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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편지-단모부병서(2001. 10. 8. 김영환(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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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10-26 (수)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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旦暮賦幷序  (동안거사 이승휴)


傳曰。萬世之後。一遇大聖而知其解者。是旦暮遇之也。誠哉是言。今新冊上洛郡開國公京兆金諱方慶邸下。於元廟十一年入相。至今上在宥之初。位登上相。越松麓出都之歲。有群不逞強梁之輩。烏集花都。飛舡南下。巢於珍島。呑喙諸州。據海跳踉。事在難圖。於是。上國命出官軍。合本軍征之。公承奉皇帝隆旨。進退矩規。非素所訓鍊。兩國之師。咸得其心。如臂使指。而一擧掃平羊驅。婦女奏凱班師。又與上朝元帥欣篤。同征倭國。統泛舟之役。窮出日之溟。焃皇威而綏尾域。宣虎德以奏敷功。帝大悅。明揚前後之功。拜爲東藩諸路都亢帥以寵異之。自此東征。無歲無之。何役非公所統。其始終水陸奇計。具載國史。今十一月十二日。伏承安集所傳。令賜手簡。示以行年八十四歲。無後望。世子殿下令意自謂於國有功老人。無異賞。何以勸後。以此敷聞。下批爲上洛郡開國公。實未安分。僕擎跽奉讀。輒申明本事而評之曰。且東國宗臣碩輔之朝聘往來於中國者。自朝鮮迄至于今。踵相屬矣。其有受都元帥之職任者乎。未之聞也。抑公者。五等諸侯之上爵。出則列侯之長。入則一人之亞。其爲等級。不可階而望也。容或有乘時暴起。無汗馬毫髮之功。徒有傾都之勢。冒進而當之者焉。事非物議。非眞貴也。至如我公以命世霸王英器。忠也義也仁也勇也智也謀也。無一不備。而出將入相。東征北聘。鯨濤洶湧。鷁首紛披。雁塞杳茫。馬蹄困頓。險且艱難之際。允文允虎。傑然特立。奮不顧生。與士卒均辛苦。蒙失石。海外殊邦。揄揚我虎。討厥不庭。獻捷天宮。四海都皇。臨軒顧問。咫尺威顏。辯能專對。再蒙天奬。雖小伯之一匡。晉侯之三覲。何以加此。以如是功名之盛。謙謙然卑以自牧。坦坦乎履道而行。至于三達尊。地綠野之堂。由是。九重篤帶磅難忘之誓。一國興阿衡專美之嗟。信乎其年彌高而德彌邵也。我殿下德邁重輪。志專監國。鳴招賢之鼓。立進善之旌。孜孜焉汲汲焉求如不及。宜乎其念玆在玆。名言之允出之。是誠天下之公言也。其誰不悅是擧也。我陛下人惟求舊。善則必從。期酬柱石之勞。遂降絲綸之命。封上洛以公之。廣後賢之路也。是誠天下之公獎也。其誰不悅是賞也。夫然則公之所以爲公也。異乎人之幸而爲公也。蓋上天從人所欲。惟德是親。旣與之上壽而康其身也。意猶不足。又與之上爵而尊其位也。願公承天意順人心。安其分而享其榮也。前所謂萬世之後一遇大聖而知其解者。其在斯乎。謹爲古賦。名之曰旦暮賦。遙獻于上洛公几杖之下云云。其辭曰靈君誕作兮啓風雲。碩輔同升兮圖經。緯復赤忠兮相三韓。首黃扉兮䌁萬彙。朝中朝兮奏膚功。路東路兮都元帥。軍師百萬兮益辦多。春秋八十兮又過四。神淸氣壯兮身其康強。年高德邵兮人焉嘆美。中宸圖奮兮篤不忘。東宮監國兮嘉致理。期礪後賢兮用以褒崇。開國上洛兮公而寵異。嗣子令公兮身襲越篇。季男學士兮門塡桃李。諸孫炟赫兮盈庭。賓從懽譁兮塞里。摩肩獻壽兮趨蹌。行路言賢兮涕泗。宋有王荊公兮讓經綸。唐有郭汾陽兮羞終始。歌騰朝野兮薦遐齡。話及漁樵兮誇盛事。猿鳴鶴唳兮送歡聲。柏悅松欣兮陳賀意。


단모부(旦暮賦) 


