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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40. 2. 25일자) 기록 내용 (2005. 3. 13. 태서(익) 제공)
어린이 歷史 金方慶 이병기 선생 고려중대명장(高麗中代名將) 김방경(金方慶)은 어려서 때를 잘 썼습니다. 때를 쓰면 반드시 길거리에 누어 울엇습니다. 그러면 말과 소가 가다가도 피해 갓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겻습니다. 그는 생길때부터 이상하엿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나키에 여러번 꿈에 구름을 마시고 사람보고 하는 말이 [구름기운이 내 입고 코에 잇스니 아기를 나면 이상하리라]하고 과연 김방경을 나핫습니다.
열여섯살때부터 배슬을 하기 시작하엿습니다. 시중(侍中)베슬에 잇는 최종준(崔宗埈)이가 김방경의 충성됨을 사랑하여 공경하여 대접하고 큰일이 잇으면 다맡겻습니다. 그 뒤 여러번 다른 베슬로 옮겨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어 우창(右倉)을 맡아보는데 어느 재상이 곡식을 달라고 청을 하엿으나 주지를 안핫읍니다. 그 재상은 노하야 권신(權臣-세력잇는 신하)에게 하소연하기를 [이제 어사(御史)는 이전 어사처럼 공사를 잘 못한다]하엿습니다. 그러자 김방경이 이르매 권신은 그런 말을 다하엿습니다. 김방경은 [나도 이전어사와 같이 하기는 쉽다. 나는 나랏곡식은 만히 저축하고자 함이오. 여러 사람의 입은 다 고르게 할 수는 없다.]고 대답을 하엿습니다. 그 때 그 재상은 옆에 앉엇다 크게 무안햇습니다.
그리고 서북면병마판관(西北面兵馬判官)베슬이 되엇을때 몽고(蒙古)군사가 들어와 여러성을 치므로 김방경은 위도(葦島)라는 섬으로 들어가 지켯습니다. 섬에는 십여리나 넓은 들이잇어 농사를 짓게 되엇스나 바다의 조수물이 들어와서 못하는데 김방경이 보를 막아 벼를 심엇습니다. 백성들이 처음에는 괴롭게 알다가 가을에 이르러 곡식이 잘 익어 섬사람들이 다 그걸로 살앗습니다. 또 섬에는 우물이 없어 항상 육지에 나와 물을 길어 갓읍니다. 그러나 가끔 적군에게 잡혀 가기도 하엿읍니다. 김방경이 못은 맨들고 빗물을 저축하여 물걱정이 없엇습니다.
그리고 삼별초군(三別抄軍)이 반(反)하야 탐라(耽羅=濟州)로 들어갓는데 김방경이 그를 치러가다 추자도(楸子島)라는 섬에 다달어 바람개기를 기다린 것이 밤중쯤하여 바람이 더 몹시 불엇읍니다. 갈바를 몰랏습니다. 김방경이 하늘을 우럴어 탄식하되 [나라에 편안코 못함이 이번에 잇고 오늘일은 내게 잇지 안흔가]하엿습니다. 좀잇다 풍랑이 그쳣습니다. 드디어 드러가 처 크게 파하엿습니다. 그후에도 몇 번 싸우러 나갓습니다. 큰 공로가 잇다고 상락공(上洛公)을 봉하엿습니다.
베슬을 안코 물러가서도 나랏일을 집일처럼 걱정하엿습니다. 나이 팔십구라도 머리가 세지 안코 병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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