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흠(金 欽) 1537(중종32)∼1592(선조25) --(익)

       

자(字)는 거경(居敬), 조선조 개국공신인 익원공(휘 사형)의 7대손이고, 충의위전도부위 김승석의 장남이다. 김흠은 1583년(선조 16)에 직장(直長)으로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 科)로 급제하여 노산현감으로 출사하였으며, 통훈대부 품계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군자감정감군으로 신입장군과 충주 달래강에서 배수진을 치고 군사를 지휘하여 사력을 다하여 항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 그리하여 아군 장졸들이 모두 탄금대하에서 원통하게 전사할 때 같이 순절하였다. 7년간이나 전란이 계속되어 시체를 거두지 못하여 황해도 금천(金川)에 있는 선고묘하에 초혼장을 하였다.

 뒤에 조정에서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 이등에 녹훈하고 증가선대부병조판서를 추증하고 시호를 충민(忠愍)이라 내렸다

 

 충남 논산군 상월면 산성리는 안동김씨 충민공의 자손들이 세거지이다. 이곳에다 김흠의 단소를 설단하고 신도비를 건립하였으며 그 곁에 충민재를 건립하여 해마다 향사를 모시고 있다.

 

※ 참고자료 : 선무원종공신녹권. 화보 pp13--김흠공 표충비. 김흠공재소 충민재 사진이 있음.

 

 ※ 출전 : 壬亂功臣遺史誌(임란공신유사지) pp175/1994년/임란공신숭모회출판부)   (2002. 윤만(문) 조사. 자료 제공)

 

<충민재>(재실. 윤만(문). 2002. 6. 자료 조사 제공)

 

 

<표충비>(윤만(문). 2002. 7. 6. 자료 조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