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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07년도 문온공파 참의공계 시제 참예기 (2007. 10. 7. 발용(군), 윤식(문) 제공)
◇ 일시 : 2007년 10월 3일(수) ◇ 장소 : 전북 완주군 고산면 소농리 참의공 묘역 ◇ 참석 : (무순, 경칭 생략) 발용(군), 문온공파 참의공문중, 문온공파 회장단 및 이사진, 재호(문)
지난 9월 말, 참의공(參議公 : 휘 仲舒) 시제를 앞두고 문온공파 참의공대종회(文溫公派 參議公大宗會) 영국 회장께서 문온공파대종회(文溫公派大宗會) 회장단 및 이사진을 초청하였습니다. 그 동안 참의공 시제에는 참석하지 못해 늘 죄송스러웠는데, 참예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참의공문중에 다시 한 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마침 좋은 기회라 우리 문중의 각종 행사 때마다 봉사해 주시는 발용(군) 종친께 사진촬영을 부탁드렸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귀한 시간을 내주신 발용 종친께도 감사 말씀 드립니다.
■ 참의공 묘역 가는 길 07:15분 서울 신라호텔 인근 태극당 앞에 집결한 참의공문중 종친분들과 문온공파 광우 회장 및 임원(부회장 영윤, 총무 윤만, 이사 광도, 감사 윤식), 재호(문), 발용(군) 종친 등은 관광버스에 올라 전북 완주군의 참의공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죽전정류장에서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싣고, 신갈정류장에서 재승 고문께서 합류하신 다음 09:38분 익산IC를 빠져나와 10:00시경 참의공 묘역이 있는 소농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참의공 묘역까지 오는 동안 재승 고문께서는 문온공 할아버지의 셋째아드님 승지공(휘 明允)과 최영 장군과의 관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 주셨습니다. 다음 길안내는 2003년 4월 판서공(휘 愃) 시제 참예시에 기록한 내용으로 논산IC로 나와서 참의공 묘역으로 가는 길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버스 뒷좌석에 앉은 관계로 도로 이정표를 자세히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사과 말씀 드립니다.
◈ 참의공 묘역 가는 길 도농교회 앞 아름드리 느티나무에서 참의공 묘소를 바라보니 불과 4년 만에 묘역 주위에 심은 나무들이 크게 자라서 묘역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 도농교회 인근에서 바라본 참의공 묘역. 길가의 감나무에 잘 익은 감들이 탐스럽게 열렸다. 자그마한 저수지를 지나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감나무 가지마다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가을녘 할아버지 묘소로 올라가는 산길이 마음을 푸근하게 만듭니다. 묘역 입구에 오석(烏石)으로 만든 표석(表石)은 2003년 3월 30일 건립된 것으로 임피현령공(휘 自垸)과 배위 청주한씨 할머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임피현령공(휘 자완)과 청주한씨 할머니 묘소 천장 기록을 적은 <천봉기>. 묘역 입구에 세워져 있다.
■ 정기총회 11:00시 정각, 참의공대종회 정기총회에 앞서 영국 회장께서 문온공파 광우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재호(직제학공계) 종친 및 발용(군) 종친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영국 회장 주재로 열린 정기총회에서는 참의공대종회 임원진 소개에 이어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감사보고, 재무보고 등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재승 고문께서는 충렬공과 문온공의 약전(略傳)을 포함하는 <사료집> 발간 추진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 참의공 시제 참의공 묘역은 잔디가 잘 자라 4년 전보다 잔디가 잘 자랐습니다. 참의공 묘역은 동향(東向)으로 북쪽으로 거대한 산줄기가 둘러막고 있으며, 묘역 앞으로 저 멀리 차령산맥의 험준한 산줄기들이 잇달아 죽죽 내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 앞으로 문필봉(文筆峰)인 듯한 삼각형 모양으로 잘생긴 산이 약간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참의공 묘역에는 맨 위에 참의공(휘 중서)과 숙부인(淑婦人) 경주김씨 할머니를 합장으로 모셨습니다. 그 바로 아래에 아드님이신 임피현령공(휘 自垸)과 공인(恭人) 청주한씨 할머니께서 상하분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맨 아래에는 현령공의 둘째아드님 현감공(휘 允精)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온공파는 크게 3개 소파(직제학공계, 참의공계, 사인공계)로 구성돼 있는데, 휘 중서 할아버지의 후손이 참의공계입니다. 참의공 할아버지께서는 부사공(휘 明理)의 둘째아드님이십니다. 계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 문온공(휘 구용) → 2子 부사공(휘 명리) → 1子 직제학공(휘 맹헌), 2子 참의공(휘 중서), 3子 사인공(휘 계우) 참의공 묘소는 몇 해 전에 새로 건립한 거대한 규모의 비석 옆에 옛 비석 2기가 서 있습니다. 오석으로 세운 신비(新碑)에는 ‘조선국 통정대부 호조참의 안동김공중서지묘 배 숙부인 경주김씨 부좌(朝鮮國 通政大夫 戶曹參議 安東金公仲舒之墓 配 淑夫人 慶州金氏 祔左)’라 적혀 있습니다. 옛 비석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그 중 한 기는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대리석에 비문을 새겼습니다. 묘소 앞에는 좌우에 문인석 1쌍을 세웠습니다.
