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룡(金德龍)  1518(중종 13)∼?  --(익)

       

 조선 명종·선조 때의 문신. 자는 운보(雲甫), 호는 낙곡(駱谷). 익원공(휘 사형)의 후손으로 해(瀣)의 아들이다.

1546년(명종 1) 증광시에 갑과로 급제, 봉상시주부·경성판관(鏡城判官)을 거쳐 1557년 암행어사로 평안도에 파견되었다. 이어서 장령으로 인산진첨절제사(麟山鎭僉節制使)가 되었으나, 부적격자로 교체되어 돌아와 부교리에 올랐다.

 그 뒤 시강원필선·홍문관전한을 거쳐 의주목사·황해도관찰사 등의 외직을 지냈다. 부호군·장례원판결사·동부승지·전라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도승지 등을 거쳐, 1564년 평안도병마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그때 그의 예하 군인 3백여인이 월경하여 야인을 토벌하다 크게 패배하였는데 이로 인해 추고(推考), 파직당하였다.

 그 뒤 곧 복직되어 평안도관찰사·개성유수 등을 거쳐 1571년(선조 4) 대사헌이 되었다. 평소 효우(孝友)하고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외직에 있을 때는 엄명으로 다스려 간활(姦猾)이 중지되었다고 한다.

 

<관련 자료 소개>

 

 1. 각종 문헌 기록 내용

 

   1) <퇴계전서 2>--퇴계학역주총서 제2책- (1991, 서울 퇴계학연구원) P227.   퇴계선생문집 ?권4  (2003. 5. 20. 주회(안) 제공)

●寄題金雲甫의 <德龍> 駱谷靜齋하다(김운보의 <덕룡> 낙곡정재 제목에 부치다)

 

禦動常由靜(어동상유정)                -- 움직임을 제어함은 고요함에서 비롯되니

超鹿不(흙토빼고壓)高(초록불○고) -- 티끌 세속 초탈하려면 고상함을 지녀야지

歸來臥松石(귀래와송석)                -- 소나무 밑 바위 위에 돌아와 누웠으니

軒冕一秋毫(헌면일추호)                -- 벼슬이 높다 하나 털끌인 양 가볍도다

 

---54) 원주에 '덕룡이다'

 

   2) <퇴계학연구>(퇴계선생 제자전기1) --제15집 (1995, 국제퇴계학회 경상북도지부) p256 (2003. 6. 5. 주회(안) 제공)

 

  자는 운보(雲甫), 호는 정재(靜齋), 본관은 안동인데 서울에 살면서 선생의 문하에서 배웠다. 과거에 올라서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고 사람됨이 헌할(=넓고 활달함)하였다.

일찍이 기성(=평양)부윤이 되었는데 모든 은정(銀錠)과 필단(匹段=포백)을 따로 고(庫)를 두어 간직하고 추호도 손대지 아니하였다. 당시에 청렴한 덕으로 이름이 드러난 이는 재상 이준경과 공 두 사람뿐이라고 하였다.

명종조에 대사헌 박계현이 병으로 그만두자 임금이 정청(政廳)에 전교하기를 "시종(侍從)하는 양사(兩司=사헌부, 사간원)의 임무가 중하니 순진하고 근신한 사람을 십분 골라서 의망(擬望)하여 上下의 뜻에 흡족하게 하라"고 하여 드디어 송기수(=김첨의 장인, 허난설헌의 시모의 부), 오상과 공을 의(擬=후보에 넣음)하여 계달하였다.

 

●써서 낙곡(駱谷) 정재(靜齋)에게 부치다  (상기 시의 또 다른 해석)

 

動함을 막으려면 언제나 고요함을 따르고

티끌 세상 뛰어 넘어 고상함이 싫지 않네

돌아와서 솔과 돌에 누웠으니

높은 벼슬은 한 낱 가을털

 

 

 3) <퇴계문인록> (1983, 이희대 편저, 제자 서봉 김사달) p55 靜齋 金德龍 (2003. 6. 5. 주회(안) 제공)

 

이조 명종 때의 문신인 김덕룡의 자는 雲甫(운보)이고 호는 靜齋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중종13년(1519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청년시절부터 아우 德,昆+鳥(덕곤)고 함께 퇴계선생 문하에서 훈학을 받아 학문이 뛰어났다.

사마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한후 삼사와 성균관의 여러 관직을 역임한 다음 관직이 사헌부 대사헌에 올랐다.

특히 사간원과 사헌부 양사에 재임중일 때에는 조야의 美+次望을 받았던 정재는 당대의 문신중 영의정을 역임한 이준경과 함께 청렴하고 덕망이 있는 인물로 손꼽혔다.

한편 정재의 아우로 퇴계 문하에서 훈학을 받은 김덕곤은 자를 成甫라 하며 문과에 급제한 후 사간원과 사헌부의 간관을 역임한 다음 평안도 어사로 발탁되는등 중망을 받았으나 40대 초에 요절함에 따라 빛을 보지 못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했던 그는 평안도 어사로 활약할 당시 중국을 다녀오는 사신들의 비행을 엄히 문책하여 조정의 신임과 찬양을 받기도 했다.

