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락(金宗洛)   1796(정조20)∼1875(고종12)--(익)

       

 익원공(휘 사형) 후손으로 정조 20년(1796) 소산(蘇山)에서 태어났다. 호는 삼소재(三素齋). 삼소(三素)란 '소산에 살며 깨끗한 행실을 하고 검소한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벼슬에 뜻을 버리고 소산마을에다 초가집 몇 칸을 짓고 '지곡서당(芝谷書堂)'이란 현판을 달고 날마다 그곳에 거처하여 서사(書史)로 자오(自娛)하다가 고종 12년(1875) 80세로 별세하였다.

  학서(鶴棲) 류태좌(柳台佐)가 지은 문집 삼소재 기문에 수록되어 있다. 사후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직첩이 내렸다.

 

 <삼소재 관련 사진 소개> (2006. 5. 13. 발용(군) 제공)

 

 

<안동 소산리 입구의 안내 표석>

 

 

 

 

 삼소재 전경

 

<안내 해설문>

 

   

<삼소재 문집 원본>                                                               <묘소>

 

    

<음수재 재사 상량문>

 

  

  <서간문>                                   <교지>(통정대부. 수직. 1875년 7월)

 

    

 <교지>(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수직, 1875년 9월)                              <삼소재 문집 내부>

 

 <안사연 제1회 여름캠프 방문 촬영 사진>

 

 

 

삼소재 종손 석교님(우측)

 

<2002. 7. 28. 안사연 여름캠프 대회시 삼소재에서 석교 종손과 함께>

 

유물

 

 

다락방에 가득한 고서적

 

<서책 목록>  

 

특이하게 외양간 위에 부엌처럼  다락을 두었다.

 

 

  <입향조이신 司果公(휘 彦濬-언준) 묘소>

소산리 입향조 휘 언준 묘소.

 

2002년 제1회 여름캠프 때 촬영한 사진

 

<삼소재집 내의 시문 소개> (2006. 3. 20. 영환(문) 제공)

 

  충렬공선조님의 운을 따서 지은 시  (2006. 3. 23. 항용(제) 번역)

 

 登暎湖樓敬次先祖忠烈公板上韻 (등영호루경차선조충렬공판상운)

 

     영호루에 올라 공경하는 충렬공 선조님의 현판 시의 운을 따서

   

 

 百里湖上入望靑(백리호상입망청)--100리 호수가가 파랗게 눈에 띄고

 春風花樹惱人情(춘풍화수뇌인정)--봄바람에 꽃피니 사람 마음 꾀어 내네

 東征壯士今安在(동정장사금안재)--일본 정벌 가던 용사들은 지금 어디 계신가

 吾祖當年海上行(오조당년해상행)--내 선조님께선 당시에 바다로 행차했었거늘

 

<삼소재 소개>

 

 1) <안동의 종택을 찾아서 20> (2006. 5. 12. 주회(안) 제공)

 

--<삼소재(三素齋)> 안동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박장영

작성자 : 박장영       작성일 : 2004-08-14 오전 11:41:49 조회 : 308  

 

안동의 종택을 찾아서 20 <삼소재(三素齋)>

 

 

안동시 풍산읍에서 하회마을 가는 길로 좌회전하여 1㎞ 쯤 가다보면 길 오른편에 마을이 바로 소산리이다. 이곳 소산마을에는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두 김씨 문중이 400여 년을 세거해 오고 있다. 하나는 고려의 개국공신 김태사 선평(宣平)공을 시조로 하는 후안동김씨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銀說)공을 시조로 하는 선안동김씨이다.

 

이 집은 선안동김씨 시조의 18대손인 용추(用秋) 공의 종택으로 당호가 삼소재이며 안동시 풍산읍 소산1리 257번지에 있다. 삼소재는 용추공의 5대 손인 김종락공의 아호이다.

