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평의공파(구정)

본문

p02.png 8.주요 선조님 소개

     6) 송은공(松隱公) 광수(光粹)  (1468~1563)

극해의 아들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1501년 연산 신유에 진사가 되고 태학에서 연수중 연산정란을 예견하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리에 내려와 남산록 소담 上에 영귀정을 짓고 시가를 읊으며 청빈하게 생애를 보냈다. 사후에 장대서원에 제향 되었으며 송은집 과 경심잠이 세상에 전한다.

한편 임란에 출장입상으로 산하 재조의 위업을 남긴 류성룡은 외손이며 증손인 사원 사형, 사정도각각 창의 하여 국란에 유공하고 외증손 김치중은 의병장으로 순절 했다. 영귀정은 문화재 234호로 지정 되었다.

 

 <영귀정(詠歸亭)>

ankim04-9f.jpg

  <2002. 7. 안사연 탐방 당시>

 

ankim04-9g.gif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234호

지정일자 : 1991. 3. 25.

소 유 자 : 안동김씨문중

소 재 지 :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산 13-1

위치좌표 : 북위 36° 25‘, 동경 128° 46“

 

영귀정은 서애 유성룡(1542∼1607)의 외할아버지인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자는 國華, 1468∼1563) 선생이 연산군 때 관직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며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1500년경에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미천(眉川) 강변의 하양층군 점곡층의 접촉변성대로 단단한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길이 50m, 높이 10m의 하식애 지형의 정상부언덕 위에 자리하여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북동향하여 자리 잡은 정자로의 출입은 뒤편으로 하게 하였으며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 담을 둘렀다.

 

지금의 정자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허물어진 것을 1780년 경에 함인재(含忍齋) 김종록(金宗祿)의 주관으로 후손들이 중수․복원한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5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앞에서 보아 앞면이 뒷면이 되고 뒷면이 앞면이 된다. 그리고 대문 안과 밖에 돌계단을 두어 이를 통하여 진입하도록 되어있다.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얹고 그 위에 원주를 세웠다. 좌우측은 온돌방으로 하고 어칸은 2통 칸의 대청방으로 구성한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앞면에는 반 칸의 툇마루를 달고 평난간을 얹었다. 오량가로 제형판대공을 얹었고 주상에 주두를 놓아 장혀, 도리, 보를 받치고 있다. 창방과 도리와 장혀사이에 소로를 두어 장식한 굴도리집으로 양봉이 보를 받고 있다.

 

어칸대청과 툇마루는 우물마루형식이고 툇마루의 평난간의 난간판에는 완공을 하여 장식하였다. 창호는 아주 다양한데 방에는 여닫이 형식의 세살문 궁창, 널 세살문으로 되어있고 툇마루 측면과 대청방의 앞뒷면에는 골판문으로 되어 있다. 대청 내부의 좌우방 출입문은 모두 들장지문 형식의 격자살무늬문으로 되어있고 들쇠와 들어열개 고리가 어우러져있어 장관을 이룬다. 하천의 하상에는 다양한 크기의 자갈과 모래 그리고 양호한 식생이 조성되어 있는 등 양호한 습원상태가 형성되어 있다. 호안에도 제방을 자연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하여 두어 점곡 제2교를 비롯한 물가에는 한 여름 사람들이 모여든다. 예전에도 이 곳은 선비들이 냇가에 은거 강학하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5칸 팔작지붕, 툇마루를 설치하고 난간 판으로 장식한 전형적 정자건물이다

 

 <영귀정(詠歸亭-송은 김광수 선생 정자) 소개> (2002. 6. 12. 정중(도) 자료 조사. 제공)

종목별 , 지정번호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234호.  명칭 :영귀정 (詠歸亭).  분류 :누(정).각.  수량: 1동. 지정일: 1991.03.25. 소재지:경북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319. 소유자:안동김씨문중. 관리자:안동김씨문중

 

영귀정은 서애 유성룡(1542∼1607)의 외할아버지인 송은 김광수(1468∼1563) 선생이 연산군 때 관직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며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00년경으로 추정한다.

이 정자는 미천강변의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1) 사진 자료 소개

 (2) 장대서원(藏待書院--송은 김광수 선생 배향서원) 소개 (2002. 6. 12. 정중(도) 자료 조사. 제공)

 

■ 소재지 :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

장대리 기슭에 경현사와 강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상리 출신인 오봉 신지제가 세운 곳이다.

조선조 광해군의 혼정으로 공조정 랑의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하여 1610년에 서당을 열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오봉 타 계 37년만인 1663년에 후진을 기르던 강당에 스승을 경모하는 뜻으로 경현사를 세워 향사를 하고 다음 해에 경정 이민성을 모셨다. 1702년에 경현사를 서원으로 추숭하고 송은 김광수, 회당 신원록선생을 함께 모셨다. 1868년 8월에 조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었으며 1996년에 중건하였다.

