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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직제학공(直提學公- 휘 맹헌)
▲ 직제학공(휘 맹헌) 묘소. (2006. 7. 8. 발용(군) 제공)
*<직제학공 빙장이신 공소공 묘소 탐방(일부 내용 전재)> (2006. 7. 8. 윤만(문) 제공)
▣ 양성이씨 묘역 ▣
직제학공(휘 맹헌)·첨정공(휘 자양)의 묘소를 참배하고 내려와 건너편 산모롱이로 올라서면 문온공파 별제공 문중에서 500여년동안 외손봉사를 하였던 양성이씨 묘역이 나옵니다.
1. 정절공 이옥
2. 공소공 이사검
3. 송죽헌 이휘
▲ 양성이씨 공소공(휘 사검) 묘소.
▣ 아름다운 외손봉사의 전통
공의 휘(諱)는 사검(士儉) 양성(陽城)인이다. 고려 우왕 7년(1381)에 나시어 세종28년(1446) 졸(卒)하시다. 시호는 공소공(恭昭公)이시다.
태종 5년(1405) 무과에 급제 사직을 지내고 태종 8년(1408) 충녕대군(세종)이 세자로 책봉되자, 태종의 명으로 세자를 보좌, 상호군에 승진하였고 세종11년(1429) 좌군검총제, 세종12년(1430) 경상좌도처치사(慶尙左道處置使) 세종16년(1434) 중추원부사, 세종17년(1435) 동지중추원사 세종19년(1437) 경상좌도도절제사를 거쳐 세종21년(1439) 동지중추원사로 왜인의 침입에 대비하는 비변책을 건의, 병조에서 시행케 하였다. 세종25년(1443) 인순부윤(仁順府尹), 세종26년(1444) 공조참판, 이해 경창부윤(慶昌府尹)이 되었고 세종27년(1445) 자헌대부 지중추원사에 올랐다.
고려의 강릉도절제사 자헌대부 정절공 이옥(李沃)의 아들이시다.
배위(配位) 이천서씨와의 사이에 아들이 한 분 계시는데 휘(諱)가 이휘(李徽 : ?~1456)로 자는 미경(美卿), 호는 송죽헌(松竹軒)이시다. 세조 원년(1455) 세조 즉위에 협조한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정되고 동부승지에 승진하였다. 이듬해 공조 참의로 있을 때 처남이신 이개(李塏)·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능지처참형을 당하고 가산은 적몰되었다.
장녀는 직제학을 지낸 대은암(大隱庵) 김맹헌(金孟獻)에게, 차녀는 현감을 지낸 인동인 장우(張?)에게, 삼녀는 관찰사를 지낸 영월인 신영손(辛永孫)에게 출가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2년 8월25일】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지금 내선(內選)한 처녀(處女) 윤씨(尹氏)는 김맹헌(金孟獻)의 외손인데, 김맹헌의 아내는 곧 난신(亂臣) 이휘(李徽)의 누이이니, 궁내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연좌(連坐)된 자도 오히려 불쌍한데 윤씨는 연좌에 관련되지 않았으니, 어찌 이것으로 허물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김맹헌의 첫째 딸은 현감(縣監)과 현령(縣令)을 지낸 파평윤씨(坡平尹氏) 윤기(尹沂)에게 출가하였다.
공의 묘소는 장방형 호석을 둘렀는데 규모는 전면 6.5m, 측면 8.5m, 높이 1길반으로 상당히 큰 편이다. 비갈과 상석이 각각 2개씩이며, 무인석이 1쌍 있는데 왕릉이 아닌 사대부 묘소에 무인석을 쓰는 예가 없는데 특이한 사례다. 이 무인석은 긴 칼을 집고, 머리에 투구를 쓴 형상인데 공께서 세종17년(1435) 동지중추원사로 송골매를 가지고 명나라에 갔는데 가는 도중 이 송골매가 죽었다. 공이 죽은 매를 가지고 북경에 도착 황제의 대궐에 절하며 우니 황제가 공의 태도를 가상하게 여겨 장군의 모자를 내렸는데 이 무인석의 머리 모양이 바로 그 투구를 닮았다고 한다.
직제학공(휘 맹헌) 묘소에서 왼쪽 산기슭에 있는 공소공(휘 이사검) 묘소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는 공의 아버지 정절공(휘 이옥)의 신도비가 있는데 정절공 묘소는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최근에 찾았다.
공소공(휘 이사검)에 대해서는 안동김씨문온공파 직제학공계 별제공(휘 金震紀) 문중(포천)에서 500여년 오랜 세월에 걸쳐 외손봉사를 해 오다가 최근에 양성이씨대종회에서 이 사실을 알고 시제에 참례하다가 수년 전부터 양성이씨대종회에서 향사를 맡아오고 있다고 한다. 추정컨대 외 아드님(이휘)께서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돌아가시매 절손이 되어 외손봉사를 하지 않았나 생각되었으나 양성이씨정절공파대종회에서 전하는 말로는 전남 나부지역에 많은 후손들이 살고 있고 신학문을 많이 하여 다수의 학자들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사육신 사건과 연장선상에 있는 계유정란 때 피살되신 백두산 호랑이 좌의정 시 충익공 절제 김종서(金宗瑞) 장군과 직제학공 김맹헌(金孟獻)과는 사돈지간이시다. 즉, 김종서 장군의 따님이 김맹헌공의 맏아들 김자정(金自?)에게 출가하여 맏며느리가 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가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선조님들의 묘소와 유적을 살펴보는데 최선을 다하는 안사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나날이 발전하는 안사연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뒤늦은 후기를 마감합니다.
*<직제학공(휘 맹헌) 동년록> (2005. 8. 21. 윤식(문) 제공)
*출전 : 국조방목에서 발췌
동진사 1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