 

선생의 문집인 삼소재집(三素齋集)에 실린 학서(鶴棲) 류태좌(柳台佐)의 삼소재기에“내 친구 상락 김사문 기언은 글을 읽고 행의가 있는 집사람이다. 하루는 와서 청하기를‘사는 집에 현판이 없을 수 없으므로 삼소라고 써 걸어서 경계하고 반성하는 바탕으로 삼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 뜻은 소리(素履)를 행하고(行素履), 소찬(素餐)을 먹고(食素餐), 소산(素山)에 산다(居素山)는 것이다. 나는 이르되‘아름다운지고 집의 이름이여’라고 했다.”

 

이 집은 조선조 현종 15년(1674)에 건립하였고, 1985년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6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중턱의 완만한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앞에 화단을 꾸미고 그 뒤에는 ㅁ자집을, 우측에는 사당을 배치하였다. 안채는 중앙에 4칸 반의 넓은 대청을 두고 그 왼쪽에 안방 2칸과 뒷방 1칸을 두었으며 오른쪽에는 상방 1칸을 두었다. 대청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외벽의 각 칸에는 쌍여닫이판문을 달았다.

바깥채는 중문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마구간 1칸, 부엌 2칸을 배치했고 오른쪽에 사랑방과 사랑대청이 있다. 사랑채에는 삼소재 편액이 걸려있고 방이 1칸 반이고 마루가 1칸 반이다.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머름중방이 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벽은 중방과 하방 사이를 판벽으로 마감하고 널빤지 문짝을 달아 바라지창을 내었다.

 

사당은 장방형의 자연석으로 기단을 50㎝ 정도 쌓고 그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각주를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집이다.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내었고 각 칸에는 넉살무늬가 있는 넌출문을 달았으며 중앙 칸에는 쌍여닫이문이다. 그리고 좌우는 여닫이문이고 양 측면 벽의 중방 위에는 각각 작은 넉살광창이 있다.

 

 2)경북도청 홈 (2006. 3. 30. 정중(도) 제공)

이 집은 김용추(金用秋, 1651년~1711년) 선생의 종택으로 1674년(현종 15년)에 건립하였다 한다. 당호(堂號)는 용추공의 5대손인 김종락(金宗烙, 1796년~1875년) 선생의 호를 딴 것이다. 선생은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직첩을 받았으나 돌아가신 뒤였다고 한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미음자형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중문간으로 연결하였고, 지붕은 따로 꾸며 팔작지붕을 이루는 민도리집이다. 특히 안대청 건너방 앞에 뒤주를 둔 것과 옆 외양간 위에 부엌에서처럼 다락을 둔 점 등이 주목된다.

 

 3)안동시청 홈페이지 기록 내용 (2002. 10. 29. 주회(안) 제공)

 

●삼소재(三素齋)

【관리번호】760-800-360-107 【지정사항】민속자료 제66호

【유적종류】고가(민간의 고가) 【소 재 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57

【시 대】조선시대 【관 리 자】개인(★김석교)

【유적내용】

삼소재(三素齋)는 선(先) 안동 김씨 시조의 18대손인 ★김용추(金用秋)의 종택으로 조선 현종 15년(1674)에 건립한 것으로 삼소재(三素齋)는 당호이다. 당호는 김용추공 5대손인 삼소재(三素齋) ★김종락(金宗烙)의 호를 딴 것이다.

삼소재

정면 6칸, 측면 5칸의 '口'자형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중문간으로 연결하였고, 지붕은 따로 꾸며 팔작지붕을 이루는 민도리집이다. 특히 안대청 건너방 앞에 뒤주를 둔 것과 중문가 옆 외양간 위에 부엌처럼 다락을 둔 점 등이 주목된다.

【참고문헌】영남사, 1996, <<안동의 문화재>>, 440-441.

【비 고】1985. 12. 30. 지정.

 

 3) 문화재청 홈페이지 기록 내용 (2002. 10. 29. 주회(안) 제공)

종 목 : 시도민속자료 66호 ●삼소재 (三素齋)   

분 류 가옥 수 량 1동

지정일 1985.12.30 소재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57

소유자 ★김석교 관리자 ★김석교

 

선안동 상락 김씨 시조의 18대조인 ★김용추가 조선 현종 15년(1674)에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집의 이름은 용추공의 5대손인 ★김영락 선생의 호를 딴 것인데, 삼소는 소산에 살며 깨끗한 행실을 하고 검소한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앞면 6칸·옆면 5칸의 ㅁ자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였고 지붕은 따로 꾸몄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특히 안대청 건너방에 뒤주를 둔 점과 외양간 위에 부엌에서처럼 다락을 둔 점 등이 주목된다.