 

ankim04-9h.jpg

<장대서원>

 

ankim04-9i.jpg

<경현사>(송은공을 모시고 있음)

 

ankim04-9j.jpg

<경현사 내의 송은공 위패>

 

  (3) <송은집> 사진 자료 소개 (2003. 5. 20. 태서(익) 제공)

  (4) <연려실기술>내 기록 내용 종합  (2003. 11. 11. 윤만(문) 제공)

 

▣ 연려실기술 별집 제4권 사전전고(祀典典故) 서원(書院) ▣

○의성(義城) 장대서원(藏待書院)임자년에 세웠다. 김광수(金光粹)-호는 송은(松隱), 진사다. ㆍ이민성(李民宬)-호는 경정(敬亭), 승지를 지냈다. ㆍ신원록(申元祿)-호는 매당(梅堂)이다. ㆍ신지제(申之悌)-자는 순보(順甫), 호는 오봉(梧峯), 승지를 지냈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본관은 아주(鵝州)요 의성(義城)에 살았다.

 

讀花神國傳戱吟(독 화신국전희음)

                    -송은 김광수 선조님 詩-

-화신국전-

자손들아 한 이백년은 살아야 하고

남녀 둘은 낳아서 전해야 한다.

산수(山水)를 좋아하면 향기가 절로 나고

나무를 잘 가꾸면 식물(食物)도 난다.

말이 있다 해도 겨우 잔치집에 가고

소는 없으면 밭을 못 간다.

웃음소리가 언제나 떠들썩하면

사철 의복도 하늘이 준다.

의복을 깨끗이 입을 양이면

좋은 연석에도 가게 되리라.

원컨데 후생들아 화신국(花神國)에 태어나

언제나 가족들과 같이 즐겨라.

 

      <萬年松亭韻 >

 

一別俎徠問幾時 * 靑香細細來詩筆

일별조래문기시 * 청향세세래시필

栽封蒼翠萬年姿 * 殘子紛紛落硯池

재봉창취만년자 * 잔자분분낙연지

葉密幽禽啼自在 * 昻莊獨立村園裏

엽밀유금제자재 * 앙장독립촌원리

苔斑鱗甲老尤奇 * 不許尋常俗士知

태반린갑노우기 * 불허심상속사지

--------------------

묻노니 조래산(俎來山) 떠나온지 몇해런고

만년송(萬年松) 푸를 그루 고이고이 심었노라

 

맑은 향(香) 은은하게 시축(詩軸)에 풍겨오고

송화(松花)가루 날아서 벼루에 떨어진다

 

푸른 잎 무성하니 새 소리 한가롭고

늙은 줄기 이끼끼니 인갑(鱗甲)인양 아롱진다

 

은사(隱士)의 동산(東山)에 우뚝히 서 있으니

심상(尋常)한 저 속사(俗士)야 몰라준들 어떠리

---------------------

 

靑苔一逕隔紅塵 * 車馬縱然嫌地僻

청태일경격홍진 * 차마종연혐지벽

幽興相尋日轉新 * 鶯花曾不厭家貧

유흥상심일전신 * 앵화증불염가빈

看山坐處凉生腋 * 自喜萬年松影裏

간산좌처량생액 * 자희만년송영리

高枕眠時翠滴巾 * 四時風景屬閑人

고침면시취적건 * 사시풍경속한인

--------------------

이끼낀 오솔길이 홍진(紅塵)에 막혔으니

그윽한 흥(興)을 찾아 날로 기분 새로워라

 

후미져 으슥한곳 차마(車馬) 어이 오랴마는

집이 가난하다 앵화(鶯花)야 싫어하랴

 

산을 보고 앉았으니 어깨는 서늘하고

높은 베개 잠이드니 푸른 빛이 낯을 덮네

 

만년송(萬年松) 그늘속에 한가로운 이몸이라

아름다운 사시풍경(四時風景) 나홀로 기뻐하리

 

   


-만년송=지정보호수, 소재지: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만취당 앞 수령 600년 향나무임,

-조래산:중국의 산, 조=한자가 없음(두인 변에 조 임)

-뒷날 여헌 장현광 선생은 이 시를 전해 듣고 이 어른이 흉중이 여락해서 일점의 녹루도 없도다 하고 늘 만년송 안부를 물었다 한다

 

 

   

 

(5) 송은 선조 경심잠(병서 - 김억 제공)

松隱 先祖 警心箴(幷序)

士生斯世, 參於三才, 而壽夭窮達命也已矣, 心之操捨善惡, 在吾一身, 豈敢斯須忽哉, 夫人之異乎禽獸者, 有禮義也, 人無禮義, 可謂人乎, 唐虞邈矣, 淳風日釉, 而士習卑陋, 識者寧不寒心, 是故作箴十章, 以自警爲一家子孫之勸戒云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三才(天, 地, 人)의 하나로 참여하여 수(壽)하고 요(夭)하고 궁(窮)하고 달(達)함은 운명이라 하지만 선을 택하고 악을 버리는 것은 내몸에 달렸는데 이를 어찌 잠시라도 소홀히 할까 보냐. 대저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예의가 있기 때문인데 예의가 없으면 어찌 사람이라 하리요. 요순시대의 아름다운 풍속은 사라져가고 선비의 옛정은 저속해지니 어찌 한심치 아니할가. 고(故)로 내가 경심장 열대목을 지어 자신을 경계하고 子孫들의 경계를 권하노라.

