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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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음수재(飮水齋) 연혁 자료 및 낙성식 소개

 

 1)음수재 연혁 (2004. 8. 26. 주회(안) 제공)

 

  가) 능동 재실 창건

   (1)창건 연대 및 건축과정 : 미상

   (2)규모 : 3칸 초가

   (3)관리 : 안동의 익원공파 소산문중과 사촌의 도평의공파에서 관리.

 

  <창건 연대 및 과정 추정>

   (1)추정 1 : 1626년 *하담공(휘 時讓. 제학공 후손) 묘역 정비시(범장한 광산김씨 김해의 묘 이장. 상석 세우기. 봉분 사초. 제절 넓히기 등) 소규모의 재실 창건 가능성--이 때는 위토가 없어 시제 때마다 사촌의 도평의공파와 안동의 익원공파 소산문중에서 제수비를 거출하여 시제를 모신 것으로 추정.

   (2)추정 2 : 1600년대 후반. *양진당(휘 相璘. 도평의공 후손)께서 위토를 장만한 이후 창건했을 가능성--이 때부터 위토의 도지비로 시제를 모시기 시작함.

 

   <창건 관련 자료 목록>

 

   (1)<國譯 晩沙文集>(金振鍾 저. 2003. 4. 金檍 발행) 내의 <陵洞齋舍 重建 上梁文> 내용 참조 확인.

          * 晩沙公(휘 振鍾) : 1883-1951. 도평의공파 19세손.

   * 중건과정 및 중건 시기 추정 관련 자료 : <國譯 晩沙文集>(金振鍾 저. 2003. 4. 金檍 발행)

        P.338-339. 내용

<슬프도다 세상의 억겁 변화 속에 말 못할 여러 해가 지났고 선영의 보호는 청산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말이 없고 징표가 없으니 외로운 중이 향불을 올렸으며 무덤가에 白楊은 묵은 지 오래였으니 나무하는 첨지들의 도끼질이라 슬픔이 더하였네. 무슨 다행인가 萬曆의 赤馬(丙午. 주:1606년. 선조39. 갑오(1594년)의 誤記인 듯)년에 다시 靑烏(주:道를 배운 선비)의 두 번째 가림을 받았으며 감히 먼 耳孫(주:八代 이하의 자손)들의 정성을 이루어 深目(주: )자의 가르치는 징표를 기꺼이 만났구나. 하潭公(주:荷潭公의 誤記. 휘 時讓을 말함)이 監司로 왔던 날에 미쳐서야 상석을 다시하고 투장을 파냈으며 養眞堂公의 보본의 정성으로 位土를 장만하고 묘사를 받들었네. 옛날부터 조상을 위하는 지성의 도리가 없었음인가 어찌 오늘에 와서 거창한 齋宮의 역사가 있을까? 오랜 세월 비바람이 씻기어 그 무너질 걱정이 어이 없을소냐. 세상은 변천하고 형세는 줄었는데 하물며 또 다투는 부끄러움도 있었구나. 오랜 세월 경영이 항상 주저함이 있을 뿐 다만 세변한 것을 연고로 하며 경계의 분명치 못함이 거리낌이 되었네. 만약 管攝(관섭. 주:두 가지 일을 겸하여 조관함)하지 않고 버려서 行路에 거짓말을 시키면 또한 슬프지 않을까. 멀리 흩어져 사는 종친에게 널리 통고하여 이에 여러 대 겨를이 없어 이루지 못한 일 도모하였네.> (하략)

 

  (2)양진당(養眞堂. 金尙璘) : 1616년 ~ 1675년

도평의공파. 사원(士元)의 손자(孫子)이고 호(號)는 양진당(養眞堂)이다. 숭선효우(崇先孝友)로 이름이 높았다. 만년(晩年)에는 양진당(養眞堂)을 세우고 학문(學問)을 연수(硏修)했다. 경술(庚戌) 신해(辛亥)의 팔도기근시(八道飢饉時)에는 영남(嶺南) 소수(疏首)로 추대(推戴)되었으며 사복시정(司僕寺正)의 증직(贈職)이 내렸다.

 

 나)능동 재실 1차 중건

 *중건 연대 : 1940년으로 추정

 *추정 근거

 (1)<음수재> 현판에 “庚辰 仲夏 *文演 印”의 기록이 있음. 경진년은 1940년임.

