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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요 자료 소개
15) 무과 급제 관련 자료 (2006. 6. 12. 항용(제)) (1) 자료 출처 : 계명대학교 학술정보 서비스실(팀장 장인진) (2) 자료면 : <만력 12년 갑신 추 별시 문무방목 >(萬曆十二年甲申秋別試文武榜目) (3) 자료 내용 : 乙科 第三人, 兼司僕 金時敏, 甲寅, 勉吾, 本安東, 居京, 父 中訓大夫 行司憲府持平 兼春秋館記注官 忠甲, 慈侍下, 雁行(兄 時晦, 時람, 弟 時愼, 時進)
(4) 해설 및 정리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무과 급제에 대한 논의가 있어 몇 가지 자료를 종합해 보았습니다. 집안 문중의 모든 족보에는 1578년에 급제한 ‘宣廟 戊寅 武科--1578년(선조11)’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학공파 문중의 역사 기록물 중 최대 서적인 <상락가승>(1895. 김구호 저)에도 같은 1578년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기타 여러 문헌, 중요 비문, 각종 인터넷 자료 등에도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대구의 한 분이 제공한 대구 계명대 소장 ‘갑신년 무과방목’ 자료에는 1584년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곧 계명대에 이에 대해 전화하여 서지상의 진본 여부, 기록내용 등을 확인하고 이것이 고본이며 필사본임과 1584년 무과 급제한 기록 내용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전 자료를 종합해 보았습니다.
1. 1578년(宣廟11. 戊寅) 무과 급제 기록 자료 가. 족보류에서 1)안동김씨 대동보(1979. 안동김씨 대종회 간) 2)제학공파보(무인보, 1938. 제학공파) 3)제학공파보(임인보, 1962. 제학공파) 4)제학공파보(경오보, 1990. 제학공파)
나. 각종 서책류에서 1)上洛家乘(1895. 金龜浩 저). 전 4책 중 2冊-義. 卷4. 3P 2)충무공 金時敏 장군(김준기(아우내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저. 2002. 10. 16. 국제심포지엄 발표내용)
다. 비석류에서 1)신도비(충민사 경내 신도비. 1974년. 권용직 찬, 김사달 서) 2)진주의 김시민 장군 전공비(金時敏將軍戰功碑, 경남 진주시 성동 499-7.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호 1972. 2.12. 지정. 1619년(광해11) 건립)
라. 인터넷에서 1) 디지털한국학(김시민 란) 2) 진주시청 홈페이지
2. 1584년 기록 자료 가. 계명대 소장 <갑신년 무과 방목 필사본>(만력12년, 갑신년-1584년, 선조 17년) 1) 자료명 : 『萬曆十二年甲申秋別試文武榜目』<계명대학교 소장>) 2) 기록내용 : 乙科 第三人, 兼司僕 金時敏, 甲寅, 勉吾, 本安東, 居京, 父 中訓大夫 行司憲府持平 兼春秋館記注官 忠甲, 慈侍下, 雁行(兄 時晦, 時람, 弟 時愼, 時進)
<종합 판단과 향후 과제> 모든 문헌과 비문, 족보 등에는 1578년으로 되어 있으나 유독 계명대의 <갑신년 무과방목 필사본>에만 1584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판단과 앞으로의 궁구방안을 제안합니다.
1. 계명대의 <갑신년 무과 방목>에 대한 적극적인 서지적(書紙的) 연구를 통해 진본 여부, 기록년도, 필자 등을 밝히는 작업 필요. 2. 무과 급제 1578년의 기록 중 가장 오래된 자료인 <김시민 장군 전공비(金時敏將軍戰功碑>(경남 진주시 성동 499-7. 1619년(광해11) 건립)의 기록보다 계명대 무과 방목이 더 오래 된 것이며 신빙성이 있는 자료인지를 밝히는 작업. 3. 1584년 급제로 가정시 김시민이 1년 전인 1583년 이탕개의 난 때 관군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운 것에 대한 설득력의 유무. 즉 김시민이 과거 급제 전에 장수로서 이탕개의 난에 참여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의 연구.
15) 관청 민원요청 내용-충민사 입구 도로 안내 표지 현 실태와 개선 요구점 (2006. 6. 26. 항용(제) 제공) 1. 민원 요청일 : 2006. 6. 26. 2. 민원 요청처 : 괴산군청, 충북 도청, 문화재청. 3. 민원 요청자 : 김항용 4. 민원 내용 : 1) 민원 공문
2) 세부 해설 자료 내용 : 충민사 도로 표지판 신설 가. 위치 :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괴산읍 괴산대교 나. 현상태 1) 충민사 도로 표지는 현재 충민사 입구(주 도로에서 안쪽 길로 약 10m 안)에 세워져 있음 2) 또 하나는 괴산에서 충주로 향다가 괴산대교 건너 감물과 칠성으로 나뉘어 지는 삼거리 길목에 높이 약 1.8m정도 크기의 작은 구 안내판이 있을 뿐임. 다. 문제점 1) 충민사 입구의 안내판은 도로를 지나는 차량에서 이를 잘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음. 2) 괴강 건너 삼거리의 구 도로 안내판은 너무 작아 눈에 잘 보이지 않음. 다. 해결 방법 및 요청사항 1) 충민사 입구로 부터 주 도로의 양 방향 200m 전방에 현대식 문화재 표식 도로 안내판(대형)을 설치하여 미리 준비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괴산대교 건너편 삼거리에 현대식 문화재 표식 도로 안내판(대형)을 신설해야 한다. 라. 사진 자료
<현 충민사 입구 도로 안내판>
2)괴강 건너 삼거리의 구 도로 안내판은 너무 작아 눈에 잘 보이지 않음.
다. 해결 방법 및 요청사항 1) 충민사 입구로 부터 주 도로의 양 방향 200m 전방에 현대식 문화재 표식 도로 안내판(대형)을 설치하여 미리 준비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괴산대교 건너편 삼거리에 현대식 문화재 표식 도로 안내판(대형)을 신설해야 한다.
라. 사진 자료
<현 충민사 입구 도로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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