 

p05.png 一.  事     親

子於父母, 恩難報答, 宜得甘旨, 以供晨夕, 勿毁四體, 攪動親心, 一出鄕關, 感念益深, 我有偏母, 年逾七旬, 西山日迫, 愁淚滿巾, 烏鳥反哺, 人而恝然, 我斟我酒, 惟壽生前

- 어버이 섬기는 일

자식이 부모에게 은혜를 보답함이 어렵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조석으로 받들고 제 몸을 조심하여 부모의 근심을 없게하며 하루라도 외박을 하면 부모 걱정 절로 된다. 나에게는 편모가 계시는데 70이 넘은지라 돌아가실 날 멀지 않으니 근심 걱정 뿐이로다. 까마귀도 반포(反哺)의 효(孝)를 하는데 사람이 어찌 부모 걱정 아니할까. 어버이 살아 계실 적에 내손으로 정성껏 봉양하리라.

 

p05.png 二.  輔     君

爲臣子者, 事君盡忠, 其曰不然, 乃禽乃蟲, 比干諫死, 萬古一臣, 李斯誤國, 千載罪人, 臣而反逆, 萬死誰惜, 宜罷重典, 夷滅三族, 君臣定分, 上天鑑臨, 我載我王, 益堅丹心

- 나라에 충성할 일

무릇 백성된 자는 나라에 충성을 다해야 되나니 그렇지 못하면 짐승과 같으리라. 비간(比干, 殷의 주왕시대의 충신)은 목숨을 바쳐 간하였기에 충신이 되었고 이사(李斯, 진시황의 악정을 도운 정치가. 참형됨)는 나라를 그르쳤기에 죄인이 되었다. 신하로서 나라에 반역함은 죽어서 마땅하며 나라의 엄한 법은 삼족을 멸하고 군신간의 정한 분수 하늘의 마련이라 내 나라 내 임금을 단성으로 도우리라.

 

p05.png 三.  祭     廟

茫茫宇宙, 享祀爲重, 是用立廟, 小心欽奉, 公鄕大夫, 以及下士, 各遵祭禮, 宗子傳祀, 彼何人斯, 慢不致誠, 我有祠宇, 蕭灑三楹, 每歲明朝, 四仲吉日, 我盡我誠, 香火不輟

- 제사를 받드는 일

드넓은 이 세상에 봉제사가 중하니라. 그러므로 사당을 세워 성의껏 받드나니 삼공(三公)의 귀한 사람에서 하나의 서인에 이르기까지 제례에 따라 맏아들이 행사하니 그 어떤 사람인들 소홀히 할 것인가. 우리집 가묘도 삼간이 소연하다. 해마다 신년 명절과 사중길일(四仲吉日, 한식·단오·추석·동지)에는 성의를 다하여 제사를 받드리라.

 

p05.png 四.  正     家

一家之內, 夫作妻綱, 唱而和之, 服事巾裳, 子女童僕, 尊卑有級, 何物庸老, 變亂家法, 綠衣黃裳, 余甚痛惜, 厥妃奚罪, 葵百飢泣涕, 冠屢倒罷, 尾大難制, 我正我家, 以戒後裔

- 집을 바르게 다스리는 일

대개 한 집안에서는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되나니 남편이 행하면 부인이 따르는 것은 男女간에 지켜야 할 예절이다.

수하와 비복들도 상하(上下)의 체통이 있는데 어찌 늙음을 핑계삼아 집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랴. 부인네의 과분한 허식은 내 심히 유감스럽고 여자의 잘못은 가난을 원망하는데서 연유한다. 예절이 바르지 못하면 어른이 집을 다스리지 못하니라. 내 몸과 내 집을 바르게 하여 후손을 경계하고자 하노라.

 

p05.png 五.  友     愛

惟兄與弟, 本是同根, 及其長成, 婚嫁他門, 姜公一被, 荊樹再花, 一何奇美, 其心孔嘉, 凡今之人, 相視如客, 分寸之利, 背面反目, 鴻或離行, 言之可慙, 我友我弟, 和樂且湛

- 형제 남매 화목할 일

형제 남매는 같은 부모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배워서 성년이 되면 각기 다른 곳에 결혼을 한다. 강공(姜公, 후한 때 효우로 이름있는 사람)은 형제간에 같은 이불을 덮었고 진전의 집 형(荊)나무는 다시 꽃이 핀다(荊樹復生 兄弟 安樂의 眞田三兄弟 故事). 이것은 모두 선인들의 아름다운 마음이로다. 지금 사람들은 서로서로 남같이 보고 작은 이익으로 각기 다투나니 기러기의 질서있는 행렬을 보아도 부끄러운 일이다. 내부터 우애하기를 힘써 화락하게 지내리라.

