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진(金 振) 1603(선조 36)∼1669(현종10)--(서)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군옥(君玉) 호는 낙봉(駱峯)이다. 서운관정공(휘 綏)의 후손. 증조부(曾祖父)는 김홍도(金弘度), 조부(祖父)는 김첨(金瞻), 생부는 김정립(金正立)이다. 백부인 홍문관 저작(弘文館著作) 김성립(金誠立)에게 입양되었다.

 

  인조 13년(1635)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김희수(金希壽, 1507년), 김로(金魯, 1525년), 김홍도(金弘度, 1548년), 김첨(金瞻, 1576년), 김성립(金誠立, 1589년)을 잇는 6대 연속 문과급제 집안으로 유명하다.

 

  전랑(銓郞) · 검상(檢詳) · 사인(舍人)을 역임한 다음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지내고 황해감사(黃海監司)에 이르렀다. 강원도 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石陵世蹟(筆寫本)

 

  묘는 경기 여주군 금사면 도곡리 산10 번지에 있는데, 묘 상석(床石)은 강화도산으로 한강을 따라 이포나루를 통해 운반해 온 것으로 300년 이상된 것이라고 한다.

 

 아들 증통정대부 호조참판 김대헌(金大獻)은 일찍 죽었는데 묘는 도곡리 산93 번지에 있고, 손자 가선대부 황주목사겸병사수군절도사 김숙(金?)의 묘는 이포고등학교 뒤쪽 여주군 흥천면 계신리 산108-1 번지에 있다. 옛부터 금사면 도곡리, 궁리와 흥천면 계신리 등지에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여 왔는데, 이포고등학교 설립시 부지를 희사하여 경기도교육감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상 자료 2005. 1. 20. 주회(안) 제공)

 

<연려실 기술> 내 기록 내용 종합 (2003. 11. 26. 윤만(문) 제공)

 

▣ 연려실기술 제22권 원종 고사본말(元宗故事本末) 원종(元宗)과 인헌왕후를 추숭하다 ▣

 

○ 대교 조행(趙珩), 학정(學正)정홍서(鄭弘緖), 승문권지(承文權知) 조적(趙績), 교서관 저작(校書諸作) 곽융(郭瀜)을 모두 옥에 가두었다. 승정원에서 또 박지계의 이름을 유적에서 빼낸 것은 많은 선비의 의논에서 나왔으니 일이 지나간 후에 주모자를 적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들어와 아뢰었다. 임금은 “만약 성명을 적발하기 어려우면 연평부원군에게 물어보라.”하니 사관(四舘)이 가서 이귀에게 물으니 “허목(許穆)이다.”하였다. 그 때문에 사관(四舘)이 함께 모여 허목에게 정거(停擧)시키니 이에 성균관 안의 유생들은 일제히 비우고 나가 버렸고 사학(四學)에서도 또한 모두 재실(齋室)을 비우고 나가 버렸다. 임금이 성균관의 관원과 예관을 보내 타일렀다.

 

○ 유학(幼學)김진(金振)ㆍ유동형(柳棟亨) 등이 소를 올려 “허목과 함께 재임(齋任)이 되어 서로 의논하여 박지계를 유적에서 이름을 삭제했으니 허목과 함께 죄벌을 받겠습니다.”하였다. 《응천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