참의공 헌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헌 : 영국(참의공문중 회장) 아헌 : 광우(문온공파 회장) 종헌 : 용구(참의공문중 부회장) 독축 : 연근(참의공문중 고문) 집례 : 용태(참의공문중 총무이사) 집사 : 경회(참의공문중 재무이사), 진식
제물은 일반적인 다른 시제와 유사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삶은 돼지머리를 제물로 올리는데, 달걀 노른자위를 얇게 펴서 만든 지단으로 돼지머리를 감쌌습니다. 시제를 올린 뒤 이 돼지머리를 썰어서 참예한 종친들에게 나누어 드리는데, 안주로도 훌륭했습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에는 참 요긴하게 쓰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임피현령공 시제 현령공 묘역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상하분으로 모셨는데, 참의공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비석을 새로 세웠습니다. 묘비에는 ‘사헌부 감찰 임피현령 안동김공자완 배 공인 청주한씨(司憲府 監察 臨陂縣令 安東金公自自垸 配 恭人 淸州韓氏)’라 새겨져 있습니다. 현령공과 배위 청주한씨 할머니의 옛 묘소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는데, 이곳으로 옮겨 모신 것이라 합니다. 옛 묘소는 상하분이었는데, 상석은 앞쪽에 2기를 나란히 놓은 형태였다고 합니다. 참의공문중에서는 옛 묘소 형태로 모시기 위해 예전 형태로 문인석 1쌍을 좌우에 배치하고, 새로 마련한 상석 2기를 역시 좌우에 나란히 설치했다고 합니다. 현령공의 배위이신 청주한씨 할머니는 양절공(襄節公) 한확의 셋째 따님이십니다. 한확 선생의 다섯째 따님이 바로 성종의 모후이신 인수대비(소혜왕후)이십니다. 즉, 현령공께서는 성종의 이모부가 되십니다.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로 현령공과 청주한씨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성종께서 친히 지관을 보내 명당을 찾았다 합니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현령공과 청주한씨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는 경향 각지의 관리들이 말을 타고 장지(葬地)를 찾아왔는데, 말고삐를 매어놓을 나무가 모자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초헌 : 영국(참의공문중 회장) 아헌 : 영윤(사인공계 회장) 종헌 : 현수(참의공문중 부회장) 독축 : 연근(참의공문중 고문) 집례 : 용태(참의공문중 총무이사) 집사 : 경회(참의공문중 재무이사), 진식
시제 참예 후 정성껏 마련해 주신 음식으로 점심을 들고, 14:20분 상경길에 올라 15:45분 입장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대절버스를 세우고 참의공문중 며느님들께서 정성껏 싸 주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분들의 정성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참예단 일행은 16:40분경 입장휴게소를 나와 17:35분에 무사히 신라호텔 인근에 도착하니 낮 동안 맑았던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후 참의공문중 종친들께서는 작별인사를 나눈 다음 귀가하였습니다.또한 영국 회장께서는 광우 회장을 비롯한 문온공파 임원진 및 재호, 발용 종친에게 저녁을 대접하셨습니다.참의공 시제에 참예할 수 있게 초청해 주신 참의공문중 어르신들과 종친 여러분, 그리고 사진촬영을 맡아 주신 발용 종친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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