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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객관중신기(原州客館重新記) ㅡ 목사공 김적
작성자 김윤식
작성일 2017-09-26 (화)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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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州客館重新記 - 목사공(휘 적) 자료>
 
원주(原州)의 객관(客館)을 중신(重新)한 것에 대한 기문 
 
                                                  서거정 지음
 
원주는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이다. 신라 때에 북원 소경(北原小京)을 두었고, 고려 초에 주(州)를 두었다가 뒤에 강등되어 지주(知州)가 되었고 또 강등되어 일신현(一新縣)이 되었으며, 중간에 승격되어 정원 도호부(靖原都護府)가 되었고 뒤에 익흥 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공민왕 때에 다시 목(牧)이 되었다. 예전에는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강원도의 계수관(界首官)이다.

그 땅이 넓고 그 백성이 많으며, 산천의 빼어남과 토지의 비옥함과 물산의 풍부함이 여러 고을 가운데 으뜸이다. 그 풍속이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비용을 아껴 쓰며, 재화를 저축하고 증식하여, 물난리나 가뭄도 재앙이 되지 못하니, 실로 강원도의 아름다운 고을이다.
거정이 젊을 적에 치악산(雉岳山)의 법천사(法泉寺) 등의 여러 산사에서 글을 읽었는데, 원주를 오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양 보면, 중류층 이상은 보란 듯이 집을 짓는 일에 힘써서, 집을 크고 넓게 하고 누대를 높게 짓고 정자를 아름답게 꾸몄다. 곳곳마다 모두가 그러했다. 고을은 이처럼 크고 부유한데 어찌 유독 관사는 이렇게 누추하고 좁아 형편없는 것인지, 그것이 의아하였다.
관사를 지은 연대를 물어보니, 원(元)나라 연우(延祐) 연간에 지은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계산해 보면 백수십 년이 지났는데, 앞뒤로 원주의 수령을 지낸 자들이 그럭저럭 지내기만 좋아하고 수리할 겨를을 내지 않았으니, 이것이 원주 고을의 큰 결함이었다.
성화 경자년(1480, 성종11)에 철성(鐵城) 이후(李侯)가 선발되어 목사로 나와, 정사가 잘 이루어지고 폐단이 제거되자, 통판 전성(全城) 이후(李侯)와 의논하여 중수해야 할 타당한 사유를 조정에 보고하여 윤허를 받았다. 그리하여 재목을 모으고 기와를 구워 장차 건물을 지으려 할 때에 감사(監司) 권공 륜(權公綸)이 또한 그 경비를 보조하였는데, 마침 시절이 좋지 않아서 착수하지 못하였다.
계묘년(1483) 봄에 농사가 다소 좋아졌으므로 공사를 시작하였다. 노는 일손을 고용하고, 농민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이에 옛터에 그 규모를 키워서, 먼저 기둥 세 개짜리 대청(大廳)을 세우고 앞뒤로 날개채를 달았다. 동헌(東軒)도 그렇게 하였다. 넓고 높게 툭 트여서 우뚝하고 환하였다. 이전에 좁았던 것이 이제는 널찍해졌고 이전에 누추했던 것이 이제 늠름해졌다. 보는 이들이 모두 훌륭하게 여겼다.
이해 가을 7월에 철성 이후가 광주목(廣州牧)으로 자리를 옮기고 상락(上洛) 김후(金侯)가 후임으로 왔고, 이 통판이 임기가 차서 소환되고 허 통판(許通判)이 후임이 되었다. 마무리하지 못한 공사를 두 사람이 잘 조치하였다.
일전에 철성 이후가 기문을 지어 달라고 나에게 청하였다.
내가 들으니, 세상의 상론(尙論)하는 자들은 모두 말하기를, “관사가 잘 수리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수령이 현능한지 아닌지와 관련이 없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상고시대에는 집이 없었는데, 성인(聖人)이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하여 처음으로 집을 지었다. 하물며 관청은 빈객을 접대하고 관부(官府)를 엄하게 하는 곳이니, 어찌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오늘날의 수령들을 보건대, 그 세상 물정에 어둡고 소견이 잗단 자들은 공문서를 처리하는 데에도 진땀을 흘리며 손을 놓고 멍하니 결정을 못하는데, 다시 무슨 다른 일을 하겠는가. 간혹 어질다거나 유능하다고 일컬어지는 자들이 있지만, 시세를 곁눈질하며 이름이나 훔칠 뿐이고, 관청이 수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 물으면 핑계 대기를, “나라의 금법을 범할 수 없다. 백성의 힘을 고갈시킬 수 없다.”라고만 한다. 겉으로는 염정(恬靜)한 듯이 보이나 안으로는 사실 안일하게 허송세월이나 하며, 무기력하게 앉아서 남의 일인 양 구경만 하고 구제하지 않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편안히 해 주는 도로써 백성을 부리면, 비록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였다. 정말이지 도에 합치한다면 국법이 무엇이 두렵고 백성이 무엇이 두렵기에 이런 핑계를 댄단 말인가. 수령의 책무에 있어서 어떠하다 하겠는가?
이제 이 목사(李牧使)와 이 통판(李通判)은 모두 자상하고 온화한 어진 마음으로 백성을 돌보아 기르는 직분을 다하여 한 고을이 안정되었으며, 그 여유로운 은택이 부서진 관청을 중수하기에 충분하였다. 김 목사(金牧使)와 허 통판(許通判)은 또 전임자의 정사를 잘 이어서 훌륭하게 단장을 하였다. 관부가 일신되어 그 모습이 확연히 바뀌었다. 거정이 이전에 이 고을의 결함으로 여겼던 객관의 피폐함이 어쩌면 이 네 분의 군자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겠는가. 네 군자의 재능과 덕망과 정사와 현능함과 원대함이 이전의 수령들보다 나음을 알 수 있다.
아! 성인이 《춘추》를 쓰시면서 토목공사는 반드시 기록한 것은 어째서이겠는가? 백성의 일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시절이 좋지 않은데도 무리하게 공사를 하여 백성을 고생시키고 대중을 동원하였으면 폄하하였고, 재물을 손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았으면 칭찬하였다. 지금 네 군자가 한 일은 《춘추》의 사례로 보자면 대서특필하여 찬미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거정이 사국(史局)의 장관으로 있으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철성 이후의 이름은 지(墀)이고 자는 승경(升卿)이며, 이 통판의 이름은 녹숭(祿崇)이며, 상락 김후의 이름은 적(磧)이며, 허 통판의 이름은 달(達)이다. 모두 일시의 명현들이다.
 
