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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학공파 김태광 선생의 외손녀 해남윤씨 부인을 소개합니다
작성자 박관우
작성일 2016-07-13 (수) 13:09
ㆍ추천: 0  ㆍ조회: 626      
IP: 58.xxx.100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조선후기의 학자 농은 강문현(1735~1803)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농은 선생의 부인되시는 해남윤씨께서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5대손녀이시면서 더불어 공재 윤두서 선생의 손녀가 되십니다.

농은 선생 문집에 해남윤씨의 행장이 수록되어 있는데 1737년 충북 괴산 사전리에서 외조부이신 김태광 선생댁에서 탄생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 해남윤씨 행장 번역문을 소개합니다. >

무릇 사람의 행실을 기록하는 것은 모두 공정하고 사실이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그 필적을 가히 믿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족히 따를 것인가.

비록 세상의 이목에 표표히 드러난 것이라도 그 지친(至親)이 스스로 쓴다는 것은 곤란하다.

반드시 사람들이 이룩한 것을 남들이 공정하게 취합하여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규중의 집안에 있는 부인의 행동은 곧 남들이 사실적으로 취합하여 공정하게 증명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런 즉 사사로운 정으로 써야 하니 그것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공정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으면 군자의 부끄러움이다. 사사로운 것으로써 공변됨을 속이면 안 되고,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무고하면 안 된다. 이런 마음이 아니면 어찌 지극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사람의 성품은 버릇도 많고 유혹도 많다. 버릇은 곧 유혹이고 유혹은 곧 버릇이다.

남들이 말하길 사람은 성품이 세 번 변하는데, 유아에서 어른으로 변하고, 어른은 또 노인으로 변하는 것이 필연이다.

그러나 나는 짐승을 키울 때나 진기하고 괴이한 물건이나 영화로움과 기술적인 명성 및 집안을 다스리는 산업에 있어서 버릇과 유혹은 없었다.

또 늙어서도 성질은 젊을 때의 마음이었고 젊을 때의 마음은 어릴 때의 마음이었다.

그 향해 달리는 운동이 이 처럼 육십 년간을 한 결 같았으니 세 번 변한다는 것이 어떻게 변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처첩의 정에 이르게 되면 남들은 버릇과 유혹이 있게 되는데 나는 역시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비록 예쁜 여자를 만나면 정의 유혹이 없는 게 아니었지만 곧 그런 일이 없었으므로 나의 지난 행적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비록 여추를 곁에 있으면서 한 번 말하고, 한 번 침묵하고,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가만히 있는 것을 볼 때 의에 부합되는 여부를 보면 합할 때는 곧 옳고 합하지 않을 때는 곧 아니다.

다만 유혹당하지 않으면 반대로 미워함이 생기는데 이는 타고난 품성이다.
나 자신을 살펴보면 남들과 다른 부류가 아닐까 이상한 생각이 든다. 비록 그러하나 나는 일찍이 스스로 생각하면 욕심이 적은 사람이라 버릇도 없는 것 같다.

버릇이 없으니 의혹도 없을 것이다. 의혹이 없는 후에 마음이 평정되고 마음이 평정된 다음에 그 말이 공정해진다. 그 말이 공정해 진 다음에야 그 것(글로 기록한 것)이 사실로 인식된다.

그런 즉 내 어찌 한 마디라도 공인(5품의 남편 벼슬에 따른 부인의 칭호)의 덕을 기록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앞으로 계속 이 글을 볼 사람들로 하여금 공인의 행동을 알게 하리니 이에 말하노라.

공인의 성은 윤씨며 해남이 관향이다. 항렬은 예조참의 증 이조판서 휘는 선도, 시호는 충헌공. 호는 고산공의 5대 손녀다. 부친은 휘가 덕휴이며 학생(벼슬을 하지 않은 분). 조부는 휘가 두서이며 진사였다. 증조는 휘가 이석이며 음사(부친이나 조부가 높은 벼슬을 하면 과거와 상관없이 고을 수령 정도의 벼슬을 자식에게 주었음)로써 종친부 전부를 했다.