 

p05.png 六.  謹     刑

傷不復續, 死不再生, 其可誤按, 以亂民情, 凡爾有司, 愼勿暴刻, 一失其中, 悔將何及, 蒼頭赤脚, 走卒庸童, 葵賴任觸怒, 鞭背生蟲, 是亦人也, 豈無顧憐, 我寬我意, 誓不濫焉

- 형벌을 삼가할 일

한번 상하면 붙이지 못하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나니 형벌의 판단이 잘못되면 백성은 혼란하다. 무릇 형벌을 맡은 사람은 포악하고 각박함을 삼가할 것이다. 한번 중용을 잃으면 후회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종과 하인과 어린이들이 제 잘못으로 매를 맞는다 해도 그도 또한 가엾은데 내 뜻 너그럽게 가져서 매사를 조심하고 범람함이 없도록 하리라.

 

p05.png 七. 廢     讒

悴爾墾人, 利口暢暢, 伺顔善誘, 其甘如蜜, 大而天下, 小而家國, 聞一讒間, 萬端生隙, 一掩紅顔, 夫婦參商, 一此蜂衣, 父子豺狼, 巧舌至此, 寧不愧慄, 我堅我志, 去讒不納

- 남을 헐뜯지 말 일

귓속말로 남을 험담하면서도 좋은 말로 꼬이듯 하니 그 말이야 꿀같이 달지만 크게는 천하(天下)로부터 나라와 가정에 이르기까지 험언으로 서로 이간질하면 만가지 감정이 생긴다. 부부간에도 얼굴을 붉혀 의사가 상치되고 부자간도 이리같이 무서워지나니 이처럼 무서운 험언을 하고도 어찌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가. 내뜻 굳게 가져 험언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리라.

 

p05.png 八.  愼     色

蛾眉晧齒, 朱顔綠髮, 悅人心目, 爛人腸腋, 聖智明料, 不邇尤物, 彼何狂士, 而作淫荒, 狂甘雲雨, 褻瀆綱常, 行同犬豕, 慙穢日彰, 衆口悴諦, 醜不可言, 我修我身, 以訓子孫

- 여색을 삼가하는 일

나비 눈썹 흰 이빨의 아름다운 여자는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지만 남자의 정력만 소모하는 것이다. 밝은 판단으로 여색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음란하여서 달콤한 교정에 사로 잡혀 짐승같은 행동이 날로 더해지고 남의 비방을 받게 되니 부끄럽지 아니한가. 내 몸을 조심하고 자손을 훈계하리라.

 

p05.png 九.  結     友

蓬生麻中, 不扶而直, 沙之在泥, 自然而黑, 芝蘭善友, 不能自負, 表裏異者, 吾友何取, 擇須勝巳, 交必端肅, 切磋磨琢, 相輔以德, 平生所思, 不過忠孝, 我礪我節, 前賢是效

- 친구를 잘 사귀는 일

따붓(蓬)이 삼밭에서 자라면 저절로 곧아지며 흰 모래가 진흙에 섞이면 자연히 검어진다. 지란(芝蘭)같은 좋은 벗은 배신함이 없고 표리(表裏)가 다른 사람 사귀지 말 것이다. 모름지기 훌륭한 벗은 단정하고 엄숙함이니 충심으로 서로 도와 갈고 닦아서 평생토록 힘쓸일 충효에 불과하다. 내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어 옛 성현을 본받으리라.

 

p05.png 十.  安     貧

貴而近禍, 富多不仁, 何如雲壑, 以養天眞, 一瓢顔巷, 樂在其中, 三逕陶園, 白月淸風, 聖賢尙爾, 況乎小儒, 屋八九間, 可容殘軀, 田數十畝, 足慰飢腹, 我安我分, 不趨利欲

- 가난하면서도 분수를 지키는 일

귀하게 되면 화가 따르고 부자는 어질지 못함이 많다. 어찌하면 전원에 살면서 천성(天性)을 지킬까. 안연(顔淵, 孔子의 首弟子)은 누항에서 즐거워했고 도연명(陶淵明, 晋代의 逸士)은 자연을 벗삼아 살았다. 성현들도 이렇게 살았거늘 하물며 시골 선비야 말해 무엇하랴. 집이 비록 일여덟간이라도 몸을 용납할만 하고 밭이 수십 마지기이니 먹을 것은 넉넉하다. 형편에 만족하고 분수를 지켜서 명리와 욕심에 급급하지 않으리라.

 ※ 본 해설은 편집자의 나름입니다. 정확하다고 볼 수 없으니 양지하시고 미진하고 곡해된 부분은 원문을 참조하여 해득하시기 바랍니다.

