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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충렬공께서 축조하신 강화도의 뚝과 제방>
* 자료 제공 : 2001. 4. 9. 김은회(金銀會-익원공파 21세손) 제공
1.강화(江華)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항몽 유적지이다. 또한 이곳은 사면이 바다이어서 짠물이 수시로 넘나들어 황무지가 사방에 방치되어 있었고, 갈대밭으로 덮혀 있어 곡식을 심을 수 없었다. 이에 고려 고종(高宗)25년(1248년), 조정에서는 북녘의 많은 민간인들을 강화도로 들어오게 하여 간척사업을 했다.
이때 병마판관(兵馬判官)으로 부임한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강화도의 여러 곳에 제방과 뚝을 쌓고 간척지를 만들게 하였으며, 돌피씨를 심게 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해에 이 돌피가 잘 여물어 해마다 몽고와의 병란으로 배를 굶주려 왔던 강화도 군민들은 비로소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사업 초기에는 의심에 가득 찬 민심으로 인해 심한 원망을 사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공은 민심을 크게 얻는 계기가 되었다. 그 뿐만아니라 이때 강화도에는 물이 매우 귀했는데, 공께서는 축성한 뚝 안에 빗물을 저수할 수 있도록 마련 하였다. 그리고 농사철에는 이 물을 논에 대게 하여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 걱정이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얼음을 깨고 그 물을 식수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2. 이때 축조한 제방과 뚝은 제포(悌浦), 와포(瓦浦), 이포(裡浦), 초포(草浦) 뚝 등인데, 이곳에 둔전(屯田:주둔병사의 군량미를 자급자족 하기 위하여 마련되었던 밭)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광성(廣城), 굴곶(屈串), 만월(滿月), 오두(鰲頭), 가리(加里) 뚝 등도 모두 이때에 축성 하였다고 한다.
3. 뚝과 제방 소재지 제포(悌浦) 와포(瓦浦) 뚝- 강화군 송해면 승천포 부근. 고려시대에 별궁이 있던 곳(상관)으로 그 동리 이름(상관리)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포(裡浦) 뚝- 1256년 선원면에 축조하였다.
<강화도 간척사업의 전개과정 지도> (2002. 2. 5. 은회(익) 제공) 출전:최영준(고려대). <강화지역의 해안저습지 간척과 경관의 변화>. <국토와 생활사>. 한길사. 1997. PP186-187
<대몽 항쟁기의 강화도 일대 지도> (중 국사교과서. 2002. 3. 111P)
<우둔전 지역인 용진돈대 앞 제방. 안사연 답사시 촬영> (2003. 2. 24. 발용(군) 제공)
* <강도지 소개>(2003. 2. 7. 銀會(익). 강화문화원에서 입수. 2003. 2. 11. 항용(제) 자료 제공) <江都誌>(1997년 강화문화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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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P>
<강도지> (2003. 2. 24. 강화 박물관 전시 자료. 발용(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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