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5. 각종 역사 자료 종합
3) 김시민 장군의 묘와 풍수 (2002. 2. 2. 영환(문) 제공) 충북 괴산에 가면 충무공 김시민 선조의 묘소가 모셔져 있고 근래에 새로 영정을 모신 충민사가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새로 모신 영정은 청전선생님의 역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직계 후손이 아니더라도 충무공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마음에서라도 한번 참배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멋모르는 제 눈에도 앞으로 강물이 흐르고 뒤에는 병풍처럼 산이 감싸고 있어 배산임수형의 명당이며, 옆으로는 날개가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풍수전문가가 탐방기를 쓴 것이 있어 옮겨 적으니 참배시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김시민장군 묘역과 풍수--
1) 충무공 김시민 장군묘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57번지 金時愍將軍 墓.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공을 세운 분이며, 이곳에 숙부 김제갑과 같이 모시는 사당 忠愍祠가 묘소의 오른쪽에 있으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이라 누가 노래했던가... 밤이 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낮의 길이가 짧다는 얘기인데 뉘엇뉘엇 서산 너머로 몸을 숨기는 겨울의 짧은 해를 바라보며, 누군가가 "동지가 언제지?" 하며 삼라만상이 동면하는 시간 속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보니 동지가 바로 어제인지라 어둠이 빨리 찾아오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으나, 한 곳이라도 더 보고, 더 배우고 싶어하는 회원들의 마음에는 겨울의 하루해가 더욱 짧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將軍의 墓所 앞에 넓고 푸르른 어름 위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衡山선생님이 " 강이 커 보여서 陽이 크므로 陰陽의 균형이 맞지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左右 靑龍白虎가 얼마만큼 확실히 감싸주었는지 확인을 해 보아야 될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잘 놓여진 다리 위를 건너면서 "이 다리는 누가 놓았을까?" 하자 "나라에 忠誠하면 國家에서 다리도 놓아주는 것입니다" 하고 서상석회원님이 말했을 때, " 저기를 잘 보십시요, 左靑龍이 단단하고 큰 바위로 이어져 이 앞에까지 감싸주고 있는 것이 보이지요?"하는 衡山선생님의 評이 이어졌다. 확실히 강 건너, 앞에서 보이는 形勢와 다리 위에서 보이는 形勢가 다르므로 빨리 現地를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더욱 發動을 하였다. 부지런히 담벼락을 따라 墓所 뒤로 올라가는 일행에서 떨어져, 필자는 먼저 미안스럽지만 월담을 하여 장군묘 앞에서 묵념으로 인사를 올리고, 左向을 側定해 보니 亥坐巳向에 丙破로 文庫消水를 취했다. 安山을 보니 主峰 좌측으로 봉우리들이 깃발처럼 이어 졌고, 우측으로 申方에 북처럼 생긴 봉우리가 있어 將軍大座形이라는 穴名을 빛나게 해 주고 있었다. 卯方에도 쌍둥이 탐랑성이 솟아 있고 주위의 砂格들도 잘 갖춰져 있어 좋으나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安山에서 내려온 산자락이 팔로 가로막듯 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文庫消水는 右旋龍에 左旋水라야 合法이므로 乙辰方의 물이 堂에 올라 丙字 天干으로 돌아 나가면 이것이 文庫消水法 또는 楊公의 進神水法이라 하여 "祿存流盡佩金魚"라고 하는 貴格이다. 二十四山論의 亥坐는 물이니 시냇물과 같은 물이다. 절기로는 小雪이다. 물이 펀펀하게 여울을 따라 길게 흐르면서 고루하여 두르고 깊게 모여야만 이 山에 眞氣가 모인다고 글에 이른 것을 보니 그 앞에 깊고 푸르른 강물이 더욱 돋보인다. 다시 월담을 하여 뒤늦게 일행의 후미로 합류하여 龍脈을 보러 올라가니 여기도 橫龍入首다. 건너편에 樂山이 받쳐주고 있고 鬼星이 밭 끝까지 버티어 주고 있으니 이 어찌 吉格이라 아니할 수 있으랴.... 이곳에서 衡山선생님이 회원들에게 한참을 설명 한 것으로 보아 이점을 말씀 하셨을 것으로 짐작된다. 墓所 쪽으로 눈을 돌리니 아래서는 담 때문에 안보였던 龍이 내리쏟듯 들어가며 左右 선익을 크게 몸짓을 불려 감싸 내리 안은 形相이야 말로 壯觀을 이루고 있다. 그 안에 將軍의 墓는 大窩穴의 품속에서 고요히 영면에 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으며, 衡山선생님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곳은 여주 世宗大王陵처럼 생긴 곳이라 말하고 있었다. 모두들 월담을 하여 묘 앞에서 예를 올리고 주위를 살펴본 바로는 실제는 어쩐지 모르지만 현재의 형태로는 약간 아래로 모셔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곳에서는 穴暈을 볼 수 있었고 정면과 주위 砂格을 둘러볼 때 將軍大坐形 이라는 것을 쉬게 알 수 있게 하는 자리였다. 나라에 忠誠을 다한 金時愍將軍의 墓所를 끝으로 오늘의 看山, 아니 辛巳年의 看山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점으로 향했다. 오늘의 看山總評을 衡山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으나, 사양하였으며, 주위에 다른 손님들도 많고 산만하여 더 권유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金時愍將軍 墓域이 처음 앞에서 볼 때 보다 現地에 가보니 정말 한가지 한가지가 절묘하게 갖춰져 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현지에 도착해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 합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바로 이곳이 아니었나 싶다. 이로써 2001년 저무는 辛巳年의 마지막 看山을 마치고 운전기사의 짜증스러움에 신경을 쓰면서도 불빛을 가르는 차안에서 오늘의 피로를 달래고자 安樂의 품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듀 辛巳年이여! 보람찬 한해였다고 외치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