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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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1. 문영공 소개 1258(고종 45)--1321(충숙왕 8)

 

 고려의 문신. 자는 귀후(歸厚), 충렬공 휘 방경(方慶)의 3子.

 

 1279년(충렬왕5. 22세)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이듬해 중시(重試)에서 조간(趙簡)의 방하(榜下)에 2등으로 뽑혀 낭장(郎將)이 되었다. 그 후 학사(學士)로 추천되어 직강(直講)이 되었다.

 

 충렬공이 일본 원정을 나갈때 공도 종군하고자 했으나 충렬공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공은 몰래 배에 올라 종군하고 돌아왔고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다. 여러번 밀직부사에 추천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297년 좌부승지(左副承旨), 이듬해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있다가 사퇴했으나 같은 해 광정부사·승지·성균좨주(光政副使·承旨·成均祭酒)를 거쳐, 우승지·보문각 학사·지민조사(右承旨 寶文閣學士 知民曹事)에 이어 삼사사(三司使)에 올랐다.

 

  1312년(충선왕4) 중대광상락군(重大匡上洛君)에 봉해졌고, 1321년(충숙왕 8)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다. 그 해 8월 24일 졸하였고 수는 64세이며 시호는 문영(文英)이다.

 

  공은 성품이 관대하고 후덕하였으며 예서(隸書)를 잘 썼다. 만년에는 소리하는 기생들을 키웠으며, 나날을 현악기와 관악기 연주로써 낙을 삼았다. 이런 사적은 고려사 열전(列傳)과 여지승람에 보인다.

 

 익재 이제현이 부인(허씨)의 묘지를 찬하였는데 동문선(東文選)에 보인다. 1942년 봄에 지석이 구묘지인 경기도 개풍군 임계면 가정리 마산 뒷산 언덕에서 발견되어 1943년 봄에 경기도 안양시 관양 1동 뒷산 간좌(艮坐)에 천봉(遷奉)하였다. 시제일은 음력 10월 7일이며 재실(영모재) 연락처는 031)424-5292(재실. 김재영)이다.

 

 문영공의 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으로 1298년(충렬왕24년 무술)에 세운 <대구 팔공산의 동화사 홍진국사비>, 1314년(충숙왕1, 연우1) 2월에 원나라 강절행성 항주로에 위치한 고려 혜인사에 세운 비문 [高麗國僉議贊成事元公捨大藏經記 (고려국첨의찬성사원공사대장경기)와 1306년 (충렬왕26, 대덕10)에 강원도 회양부(淮陽府) 금강산에 세운 [高麗國大藏移安記 (고려국대장이안기)가 있다. 그런데  현재 이 필적들은 그 소재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근거문헌>

◈<근역서화징> (1927, 오세창)             ◈<신고 한국서예사> (1975, 김기승, 정음사)

◈<元代麗史資料集錄> (1997, 張東翼, 서울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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