공인의 모친 안동김씨는 부친이 휘 태광으로 학생이었고, 조부 휘 남택은 관이 가선대부였다. 증조 휘 구만은 승지였다.

숭정(명나라의 연호) 기원 후 3년 정사년 7월 30일에 공인이 괴산 사전리에서 태어났다. 즉 외왕고(외할아버지) 김씨의 댁이었다.

11살에 선부인이 돌아가시어 학생공(필자의 장인)를 따라 괴산으로부터 서울로 갔다가 3년 후 기사년에 또 서울로부터 해남으로 내려왔다.

이듬해 학생공께서는 부친으로부터 나와 계부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학생공의 형제는 열 명이었는데 학생공은 아홉째였다.

일가 내의 동당 형제가 40여명이었는데 고산공의 예의범절이 각별하여 家法이 엄정했고 자손들이 그것을 지켰다. 그 부유함에 대해 듣고 사치를 조절함을 보고 전해 내려온 것이었다.

숙모 권씨에게 힘을 다해 베 짜는 법, 바느질 하는 법, 숙흥야매, 근고하는 법, 끓이는 법, 찌는 법. 술과 음식 등을 배웠는데 추위 더위에도 게으르지 않고 어긋나지 않았다.

권씨의 뜻은 만약 무슨 절이나 날이나 좋은 날 서로 만났을 때 단란하길 원했다. 혹시라도 스스로를 자만하여 꾸지람을 듣는 경우가 일찍이 없었다. 지나가는 종친과 남녀노소가 모두 그 단정하고 정숙함을 사랑하고 그 민첩하면서도 선량함을 기이하게 생각했다.

비복들도 도와주고 죄를 면해 주니 기뻐하며 정을 주지 않는 자가 없었다. 대개 공인은 안으로  渣滓(사재: 앙금. 가라앉은 찌꺼기)가 없고 밖으로 崖岸(애안: 벼랑과 언덕)이 없었다. 다만 일단의 천심으로 정직과 신의만 있었다. 마침내 22세에 나에게 시집 왔다. 나는 즉 모친상을 당한 지가 이미 9년째였다. 이듬해 기묘년 마침내 이끌고서 오성으로 와 살았다.

또 밝은 덕은 지식을 앞서고 남들을 용인하지 않으면 자기에게도 이익이 없는 법. 그렇게 35년 동안 비록 깊은 밤에 사사로운 이야기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때에 일찍이 한 터럭 예의에 어긋난 말이나 불의한 꾀를 들어보지 못했다.

여러 사람들이 입으로 남을 상하게 하거나 사물에 해악을 끼치는 말을 해도 시종일관 무심한 뜻으로 일관했다. 아! 부인의 성품이 이러했다.

그 순일함이 나타나는 것을 나를 공인에게 견주어 본다면, 천품이 화이(和易)하고 담연하고 욕심이 적은 것으로는 내 머리 하나 만큼 높다. 정직한 행동이나 삿된 마음이 없는 것은 나와 더불어 차이가 없다.

그러나 나는 따지고 그대는 느긋하다. 나는 재주가 있고 그대는 덕이 있다. 나는 이론을 좋아하고 그대는 예의를 사랑한다. 나는 길고 짧은 것을 분명히 하고 그대는 활달하지도 편협하지도 않다.

이것이 서로 상반되는 취미이고 서로 불합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 서로의 미덕을 능히 알고 있으니 서로를 배워서 또한 능히 경계가 되고 그 단점은 서로 보완하니 대개 서로가 선명하다.
오호라.

경인년 겨울 남양에서 큰형님이 창질을 만나 돌아가셨다. 가난하여 염을 할 수 없었는데 그대는 어릴 때부터 무릎을 덮던 홋 이불을 보내 염습을 했다. 큰형님 둘째형님이 계속 돌아가시고 동서와 조카들이 한 방에서 더불어 20 여년을 지냈다. 靈으로부터 향리로 돌아왔는데 오직 여종 하나만 있었다.
가계가 나락으로 떨어져 격연하였다. (闃然: 매우 고요하고 쓸쓸함.)