   

 

 (6)<국역 국조인물고>에서 -- 김광수(金光粹) (2004. 5. 12. 윤식(문) 제공)

  묘표(墓表)

                                           유성룡(柳成龍) 지음

 

공(公)의 휘(諱)는 광수(光粹)요, 자(字)는 국화(國華)이며, 김씨(金氏)는 본래 신라(新羅)의 왕실(王室)의 성(姓)이다.

고려(高麗) 때 휘 방경(方慶)이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이 되어 큰 공훈(功勳)을 세상에 세웠는데, 공은 바로 그 후손이다.

증조(曾祖)는 함길도 감목관(咸吉道監牧官) 김자첨(金子瞻)이요, 조부(祖父)는 사직(司直) 김효온(金孝溫)이며, 고(考) 휘 극해(克諧)는 문과(文科)에 올라 벼슬이 지례 현감(知禮縣監)에 이르렀다.

 

공은 천성이 욕심이 없고 맑았으며 풍채가 단정하고 깨끗하며 부귀 영달에 전혀 뜻을 두지 않았는데, 일찍이 친구 사이에 시(詩)에 능하다고 알려졌다. 홍치(弘治 명 효종의 연호) 신유년(辛酉年 1501년 연산 7년)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한 뒤로는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의성(義城)의 북촌에 들어가 살면서 더는 벼슬길에 나아가는 데 뜻을 두지 않았다.

 

길가에 왜송(矮松)이 한 그루 있었는데, 푸르고 울창하여 두어 이랑[畝]의 그늘을 만들었으므로 공이 이를 사랑하였다. 이에 매일같이 술도 마시고 시도 읊으며 그 아래에서 한가히 지내며 스스로 송은 처사(松隱處士)라 불렀다.

 

집안이 가난하여 의식(衣食)을 잇대기 어려웠으나 공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 종일토록 조금도 불평 없이 만족하게 지냈는데, 당시 이웃 마을에 사는 현우(賢愚)와 소장(少長)을 막론하고 공경하고 사모하여 즐겨 나아가 본을 뜨려 하였다.

 

공의 효성과 우애는 타고나서 지례공(知禮公)이 일찍이 돌아가자 수십 년 어머니를 모시면서 안색을 살피고 뜻을 받드는 일을 모두 다하였으며, 한 아우가 안동(安東)에 살면서 오기로 약조한 날이며 매번 문에 기대어 기다리며 날이 저물도록 먹지 않다가 반드시 더불어 같이 밥을 먹곤 하였다.

 

평생 입으로 재산을 경영하는 데 대한 말을 하지 않았고, 오직 옛 사람의 아름다운 말과 선행(善行)을 노래로써 읊고 칭송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므로 비복(婢僕)들도 익히 듣고 능히 전하기까지 하였다. 아! 공은 독행 군자(篤行君子)라 할 만하다. 비록 옛날의 곤궁(困窮)하면서도 고상(高尙)한 뜻을 기른 선비라 하더라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공의 선취(先娶)는 아들 김당(金溏)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은 김순(金珣)에게 출가하였다. 후취(後娶) 순천 장씨(順天張氏)는 밀직 부사(密直副使) 장홍(張弘)의 후예(後裔)로서 첨정(僉正) 장일신(張日新)의 딸이다.

 

딸 다섯을 낳으니 맏이는 신택(申澤)에게 출가하였고, 다음은 김처선(金處善)에게 출가하였는데 충순위(忠順衛)요, 다음은 김온(金溫)에게 출가하였고, 다음은 유중영(柳仲郢)에게 출가하였는데 관찰사(觀察使)요, 다음은 이영(李苓)에게 출가하였는데 훈도(訓導)이다.

 

김당은 딸 하나를 낳으니 권덕린(權德麟)에게 시집갔고, 아들은 김세우(金世佑)이다. 김순은 두 아들을 낳으니 김생하(金生河)ㆍ김생명(金生溟)이요, 사위는 강여개(康汝皆)이다. 신택은 두 아들을 낳으니, 신대년(申大年)ㆍ신대유(申大有)요, 세 사위는 김목(金牧)ㆍ문희정(文希禎)ㆍ조희조(趙希祖)이다. 충순위는 세 아들을 낳으니, 김응하(金應夏)ㆍ김응상(金應商)ㆍ김응주(金應周)요, 김온은 한 아들을 낳으니 김명견(金命堅)이다. 훈도는 딸 하나를 낳으니 사위는 김탄(金坦)이다. 내외손(內外孫)은 남녀 백여 인이다.

 

장 부인(張夫人)은 어질고 식견과 사려가 있어 공과 더불어 곤궁하게 살면서 거친 음식을 먹었지만 역시 스스로 즐거워하며 고된 생활을 싫어하는 뜻이 없었다. 공은 성화(成化-명 헌종의 연호) 무자년(戊子年 1468년 세조 44년)에 태어나 가정(嘉靖 명 세종의 연호) 계해년(癸亥年 1563년 명종 18년)에 돌아가니 향년(享年) 96세이었다. 임종(臨終)에 목욕하고 궤(几)에 기대어 손가락을 꼽으며 말하기를, “족(足)하다.” 하고는 조금 뒤 홀연히 서거(逝去)하였는데, 피부는 살았을 때와 같았다.

