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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국금강산석종명(高麗國金剛山石鍾銘)은 연복사종이다.
작성자 김영환
작성일 2017-09-26 (화)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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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국금강산석종명(高麗國金剛山石鍾銘)
작성자김윤식
작성일2017-09-10 (일) 08:50

김윤식씨가 올린 고려국금강산석종명은 연복사에 있는 종명인 듯 하다.



고려국금강산석종명의 탁본을 보면 몇곳에서 연복사종명과 같은 부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資政院使姜公 

金剛山在吾

演福寺大鍾

榮州郡夫人禹氏



위의 글씨를 판독 할 수 있는데   이은 가정 이곡선생이 지은 연복사신주종명병서의 내용중 같은 부분이 있으며 연복사종의 금석문종합시스템의 자료에서도 일치한다.





가정집 제7권 / 명찬(銘讚)



演福寺新鑄鍾銘 幷序


 

 至正六年春。資政院使姜公金剛,左藏庫副使辛侯裔奉天子之命。以金幣來。鑄鍾于金剛山。時旁山諸郡飢。其民爭趨工。得食以活。鍾成公將歸朝。國王公主謂臣僚曰。金剛山在吾邦域之中。今聖天子遣近臣。所以張皇佛事。垂之無窮者如此。而吾靡有絲毫補。盍圖所以報上者。僉曰。演福寺大鍾。久廢不用。今因巧冶之來而更鑄之。亦足以體上之意。而爲不朽之功矣。遂言之公。公欣然曰諾。輟行以成之。王命臣糓爲之銘。銘曰。

 

齊一衆聽當聲金。克整三軍諧八音。瞿曇之老言甚深。地下有獄何沈沈。萬死萬生苦難堪。如醉如夢且瘖。一聞鍾聲皆醒心。王城演福大叢林。新鍾一吼振南閻。上徹寥廓下幽陰。共資淨福妙莊嚴。東韓君臣華祝三。天子萬年多壽男。無彊之休與國咸。命臣作銘令鐫劖。

 



 

새로 주조한 연복사(演福寺) 종(鍾)의 명(銘) 병서(幷序)

 

 지정(至正) 6년(1346, 충목왕 2) 봄에 자정원사(資政院使) 강공 금강(姜公金剛)과 좌장고부사(左藏庫副使) 신후 예(辛侯裔)가 천자의 명을 받들고 황금과 폐백을 가지고 와서 강산에서 종을 주조하였다. 당시에 금강산 근방의 제군(諸郡)에 기근이 들었는데, 그곳 백성들이 다투어 공사장에 달려와 먹을 것을 얻은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종이 완성되자 강공이 장차 조정에 돌아가려 하였다. 국왕과 공주가 신료에게 이르기를 “금강산은 우리나라의 영역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성천자(聖天子)께서 근신을 보내어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키시어 후세에 무궁한 은혜를 드리운 것이 이와 같은데, 우리는 털끝만큼도 도운 것이 있지 않다. 어찌 위에 보답할 도리를 강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니, 제신(諸臣)이 아뢰기를 “연복사에 대종(大鍾)이 있습니다만, 오래도록 폐기되어 쓰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훌륭한 기술자가 온 기회에 다시 새롭게 종을 만든다면, 황상(皇上)의 뜻을 체득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불후(不朽)의 공을 이루는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강공에게 이 일을 말하니, 강공이 흔쾌히 승낙하고는 갈 길을 멈추고서 종을 만들어 주었다. 이에 왕이 신 곡(穀)에게 명(銘)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명은 다음과 같다.

 

 

대중이 일제히 들으려면 종을 쳐야 하고말고 / 齊一衆聽當聲金

삼군도 능히 정돈하고 팔음도 조화시킨다오 / 克整三軍諧八音

구담 노인 말씀이 매우 심오하다마는 / 瞿曇之老言甚深

지하에 있는 감옥은 얼마나 침침할꼬 / 地下有獄何沈沈

만번 죽고 만번 사는 그 고통 견디기 어려운데 / 萬死萬生苦難堪

귀머거리에 벙어리로 취한 듯 꿈꾼 듯하다가 / 如醉如夢聾且瘖

한 번 종소리 듣고 나면 모두 마음 깨우치리 / 一聞鍾聲皆醒心

왕성에 있는 연복사는 거대한 총림 / 王城演福大叢林

새 종이 한 번 포효하니 진동하는 남염 / 新鍾一吼振南閻

위로 하늘 끝까지 아래로 땅속 끝까지 / 上徹寥廓下幽陰

묘장엄의 정복을 다 함께 받아 누리리라 / 共資淨福妙莊嚴

동한의 군신이 화봉(華封)의 삼축을 올려 / 東韓君臣華祝三

천자께서 만년토록 수와 다남 누리시고 / 天子萬年多壽男

무궁한 행복을 나라와 함께 받으시게 하면서 / 無彊之休與國咸

명을 지으라 신에게 명하여 새기게 하였다네 / 命臣作銘令鐫劖

 

