陵府使)·포도대장(捕盜大將)·병마절도사(兵馬 節度使) 등을 역임하고 북병사·훈련원도정 등을 역임하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이르렀다. 1534년(중종29) 공조참의를 지내고 1535년(중종30) 특진관 최세절(崔世節)특진관, 김공석, 원팽조(元彭祖)이 함께 진 설치와 봉수 설치를 위하여 다대포와 부산포 등지를 가서 보았다.

1537년(중종32) 찰리사 김공석을 상가(賞加)하면 바로 2품이 되므로 물품으로 숙마(熟馬) 1필을 상으로 받았다. 1539년(중종34) 압해관이 요동으로 떠날 때 의주목사 김공석(金公奭)는 일처리에 능숙한 사람이니 반드시 잘 처리할 것이라 하여 하처하였다.

1540년(중종35) (강릉)부사를 지내고 1542년(중종37) 함경도 관찰사 김섬과 함께 북도 병사(北道兵使)김공석(金公奭)이 육진(六鎭)을 순행하며 형편을 살폈다.1543년(중종38) 병조 판서 임권(任權), 형조 판서 신광한(申光漢), 포도 대장 김공석(金公奭) 등이 함께 의논하여 포도 절목(捕盜節目)을 마련한 단자(單子)에 도적의 발생 원인과 야간 순시를 아뢰었다. 김공석(金公奭)을 병조 참판에 제수하였다.

1545년(명종즉위년) 전라 병사 김공석(金公奭)의 서장을 정원에 내리면서, 중국에서 전수한 총통에 대해 세밀하게 전습할 것을 명했다

“이 서장을 보니 상당히 자세하다. 만약 왜인들이 중국인들과 교통하면서 총통 만드는 법을 전습하여 그 묘리(妙理)를 다 배우면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니다. 오늘 중국 사람들에게서 전습하여 방포(放砲)한 후에 병조에 말해서 병사(兵使)와 수사(水使)로 하여금 세밀하게 갖추 알게 하여 힘써 전습하도록 하라.”

1552년(명종7) 김공석(金公奭)을 청홍도 수군 절도사(淸洪道水軍節度使)로 삼았다.

김공석 묘와 묘갈은 여주 백양동에 있는데 조카 김주가 찬하고, 송인이 서하였다. 金澍찬 叔父北道節度使公 [金公奭]神道碑銘이 寓庵遺集에 실려 있다.

 

 

 <주요 사진> (2004. 7. 13. 발용(군) 제공)

 

<묘소>

 

<묘비석>

 

  

▲ 휘 공석 신도비 (조카 김주 찬, 宋仁 서, 朴詠 전)

 

<신도비명> (2005. 2. 11. 주회(안) 제공)

寓庵先生遺集卷之五

墓碑銘

 

叔父北道節度使公神道碑銘

 

噫。尙忍銘吾叔父也哉。歲癸丑秋。吾將銜命赴京師。而叔父捐館於淸洪之水營。哭不得撫柩。服不得奠酌。??焉而行。比竣事還。叔父已永?矣。孤哀子濯?石而請曰。詳先君之迹者。宜莫如兄。兄其銘。噫。吾固不可以辭。尙忍銘吾叔父也哉。謹按。吾金氏。實新羅之後。敬順王降高麗。高麗賜安東爲食邑。子孫因家焉。赫世冠冕。靡暇?述。有諱丸。仕本朝。爲

 

承文院判校。寔生諱宗孫。司憲府監察。贈通政大夫戶曹參議。寔生諱城。忠武衛中部將。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娶田制別坐任治之女。以成化丁酉。生公。公諱公奭。字周卿。登弘治丁卯武擧。屬內禁衛。庚午年間。嶺南三浦倭奴作亂。屠害城邑。朝廷患之。選公爲助羅浦萬戶。至則寇退矣。整練軍器。修嚴壕塹。人皆有固志。秩滿。除宣傳官。歷司僕寺主簿, 司憲府監察。調鍾城府判官。轉義盈庫令。尋出守寶城郡。輕?薄賦。務?弊?。閱三霜而丁外艱。百姓懷之。至有遮道而攀號者。服?。授都摠

 

府經歷。遷濟用監僉正, 慶興都護府使。俄改慶源。賜緋衣。陞堂上。戊子。拜慶尙左水使。辛卯。移咸鏡北道虞侯。未幾。進南道兵使。遞還。歷戶, 刑, 工三曹參議。湖南漕運。因海道險惡。相繼臭載。大臣議薦公爲察理使。掘開蟻項。?通其路。不數月而功告就。特命階嘉善。牧義州。州與上國連境。豪猾之徒。暗結唐人互賣。惹起事端。號稱難治。公申明約束。姦枉自?。莫敢干以私。時値華使之來。接遇之際。周旋盡禮。供億之費。?指立辦。華人稱之。庚子。拜全羅右水使。辛丑。摠兵北塞。甲辰。又摠湖南兵馬。入爲同知中樞府

 