전(傳)에 이르기를, "...만세 이후에나 이 말 뜻을 이해하는 한 성인(聖人)이 나타나면 그것은 아침에 만났다가 저녁에 만난 듯이 대단히 일찍 만난 것이라..." 하였으니 정성스럽다 이말이여. 지금 새로 책봉된 상락군 개국공 경조 (上洛郡開國公京兆) 김방경(金方慶)저하는 원묘조(元朝)11년(1270년)에 재상이 되고, 임금이 왕위에 있던 초에 이르러 지위가 상상(上相)올랐으며, 송도(松都)에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뜻을 펴지 못하여 날뛰던 무리가 강화도에 까마귀 떼처럼 모여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진도에 모여 있으면서 인근 주를 삼키고 바다를 점거해서 날뛰니, 일이 도모하기 어려웠다. 이에 상국(上國)이 명하여 관군(官軍)을 내여, 본군(本軍)과 합하여 정벌할 때에 공이 황제의 성지를 받드니, 진퇴의 법칙이 평소에 훈련한 바가 아니었으나 양국의 군사가 모두 그 마음을 얻어서 마치 팔이 손가락을 부리는 것과 같았다. 한 번 거사함에 그들을 양떼 몰아내듯이 평정하니, 부녀자들이 개가를 노래하고, 군대는 돌아왔다. 또 상조(上朝)의 원수(元帥) 혼독(혼篤)과 더불어 같이 왜국을 칠 적에,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전쟁을 지휘하며 해가 돋아 오르는 바다 끝까지 들어갔다. 황제의 위엄을 혁혁히 빛내고 미역(尾域)지역을 편안히 하고, 무덕(武德)을 선포해서 큰 공을 아뢰니 황제께서 크게 기뻐하였고, 전후(前後)의 공을 크게 드날려서 그를 동번제로도원수(東번諸路都元帥)로 삼아서 특별한 은총으로 포상하였다. 이로부터 동쪽 정벌이 없는 해가 없었고, 어떤 싸움에도 공이 거느리지 않은 바가 없었다.

그 처음부터 끝까지의 수전(水戰)·육전(陸戰)의 기이한 계책이 국사(高麗史)에 갖춰 실려 있다. 이해 11월 12일에 안집사(安集使)가 전한바, 영공(令公)이 보낸 편지를 받아보니, "나이가 84세가 되어 앞으로 더 바랄 것이 없는데 세자 전하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나라에 공이 있는 노인에게 특별한 상이 없으면 어떻게 후인(後人)들을 권장할 수 있겠느냐'고 여기시고 그 사실을 임금께 아뢰니,비답(批答)을 내려서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으로 삼았는데, 실로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

제가 공경히 꿇어 엎드려 편지를 받들어 읽고, 거듭 그 사실을 밝혀서 평하여 말하였다. 종신(宗臣=왕족)과 석보(碩輔=재상)로서 중국에 조알하고 왕래한 자가 고조선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자취가 서로 이어졌으되, 그 도원수(都元帥)의 직임(職任)을 받은 자가 있었던가? 그런 소문을 듣지 못했도다.