궁벽한 동네 달팽이집에서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고 한쪽 벽에서는 좀벌레가 돌아다녀 칭하기를 누항이라. 비록 남자가 당해도 그 위로가 어려울 지경인데 공인은 마침내 능히 용납하고 스스로 참으며 線을 굽히어 품팔이로 쌀을 얻고 실을 짜서 표로 바꾸니 혹은 아침이었고 혹은 저녁이었으나 엉금엉금 기어서도 다다르지 못했다.

봄에는 냉이로 가을에는 콩깍지로 어쨌든 솥에서는 항상 끓는 소리가 났다. 동구 앞에서 술지게미를 얻고 이웃에서 김치를 얻어 밥상에는 그래도 잡다한 색으로 차려 올렸다.

여름에는 삼베옷과 짚신이 있었으나 겨울에는 좋은 게 없어 걱정이었으리라. 잘 씻기고 잘 바느질하면서 어버이를 봉양했고, 정성으로 손수 절구질하고 손수 음식을 끓여 제사를 모셨다. 공경으로 동정을 살펴 말은 묵묵하였고, 거동이 없는 듯했으나 미숫가루를 모으거나 장을 담그는 일이 아닌 것이 없었다.

돈은 없었으나 인색하지 않았고, 늘 절제하여 늘 균등하였다. 그렇게 辛苦하면서 나무 끝에 서 있었지만 가득 채웠고 그 남은 것으로 집안을 일으켜서 7년 안에 예수(禮數: 가문에 합당한 예법)의 품식(品式)으로 문정(門庭)을 일신(一新)하였던 것은 다 공인의 공이었다. 지아비의 척당들을 접대하니 척당들은 흠탄(欽歎)하였고, 이웃 친지들을 교류로 응대하니 이웃 친지들에게서도 원한이 없었다.

자녀들에 이르러서도 식견이 낮지 않고 행동거지가 발칙하지 않으니 또한 부인의 교화였다. 장차 부인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유독 '인후(仁厚)' 두 글자 밖에 없다.

다만 해마다 봉양하거나 기르는데 공평하게 균등하였으며 힐책도 없고 바꾸려고도 하지 않았다. 즉 나로서는 할 수 없었지만 그대만이 유독 후덕 인내함이었다. 오호, 그 공경스러움이여. 안타깝도다.

(친정인) 해남의 거수성은 천릿길이다. 그대는 늘 친척과 떨어져 분묘를 생각함에 가없는 한이 있었기에 종내 가정의 즐거움이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늘 잊지 못했다. 매번 (친정에 대한) 말을 할 때 마다 한숨이 섞여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진정으로 측은한 느낌이다.

그대는 소박한 성품으로 무엇을 집을 때 스스로를 야박하게 하는 것이 너무 심해 쑥잎과 거친 현미로 평생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얇은 옷과 헤진 이불로 낮과 밤이었으며 그렇게 힌 해를 보냈다. 한 시도 남들과 같은 사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반드시 한 시도 남들과 같은 사치를 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숭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단 말인가.

나는 술을 좋아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계속하기가 극히 어려웠으나 추울 때는 따뜻하게 술을 빚었고 여름에도 불을 때서 상을 차렸다.

절의가 젊은 나이라도 오히려 그 노력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으리라. 내가 매번 술을 찾으면 그대는 반드시 몸소 술을 따르면서 난색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술을 많이 마시지는 말라는 말은 여러 번 했는데, 나로 하여금 얼굴이 불어져서 고생하지 않도록 했던 것이며 병이 올까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늙고 병들어 쇠약하게 되자 오히려 친히 검사하고 대개 나를 물러나있게 하였다. 그 성격이 스스로가 발 벗고 나서기를 좋아해서였다.

아, 공인의 병은 여기에서 상하지 않았다면 달랐을까. 어찌 고(告)함에 한이 없으리오. 묘가(墓歌) 중에 그대가 술을 찾았던 말을 안 하는 것이 나는 더 좋다.







이름아이콘 김원옥
2016-09-27 02:02
정말 조선조에 이러한 여인이 있었구나! 오늘에도 이런 여인이 많기를 바람은 과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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