 

 

====================


탁본(금석문종합시스템)

 

연복사종(演福寺鐘)


시대 고려 연대 1346년(충목왕2년)

유형/재질 금구명·종명 / 청동

문화재지정 기타문화재 - 국외

크기 높이 320cm, 입지름 203cm, 글자크기 1.8cm

출토지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남본 남대문

소재지 (북한)-황해북도 개성시 북안동(北安洞) 남대문(南大門) 누각

서체 해서(楷書)

찬자/서자/각자 이곡(李穀) / 성사달(成師達) / 미상


개성 연복사(演福寺) 종 표면에 새겨져 있는 명문(銘文). 종의 주조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1346년(충목왕 2년)에 고려출신으로 원나라 고관이었던 강금강(姜金剛)과 신예(辛裔) 등이 원나라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장인들을 이끌고 금강산에 종을 주조하러 왔을 때 고려측에서도 황실의 안녕을 축원한다는 명분으로 원나라 장인들을 시켜 연복사의 종을 새로 만들었다. 명문은 이곡(李穀: 1298~1351)이 작성하였으며, 명문 뒤에는 종의 주조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명단에는 고려의 국왕과 모후(母后)를 비롯하여 정동행성과 고려의 주요 관원들이 망라되어 있고, 작업을 실제 담당한 원나라 장인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이 연복사종은 현재 북한의 보물급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大元至正六年春資正院使姜公」金剛左藏庫副使辛侯裔奉」天子之命以金幣來鑄鐘于金剛」