<음수재> 현판 書者 김문연(金文演)

 안렴사공파. 화산군(휘 澍) 후손

주요 약력

○ 1900년대 전반 외부주사를 지냈고, 많은 종사활동과 저술활동을 하였다.

○ 1919년? 항우전, 몽학지남

○ 1926년 안렴사공파 세보 <병인보> 발간에 참여하여 서문을 짓고

○ 1933년 노정 김재철 조문객 명단에 문연, 주연 등이 함께 명단이 있고

○ ?1934년 주연 등과 함께 우암집을 보완 중간하고 권말에 전 외부주사 문연이 중간발을 썼다.

○ 1935년 대동보 <을해보> 발간에 참여하여 서문을 짓고

○ 1940년(庚辰 仲夏) 안동 녹전 죽송리 재실 음수재 현판을 書하였다.

○ 족보에 김문연 찬 [원류고증] 이 있다.

 

 다) 능동 재실 2차 중건 --1970. 11. 7. 재실 완공. 낙성식. (내용:대종회 연혁에서 발췌)

*대지 매입 : 대종회에서 1월 26일 재실 대지 2필지 438평 매입. 好振氏 대지 매입비 13만원 찬조

*규모 : 正門行廊 一棟 約五間과 坍墻 74.5m, 廚舍 一棟 五間을 신축하였는데 貳百萬원이 소요

*준공식 : 11월 7일 忠烈公 齋室을 단기간내에 완공하고 忠烈公 享祀와 아울러 400여명이 참석하여 준공식을 성대히 거행.

*<음수재> 현판 : 종전의 文演氏(안렴사공파)께서 쓴 현판을 다시 달음.

 

 <기타 중간 과정 내용>

 

*1979. 충렬공 위토 매입 : 730평 90만원에 추가 매입.

*1980년(庚申). 대동보증보판을 착수하여 八月 十五日에 이백질 三千五百券을 완성하여 分帙하고 600萬원의 기금을 조성하였다. 4月 10日 忠烈公 재실을 270만원을 들여 보수하였다

*1981년(辛酉). 안동시 풍산읍 회곡동 山 154番地 9000여坪을 50萬원에 매입하였다.

*1982. 5. 2. : 忠烈公 影幀閣 신축. 八百六萬六千六百원을 들여 新築.

*1984. 10. 7. 재실 관리사옥 건축 : 도평의공파 昌信氏 집이 헐리자 이 집을 기증 받아 그 재목으로 지음. 12,416,000원으로 건축 완료

*1993. 4. 陵洞 齋室 管理舍를 一千一百四十二萬二千원을 들여 보수하였고

*1995. : 陵洞 位土畓 경지정리사업을 一百七十萬원을 들여 하였으며, 陵洞 齋室 寢具(담요) 60枚를 보충하는데 一百萬원

*1996. 3. 28. : 개인명의로 된 위토 四匹地를 특별조치법으로 대종회 명의로 등기 이전하였다. 位土畓은 二十八萬원을 들여 정리 작업함

*1998 : 상량문 목각 제작. 陵洞 齋室 上樑文(진종씨 찬)을 木刻 현판에 조각하여 게시하였는데 一百四十八萬三千원이 所要되었다.

 (이 현액은 음수재 안에 게시하였었는데 2001년 3차 중건 이후 떼어서 관리사옥 창고에 보관중이라 함)

 

라) 능동 재실 3차 중건

*부지 확보 : 2001. 4. 2. 光山金氏 禮安派 會長 金俊植氏를 昌會副會長과 事務局長이 만나 影幀閣 敷地와 忠烈公 墓所 除下(안동시 녹전면 죽송리 산19번지(現 忠烈公 墓所 除下)林을 우리에게 讓渡키로 合意하고 그 代價로 一金 壹千貳百萬원을 支拂하였다

*등기 완료 : 2001. 4. 27. 讓渡받은 土地 竹松里垈 330番地를 330의1로 458평방미터(약15평)과 竹松里 山19번지를 19-1번지로 2,833평방미터(약936평)을 分割測量하고 7月5日 大宗會名義로 登記移轉을 畢하였다. 林野面積 936평중 260평이 종전 忠烈公墓所이나 持分登記로 되어있어 이를 말소하고 統合分割登記를 한 것이다