 

장 부인은 공보다 몇 해 앞서 가정(嘉靖) 기미년(己未年 1559년 명종 14년)에 졸(卒)하니 88세였다. 대곡산(大谷山) 건좌 손향(乾坐巽向)의 언덕에 장사지냈는데, 공이 서거한 뒤 그 산기슭에 나아가 같은 묘역(墓域)에 봉분(封墳)을 달리한 제도(制度)로 만들었다.

 

그 22년 후에 외손(外孫) 유성룡(柳成龍)이 조정의 명을 받들고 관찰사로서 남쪽으로 내려와 공의 묘(墓)에 나아가 제(祭)를 올렸는데 그 묘도(墓道)에 비(碑)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었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덕(德)과 빛[光]이 따라서 후세(後世)에 전하지 않고 민멸될까 크게 두려워하여, 드디어 짧은 빗돌을 그 앞에 세우고 대략 이상과 같이 그 후면(後面)에 서술(敍述)하니, 아마도 백세(百歲) 뒤에도 이로 인하여 공의 대개(大槩)를 아는 자가 있을 것이다.

   

 

(7)김광수(金光粹) 묘갈  (2005. 2. 4. 주회(안) 제공)

 출전 : 한국문집총간

西厓先生文集卷之十九

碑碣

 

外祖進士金府君碣銘

 

公諱光粹。字國華。金氏本新羅宗姓。而麗時諱方慶 爲上洛府院君。樹大勳于世。公其後也。曾祖。咸吉道監牧官子瞻。祖司直孝溫。考諱克諧。登文科。官至知禮縣監。公天性恬淡。風神端潔。於富貴利達。泊然無所嗜。早以能詩。聞?輩間。中弘治辛酉進士。旣而棄擧業。屛居義城之北村。不復有進取意。宅邊有矮松一株。靑翠蔥鬱。蔭可數畝。公愛之。日飮酒?詩。偃仰於其下。自號松隱處士。家貧衣食不給。而公曠不以爲意。終日欣欣。無一不適意。時隣里賢愚少長。莫不敬慕而樂就焉。公孝友天至。知禮公早世。事先?數十年。所以承顔順旨者無不至。一弟在安東。每約來則倚門以待。日晩不食。必與同餐。平生口不道營産事。惟古人嘉言善行。詠歌稱道之不輟。故婢僕亦習聞而能傳之。嗚呼。公可謂篤行君子矣。雖古之處約養高之士。何以加此。公先娶南氏。生一子?。女一人。適金珣。後娶順天張氏密直副使弘之後僉正日新之女。生五女。長適申澤。次適金處善忠順衛。次適金溫。次適柳仲?觀察使。次適李?訓導。?生一女權德麟。一子世佑。金珣生二子。生河,生溟。一女康汝?。申澤生二子。大年, 大有。三女。金牧, 文希禎, 趙希祖。忠順衛生三子。應夏, 應商, 應周。金溫生一子。命堅。觀察使生二子。雲龍, 成龍。觀察使三女。李潤壽, 金宗武, 鄭好仁。訓導生一女。金坦。內外孫男女百餘人。張夫人賢有識慮。與公窮居食淡。而亦有以自樂無厭苦意。公生於成化戊子。終于嘉靖癸亥。享年九十六。臨終。沐浴隱?。屈指自語曰。足矣。有頃。?然而逝。肌膚如生。張夫人先公數年於嘉靖己未卒。年八十八。葬于大谷山乾坐巽向之原。及公之歿。就其麓爲同域異塋之制焉。其後二十二年。外孫柳成龍承朝命按節南來。就省公墓而祭之。傷其墓道無刻。而大懼潛德幽光。因至泯沒于後。遂立短碣其前。略敍于陰如右。百歲之下。必有因此而得公之大槪者矣。

 

형태서지

권수제 西厓先生文集    판심제 西厓先生文集    간종 목판본    간행년도 1894年刊    권책 原集 20권, 別集 4권, 年譜 3권 합 14책    행자의 수 10행 20자    반곽의 크기 21×17.2(㎝)    어미 上下二葉花紋魚尾    소장처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도서번호 D1-A209C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52    

 

저자

성명 유성룡(柳成龍)    생년 1542년(중종 37)    몰년 1607년(선조 40)    자 而見    호 西厓, 雲巖     본관 ?山     시호 文忠     봉호 ?原府院君

 

  

   

 

(8) 김광수 女(정경부인. 유성룡 모) 묘지 (2005. 2. 4. 주회(안) 제공)

출전 : 한국문집총간

 

西厓先生文集卷之二十

墓誌

 

先貞敬夫人墓誌

 