山時旁山諸郡饑其民爭趨工」得食以活鐘成公將歸朝」國王 公主謂臣僚曰金剛山」

在吾邦域之中今」聖天子遣近臣所以張皇佛事垂」之無窮者如此而吾靡有絲毫」

補盍圖所以報 上者僉曰演」福寺大鐘久廢不用今因功冶」之來而更鑄之亦足以體」

上之意而爲不朽之功矣遂言之」公公欣然曰諾輟行以成之」王命臣糓爲之銘銘曰」

齊一衆聽當聲金克整三軍諧」八音瞿曇之老言甚深地下有」獄何沉萬生萬死苦難堪如」

醉如夢聾且瘖一聞鐘聲皆醒」心王城演福大叢林新鐘一吼」振南閻上徹寥廓下幽陰共資」

淨福妙莊嚴東韓君臣華祝三」天子萬年多壽男無疆之休與國咸」命臣作銘令鐫劖」

歲丙戌六月旣望奉訓大夫」中瑞司典簿匡靖大夫政堂」文學進賢館大提學知春秋」

館事上護軍臣李 糓撰」

高麗國王王昕」德寧公主亦憐眞班」資善大夫資正院使姜金剛將」仕郞左藏庫副使辛裔」

征東行中書省左右司典員外」郞中洪鐸郞中李壽山員外郎」石抹完澤員外郞康允忠」

都事申仁適都事岳友章」理問所官」相副官河有源」都鎭撫司」副都鎭撫司」都僉議使司」

政丞盧頙 贊成事金永旽 贊成」事康允贊成事安軸贊成」事李君侯▨理鄭乙輔▨理▨▨」

政▨▨▨▨▨▨▨」三司▨▨▨▨▨▨」▨▨▨▨▨▨▨▨▨▨▨▨」

▨▨▨▨▨▨▨▨▨▨▨▨」▨▨」▨▨▨▨▨▨▨▨司事崔天」▨▨▨▨▨▨▨金允莊副使」

辛佐▨▨▨▨▨知申事郭延」▨右▨▨左▨諝左代言鄭思」▨右副代言金用謙左副代言」

李逢吉 藝文撿閱成師達書」

 同願」

吉昌府院君權準」福昌府院君金永煦」延安府院君印承旦」咸陽府院君朴冲佐」

大府監丞李福壽」金海府院君李齊賢」萬戶保安君林淑」前理問尹繼宗」前贊成事尹桓」

直城君盧英瑞」興海君裴全」▨大護軍洪繼文大龍」保安宅主朴氏」榮州郡夫人禹氏」

檢校版圖判書達摩室利」都憐不花 賽因不花護軍」黃順朴允柱姜碩散員盧承」

幹」護軍周永保」征東省委官」左右司員外郞康允忠掾史張」

君信 提調官萬戶權謙」判密直事李能同知密直事印」承叙密直副使金光載鷹揚軍」

上護軍▨▨ 監造官 上」護軍林萬年裴天慶護軍裴守」全成安李賢內府副令河楫司」

僕副正李承牧中郞將金用珎」朴世珎平壤判官崔祿壽有備」倉使鄭仁老郞將鄭珣辛承茂」

祗侯朴仁漸都評議錄事朴允」瑜鞠儒中軍錄事金季彥許元」義造成都監錄事高冲翊令史」

兪得良李暉景朴洪徐義盧千」善金仁▨崔良儉朴千節崔天」啓李元桂」

江淅行中書省富陽縣赤松匠手」提領何德貴提領何邦達提領」趙明遠等一千人上高把頭牛德」

張玉」使令都▨尉金平印」之兪景▨▨正▨▨」白▨咸松尹元世朴」加▨▨孟龍金和尙」

譯語陶得明」

 

대원 지정(至正 : 원나라 順帝의 연호, 1341~1367년까지 사용) 6년(1346, 忠穆王 2) 봄 자정원사(資正院使) 강공(姜公) 금강(金剛)과 좌장고부사(左藏庫副使) 신후(辛侯) 예(裔) 등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금과 비단을 가지고 와서 금강산에 종을 주조하니 그 때 금강산 주변의 여러 군현의 굶주린 백성들이 다투어 그 작업에 참여하여 곡식을 얻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종이 완성되어 강공이 중국으로 돌아가려 하니 국왕과 공주께서 신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금강산은 우리나라에 있는데 지금 신성하신 천자께서 근신을 보내시어 불사(佛事)를 베풀어 무궁한 복을 베푸신 것이 이와 같은데 우리들은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하였다. 무엇으로서 천자의 은혜에 보답할 것인가”라고 하니 모두 “연복사(演福寺)의 큰 종이 오래되고 부서져서 쓸 수 없습니다. 지금 대장장이들이 온 것을 인연으로 하여 다시 주조한다면 또한 천자의 뜻을 본받으면서 영원한 공덕을 쌓는 것이 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강공에게 이야기하니 강공이 기쁘게 허락하여 행차를 멈추고 (연복사 종을) 만들게 하였고 왕께서는 신(臣) 곡(穀)에게 명령하여 그 명(銘)을 짓게 하셨습니다.

명(銘)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 함께 종소리를 듣고서 삼군을 정렬하고 악기들 [팔음(八音)]을 고른다.

석가노인의 가르침은 매우 깊은데 땅 밑의 지옥은 어찌 이리 어두운가.

만 번 태어나 만 번 죽으며 고난을 당한다.

취한 듯 꿈꾼 듯 귀멀고 어둡다가 한번 종소리 들으니 다함께 마음이 깨어난다.

왕성 연복사 큰 총림에 새 종소리 한번 울리니 남염부주(南閻部洲)를 뒤흔든다.

위로는 하늘을 뚫고 아래로는 깊은 명계까지 모두 깨끗한 복에 의지하여 오묘하게 장엄되도다.

동한(東韓: 우리나라를 가리킴)의 임금과 신하가 거듭하여 중화를 축원하니

천자는 만년토록 장수하며 많은 아들을 낳으시고, 끝없는 복이 온 나라에 함께 하소서.

신(臣)에게 명하여 명(銘)을 짓고 새기라 하셨네.

병술년(1346, 충목왕 2) 6월 기망(旣望: 16일)에 봉훈대부 중서사전부 광정대부 정당문학 진현관대제학 지춘추관사 상호군(奉訓大夫 中瑞司典簿 匡靖大夫 政堂文學 進賢館大提學 知春秋館事 上護軍)인 신(臣) 이곡(李穀)이 지음.

고려국왕 왕흔(王昕: 충목왕)

덕령공주(德寧公主: 충목왕의 모후(母后)) 역련진반(亦憐眞班)

자선대부 자정원사(資善大夫 資正院使) 강금강(姜金剛)

장사랑 좌장고부사(將仕郞 左藏庫副使) 신예(辛裔)

정동행중서성 좌우사ꟅꟅꟅ(征東行中書省 左右司ꟅꟅꟅ)

낭중(郞中) 홍탁(洪鐸) 낭중(郞中) 이수산(李壽山)

원외랑(員外郎) 석말완탁(石抹完澤) 원외랑 강윤충(康允忠)

도사(都事) 신인적(申仁適) 도사 악우장(岳友章)

이문소관(理問所官)

상부관(相副官) 하유원(河有源)

도진무사(都鎭撫司)

