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본문

p11.png 5. 주요 시문 소개

 

  1)<扈從白馬山應御製>(호종백마산응어제) (2000. 12. 항용(제). 제공)

 

 (문숙공 휘 영돈께서 1347년(충목왕3) 좌정승으로 계실 때 임금(충목왕)을 호종하고 백마산에 올라 지은 시)

    翠葆行尋蒼海上  玉簫吹送白雲閒

    紅塵一片飛難到  萬點螺分雨後山

    임금을 모시고 창해 위를 찾아 가니

    옥퉁소 소리 흰 구름 사이로 번지네.  

    한 티끌 홍진도 날아오지 않는데

    수많은 산봉우리 뒤에는 비가 내리네.

 

  翠葆行尋蒼海上 (취보행심창해상:취보를 받들고 임금을 모시어 창해 위를 찾아오니)

  玉簫吹送白雲間 (옥소취송백운간:흰구름 사이로 옥퉁소 불어 보내네)

  紅塵一片飛難到 (홍진일편비난도:한 티끌의 홍진도 날아오기 어려운데)

  萬点螺分雨靑山 (만점나분우청산:만점의 푸른 소라요 비 갠 뒤의 청산만 벌여 있네)

                   출전--<東文選>(민족문화추진회 刊. 2권. p496. )

 

  * 扈從白馬山應御製>(호종백마산응어제) (2005. 3.. 안사연 종합 해석문. 항용(제). 제공)

 (문숙공 휘 영돈께서 1347년(충목왕3) 좌정승으로 계실 때 임금(충목왕)을 호종하고 백마산에 올라 지은 시)

  翠葆行尋蒼海上 (취보행심창해상:임금을 모시고 창해 위를 찾아가니)

  玉簫吹送白雲間 (옥소취송백운간:옥퉁소 소리 흰구름 사이에 번지네)

  紅塵一片飛難到 (홍진일편비난도:한 티끌 홍진도 날아오기 어려운데)

  萬点螺分雨靑山 (만점나분우청산:수많은 산봉우리 뒤에는 비가 내리네)

 

  2) <문숙공에게 주는 시> (2003. 6. 1. 태서(익) 제공)

   귀봉(龜峯) 김 정승(金政丞) 영돈(永旽) 을 슬퍼하다  

 

사부의 풍류(주1)는 물결 따라 흘러가니    謝傅風流逐逝波(사전풍류축서파)

창생이 기대를 걸었으나 이제 어이하리     蒼生有望奈今何(창생유망내금하)

달 밝은 귀봉산 아래 거룻배에선               龜峯峯下滿船月(구봉봉하만선월)

한 곡조 어부가 간장을 녹이네                  腸斷一聲漁父歌(장단일성어부가)

 

* 본관(本官)이 술에 취하면 언제고 표피(豹皮)라는 기생을 시켜 어부사(漁父詞)를 노래하게 하였다.

   

[주1] 사부의 풍류 : 사부는 진(晉) 나라 태부(太傅) 사안(謝安)을 가리킨 말로 회계(會稽)의 동산(東山)에 은퇴하여 기녀(妓女)의 손을 잡고 산수(山水)를 즐겼던 일을 말한 것이다.

 

  출전: 중사(仲思) 이제현(李齊賢) (1287~1367) 文忠 익재집(益齊集)에서

 

 3) 축은집(김방려의 문집) 속에 들어 있는 문숙공 관련 시들

   *2005. 9. 9. 영환(문) 발견, 익수(제) 번역. 항용(제) 제공

 

 *축은 김방려( 1324-1423) 소개 : 김방려의 자는 汝用, 호는 築隱, 김해인이다. 권양촌 근이 일찍이 공을 김해로 돌아가도록 보냈다. 강직하였고 세상을 꺼림이 많았다. 스스로 학문을 닦고 문장력을 갖추고 있었다.

 

    (출전 : 전녹생의 <야은일고> 존모록 기록내용-金方礪字汝用。號築隱。金海人。權陽村近嘗送公歸金海。有剛直多違世。懷藏自識時之句)

 

  가)贈築隱(증축은)- 金永肫(김영돈)

      --축은에게 주는 김영돈의 시--

 

浦上成村近水邊(포상성촌근수변):포구 물가에 세워진 마을이

東南來障各人天(동남래장각인천):동남쪽 하늘을 가리는데

止隅禽鳥綿無語(기우금주면무어):말없이 아름다운 새들은 깃들고

識字魚龍蜿欲眼(식자어룡완욕안):글 아는 어룡은 눈이 되려 꿈틀거리네  

錦賈四時長醉客(금고사시장취객):비단 팔아 늘 술 취하는 나그네

農夫八月變神仙(농부팔월변신선):농부 8월이면 신선이 된다네

北隣緩頻能欺我(북린완빈능기아):북쪽 이웃이 가벼이 나를 자주 업신여기는데

旅夢院掌一覺先(여몽완장일각선):나그네의 꿈을 원장(院掌)이 먼저 깨우네

 