先비(女+比)姓金氏。其先安東人。中徙義城之北村。安東之金最遠而顯。實新羅宗姓。羅亡。歷高麗入我朝。上下千七百餘年。代有聞人。麗時上洛君方慶。以忠勳衛國。著大名于世。其後有奉擧直長都評議知印九鼎。知印之子諱子瞻。咸吉道監牧官。卽先?高祖。曾祖彰信校尉司直諱孝溫。祖諱克諧。以文科發身。監知禮縣事。考諱光粹。進士。隱跡林泉。以詩酒自娛。號松隱處士。年九十六終。?順天張氏。密直副使弘之後。訓鍊僉正日新之女。先?以正德壬申正月二十六日生。幼時日侍進士公。習聞詩禮之訓及古今人嘉言懿行。旣?。歸于我先考。閨範益修。嘉靖乙卯。先考階通政。先?始有淑夫人之號。甲子。先考爲觀察使。用二品例陞號貞夫人。後二十七年庚寅。朝廷以孤謬恩。贈先考領議政?山府院君。先?加貞敬二字號。又十二年辛丑。考終于河廻里第。實其年八月二十一日也。壽九十。嗚呼。先?德盛而天祐之。享膺五福。非偶爾也。自先考歿。先?寡居幾三十年。二子雲龍, 成龍。霑祿位于朝。而成龍尤不才。乃馴致卿相。受恩最深。歲歸爲先?榮。歲庚辰。成龍辭銀臺。屢上章陳親老乞外。上憐之。以尙州近家。特授之。成龍旣上官。卽走迎先?于家。先?素患轎眩。艱於卽路。方議舟行。時久旱水淺。臨發而雨。然船行猶不甚利。是夕泊宿多仁縣。夜又大雨。平岸而止。溪澗皆漲。遂以妓樂前導。由江?溪。達于城外。其後雲龍爲仁同縣。仁亦江邑也。其往迎亦如是。江邊人至今相傳爲美談云。癸未冬。成龍家居侍側。除慶尙監司。上疎辭。御批以本道有老母故授。可勿辭。自是。每年春秋。請告省覲。上賜米豆供養之需相繼。或輟禁中虎皮褥賜之。至庚寅夏。下二錦衣使遺母。乃內殿所御。曠世異數。聞者感動。旣而上又敦諭。必就養京師。先?不得已行。沿途郡邑。得上旨。具船輿設供帳遞護。道路以爲榮觀。壬辰變作。成龍扈駕而西。時雲龍爲太僕官。上以有母。特許解官自便。由是得奉先?東還。先?時年已八十一。奔竄山谷。或負或馬。備經艱危。人憂其不全。卒無。是時。賊鋒充塞遠近。士大夫家避亂者什不一保。獨先?所至。賊出沒左右近一二里。終不來犯。子孫婢僕從者甚衆。而無一罹禍。嗚呼。非天。其孰使之。蓋先?謙恭遜順。仁慈惻?。出於天性。平居秉心。洞洞屬屬。常若有畏。積一段誠敬之念。終始如一。無頃刻弛解。斯其所以獲報於天也歟。少時僑寓神武門外。坐未嘗背闕。其在??。必避日月光。與人言。無貴賤。待之盡禮。猶恐或傷其意。食物有生氣者。不忍屠割。禽魚之屬。亦多放之。治家以淸 簡寡爲本。不事營爲。以此財用窘乏。往往衣食不給。而亦無恨。先考屢典大州。?無良馬。衣不薰香。先?處內。恒守靖?。鈴門之內。澹然如水。惟先考志是遵是式。無毫髮干外事。晩。二子迎養在官。或遇酒肉之奉少豊於前。則輒曰。得無濫乎。不肖遭遇歷?。或遷官改級。先?不甚喜。惟戒之曰。無妄言。無雜交遊。對曰不敢。其失官而來也。懼無以告。久乃知之。亦怡如也。有遠識。每見水旱災異日星風雨之變。卽憮然曰。莫謂天高。人事得失。何所不見。此變奚爲至哉。又曰。吾雖婦人。家事或不掛念。惟心在國事不置云。嗚呼。先?之德大者如此。其細可略也。先?有二男三女。已具先考誌中。後雲龍官至通政原州牧使。而子正甫改名?。爲平陵察訪。純甫改名?。爲狼川縣監。皆以蔭仕。末子?業儒。二女?靑松府使金弘微, 醴泉郡守盧景任。成龍濫入相府。?勳封。生四子。褘, ?, ?, 袗。褘早夭。二女?察訪李文英主簿趙稷。庶子?, ?, ?。女一。李潤壽四子。, 燦炯, 煥。二女。長適參奉鄭允穆。一幼。金宗武一子?。女適士人金澈。鄭好仁有三女。長適全磊, 次南元立, 季尹商敏。?有二子一女。子長元直。餘幼。?有四子一女。?一子三女。靑松二子三女。醴泉二女。?一子。?一女。袗二女。李文英二子。趙稷二子。二子。炯一子二女。鄭允穆一子二女。金?一子一女。金澈一子。全磊二子。皆幼。內外孫及曾孫男女六十六人。嗚呼。孤兄弟五人。而三妹先亡。今年春。伯兄又亡。獨不肖在焉。而先?又棄養。不弔于天。?降大禍。攀號莫及。卜得是年十二月乙酉。合葬于先考墓左。蓋距先考之葬二十有九年矣。謹次其世系封爵志行子孫如右。納諸壙中。以圖永久。昊天罔極。嗚呼痛哉。孤哀子成龍謹誌。