  또한 공(公)이란 오등제후 (五等諸侯=공,후,백,자,남)의 으뜸 작위(爵位)이므로, 외부로 나가면 열국의으뜸이 되고, 천자에게로 들어오면 천자의 다음이 되니, 그 등급은 발돋움을 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혹시 시기를 잘 타고 갑자기 일어나서, 전쟁터의 털끝 만한 공도 없으면서, 다만 서울을 휩쓸 정도의 권세로써 외람되게 나아가서, 높은 자리를 맡는 자도 있으나, 그것은 일이 잘못되고 여러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니 참으로 귀한 것이 아니다. 우리 공과 같은 분에 이르러서는 이 세상에 사명을 띠고 나와 패왕(覇王)을 보필할 만한 영특한 재능으로 충(忠)과 의(義)와 인(仁)과 용(勇)과 지(知)와 모(謀)가한 가지도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서, 나가면 장수, 들어오면 재상을 하였고, 동쪽을 정벌하고 북으로사신을 갔는데 험한 파도가 용솟음 쳤으나 뱃머리는 그 어지러운 것을 헤치고 나아갔고, 아득한 북쪽 변방에 말발굽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였다. 험하고 또한 어려울 즈음에도 진실로 문(文)과 무(武)의 지략을 발휘하여 무용이 대단해서 우뚝하게 서서 분발하여 자기 일신의 삶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사졸과 더불어 고생을 같이하며, 활과 돌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그래서 해외(海外)의 다른 나라에 우리 나라의 무공을 드날려, 조공(朝貢)하지 않는 나라를 토벌하여 천자에게 승첩을 바쳤다. 사해의 군주이신 황제가 헌함에 기대어 돌아보고 물었는데, 위엄스런 얼굴을 지척에 대하고서도 재량껏 대답하는 논변을 발휘하여 또다시 천자의 장려를 입게 되었다. 비록 소백(小伯)이 천하를 한 번 바로잡은 것과 진후(晉候)가 세차례 천자를 뵈러 간 것이라도, 어찌 이보다 더 나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훌륭한 공명을 세우고서도 몸가짐을 겸겸히 하여 항상 자기를 낮추며, 평탄하게 대도를 이행해서, 삼달존(三達尊), 녹야당(綠野堂)의 지위에 이르렀다. 이로 말미암아 구중궁궐에서는 공신에 봉하여 대려의 잊기 어려운 맹세를 돈독히 했고, 온 나라에서는 '아형(阿衡)만이아름다운 명성을 독차지하겠는가?'라는 감탄을 일으켰으니 참으로 그 나이가 높을수록 그 덕은 더욱 높다 하겠다. 우리 전하께서는 덕은 중윤(重輪)보다 더 뛰어나고, 뜻은 오로지 나라를 감독하는데 두었다. 그래서 어진 사람을 초치하는 북을 올리고, 착한 사람을 천거하는 깃발을 세워서 힘쓰고 노력하기를 급급하게 하면서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여겼으니 마땅히 이런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이런 사람을 일컬어 말하게 되고 이런 사람을 성심으로 사모하게 된다는 것은 천하의 공언(公言)이니, 그 누가 이 일을 기뻐하지 않겠는가. 우리 폐하께선 사람은 오직 옛사람을 구하고, 착한 것은 반드시 따른다는 마음으로 기둥과 주춧돌 같은 대신(大臣)의 공로에 보답할 것을 기약해서 마침내 훌륭한 명을 내려서 상락군(上洛郡)에 봉하여 공(公)으로 삼으니 이는 후현(後賢)들의 길을 넓힌 것이다.

  이것은 실로 천하의 공적인 장려이니, 그 누가 이 상(賞)을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공(公)이 오늘날 공(公)이 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요행으로 공(公)이 된 것과는 다르다. 대개 하늘은 사람이 원하는 바를 따라서 덕 있는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이미 그 상수(上壽)를 주어서 그 몸을 편케 했으되, 뜻이 오히려 부족해서 또 상작(上爵)을 주어서 그 지위를 높게 해주었다. 원컨대, 공(公)은 하늘의 뜻을 받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순응해서, 그 분수를 편케 여겨서 영화를 누리소서. 앞에서 이른바 "만세의 뒤에 한 번 성인을 만나 그 견해를 안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삼가 고부(古賦)를 지어서 이름하여 『단모부(旦暮賦)』라 하고 멀리서 상락공 궤장(궤杖) 아래에 바칩니다.


  그 사(辭)는 다음과 같다


성군(聖君)이 태어남이여!

풍운(風雲)의 길을 열고,

재상과 함께 조정에 진출(進出)함이여,

경위(經緯)를 도모했다.

타고난 충성심(忠誠心)을 다하여 삼한(三韓)을 도우고,

황비(荒肥)에 으뜸이 되매, 만민을 편안케 하였도다.

중조(中朝)에 조회를 가서 큰 공을 아뢰고,

동로(東路)에 길잡이가 됨이여, 도원수가 되었도다.

군사가 백만이 됨이여, 더욱 더 잘 다스렸고,

춘추가 80에 4년이 지났도다.

정신은 맑고 기운은 장대함이여, 몸은 기력이 강건하였네.

나이가 많고 덕이 높으니, 사람들이 감탄하고 칭찬하도다.

중신(中宸)은 옛 일을 도모하는 뜻을 돈독히 하여 잊지 않고,

동궁(東宮)이 나라를 감독함이여! 태평정치를 아름답게 이루었도다.

후현들을 격려하기를 기약함이야,

포상하여 책봉하고, 개국공상락군(開國公上洛郡)으로 봉해 줌이여,

공(公)으로 은총을 내려주었다.

맏아들 영공(令公)은 월편(越篇)을 계승했고,

막내아들은 학사가 되어 문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도다.

여러 손자들의 빛남이여,

뜰에 가득하고 손님들이 환호하며 왁자지껄함이여! 마을에 가득하도다.