*주--院掌:원을 관장하는 여관 주인. *축은 김방려 : 1324-1423    *김영돈: 1285년(충열왕11)-1348년(충목왕4)

  나)代金永肫贈築隱 (대김영순증축은) -朴尙衷(박상충)

   --김영돈을 대신하여 축은에게 준 박상충의 시--

 

杜村日事不兒呼 (두촌일사불아호) : 두촌의 일상일에 아이를 부르지 않으니  

可笑平生老蠢愚 (가소평생로준우) : 가소롭구나 평생 무지렁뱅이의 삶이

世上少年皆罪面 (세상소년개죄면) : 세상 젊은이들은 모두 죄인 얼굴이고

人間白髮摠鰥夫 (인간백발총환부) : 백발된 사람들은 모두가 홀아비런가

酒情疏豁喉門咽 (주정소활후문인) : 술 취하면 확 트여 목놓아 울고    

飯味辛酸腹府麤 (반미신산복부추) : 밥맛은 시큼하고 배알이 틀리네  

午枕聽鷄閑送日 (오침청계한송일) : 닭소리 들릴 때까지 낮잠 자고 한가로이 세월 보내며

豊年樂事保微躬 (풍년락사보미궁) : 풍년의 즐거운 농사로 미천한 몸이나 보존하리

 

*김방려 1324-1423 .   *김영돈 1285-1348    

*박상충(朴尙衷) 1332(충숙왕 복위 1)∼1375(우왕 1).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부(誠夫). 밀직부사 수(秀)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이 예조정랑에 이르렀다. 이때 고례(古禮)를 참작하여 순서대로 조목을 지어 사전(祀典)을 썼다. 1367년(공민왕 16)성균관생원의 수를 늘려 100인으로 하고 오경사서재(五經四書齋)를 마련하여 생원을 교수하게 하였는데, 이때 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박의중(朴宜中)·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경술(經術)의 사(士)로 교관을 겸하게 되었다. 뒤에 전교령(典校令)이 되었는데, 이때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3년복을 입으려 하였으나 사대부들이 부모상에 100일만 복을 입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대신 3년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  

 

 1375년 이인임(李仁任) 등의 친원책에 대하여 임박(林樸)·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이를 반대하고 친명책을 주장하였다. 뒤이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어 정몽주 등과 함께 친명책을 쓸 것과 북원(北元)의 사신과 그 수행원을 포박하여 명나라로 보낼 것을 상서하였다. 그해 간관 이첨(李詹)·전백영(全伯英) 등이 상소하여 북원과 통하는 것을 반대하고 친원파 이인임과 지윤(池奫)의 주살을 주장한 것에 연좌되어 친명파인 전녹생(田祿生)·정몽주·김구용·이숭인·염흥방(廉興邦) 등과 함께 귀양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성품이 침착하여 말이 적고 강개하여 큰 뜻이 있었으며, 경사에 해박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성명학(星命學)에도 통달하였다. 벼슬에 나아가서는 부지런하고 삼가하며 사람이 불의로 부귀함을 보면 멸시하였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다)代金永肫贈築隱-尹陟

  --김영돈을 대신하여 축은에게 준 윤척의 시--

 

好詩好酒老塵埃(호시호주노진애):시와 술 즐기며 속세에서 늙어 가니

目霧看花耳鳴雷(목무간화이명뢰):안개와 꽃 보고 우레 소리 듣네

雖然一念深山去(수연일념심산거):오직 한 생각, 깊은 산으로 가고파

樂只平生寢戶開(낙지평생침호개):즐거움은 오직 평생 문 열고 잠자기

高風商雒歌芝草(고풍상락가지초):높은 바람에 가을털 날리며 芝草를 노래하니   

淸水嚴陵捲釣臺(청수엄릉권조대):맑은 물은 嚴光의 낚시터이네

巖月江烟空挽我(암월강연공만아):바위 위에 뜬 달과 강 안개가 공연히 나를 만류하니

何時筇屐白頭回(하시공극백두회):어느때나 지팡이 짚고 신발 끌며 흰머리로 돌아갈까   

 

*嚴陵捲釣臺 : 후한의 엄광이 은거하며 낚시하던 곳.

*윤척(尹陟)

 ?∼1384(우왕 10). 고려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안숙(安淑)의 아들이다.

1350년(충정왕 2)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었고, 1363년(공민왕 12) 군부판서(軍簿判書)로서 앞서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경성(京城:開城)을 수복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었다. 우왕 때 영평군(鈴平君)에 봉해졌다.

 

b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