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金湜) (생몰년 미상)-(익)

       

 공의 자(字)는 자심(子深), 호는 야은(野隱), 익원공(휘 사형) 후손으로 효소공 김작의 손자이며 통례원 찬의공 김맹함의 3남이다. 공은 1506(중종1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동생인 김엄(金淹), 김형(金炯)이 무과에 급제한 지 2년후 6형제중 3형제가 급제하는 영광된 일이다. 그후 여러 벼슬을 거처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 당시에 세도 간신배들이 정사를 문란케 함으로 이들의 그릇됨을 왕에게 진소하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공주군 탄천면 송학리 학동으로 낙향하였다.

 

 학동에서 은거하던 중 어느해 가을, 당숙 문경공 만보당 김수동께서 전라감사 부임 행차길에 공을 찾아 다시 출사토록 권유하였으나 공은 묵묵히 면화(綿花)대를 꺾어들고 낙향한 연유가 면화(免禍)에 있음을 밝히니 공의 굳은 의지를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돌아갔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후 공의 5세손인 사과공 김이정 때에 부여읍 유촌 석탄으로 이거한 이래 왕진(旺津) 들판을 터전삼아 수많은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고 있다. 학동 유허지에는 유허비가 건립되어 있다.

 

 *<방목열기> 기록내용 (2003. 10. 21. 항용(제) 제공)

 

출전 : <榜目列記>(방목열기. 2000. 11. 林幾楨 편저. 동광출판사 간)

 

金湜

   1)등과년 : 중종1년(1506). 丙寅 2次 別試. 병과 4명 중 1등에 登科

   2)가계 : 증조-宗淑, 조-磧, 부-孟諴.

   3)소개 : 자-子深, 호-野隱

   4)동방자

     (1)갑과 1명 : 陳植(부여)

     (2)을과 2명 : 劉瑾(금성), 林崇檜(조양)

     (3)병과 4명 : 金湜(안동), 吳世昌(해주), 趙邦禎(한양), 尹希仁(파평),

     (4)정과 8명 : 金世鈞(김해), 金世準(김해), 金恊(연안), 朴云俊(함양), 申奉全(평산),

                  柳敬祖(문화), 李말(土+末)(연안), 鄭熊((광주)

  

*<동방급제자 명단> (2005. 12. 15. 항용(제) 제공)

 

 중종1년(1506) 별시 때는 15명의 합격자를 냈다.  

 

이름 생년 자 호 본관 합격등급

 

김세균(金世鈞)  화숙(和叔)  김해(金海) 丁科6

김세준(金世準)  정중(正仲)  김해(金海) 丁科8

김식(金湜)  자심(子深) 야은(冶隱) 안동(安東) 丙科2 --(익원공파)

김협(金協)  자옹(子雍)  연안(延安) 丁科4

박운준(朴云俊)  사미(士美)  함양(咸陽) 丁科7

신봉전(申奉全)  사효(士孝)  평산(平山) 丁科5

오세창(吳世昌)  번경(蕃卿)  해주(海州) 丙科4

유경조(柳敬祖)  윤보(胤甫)  문화(文化) 丁科2

유근(劉瑾)  회보(懷寶)  금성(金城) 乙科1

윤희인(尹希仁) 1465 을유 자응(子應)  파평(坡平) 丙科1

이말(李 (  )) 1466 병술 말지(     )  연안(延安) 丁科1

임숭회(林崇檜)  수부(秀夫)  조양(兆陽) 乙科2

정웅(鄭熊)  희문(希文)  광주(光州) 丁科3

조방정(趙邦楨)  국균(國鈞)  한양(漢陽) 丙科3

진식(陳植)  자건(子建)  부여(扶餘) 甲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