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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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어린이 해동명장전-김방경

(2004. 11. 14. 발용(군) 제공)

 

삼별초의 난과 김방경 장군

 

신라 경순왕의 후예인 김방경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때는 1212년, 고려 제22대 강종왕 2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여러 차례나 구름과 안개를 먹는 꿈을 꾸고 김방경을 뱃기 때문에 가끔,

“신선이 내 몸을 빌 어 이 세상에 태어나려는 것 같다

.”

고 했습니다.

아무튼 김방경은 좀 이상한 어린이였습니다.

가끔 심술이 나면, 꼭 길거리에 나가 벌렁 누워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김방경이 누워서 울 때에는 소나 말 등이 김방경이 누운 자리를 피해서 갔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로군. 짐승이 아기를 피해 가다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천재 소년

 

김방경은 할아버지 밑에서 공부하며 성장하였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한 김방경은 학문에 뜻을 두고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소년 김방경은 두뇌가 명석하여 주위로부터 천재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는 그런 칭찬을 받을 만 했습니다. 왜냐 하면, 소년 시절에 이미 과거에 급제했으니 말입니다.

16세 소년의 몸으로 벼슬길에 오른 김방경은, 감찰어사가 되었습니다.

감찰어사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가려내어 기강을 확립하는 벼슬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무렵, 고려의 관리들은 매우 부패하였습니다. 관직을 돈으로 사고파는가 하면,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백성을 탄압하여 오직 자기의 배만 불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감찰어사 김방경은 사심 없이 맡은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뇌물을 받지 않았으며, 부당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감찰어사의 직분을 철저히 수행했습니다.

“전에 있던 어사는 융통성이 있었는데.....”

“이번 감찰어사는 정말 지독하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겠어.”

“맞아, 아주 독종이야. 사람이 좀 적당히 넘어갈 때도 있어야지, 이거야 원.....”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말이 재상의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저인들 다른 어사들처럼 못할 리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돈도 많이 생기고 인심도 얻는 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제 직책은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어찌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제 배를 불린단 말입니까?”

이와 같은 김방경의 바른 태도에, 재상들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몽고의 침입을 막다

 

그 후 김방경은 서북면 병마판관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고려의 서북 지방 방위 책임자가 된 것입니다. 고려의 서북 지방이면 지금의 압록강 근처가 됩니다.

김방경이 부임하고 얼마 있지 않아, 몽고 군사가 쳐들어 왔습니다. 그들은 국경 주변의 여러 성을 순식간에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김방경은 곧 군사를 지휘하여 몽고군의 침입을 막아 냈습니다.

김방경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몽고군의 침입을 막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여, 백성을 산 속이나 섬으로 옮겼습니다.

“그대로 성에 머물러 있으면 몽고군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선량한 백성들만 피해를 입는다. 그러니 백성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이것이 김방경의 생각 이었습니다.

김방경은 백성들을 위도라는 섬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둑을 쌓아 농사를 짓도록 하고, 저수지를 만들어 식수를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위도로 옮겨간 백성들은 편안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어, 김방경을 존경하며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정정당당한 자세

 

김방경이 궁궐의 수비 대장이 되어 일할 때였습니다.

막상 수비 대장이 되고 보니, 대궐의 수가가 여간 허술한 게 아니었습니다. 근위 장교들은 그저 권세 있는 관리에게 아부하느라 책임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내가 반드시 군기를 바로잡으리라.”

김방경은 혹 병이 나서 눕고 싶어도 결코 결근하지 않았습니다. 또, 높은 관리들에게 아부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맡은 일을 성실하고 당당하게 수행해야 한다.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최대의 압이다. 높은 사람 눈에 잘 보이려고만 하는 것은, 긴 안목으로 볼 때에 오히려 출세에 지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방경은 부하들을 훈계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김방경이 지어사대사 때의 일입니다. 이는 3품의 벼슬로서 상당히 높은 지위입니다. 그 당시 유천우라는 사람이 오랫동안 좌승선이라는 벼슬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유천우는 정부의 요직에 있다고 하여 거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굽실거리며 아부했습니다.

어느 날, 김방경이 말을 타고 가다가 우연히 유천우와 만났습니다. 김방경은 말을 탄체 가볍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태도가 유천우의 비위를 거슬렀습니다.

“김방경, 그대는 나를 모르는가?”

유천우가 노기 띤 고리로 말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몰랐다면 인사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유천우는 더욱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내 앞에서는 삼품관 밑의 벼슬아치는 누구든지 길을 비키는 법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렇게 당돌하게 구는가?”

김방경은 그래도 당당하게 대꾸했습니다.

“나도 삼품관입니다. 우리는 같은 위치에 있는 관료입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한 것은, 그대가 상감마마의 특명을 받고 있는 터이라 예의를 표한 것뿐입니다.”

“아니? 세상에 저런…….”

전부터 김방경의 곧고 당당한 자세를 건방지다고 생각해 오던 유천우라서 더욱 화가 났습니다.

“이놈, 어디 두고 보자! 후회할 날이 있으리라.”

그 때부터 김방경의 일가나 가까운 사람이 벼슬길에 오르려고 하면, 유천우가 악착같이 방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김방경을 억누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김방경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후, 진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무리들을 진압하기 위해 김방경이 전라도에 파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곳에는 유천우의 넓은 땅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사사 건건 자신을 괴롭혀온 유천우를 생각하면, 보복하기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김방경은,

“유천우의 땅을 결코 건드리지 마라. 그의 소작인들을 잘 보호해 주어야 한다.”