부도진문사(副都鎭撫司)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

정승(政丞) 노책(盧Ʂ)

찬성사(贊成事) 김영돈(金永旽)

찬성사 강윤(康允)

찬성사 안축(安軸)

찬성사 이군후(李君侯)

평리(評理) 정을보(鄭乙輔)

평리 ꟅꟅ

政ꟅꟅꟅꟅꟅꟅꟅ

삼사(三司)ꟅꟅꟅꟅꟅꟅ

ꟅꟅꟅꟅꟅꟅꟅꟅꟅꟅꟅꟅ

ꟅꟅꟅꟅꟅꟅꟅꟅꟅꟅꟅꟅ

ꟅꟅ

ꟅꟅꟅꟅꟅꟅꟅꟅ司事 최천Ʂ(崔天Ʂ)

ꟅꟅꟅꟅꟅꟅ김윤장(金允莊)

부사(副使) 신좌(辛佐)

ꟅꟅꟅꟅꟅ

지신사(知申事) 곽연(郭延Ʂ)

우대언(右ꟅꟅ) 左Ʂ諝

좌대언(左代言) 정사(鄭思Ʂ)

우부대언(右副代言) 김용겸(金用謙)

좌부대언(左副代言) 이정길(李筳吉)

예문검열(藝文檢閱) 성사달(成師達) 씀.

함께 발원한 사람들[同願]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

복창부원군(福昌府院君) 김영후(金永煦)

연안부원군(延安府院君) 인승단(印承旦)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 박충좌(朴冲佐)

태부감승(大府監丞) 이복수(李福壽)

김해부원군(金海府院君) 이제현(李齊賢)

만호 보안군(萬戶 保安君) 이숙(林淑)

전이문(前理問) 윤계종(尹繼宗)

전찬성사(前贊成事) 윤환(尹桓)

직성군(直城君) 노영서(盧英瑞)

흥해군(興海君) 배전(裴全)

대호군(大護軍) 홍계(洪繼) 문대룡(文大龍)

보안택주(保安宅主) 박씨(朴氏)

영주군부인(榮州郡夫人) 우씨(禹氏)

검교판도판서(檢校版圖判書) 달마실리(達摩室利)

도련불화(都憐不花) 색인불화(賽因不花)

호군(護軍) 황순(黃順) 박윤주(朴允柱) 강석(姜碩)

산원(散員) 노승간(盧承幹)

호군(護軍) 주영보(周永保)

 

정동성위원(征東省委員)

좌우사원외랑(左右司員外郞) 강윤충(康允忠)

연사(掾史) 장군신(張君信)

 

제조관(提調官)

만호(萬戶) 권겸(權謙)

판밀직사(判密直事) 이능(李能)

동지밀직사(同知密直事) 인승서(印承叙)

밀직부사(密直副使) 김광재(金光載)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 ꟅꟅ 

 

감조관(監造官) 

상호군(上護軍) 임만년(林萬年) 배천경(裴天慶)

호군(護軍) 배수(裴守) 전성안(全成安) 이현(李賢)

내부부령(內府副令) 하즙(河楫)

사복부정(司僕副正) 이승목(李承牧)

중랑장(中郞將) 김용진(金用珎) 박세진(朴世珎)

평양판관(平壤判官) 최록수(崔祿壽)

유비창사(有備倉使) 정인로(鄭仁老)

낭장(郞將) 정순(鄭珣) 신승무(辛承茂)

지후(祗侯) 박인점(朴仁漸)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 박윤유(朴允瑜) 국유(鞠儒)

중군녹사(中軍錄事) 김계언(金季彦) 허원의(許元義)

조성도감(造成都監)

녹사(錄事) 고충익(高冲翊)

영사(令史) 유득량(兪得良) 이휘경(李暉景) 박홍(朴洪) 서의(徐義) 노천선(盧千善) 김인Ʂ(金仁Ʂ)

최양검(崔良儉) 박천절(朴千節) 최천계(崔天啓) 이원계(李元桂)

강절행중서성 부양현(江淅行中書省 富陽縣) 적송장수(赤松匠手) 제령(提領) 하귀덕(何德貴),

제령 하방달(何邦達), 제령 조명원(趙明遠) 등 1천 인. 상고파두(上高把頭) 우덕(牛德) 장옥(張玉)

사령(使令) 都Ʂ尉金平印之兪景ꟅꟅ正ꟅꟅ白Ʂ咸松 윤원세(尹元世) 박가Ʂ(朴加Ʂ) Ʂ맹룡(Ʂ孟龍)

김화상(金和尙)

어역(譯語) 도득명(陶得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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