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원(金重元) ?∼1716(숙종42)--(부)

        

 조선의 무신. 字는 선경(善卿), 부사공(휘 天順)의 후손. 어영 대장(御營大將) 응해(應海)의 증손.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자립하여 학문수양에 전력하였다. 어려서 학업을 닦고 초서(草書)·예서(隸書)에 뛰어났으며 24세 때 무과(武科)에 급제, 1697년(숙종 23) 무관으로 윤지선(尹趾善)의 천거를 받은 바 있으며, 1711년 삼도통제사가 되었다. 영남에 있을 때 큰 가뭄이 들자 백성들의 구휼에 전력을 다했으며, 길주에 있을 때도 가뭄의 피해로 백성들이 곤경에 처하자, 이들의 기아를 척결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11년 삼도 통제사 (三道統制使)로 있을 당시 병기를 수리하고 군사기강을 바로잡는 일에 힘쓰는 한편 현의 창고를 열어 서민들을 도와주는 등 군기(軍紀)를 바로 잡고 해현창(解縣倉)을 설치하여 어민(漁民)의 생활을 윤택케 했으므로 군민(軍民)이 모두 힘을 합쳐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한 비석을 세웠다.

 

 

 

<金重元 묘표>  (2005. 11. 1. 발용(군) 제공)

 

· 동송읍 양지리 산(어은동).

· 1737년(영조 13) 건립.

· 찬 : 김집(金潗)

· 서 : 김집(金潗)

· 자는 선경(善卿).

· 조선 후기(1653~1716)의 무신.

· 1676년(숙종 2) 무과(武科)에 급제.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이나 병조판서에 추증.

· 증호조참판 세언(世彦)의 아들.

· 배 정부인 평양조씨(平壤趙氏)와 합장.

  통제사 조 유(趙猷)의 딸.

· 상석ㆍ족석ㆍ향로석ㆍ혼유석ㆍ계체석ㆍ문인석ㆍ망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