   

 

  (9)김광수 외손자 유운룡 묘갈 (2005. 2. 4. 주회(안) 제공)

출전 : 한국문집총간

 

澤堂先生別集卷之七

墓碣

 

贈吏曹參判原州牧使柳公墓碣銘 幷序

 

安東府西天燈山金溪亥巳之麓。故通政大夫原州牧使柳公之墓在焉。弟西厓相國誌其壙。外甥金承旨弘微狀其行。皆實錄也。而今其諸孫。欲揭銘墓道。公傳道之。圖示久遠。以植方?史館。乃以屬筆。則不敢以不文辭。謹按公諱雲龍。字應見。世爲?山人。在高麗。諱伯恩。賜及第。入我朝。工曹典書從惠。始顯。生司正洪。司正生贈司僕正沼。是公高祖。曾祖成均進士。贈吏曹判書。諱子溫。祖杆城郡守。贈左贊成。諱公綽。考觀察使。贈領議政?山府院君。諱仲?。?安東金氏。進士光粹女。高麗名臣方慶後也。公生于嘉靖己亥八月六日。-----

 

配貞夫人鐵城李氏。參奉容之女。杏村後也。淑婉有懿範。事舅姑。惟公意是承。雖在奔竄山峽間。未嘗闕甘旨。父母宗族。咸稱其賢孝。有三男二女。長男?。平陵察訪。次?。狼川縣監。次?。天文敎授。長女壻。卽金承旨(=김홍미)。次弘文校理盧景任。察訪一男一女。男元直。女適權尙賢。狼川四男二女。男元亮生員。次元履縣監。次元慶,元定。女適參奉金秋任。次洪俊亨。敎授三男四女。男宗之,誠之,敬之。女適金念祖縣監。次金琨生員。次李英哲。次金時行。承旨(=김홍미)二男三女。男珌,珩。縣監。女適權克載。次金?(=문온공파 김구)。文科正郞。-----

 

형태서지

권수제 澤堂先生集    판심제 澤堂集    간종 목판본    간행년도 1674年刊    권책 原集 10권, 續集 6권, 別集 18권 합 16책   행자의 수 10행 20자    반곽의 크기    19.4×15.2(㎝)      어미 上下花紋魚尾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번호 奎6553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88

 

저자

성명 이식(李植)    생년 1584년(선조 17)    몰년 1647년(인조 25)    자 汝固    호 澤風堂    본관 德水    시호 文靖    

 

【김구(金?)】   자는 방숙(方叔), 호는 청창(聽蒼), 본관은 안동, 문온공(文溫公) 척약재(?若齋) 구용(九容)의 9세손으로 1582년(선조15) 임오(壬午) 3월26일 생, 1627년(인조 5) 정묘(丁卯) 4월28일 향년(享年) 36세에 졸(卒)하시다. 1603년(선조 36) 계묘(癸卯) 생원, 1613년(광해군 5) 계축(癸丑)에 진사(進士), 1615년(광해군 7) 을묘(乙卯)에 식년시(式年試) 병과16(丙科16)에 합격, 승문참하(承文參下)를 하시다가 광해정란(光海政亂)으로 고향 충주(☞지금의 음성 감곡 상촌)로 물러나셨고 인조개옥(仁祖改玉) 후 예조정랑(禮曹正郞-문과방목 ☞壬申譜에는 예·형 양조좌랑으로 기록되어 있고 구전으로도 좌랑공이라 하고 있다)·군수(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증조부(曾祖父)는 병사공(兵使公) 윤종(胤宗)·조부(祖父)는 음성공(陰城公) 진강(震綱)·부(父)는 상촌(桑村) 입향조(入鄕祖) 하양공(河陽公) 대하(大河)·외조부(外祖父) 이양형(李陽亨)이다.

 

배(配)는 숙인(淑人) 상산김씨이다. 1586년(선조 19) 병술(丙戌) 7월28일에 나시어 1658년(효종 9, ☞壬申譜의 1958년은 오기이다) 무술(戊戌) 11월27일 수(壽) 73세(☞임신보의 63세는 오기이다)에 돌아가시다. 부(父)는 참의(參議) 김홍미(金弘微)이시고 처 외조부(妻外祖父)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용 선생의 형님이신 겸암 류운용 선생이시다. -----

 

 

p20.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