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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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충렬공 묘소 발견 관련 내용

(2002. 9. 17. 항용(제) 제공)    

 

--족보내 충렬공 묘소 발견과 관련한 내용 발췌

 

1) 인용 문헌 출전 : 안동김씨 제학공 파보 13P. 충렬공 조.

2) 출판년도 : 1990.

3) 내용

<전략> 墓所 舊譜云 安東府禮安縣 時 禮安爲安東屬縣. 而失傳二百年 萬曆甲午 始尋瑩域.  麗王所爲神道碑 姓孫禮生 所竪碣 破折. 壬寅 改封立碑. 天啓丙寅 十二世孫時讓 按節本道 以失墓時 故翰林金垓之塚 逼近犯葬 啓請掘移 且以 床石狹小 改備. 姓孫 尙璘 議置墓田定以十月上旬 每歲享祠

 

4)해석문

 묘소는 옛족보에 이르기를, "안동부 예안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때 예안은 안동에 속한 현이었다. 그런데 200년간 실전되어 오다가 만력 갑오(1594년)에 비로소 묘소를 찾았다.

고려왕(충렬왕)이 세운 바 있는 신도비와 후손 예생(禮生)이 세운 묘갈은 모두 부서졌다. 임인년(1602년)에 다시 봉분을 하고 비석을 세웠다.

천계 병인(1626년)에 12세손인 시양(時讓)이 본도(경상도) 안절사(관찰사)로 와서 묘가 실전해 있을 때에 한림 김해(金垓-광산인)의 묘가 아주 가까이 범장(몰래 장사지냄)해 있었으므로 묘를 파내어 옮기도록 요청하였고, 또한 상석이 협소하여 다시 설비하였다.

후손 상린(尙璘)은 의논하여 묘전(墓田)을 설치하였고 10월 상순에 매년 향사하기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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