*상량식 거행 : 6. 10. 飮水齋 上梁式을 工事 着手 3개月 만에 55명의 任員 및 宗員이 參席하여 精誠껏 擧行하였다

*준공식 거행 : 11. 22. 宗親全員이 뜻을 같이하여 온갖 精誠을 다한 飮水齋 竣工式을 500여 後孫들이 雲集한 가운데 安東地域 關係機關과 儒林會員 地域 有志들의 激勵를 받으며 竣工式을 盛大히 擧行하고 11月 23日 忠烈公 701周忌 時祭를 奉享하였다

*준공과정 요약 : 飮水齋 改築을 始作한지 19개月만에 竣工하였으며 獻誠金 合計가 貳億 貳仟七百參拾參萬 원이며 工事 代金 및 諸經費로 貳億貳仟七百六拾參萬參仟貳百九拾원이 支出 되고 九百 六十九萬六仟七百拾원이 남았는데 이 돈은 當初 個人 參拾萬원 以上 團體 五拾萬원 以上 獻金한 宗親과 團體를 獻誠碑에 刻字하여 紀念碑를 建竪키로 함에 있어 獻誠碑 建立基金으로 預置하였다

<음수재> 현판 : 대종회에서 종전의 현판(飮水齋)을 확대하여 다시 판각, 제작한 것이며 종전의 현판(1940년 제작)은 대종회에 보관중임.

 

2) 준공식 장면 (2001. 11. 30. 정중(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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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식 장면>(200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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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陵洞忠烈公齋舍上樑文>(능동 충렬공재사 상량문)

(2007. 12. 31. 태영(군) 제공)

 

 

仍舊址而新成 宛然昔日遺躅 : 옛 자리를 의지하여 새롭게 이루니 석일의 자취가 완연하고

知興弊而有數 慽然感慕無窮 : 흥함과 폐함은 하늘에 달려 있음을 알게되니 슬프게도 감모의 정이 무궁하다

福州治北 : 안동 웅부의 북쪽자리요

鶴駕東南 : 학가산의 동남쪽이로다

伏惟我忠烈大祖 羅王遠裔麗室柱石 : 엎드려 생각건대 충렬공 큰 할아버지는 신라왕손이요 고려조의 주석이라

忠信篤敬 傳家得聞之槪要 : 충신하고 독경함은 윗대의 전통에서 듣고 보는 훌륭한 줄기요

器局弘大 庭習詩禮之聲蔚 : 기국은 넓고 크며 시례는 가정에서 익혀 그 성망도 울연하다

始出仕於 弱冠二八高宗戊子 : 처음으로 벼슬할 때는 약관 십육세이니 고종 무자년이요

終封郡於 食邑上洛忠烈乙未 : 마지막으로는 식읍일천호로 상락에 봉군됨이 충렬 을미로다

銃萬甲而命元師奈捷珍島 : 일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원수의 명을 받아 진도의 대첩을 이루었고

