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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 방문기 (2007. 8. 9. 항용(제) 제공)
1. 일시 : 2007. 7. 21(토). 2. 장소 :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3.내용 : 2007년 7월 22일. 휴가를 맞아 직장에서 진도로 여행을 갔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진도의 대표적 관광지인 용장산성을 찾았습니다.
진도대교를 넘어 가자 모든 도로 좌우에 늘어서서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무궁화나무들을 보고 일행 모두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개량종들이기에 꽃들도 아주 예쁜색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한 그루만 서 있는 시골길의 무궁화꽃은 왠지 어색하고, 수줍고, 촌스럽고, 진드기까지 많아 볼품 없어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곳처럼 약 1m 간격으로 전 도로에 빼곡히 심어져 붉고 흰 꽃빛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이제야 무궁화꽃은 한 그루가 아닌10그루 정도 이상을 연이어 심어야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습니다.
<용장리 표석옆의 무궁화 나무들>
<용장리 표석 옆의 무궁화 꽃>
용장리 표석 옆을 지나 약 150m를 가니 용장산성 표석이 보이며 우회전을 하여 좁은 길로 멀리 보이는 용장사를 향해 갔습니다. 용장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위에 있는 기념관을 가니 토요일 오후 1시라 문은 잠겨져 있었습니다. 건물 앞을 지나 우측으로 약 50m를 가니 용장산성 앞으로 널찍하게 공원이 꾸며져 있었는데 여기도 무궁화꽃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용장산성을 찾는 이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만 약간은 쓸쓸하게 일대를 보았습니다. 준비해 간 해설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용장산성 소개> 출전 : 네이버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126호이며 지정면적 472,909㎡이다. 현재 용장산 기슭에 약간의 석축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에 용장사지(龍藏寺址)와 행궁지가 남아 있다. 축성연대는 1270년(원종 11) 6월 이후로 본다. 고려 원종 때에 몽고 항쟁 중에 왕실이 몽고에 굴복하자 삼별초는 끝까지 저항했다. 배중손 장군은 몽고군에게 쫓기어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겨와 새 나라를 세웠다. 그는 한동안 본토 일부와 제주도 까지 세력권에 넣는 등의 위세를 떨쳤으나 결국 여몽연합군에게 토벌되고 말았다. 그 때 삼별초가 항쟁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이 용장산성과 남도석성이다. 용장산을 두르고 있는 성이 용장산성인데 주로 석성이지만 부분적으로는 토성이 섞인 곳도 있다.
이 안에 있는 용장성은 몽고에 무릎을 꿇은 고려조정에 반발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난을 일으킨 삼별초가 여연합군에게 패해 제주도로 퇴각하기까지 원종11년(1270) 8월부터 9개월 동안 항몽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배중손을 지도자로 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하후 온을 새 왕으로 받들고 관부를 구성하고 관리를 임명하여 몽고에게 항복한 고려 조정에 대립, 정권을 세운 뒤 1,000여척의 배에 재물 과 인원 등을 싣고 진도 벽파진에 도착, 용장산에 터를 잡은 후 산성을 개축하고 성안의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각종 건물을 지어 왕을 황제로 칭하였다.
오랑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왜에 국서를 보내 자신들이 유일한 정통 고려 정부임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이 진도로 온 것은 해전에 약한 몽고군과 맞서 싸우는데 적합하고 섬이 크고 기름져서 오래 버티더라도 자급자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 명량해협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거둔 조세를 개경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할 이동로였기 때문에 이를 빼앗기에 적정지였기 때문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조운을 차단 당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은 고려 정부는 몽고와 손잡고 진도를 몇차례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고려 원종 12년 5월 15일, 여몽연합군은 다시 진도를 공격, 10여일 동안 벌어진 격렬한 싸움에서 삼별초의 임금 온과 배중손은 죽음을 당하고, 김통정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러나 제주도로 건너간 김통정 휘하의 삼별초는 3년간의 항쟁 끝에 원종13년(1273) 2월에 여몽연합군에게 진압되고 말았다. 지금 성의 대부분은 허물어 졌으나 현재 궁궐터가 거의 복원 되었고 석축으로 이루어진 건물 자리 12개가 남아 있으며, 그 주변에 420m에 이르는 토성이 남아 있다. 진도읍에서 의신면 돈지로 가는 길의 <운림산방>에 못미쳐 여몽연합군에게 쫓기다가 죽음을 당한 삼별초 왕인 왕 온의 무덤이 왕무덤재에 있다.
<용장리 입구의 이정표>
<용장산성 입구 안내표석>
<용정산성 앞의 안내 해설판1>
<용장산성 해설판 2>
<용장산성 해설판2>
<용장산성 해설판3>
<산성 입구의 샘물>
<산성 입구의 사적 표석> <산성 입구 전경-대궐터. 산 정상 능선에는 산성이 쌓여 있다>
<좌측 대궐터>
<우측 대궐터>
<대궐터 계단석>
<산성 좌전방 약 50m에 있는 용장사>
<용장사 석불좌상 안내 해설판>
이어서 진도의 대표적 볼거리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을 향하다가 길 옆에 삼별초의 왕으로 추대되었던 승왕후 온의 무덤을 알리는 푯말이 있기에 찾아 올라갔습니다.
<묘소 입구, 오르는 길>
<묘소 전경>
묘소는 그런대로 산 능선 주선 아래의 혈자리에 있었는데 한여름의 잡풀들이 높이 자라 있었습니다. 묘 앞에는 약 50Cm 높이의 작은 표석이 있었는데 묘표라기 보다는 사적 기념물 표석으로 보였습니다. 좌우에는 문인석인지 동자석인지 아니면 벅수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작은 것이 서 있었습니다. 쓸쓸하고 허전하여 인생무상을 더욱 크게 느끼는 곳이었습니다.
<좌 문인석>
<우 문인석>
<묘 표석>
<묘소>
<묘소 옆의 해설판>
<묘소 앞의 작은 묘소들>
왕온 묘소 아래에는 몇기의 묘소가 있었는데 이 중에는 왕온이 죽을 때 함께 죽은 애마의 묘가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일행을 따라 운림산방을 향해 가야 했습니다. 이상 간단히 용장산성과 왕온의 묘소 탐방기를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