事。丁未。遷淸洪兵使。復入樞府爲同知。轉訓鍊院都正。壬子。又拜淸洪水使。?過期。而以疾終。享年七十七。明年二月二十五日。卜葬于驪州蛇洞先塋之側。公天性慈詳。處事剛明。竭力爲國。終始如一。思所措?。夜以繼日。佩郡符則民有遺愛。統兵馬則人樂爲用。持身淸謹。存心雅靜。不營産業。不喜紛華。雖職至二品。而?石屢空。雖發迹弓劍。而淡若儒士。事親至孝。侍病湯藥。衣不解帶。祭祀至誠。供饌之物。躬自點設。待兄弟。敬而和。御奴僕。寬而莊。宗黨故舊之窮迫者。必爲盡情?救。壽僅報仁。位不滿德。哀哉。前娶

 

任氏。早歿。後娶李氏。封貞夫人。安岳望族吏曹佐郞諱希舜之女。大司諫諱枰之孫。先公十五年而卒。男二女一。長曰濯。濟用監參奉。次曰滉。繕工假監役。女適宗室安南都正壽鍊。濯娶朴世燾女。生二男四女。男曰壽男。女長適幼學李天錫。餘幼。滉娶洪士元女。生一男三女。男曰洪男。餘幼。都正生三男一女。長曰?。錦川副正。次曰伸。綾城副正。餘幼。銘曰。金在靑丘著厥籍。基闡鷄林繼朴昔。敬順投麗輸版圖。世?綿綿拖紫朱。公復奮迅振羽翼。?紹家聲期盡職。官?二品顯父母。爵及重泉浹雨露。銅章領郡

 

有賢名。大纛分?爲干城。律己簡約留甑塵。與人?洽回陽春。稀齡又七俄成?。有聞訃者皆淚墮。蛇洞之原吉遷鄕。四世于葬宜新藏。斂玆玉樹?幽宮。他山刻石照無窮。

 

寓庵先生遺集卷之五終

 

형태서지

 

권수제 寓庵先生遺集    판심제 寓庵遺集    간종 목판본    간행년도 1789年刊    권책 7권 1책    행자의 수 10행 20자    반곽의 크기   21.9×15.1(㎝)    어미 上白魚尾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번호 奎6516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33  

 

저자    성명 김주(金澍)    생년 1512년(중종 7)    몰년 1563년(명종 18)    자 應霖    호 寓庵, 萬窩    본관 安東     시호 文端    봉호 花山君

 

<김공석 후손 김선이 작성한 분재기소개>

 

  1) 1차 조사 내용 : 김태영(군) 2003.5.2. 제공 자료  

    * 분재기 소장처 : 경기도 여주군 향토사료관 내(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신륵사 관광지내 여주군 향토사료관 전시)

    * 유물 제목 : 안동김씨 분재기

 

     * 전시물 소개내용 :

 

분재기는 재산의 주인이 자녀를 비롯한 가족에게 재산을 상속하거나 분배하여 준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이 분재기는 1678년 작성된 안동김씨 충렬공파 집안의 것으로 피상속자인 장남 김영후를 비롯한 아들 셋, 딸 일곱에 대한 상속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름 밑에 서명도 보인다.  

 

  2)2차 조사 내용 : 김주회(안). 2003. 12. 23. 제공

 

이 분재기는 그동안 어느 분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었으나 지난주(2004. 12.12) 여주향토사료관 방문시(김영환, 김용주, 김승회, 김주회) 실물확인결과, 여주 백양동에 세거해 오신 안렴사공파 김공석 후손인 김선의 자녀인 김영후를 비롯한 10남매(아들3, 딸7)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는 분재기로 1678년 작성된 것입니다. 아래와 같이 정정을 부탁해 놓았습니다.

 

분재기는 재산의 주인이 자녀를 비롯한 가족에게 재산을 상속하거나 분배하여 준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이 분재기는 1678년 작성된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여주 귀백리 입향조 김환(金丸)의 6대손 김선(金선)의 피상속자인 장남 김영후를 비롯한 아들 셋, 딸 일곱에 대한 상속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름 밑에 서명도 보인다.  

 

 오늘(2004.12.23) 여주군향토사료관 사료관팀장/학예연구사 구본만 님으로부터 이메일로 여주군향토사료관 소장 안동김씨분재기 사진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아래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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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주군향토사료관 구본만 입니다.

안동김씨분재기 사진을 첨부파일로 보내드립니다.

안동김씨 분재기는 우리군의 향토사학자 이셨던 고 이현구 선생께서 우리군 사료관에 대여해 주신 여러 여주 관련 자료 중 하나입니다. 이현구 선생 사후 후손들과 협의하여 우리군이 이현구선생께서 사료관에 대여해 주신 유물을 일괄 구입하여 현재는 우리군 사료관 소유의 유물이 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료관이 소장하고 있는 또다른 구안동김씨 관련 자료는 없습니다.

 <2007. 6. 10. 안사연 참배> (글-윤식(문), 사진-발용(군) 제공)

 

 

▲ 병사공 휘 공석 묘소

 

 

 ▲ 병사공 휘 공석 신도비(김주 찬, 송인 서, 박영 전)

 

 ▲ 병사공 휘 공석 신도비(김주 찬, 송인 서, 박영 전)

 

 

▲ 신도비 부분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