歷三朝而盡貞忠靖難定國 : 삼조에 걸쳐 충성을 다했으며 난을 평정하고 나라를 안정 시켰구나

出則東征攘倭以安社稷之名將 : 나아가면 동쪽 왜국을 눌러 사직을 안정시키는 명장이 되었고

入則百官統銜朝野昇平之賢相 : 들어오면 백관을 통솔하고 조야를 평화롭게하는 재상이 되었다네

朝堂有旨於功存社稷 : 조정에서는 사직을 보존하는데 공이 크다고 말하였고

先王亦悔於帶勵難忘 : 임금은 공신의 예우가 소홀함을 후회하였다

荷潭公安節南來修墓改床 : 하담공께서는 경상감사로 부임하여 묘역을 보수하고 상석을 고쳤으며

養眞翁聚穀息資置田省奠 : 양진옹께서는 곡식을 모아 자본을 늘려 위토를 준비하고 잔을 드렸네

齋閣頹毁苟有更新之謀 : 음수재 영정각이 헐고 무너짐에 진실로 중건의 계책을 세웠음이요

風侵雨洗豈無修補之役 : 바람치고 비가뿌려 허술하니 어찌 보수의 공사가 없겠는가

顧棟宇而老朽將急務於重建 : 돌아보건대 집이 노후하니 장차 중건을 하는것이 급선무요

衆鳩首而合心立新楹於舊礎 : 모아 합심하니 옛날의 주초에다 새 집을 세웠구나

初創構於粤昔何年 : 재사의 창건은 옛날의 어느해 였는가

今改築於民國辛巳 : 지금의 중건은 민국의 신사년이로다

雲仍誠損招良工而施役 : 자손들이 성금을 모아 훌륭한 목수를 불러 공사를 시작했고

諸宗竭力選任司而監工 : 여러 종친이 힘을 다하여 임사를 선정하고 감독에 임하였구나

規制精緻聚四方之美村 : 규제는 정교하고 치밀하여 좋은 재목을 사방에서 모았고

間架擴張趨八域之遠孫 : 간살은 넓고 크게하여 팔도의 자손들이 모이도록 하였도다

井建影閣而益敬 : 영정각을 함께 세우니 더욱 공경스럽고

修補垣墻而蕭麗 : 담장까지 말끔히 단장하니 한결 깨끗하구나

會宗族咸悅相樂 : 종친이 함께 모여 모두가 즐거워 하고

勸友愛睦親謙恭 : 우애를 권장하며 친목과 경공의 예를 지키네

崇祖之道至哉 : 조상을 모시는 도리가 지극하고

敎孫之方備矣 : 자손을 가르치는 방법도 갖추었구나

玆將俚辭恭獻善頌 : 이에 장차 노래 말을 지어 공손하게 불러 드리옵니다

 

兒郞偉抛樑東 : 에루아 들보를 동쪽으로 올려보자

朝日昇天入窓明  : 아침햇살 높이 올라 창문으로 들어 온다

千孫滿堂團欒席 : 많은 자손 마루 가득 단란한 자리

傳世家風和氣融 : 내려오는 가풍에 화기도 높네

 

兒郞偉抛樑西 : 에루아 들보를 서쪽으로 올려보자

高山松林翠色迷 : 높은 산의 솔 숲에는 푸른색이 가득하고

來頭後昆絃誦齋 : 먼 훗날 자손들의 글 읽는자리

良風繼開自成蹊 : 좋은 풍속 이어지고 열려 절로 길이 되네

 

兒郞偉抛樑南 : 에루아 들보를 남쪽으로 올려보자

洛水不息碧如籃 : 낙동강물 쉬지 않아 남색같이 푸르구나

長流千里溶溶去 : 천리를 길게 흘러 용용히도 가서

回回曲曲成深潭 : 굽이굽이 돌때마다 깊은 소 이루었네

 

兒郞偉抛樑北 : 에루아 들보를 북쪽으로 올려보자

淸凉山靑太古色 : 청량산 푸르러서 옛날과 다름없네

淑氣鐘精興旺地 : 숙기와 정기모아 흥왕할 자리

千秋長保幽堂域 : 우리 산소 천추에 길이 길이 보전하세

 

兒郞偉抛樑上 : 에루아 들보를 높이 올려보자

暝河在天星月郞 : 은하수는 하늘에서 밝기만 하다

世道多舛孰可扶 : 일그러진 세상 풍속 누가 바로 잡을까

淳風良俗傳吾黨  : 맑은 바람 좋은 풍속 지켜보리라

 

兒郞偉抛樑下 : 에루아 들보를 아래로 내려보자

軒外耕稼多沃野 : 마루판 밖엔 농사지을 기름진 들판

風調雨順百穀豊 : 비바람 고루내려 백곡이 풍년들면

時享祭需充庫舍 : 시향드릴 제수는 곳간에 가득하리

 

伏願上樑之後 天時回泰地靈吉祥 : 엎드려 바라건데 상량한 뒤로는 천시는 회태하고 지령은 더욱 좋아

益勉遺業 不墜忠信之道 : 조상유업 더욱 힘써 충신의 도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善守剛常 無替孝悌之行 : 강상을 잘 지켜서 효제의 행동을그대로 지켜보세

平去勿忘益修追遠之德 : 평소에는 추원의 덕을 더욱 닦아 잊지를 말고

處恭能行自勉美俗之化 : 처신은 공손해서 미속을 지키는데 힘쓰고 능할지어라

僭忘拙辭敢唱善頌 : 외람스럽게도 옹졸한 가사를 지어 감히 잘 불러지기 바라나이다.

 

西紀二千一年 辛巳 閏四月 十九日

忠烈公 二十四代孫 都評議公二十代孫 昌會 謹撰

 

<출전>안동김씨대종회보 제74호 2001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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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 충렬공 시향 장면>(2001. 11. 23)                 <충렬공 시향. 회장(초헌관) 초헌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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