어깨를 부딪히며 헌수하며 종종걸음치고,

길가는 사람들도 공(公)을 어질다 말하며 눈물을 흘리도다.

송나라 왕형공(王荊公)이 있음이여! 경륜을 양보하였고,

당나라 곽분양(郭汾陽)이 있음이여! 그 시작과 마침이 다소 부끄러웠다.

송축(頌祝)의 노래 소리는 조야(朝野)에 드날림이여!

장수(長壽)를 축원하고 미담이 어부와 초부에게도 미침이여,

성대한 일을 자랑하도다.

원숭이가 울고 학이 울음이여 환성으로 전송하고,

잣나무가 좋아하고 소나무도 기뻐하며 축하의 뜻을 베풀도다.

 

 


公之答示。[金方慶]


昨得所寄古賦一篇。以老病未遑酬答。今玆賡韻。寄示遯軒。

天地高下兮爲經。聖賢往來兮如徫。或行或止兮不失時。其出其處兮各以彙。處則山林兮或江湖。出則卿相兮又將帥。剶之無咎兮在六三。遯之好吉兮當九四。唐高垂衣兮莫不稱。許由洗耳兮亦所美。但復姓命兮忘其聲名。不必卷舒兮由乎亂理。先賢後賢兮或同。彼時此時兮何異。今吾聖主兮德如高。適有隱士兮姓其李。立朝廷兮朝廷。還鄕里兮鄕里。道緖不墜兮深於老莊。儒門復開兮比之沬泗。旣淸淨兮終其終。何忠義兮始乎始。餐霞服氣兮有眞功。談經禮佛兮無他事。如我功名兮豈君心。如君德行兮是我意。元貞二年二月日


공(公=김방경)이 보내 준 답서


전에 붙여 준 고부(古賦) 1편을 받았는데,

늙고 병듦으로 해서 미처 답할 겨를이 없었다가,

이제야 화답하여 돈헌(돈=豚밑책바침=軒)에게 부쳐 보인다.

천지(天地)가 높고 낮음이여! 씨줄로 삼고,

성현(聖賢)이 오고 감이여! 날줄과 같도다.

그 나가고 취함이 있음이여, 무리와 더불어 했도다.

벼슬하지 않으면 산림에 있거나, 혹 강호에 있었고

세상에 나가서는 정승도 되고 장수도 되었도다.

박(剝)이 허물이 없음이여 육삼(六三)에 있도다.(1)

돈(돈=豚밑에책바침한글자)의 길하고 좋음이여 구사(九四)에 있도다.(2)

당(唐)의 요(堯)임금이 팔짱만 끼고 다스림이여! 칭송하지 아니함이 없었고,

허유(許由)3)가 귀를 씻음이여 또한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오직 성명(性命)만을 회복하려 함이여!

그 명성(名聲)은 의식하지 않으며,

반드시 나가고 물러날 필요가 없음이여,

세상이 어지럽고 세상이 다스려짐으로 말미암았도다.

선현(先賢)과 후현(後賢)이 한 것이 혹 같기도 하니,

그때나 이때가 어찌 다르겠는가.

지금 우리 성주(聖主)께서는 덕은 요(堯)임금과 같고,

마침 은사(隱士)가 있는데 성(姓)은 이(李)씨로다.

조정(朝廷)에 설 만하면 조정에서 벼슬하고,

향리(鄕里)에 돌아갈 만하면 향리에 살았도다.

도통(道通)을 떨어뜨리지 아니하니 노자(老子)·장자(莊子)보다 더 깊고,

유학(儒學)의 문을 다시 열어 줌이여, 수사(洙泗)4)에 비길 만 하도다.

이미 청정함이여, 그 마침을 잘 마쳤고, 어찌 충의를 처음에만 시작하겠는가.

노을을 먹고 기(氣)를 먹음이여! 참다운 공부가 있었고,

경을 말하고 부처에게 예를 말함이여! 다른 일이 없었도다.

나의 공명(功名)같은 것이야 어찌 그대의 마음에 있겠으며

공(公)의 덕행(德行)같은 것은 곧 나의 뜻이로다.