갑진년(1484, 성종15).
[주-D001] 정원 도호부(靖原都護府) : 대본에는 ‘서원 도호부(瑞原都護府)’로 되어 있으나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원주목(原州牧)〉에 의거하여, ‘정원 도호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주-D002] 계수관(界首官) : 한 도(道)의 으뜸이 되는 고을을 말한다. 대개 도명(道名)은 계수관의 글자를 조합하여 만든다.
[주-D003] 연우(延祐) : 원나라 인종(仁宗)의 연호이다. 1314년에서 1319년까지이다.
[주-D004] 철성(鐵城) 이후(李侯) : 이지(李墀, 1420~?)이다. 장령, 지사간(知司諫), 괴산 군수(槐山郡守), 안변 부사(安邊府使) 등을 지냈다. 철성은 경상도 고성(固城)의 옛 이름이다.
[주-D005] 권공 륜(權公綸) : 1415~1493. 본관은 안동, 호는 소요(逍遙)이다. 의정부 사인, 사헌부 집의, 대사성,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만년에 함경도 덕원(德源) 소라리(素羅里)에 우거하였다고 한다.
[주-D006] 상고시대에는 …… 지었다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시대에는 굴에서 살고 들판에서 지냈는데, 후세에 성인이 집으로 바꾸었다.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처마를 늘여 지어 비바람을 막았으니, 대개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한 것이다.” 하였다. 대장은 장대하고 튼튼함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뜻을 취하여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대한 집을 지었음을 말한다.
[주-D007] 편안히 …… 않는다 : 《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原州客館重新記


 

原。本高句麗之平原郡。新羅置北原小京。高麗初。置州。後降爲知州。又降爲一新縣。中間。陞爲原都護府。後改爲益興。恭愍朝。復爲牧。舊屬楊廣道。今爲江原道之界首官。其地廣。其民夥。山川之勝。土田之饒。物產之富。爲諸州最。其俗勤儉節用。貯財殖貨。水旱不能爲災。實東道之美州也。居正少時。讀書雉岳,法泉諸山寺。往來于州非一再。每見中家以上。務營居室。豐堂廣宇。高樓美榭。在在皆是也。而獨奈何以如是之州之鉅之富。而官廨之湫隘不振如是乎。訊其經營歲月。大元延祐年間所作也。計今百數十年。前後爲州者。喜因循。不暇修整。此一州之大欠也。成化庚子。鐵城李侯。以選出牧。政修弊祛。謀諸通判。全城李侯。以重新事宜報于朝。獲兪。鳩材陶瓦。將事經營。監司權公綸。亦助其費。適時屈未擧耳。癸卯春。歲稍稔。肇興工役。雇遊手。不煩農民。乃卽舊址。增益其制度。先立大廳三楹。前後有翼。東軒亦如之。宏敞廣豁。巋然奐然。昔之隘。今則寬。昔之湫。今則塏。觀者皆韙之。是年秋七月。鐵城移牧廣州。上洛金侯代之。李通判。秩滿召還。許通判代之。事工之未訖。兩侯措置有裕矣。日者。鐵城請予記之。予聞世之尙論者皆曰。廨署之修否。不繫於守令之賢否。是大不然。上古無宮室。聖人取諸大壯。始營宮室。况廨署。接賓客。嚴官府。胡可不致意也哉。予觀今之守令。其迂闊齷齪者。雖簿書文字。流汗袖手。蒙不可否。復何事事於外哉。間或有號爲賢者能者。睥睨時勢。盜竊名字。問官署不修。則諉之曰。邦禁不可犯也。民力不可竭也。雖外示恬靜。而內實玩愒。弊弊焉坐視不救。孟軻氏有言。以佚道使民。雖勞不怨。苟合於道。何畏於法於民。而其爲說如是。於長民之責。何如哉。今李牧,李通判。皆以慈詳愷悌之仁。盡撫字之職。一邑按堵。其餘恩足以脩擧廢墮。金牧,許通判。又能繼前政。張皇賁飾。官府一新。改觀易聽。居正前日所欠於州者。豈不有侍於四君子乎。四君子之才之德之政之賢之遠過於前守。可知也已。嗚呼。聖人之於春秋。與作必書。何也。重民事也。時屈擧嬴。勞民動衆。則貶之。不傷財不害民。則褒之。今四君子之擧。在春秋之例。當大書特書美之。居正忝長史局。可無一言乎。鐵城諱墀。字升卿。李通判諱祿崇。上洛諱磧。許通判諱達。皆一時名賢云。甲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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