 

 4) <조선 사마방목> (2003. 6. 5. 주회(안) 제공)

 

        김덕룡(金德龍) / 中宗 38 式年 進士

【시험년도】 중종(中宗) 38 (1543) 식년(式年) 진사(進士)

【합격등위】 2등 0021

【본인성명】 김덕룡(金德龍)

【본인 자】 운보(雲甫)

【본인본관】 안동(安東) 김(金)

【본인거주】 경(京)

【부친성명】 ★김해(金瀣)

【부친품계】 통훈대부(通訓大夫)

【부친관직】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제검(提檢)

 

  5) 시 2수 소개

 

 (1) 駱谷 靜齋詩(낙곡 정재시)--감사 김덕룡(金德龍) (2003. 1. 4. 태서(익) 제공)

 

高齋蕭灑碧山房  높은 집 소쇄한 푸른 산방에

祗有圖書萬軸藏  다만 도서의 만권이 장서되어 있도다

東澗繞門西澗合  동쪽의 간수는 문을 돌아서 서쪽 간수와 합하고

南山接翠北山長  남쪽산의 푸른빛은 북쪽산에 연하여 길도다

白雲夜宿留   滋  백운은 밤에 첨단에서 머물러 첩첩하고

淸月時來滿屋凉  청월은 때로 오니 집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가득하도다

己成看月看山計  이미 달을 보며 산을 보기로 계책을 정하였으니

此外何領更較量  이밖에 어찌 무엇을 다시 헤아려 볼까?

 

 (2) 題 珍島龍藏洞  (제진도용장동)-- 감사공 덕룡 (2003. 5. 1. 주회(안) 제공)

 

遊 魂 海 島 敢 猖 狂   삼별초가 진도에서 미쳐 날뛰며

建 闕 營 城 太 陸 梁   대궐짓고 성쌓으며 너무 방자해

我 祖 當 年 曾 問 罪   충렬공 그때의 죄를 물으니

至 兮 人 指 古 龍 藏   오늘날 사람들이 옛 용장동을 가리키더라

                     監司駱谷公 德龍

 

 6) <京畿道 安金史 資料集>  (2002. 11. 18. 태영(군) 제공)

 

   (1)[선조실록 권4, 선조3년 7월 9일(을해)]

      o 개성유수(開城留守) 김덕룡(金德龍)에게 번거롭게 진소(陳疏)하지 말라고 답함.

 

   (2)[선조실록 권4, 선조3년 8월 8일(계묘)]

     o 개성유수(開城留守) 김덕룡(金德龍)등이 소를 올려 을사년(乙巳年:1545년,인종1년)의 일에 대해 억울한 죄는 씻고, 죄지은것은 다스릴 것을 청함.

 

  7) <동방급제자> (2006. 1. 7. 항용(제) 제공)

 

명종1년(1546) 식년시때는 76명의 합격자를 냈다.  

 