원정(元貞)2년(충렬왕22년=1296년)2월


 

 


前中奉大夫都元帥推忠靖難定遠功匡靖大夫三重大匡僉議中贊上將軍判典吏事世子師致仕上洛郡開國公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金方慶答滿月峯了了庵信和尙書 


頃所賜兩則法語。常置牧牛子私記上面。玄換相看。翫朱無斁。然根機陋劣。茫然討己鼻不著。雖然。敢不銘佩。兼示偈子云。維摩方丈想茅庵。金色頭陁接話談。八萬猊床何處著。小潭如鏡頓來涵。不敢當不敢當。又示了了庵銘。古有一叟云。了心則能了法。了己則能了人。己未了則人與己迷。心未了則境從心。或又有一叟云。萬法本空。一心非有。心旣非有。不待了而已圓。法旣本空。不待了而常寂。楊無爲子又歌曰。山堂曉兮白雲飛。山堂暮兮白雲歸。靑松老兮明月溪。了不了兮誰與知。三段語則而繼云。請居士下介住脚。此非我境界。烏敢當哉。然愚以謂前二叟各讚一隅。無爲子當中而歌。了了之意。盡矣至矣。無以復加矣。又有一叟不量力而繼韻云。秋空晴兮孤鳥飛。沒朕迹兮將安歸。廻光炤兮無欠餘。名不及兮尋常知。和尙以爲如何。伏望小示指歸


전 중봉대부(中奉大夫) 도원수(都元帥)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

광정대부(匡靖大夫)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상장군(上將軍)

판전리사(判典吏事) 세자사(世子師)로치사한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

식읍 일천호 식실 삼백호 김방경(金方慶)이

만월봉(滿月峰) 요요암(了了庵) 신화상(信和尙)에게 답한글


  지난번 보내 준 양칙(兩則)의 법어(法語)를 항상 '목우자사기(牧牛子私記)'위에 놓아두고 서로 바꿔 가며 보면서, 보고 음미하며 싫어함이 없었으나, 근기(根氣)가 낮고 용렬해서 아득히 내 코를 찾아도 이해 가 닿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감히 그것을 가슴에 새겨 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겸해서 게송(偈頌)을 보내 주었는데 거기에 이르기를,'유마(維摩)의 方丈(방장)*1)이 모암(茅庵)을 생각하였고,금색의 두타(頭陀)가 화담(話談)을 접했도다.

팔만(八萬)의 예상(猊床)*2)을 어디에 놓았던고,거울 같을 작은 못이 갑자기 와서 비춘다'

하였는데, 이 말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 요요암명(了了庵銘)을 보여 주었습니다.

옛날에 한 노인이 이르기를, "마음이 밝으면 법을 밝게 하고, 자기를 밝게 하면 사람을 밝게 한다. 자기가 밝지 못하면 곧 사람과 자기가 미혹하게 되고, 마음이 밝지 못하면 모든 세계가 마음을따라 미혹해진다"고 하였고, 또 한 노인이 있어 말하기를 "만법이 본래 공(空)하니, 한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이미 있는 것이 아니니 밝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원만해지고, 법이 이미 본래 공(空)하니 밝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항상 적적하다."고하였고, 양무위자(楊无爲子)가 또 노래해 말하기를,


"산당(山堂)에 새벽이 되니 백운이 날아오르고,

산당(山堂)에 저녘이 되니 백운이 돌아가도다.

청송(靑松)이 늙음이여 월계(月溪)가 밝네,

밝고 밝지 못함이여 누구와 더불어 알 수 있겠는가?"고 하였고,


삼단어칙(三段語則)에 이어서 말하기를,


"청컨대 거사는 주각(住脚)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내 경계(境界)가 아닌데, 내 어찌 그것을 감당하겠소.

그러나 내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앞의 두 노인은 각기 한 부분을 찬양하고 무위자(無爲子)는

중간에서 노래했으니, 요요의 뜻이 지극하여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습니다.

또 한 노인*3)이 있어 자기의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운을 이어 지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맑게 개인 가을 하늘에 외로운 새가 날아가니 秋空晴兮孤鳥飛

내 자취를 숨기며 어디로 돌아가려 하느냐. 沒朕迹兮將安歸

회광반조(廻光反照)*4)함이여 못 미침이 없다네. 廻光炤兮无欠餘

명성이 미치지 않음은 심상하게 아는도다. 名不及兮尋常知

내가 한 마디 한 것을 화상은 어떻게 여기는가. 和尙以爲如何

귀의(歸依)할 바를 가르쳐 주길 바랍니다. 伏望小示指歸


*l)방장(方丈) : 주지가 거처하는 방

*2)예상(猊床) : 부처가 앉는 자리

*3)한 노인 : 김방경 자신을 말함

*4)회광반조(廻光反照) :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心性을 反省하여 보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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