고 군사들에게 엄하게 명령했습니다.

쓸데없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였습니다.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키다

 

몽고와 고려는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마침내, 고려의 태자가 직접 몽고에 가서 화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269년, 원종 10년에 임연이라는 세력자가 반란을 일으키더니 임금을 갈아 치우겠다고 나섰습니다.

놀란 원종은 즉시 몽고에 원조를 청했습니다. 몽고에서는 몽가독이라는 장수에게 군사를 딸려 보냈습니다.

김방경은 몽고군이 몰려와 생기게 될 혼란을 막기 위해 왕께 건의했습니다.

“관군은 서경에 머물러 대동강을 건너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대동강을 건너면 개경이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몽고의 군졸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서경에서 위협만 해도 임연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김방경의 건의를 몽고에서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최탄이라는 사람이 임연을 친다는 명분으로 느닷없이 군사를 일으키더니 원종 11년 2월에 서경 아래쪽의 모든 성을 몽고에 주고 투항했습니다.

그러자 몽고는 3천의 군사를 서경에 머물게 하고, 그 곳에 동녕부를 두어 최탄을 총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최탄은 그 후 여러 성주들을 마구 죽이는 등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러면서 몽고 장수 몽가독을 꼬드겨 개경으로 쳐들어가게 하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몽가독 장군님, 개경에 들어가야 임연을 잡지 서경에 앉아서 어떻게 잡는단 말입니까? 장군께서 개경에 들어가면 개경의 모은 재물은 장군의 것이 됩니다. 사냥을 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대동강을 건너가도록 하십시오.”

최탄은 나라의 혼란을 이용하여 여러 성을 몽고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고려의 서울인 개경까지 몽고군의 발에 짓밟히게 하려고 했습니다.

몽가독 으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몽가독은 김방경을 불러 은근하게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객관에만 머물렀더니 참으로 갑갑하군요. 그래서 사냥을 한번 나가려 하는데……. 어떻습니까, 장군께 서도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김방경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물었습니다.

“글쎄요, 기왕이면 사냥감이 많다는 대동강 건너 황주로 갔다가 초도로 들어갈까 합니다.”

김방경은 대동강을 건너가겠다는 말을 듣자 몽가독의 속셈을 알아차렸습니다.

“안 됩니다 ! 몽고군은 대동강을 건너지 않기로 약속하고서 어찌 어기려고 하십니까? 황제의 명령임을 잊으셨습니까?”

“하하하 몽고인이 사냥을 즐긴다는 사실은 황제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별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사냥은 다른 데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동강을 건너는 것은 결코 안 됩니다. 정 대동강을 건너고 싶으시다면, 황제의 허락을 받도록 하십시오.”

김방경의 당당한 태도와 끓어오르는 애국심에, 몽가독은 마음이 움직여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실은, 최탄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개경으로 쳐들어가라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김방경은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방경은 그것을 비밀에 붙인 체, 오직 나라를 위기에서 건지려는 애국심으로 사태를 수습해 나갔습니다.

그 후 임연은 죽고, 원종은 다시 임금의 자리로 복귀하였습니다. 또,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몽고와의 협상도 정식으로 매듭지어졌습니다.

 

삼별초의 반란

 

고려가 몽고와 화의하였다는 데에 불만을 품은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원종 12년, 서기 1271년의 일입니다.

삼별초 반란군은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며 전라도 진도로 내려가 근거지를 삼았습니다.

삼별초군은 전라도 일대를 공격하여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했습니다. 김방경은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했으며, 몽고에서는 아해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싸움이 시작되자, 삼별초군은 모두 배를 타고 깃발을 흔들며 징과 북을 쳤습니다. 아해는 그만 겁을 먹고 후퇴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김방경은 홀로 군사를 지휘하여 반란군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었습니다. 반란군은 김방경 장군의 배를 포위했습니다.

“반란군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고기밥이 되겠다.”

김방경이 소리치며 바다로 뛰어들려 하자, 군사들이 놀라 말렸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겠느냐?”

“예, 장군님!”

김방경 장군의 군사들은 기운을 내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불꽃 튀는 접전 끝에 관군이 반란군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몽고의 장군 아해는 겁을 먹고 물러났기 때문에 파면되었습니다.

김방경은 그 후 탐라(제주도)로 도망친 삼별초의 반란군을 쫓아가 전멸시켰습니다.

 

일본 원정

 

그 후 김방경은 몽고군과 연합하여 일본 원정길에 올랐습니다. 먼저 대마도를 공격한 다음 본토로 진격했는데, 심한 풍랑을 만나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충렬왕 7년 (1282 년)에 또다시 몽고군과 연합하여 일본 원정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고려와 몽고의 10만 연합군은 일본 하까다에 상륙하려다가 태풍을 만나, 끝내 일본 원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영원한 충신

 

김방경은 높은 벼슬에 올랐습니다. 16세에 벼슬길에 올랐던 그는, 병부 상서, 한림학사 등을 지냈습니다.

말년에는 상락군 개국공에 봉해지기도 했습니다.

충성스러운 김방경 장군은 충렬왕 26 년, 그러니까 서기 1300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오직 나라 사랑에 그 생애를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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