이름 생년 자 호 본관 합격등급

강사상(姜士尙) 1519 기묘 상지(尙之)  진주(晉州) 丙科8

강섬(姜暹) 1516 병자 명중(明仲) 송월(松月) 진주(晉州) 丙科2

고경허(高景虛)  응실(應實) 아계(丫溪) 제주(濟州) 丙科3

곽간(郭趕) 1529 기축 윤정(允靜) 매당(梅塘) 현풍(玄風) 丙科22

곽회영(郭懷英)  인걸(仁傑)  청주(淸州) 丙科2

기대항(奇大恒) 1519 기묘 가구(可久)  행주(幸州) 乙科4

김규(金<0x3C34>) 1502 임술 몽서(夢瑞)  광주(光州) 丙科4

김극일(金克一)  백순(伯純) 약봉(藥峯) 의성(義城) 丙科1

김기문(金起文)  비연(斐然)  경주(慶州) 丙科11

김덕량(金德良)  일지(一之)  공주(公州) 丙科5

김덕룡(金德龍) 1518 무인 운보(雲甫) 낙곡(駱谷) 안동(安東) 甲科2--익원공파

김사섬(金士銛)  백온(伯溫)  강릉(江陵) 丙科10

김삼달(金三達)    미상(未詳) 丙科2

김오(金鰲)  낭선(浪仙)  청도(淸道) 丙科3

김용(金鎔)  련중(鍊仲)  개성(開城) 丙科6

김정석(金廷碩)  국로(國老)  교하(交河) 丙科9

김충갑(金忠甲) 1515 을해 서초(恕初) 귀암(龜岩) 안동(安東) 丙科4--제학공파

김침(金沈)  용회(用晦)  미상(未詳) 甲科2

김한걸(金漢傑)  자신(子伸)  개성(開城) 丙科21

노진(盧禛) 1518 무인 자응(子膺) 옥계(玉溪) 풍천(豊川) 乙科4

*목첨(睦詹) 1515 을해 사가(思可) 두일(逗日) 사천(泗川) 乙科7

*박문수(朴文秀) 1502 임술 이실(而實)  밀양(密陽) 乙科7

박민헌(朴民獻) 1516 병자 희정(希正) 정암(正庵) 함양(咸陽) 乙科1

박위(朴偉)  굉중(宏仲)  밀양(密陽) 丙科16

박전(朴全)  면부(勉夫)  무안(務安) 丙科15

박충원(朴忠元)    미상(未詳) 丙科6

박호(朴虎)  경인(景仁)  밀양(密陽) 丙科14

변위(邊偉)  태허(太虛)  원주(原州) 丙科7

서극일(徐克一)  선원(善源)  이천(利川) 丙科1

손한(孫翰)  문백(文伯)  밀양(密陽) 丙科3

송희규(宋希奎)    미상(未詳) 乙科1

신국량(申國樑)  간중(幹仲)  평산(平山) 丙科16

신륜(辛崙) 1528 무자 경입(景立)  영산(靈山) 乙科6

신의충(申義忠)  충경(忠卿)  평산(平山) 丙科7

신호(申濩)  덕홍(德弘)  영천(永川) 丙科12

*심수경(沈守慶) 1516 병자 희안(希顔) 청천(聽天) 풍산(豊山) 甲科1

심전(沈銓) 1496 병진 숙평(叔平)  청송(靑松) 丙科13

심통원(沈通源)    미상(未詳) 丙科5

안사웅(安士雄) 1529 기축 위백(偉伯)  광주(廣州) 丙科23

*양사언(楊士彦) 1517 정축 응빙(應聘) 봉래(蓬萊) 청주(淸州) 丙科20

양사준(楊士俊)  응거(應擧) 풍부(楓阜) 청주(淸州) 丙科5

양응태(梁應鮐)  경삼(景三)  남원(南原) 甲科3

양희(梁喜) 1515 을해 구이(懼而) 구졸(九拙) 남원(南原) 乙科1

유경심(柳景深)    미상(未詳) 甲科1

유수(柳洙)    미상(未詳) 丙科4

유승선(柳承善)  응경(應卿)  진주(晉州) 乙科5

유응두(柳應斗)  추보(樞甫)  진주(晉州) 丙科18

유종선(柳從善) 1519 기묘 택중(擇中)  진주(晉州) 乙科2

유한충(劉漢忠)  옥여(玉汝)  평산(平山) 丙科17

육대춘(陸大春)  건중(建中)  옥천(沃川) 丙科18

윤홍중(尹弘中)  중임(重任)  해남(海南) 丙科17

이광전(李光前)  효선(孝先)  합천(陜川) 丙科19

이광진(李光軫) 1517 정축 여임(汝任)  여흥(驪興) 丙科21

이극공(李克恭)  의중(懿仲)  공주(公州) 丙科20

이명(李銘) 1521 신사 자신(子新)  전주(全州) 丙科23

이성의(李成義)  의지(宜之)  광주(廣州) 丙科22

이순형(李純亨) 1498 무오 중가(仲嘉)  덕수(德水) 丙科7

이언충(李彦忠) 1524 갑신 사경(思敬)  성주(星州) 丙科14

이우민(李友閔)  효숙(孝叔) 수졸(守拙) 연안(延安) 丙科11

이중경(李重慶) 1517 정축 숙희(叔喜)  광주(廣州) 丙科19

이홍남(李洪男) 1515 을해 사중(士重)  광주(廣州) 丙科1

이희검(李希儉) 1516 병자 경질(景質) 국삼(菊參) 완산(完山) 丙科9

이희온(李希溫) 1519 기묘 경순(景醇)  완산(完山) 乙科3

임복(林復) 1521 신사 희인(希仁) 풍암(楓岩) 회진(會津) 乙科5

장문보(張文輔) 1516 병자 백훈(伯勳)  순천(順天) 丙科12

전제광(田霽光)  호연(浩然)  남양(南陽) 乙科6

정득(鄭得) 1483 계묘 덕부(德夫)  경주(慶州) 丙科15

정사량(鄭思亮)  집중(執中)  진주(晉州) 丙科13

정순우(鄭純祐)  백수(伯受)  동래(東萊) 乙科2

조박(趙璞)    미상(未詳) 乙科2

조선규(趙善奎)  사문(士文)  풍양(豊壤) 丙科10

주이(周怡)  사안(士安)  상주(尙州) 丙科8

최응룡(崔應龍) 1514 갑술 견숙(見叔) 송정(松亭) 전주(全州) 甲科1

한호(韓灝)  원원(源源)  당진(唐津) 乙科3

*허엽(許曄) 1517 정축 태휘(太輝) 초당(草堂) 양천(陽川) 甲科3

황우(黃祐)  경중(慶仲)  우주(紆州) 丙科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