 

이 집은 선안동(先安東) 상락김씨(上洛金氏) 시조(始祖)의 18대손인 ★김용추(金用秋)(1651∼1711) 공의 종택(宗宅)으로 조선(朝鮮) 현종(顯宗) 15년(1674)에 건립(建立)하였다 한다. 당호(堂號)는 용추공의 5대손인 ★김영락(金英洛) 선생의 호를 딴 것인데, 선생은 정조(正祖)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냈다 한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중문간으로 연결하였고, 지붕은 따로 꾸며 팔작지붕을 이루는 민도리집이다. 특히 안대청 건너방 앞에 뒤주를 둔 것과 중문간 옆 외양간 위에 부엌에서처럼 다락을 둔 점 등이 주목된다.

 

 4) 안동시청 홈페이지 기록내용 (2002. 10. 29. 주회(안) 제공)

---생 략---

素山에는 조선 중엽에 충열공의 11세손인 ★언준(彦濬)이 정착하였으며 현재는 약 10여호가 영가김씨(永嘉, 後安東金氏)들과 혼재하여 살고 있으며, 일부는 와룡, 회곡, 문경 산양 등지에 분가하여 살고 있다.

소산은 태백산에서 연이어져 온 지맥이 크게 융기한 학가산에서부터 비롯하여 보문산, 직산을 거쳐 풍천 갈전 뒷산인 검무산을 지나 동서로 연봉을 이룬 정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정산의 기슭은 풍산들 넓은 평야로 열려있어 아주 풍광이 좋은 곳이다. 선김씨의 종가가 자리잡은 곳은 정산에서 동쪽을 향하여 넓은 들과 선성이씨의 세거촌인 우렁골을 건너다보며 앉아 있다.

---생 략---

안동 소산에 世居하는 집은 익원공파로서 익원공 ★士衡은 永煦의 손자이다. 1392년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純忠紛議佐命開國功臣이 되고 태조 원년에는 左政丞으로 제수되었다. 권근, 이무, 이회 등과 더불어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世界地圖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彊理歷代國都之圖)를 제작하였다.

이 집안은 영가지에 보면 朝鮮 上界까지는 安東人物의 3분지 일을 차지하였고 조선에서도 가장 번성한 집안으로 꼽히었으나 中界以後로 오면서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그 세가 약해 졌고, 落南이후에는 과거합격자를 거의 내지 못하였다.

단지 落南祖인 ★彦濬이 충좌위부사과를 지냈고, 孫子 ★就礪가 장예원판결사를 역임하였으며, 그의 자 ★仁達이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한다. 이후 ★用秋의 문장이 뛰어나 갈문록에 실렸고, ★德胤, ★宗洛이 문장이 높아 문집이 전함. 특히 宗洛의 호 三素齋는 이 집안의 宗家의 당호와 동일하며 壽職으로 통정대부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에 제수받았다.

그리고 병자호란때 의병의 선봉으로 종군한 ★夢麟, ★夢雄 형제의 활약상이 전한다.

---생 략---

안동에 있는 이 집안의 宗家인 三素齋(1674년 건립)는 경상북도 지방민속자료 제66호로 지정되었으며, 안동 김씨의 대종가는 아니나 낙남 이후부터 서애의 외가인 의성군 점곡면 사촌의 안동 김씨(도평의공파) 집안과 번갈아 충열공의 향사를 맡아 주도적으로 지내 왔으므로 이후부터는 안동지방뿐 아니라 전국 선김의 중심적 역할을 하여 왔으며 대종회가 결성되면서 부터는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특기할 점은 삼소재의 사랑은 槐堂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소산에 있는 대가들은 대문을 거의 설치하지 않고 대문이 들어설 지점에는 檜나무를 심어 그 경계로 삼았다.

이는 檜谷村(지금 풍산읍 회곡리)의 지명과 아울러 볼 때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