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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부시공(휘 明理) 묘표 복원 공사 (2009. 10. 22. 윤식(문), 발용(군) 제공)
• 일시 : 2009년 6월 6일 • 장소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가양리 선영 • 참석 : 16명(존칭 생략, 무순) 발용(군사공파), 광우(문온공파 회장), 영옥, 영국, 영환, 수길, 재호, 도만, 유만, 효만, 의만, 윤만, 태연, 광도, 길상, 윤식
▲ 08:00시 정각부터 부사공 옛 묘표 발굴작업이 시작되어 무사히 부사공 묘소 옆으로 이동하였습니다.
▲ 묘표 복원 위치를 살펴보는 종친들.
▲ 묘비와 옆으로 나란히 봉분 왼쪽으로 결정하였습니다.
▲ 언뜻 보기에는 두어 명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포클레인을 이용해 조심스레 복원 위치로 옮기는 중입니다.
▲ 원형이 온전한 계림군부인 할머니 묘표부터 세웠습니다.
▲ 부사공 할아버지 묘표는 여러 차례 들었다 내려놓았다 한 끝에 겨우 맞출 수 있었습니다. 접착제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 맨 윗부분을 포클레인으로 들어올려 이동하는 중입니다.
▲ 기단부를 세우고 중간 부분을 맞추는 중입니다.
▲ 접착제를 바르고 상단 부분을 붙일 준비 중입니다.
▲ 앞, 뒤, 옆에서 살살 자리를 잡아가며 붙이는 중입니다. 이때 현장에 계신 종친들 모두 긴장했습니다.
▲ 복원 후 부사공 묘표(왼쪽)와 계림군부인 묘표입니다.
▲ 앞뒷면 글자를 살펴보는 중입니다.
▲ 앞뒷면 모두 위쪽 몇 글자가 마멸돼 판독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추후 탁본을 떠서 확인할 예정입니다.
▲ 복원 후 고유제를 올리는 중입니다.
▲ 복원 후 뒤쪽에서 찍은 장면입니다.
문온공파종회는 2009년 6월 6일 부사공(휘 明理)과 계림군부인 경주이씨 할머니의 옛 묘표(墓表) 한 쌍을 부사공 묘역에 복원 근수(謹竪)하였습니다. 부사공께서는 1361년(공민왕 10년)에 태어나 진양대도호부 판관, 경기·경상 경력, 성천도호부 부사(副使) 등을 역임하시고, 경기도 광주의 탄곡리에서 만년을 보내시다 1438년(세종 2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부사공 묘역에 있던 옛 묘표는 1989년경 부사공 묘소를 광주의 목리(나뭇골)에서 가양리 선영으로 천장(遷葬)하면서 전래의 풍습에 따라 가양리 선영에 묻고 새 묘비(墓碑)를 세웠다고 합니다. 천장 당시 1439년(正統 4년)에 제작된 부사공 묘지호(墓誌壺)가 출토되었습니다. 이로 보아 묘표도 이 시기를 전후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묘표 뒷면의 글자가 마멸돼 추후 탁본을 떠서 확인할 예정입니다.
부사공 묘지호는 고려시대 청자상감 기법과 조선 초기 분청 기법이 동시에 나타나는 매우 특이한 자기(磁器)로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부사공 옛 묘표 역시 조선 초 석조 유물로서 묘지호 못지않은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묘표 재질은 화강암이며, 기단부와 비신(碑身)을 한덩어리로 제작한 것이 특징입니다. 전체적으로 장식적 요소를 배제해 매우 고졸(古拙)하면서 단아한 느낌을 주는 조선 초기 양식의 대표적인 묘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기단부는 무게중심과 땅 속에 묻히는 부분임을 감안해 둔중하게 처리하였으나, 지표면으로 돌출되는 부분부터 비교적 정교하게 장방형으로 다듬었습니다. 장방형 비신은 앞면을 다듬어 가장자리에 테를 둘러 마감하고, 그 안쪽에 글자를 새겼습니다. 뒷면에는 테를 두르지 않고 앞면보다는 간략하게 처리하였습니다.
부사공 묘표는 그 동안 잊혀져 있다가 2007년 8월 26일 금수단과 가양리 선영에서 벌초를 하면서 천장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던 영환 종친의 안내로 재호, 윤만, 발용, 윤식 종친 등이 선영 인근에서 다시 찾아서 위치를 확인하였습니다. 이때 부사공 묘표는 세 부분으로 부러져 있었으며, 할머니 묘표만 온전한 상태였습니다.(글 보러가기 - 클릭하세요.)
그 뒤 2009년 3월 28일 문온공파종회 임원회의에서 부사공과 계림군부인 묘표 복원 문제가 영환 종친의 발의로 상정돼 문온공파종회는 묘표 복원을 의결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한 끝에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한다는 방침 아래 특수 접착제를 사용키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6월 6일 광우 회장 등 파종회 임원들과 별제공문중 종친 등 16명이 참여하여 묘표 복원공사를 시행했습니다. 무더운 날씨를 고려해 이른 아침인 08:00시경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포클레인과 삽 등을 이용해 땅 속에 2/3쯤 묻혀 있던 묘표 한 쌍을 발굴, 부사공 묘역으로 옮겨서 2시간 가량 작업하여 복원작업을 끝냈습니다. 마침 쉬는 날이라 군사공파 발용 종친께서 동참해 사진촬영을 맡아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말씀 드립니다.
부사공과 계림군부인 할머니는 나뭇골에 모셔져 있을 때에는 상하분이었으며, 묘표도 온전했다고 합니다. 또한 광도 종손의 증언에 따르면, 천장 당시 가양리로 묘표를 옮겨올 때에도 파손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 묘표를 땅 속에 묻을 때 또는 그 이후에 묘표가 손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 부사공과 계림군부인 묘표 복원공사에 대한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발용 / 글 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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