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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17. 정중(도) 제공)
세계 여행 잡지 `뚜르드몽드` 12월호에 실린 의성관련 기사 에헴, 여보게. 그래, 거기 젊은 양반 말일세. 자네, 내 고향 의성에 와 본 일이 있으신가? 내 고향은 말이지, 예로부터 훌륭한 학자와 선비들이 많이 나고 자란 곳이라네. 그 뿐인 줄 아시는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맹위를 떨쳤던 불교의 유적들도 많이 남아있지.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우리 먹거리들은 또 어떻고! 에헴. 구미가 좀 당기지 않으시는가? 어디, 내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겠나?
내 고향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먼저 내 소개를 해야겠지. 나는 뭐, 이름 석 자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훌륭한 업적을 쌓은 학자도, 만석꾼 부자도 아니라네. 그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을 사랑하는, 조용한 마을의 한 늙은이일 뿐인지. 그런데 왜 이렇게 나서서 의성을 알리느냐, 하면말일세. 유명하고 사람 많은 관광지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당신이 몰라도 여기 이렇게 좋은 동네가 있답니다' 하고 알려주고 싶어서라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 소개는 이 쯤 해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고향 소개를 시작해봄세.
학문을 갈고 닦던 선비의 고장 의성은 예로부터 오로지 학문에만 뜻을 두고 오랜 시간동안 정진하셨던 기개 곧은 선비들이 많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네. 선비들이 나고 자란 마을, 하면 저기 안동의 하회마을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네만, 여기 의성에도 잘 보존된 마을이 두어 군데 남아 있지. 그 중 하나가 금성산 두 봉우리 사이의 산운마을이야. 아. 그런데 말일세, 자네 혹시 금성산에 대해 들어보셨는가? 금성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화산이라네. 지금은 활동을 완전히 멈춘 사회산이지만. 어쨌든, 이 산의 두 봉우리 가운데에 구름이 걸리곤 하는데 그 아래에 자리했다 하여 산운마을이라는 어여쁜 이름이 붙었다네. 생각해 보게나. 야트막한 두 봉우리 사이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걸치고, 그 아래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한옥마을을.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으시는가. 에헴. 마을로 들어서면 정겨운 흙담길이 자네를 가장 먼저 반길걸세. 길을 따라 점점이 피어있는 들꽃들과 인사하며 정우당을 찾아보게나. 정우당은 죽파 이장섭 선생이 1900년 경 건립한 집이지. 100살이넘은 집이지만 아직도 이장섭 선생의 후손이 살고 있다네. 그렇다고 겁은 내지 말게. 산운마을에 살고 있는 분들은 인자한 미소로 낯선 이들을 반겨주실테니 말일세. 더 오래된 집은 1800년대 초기에 지어진 운곡당이네.
이 마을의 가장 대표적인 고가옥이지. 운곡당 안에 들어서면 안채로 향하는 입구에 세워놓은 작은 헛담을 찾아보게나.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할머니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낯선 사람들이 안채를 쉬 볼 수 없도록 배려한 것이라 하더구먼. 까맣게 그을린 아궁이 옆의 벽과 장독대, 한지를 발라 놓은 문틀, 멍석을 말아 걸어 놓은 흙벽들도빼놓지 말고 천천히 구경해보게나. 우리 조상님네들이 어떻게 사셨는지가 그대로 느껴질테니 말이야. 자, 이제 소우당으로 가봅세. 소유당은 19세기 초에 지어졌으니 운곡당보다 나이는 젊지. 허나 특이한 점이 하나 있네. 본채보다 훨씬 큰 별당과 정원이 집 안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야. 크기만 할 뿐인가. 수려한 곡선으로 만들어진 연못과 철마다 다른 자태를 뽐내는 나무들은 또 어떤지. 나는 특히 가을에 튼실한 열매는 맺는 모과나무를 좋아한다네. 자네, 모과 향을 맡아본 적이 있는가? 그 향은 맡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참, 산운마을에는 이런 고택들이 40여 채나 남아있다네.
의성에는 또 다른 선비마을도 있다네. 바로 사촌마을이지. 자네, 서애 유성룡 선생을 아시는가? 그 선생이 바로 이 마을에서 태어나셨네. 유성룡 선생의 외가 마을이라는 이야기지. 이 마을은 620여 년 전에 생겨났다고 하네. 안동에서 김 씨 가문이 이리로 옮겨와서 터를 잡았다는데, 그때 동쪽과 남쪽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북쪽으로는 작은 천이 흘렀다지. 그런데 서쪽이 뻥 뚫려 있었던거야. 그래서 김씨 가문 사람들은 인공 서림을 조성했네. 그 숲은 말일세, 가만 있어보자, 그러니까 폭이 45미터, 길이는 1,050미터에 이른다고 하네. 적게는 300년, 많게는 600년 동안 살아온 노거송들이 살고 있어 이 숲 자체가 천연기념물 405호로 지정되었지. 마을 앞에 있는 사촌 가로숲이 바로 그 숲이네. 뭐 확인되지는 않았네만 유성룡 선생이 숲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내려오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사촌 가로숲을 찾을 때마다 참 마음이 아파. 자네, 여기저기 썩은 그루터기들이 보이시는가. 저것들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들이 자기네들 전함을 만든다고 잘라간것이라네. 모두 500살 이상 먹은 나무들이었지. 얘기하다보니 또 마음이 아프구먼. 자, 다른 얘기로 넘어가서 마을 얘기를 해보겠네.
이 마을은 대과에 13명, 소과에 35명이 합격하는 등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마을이네. 게다가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같이 나라에 큰 난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유생들이 의병으로 일어나 순국하기도 하셨지. 그래서 1896년에는 마을 전체가 일본인들에 의해 불에 타버리기도 했다네. 아, 딱 한 집은 불에 타지 않았는데 1584년 김사원 선생이 지은 만취당일세. 사가의 목조건물로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고 하더구먼.어쨌든, 이 집 앞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 덕분에 마을이 모두 불탈 때 만취당만 살아남았다고 하네. 마을에는 다른 고택들도 많이 남아 있다네. 특히, 전통적인 양반 가옥이 몇 채 남아있지. 내년부터는 자네 같은 여행객들이 고택체험을 하면서 며칠 묵어갈 수 있을 터이니 꼭 한 번 경험해 보시게나.
이 마을에는 안동김씨 말고도 풍산 유씨 가문이 함께 터를 잡고 살았는데, 두 문중이 서로 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선의의 경쟁을 했다는구먼. 그래서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네. 마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거든 마을 내에 지어진 사료 전시관을 찾아보게나. 마을의 역사는 물론 내려오는 전설과 선비들이 남긴 문집과 저서 등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터이니.
화려했던 불교문화의 흔적들 고택마을처럼 조선시대의 흔적들이 남아있는가 하면,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번창했던 불교문화의 흔적도 많이 남아있다네. 이런 불교문화를 느껴보고 싶다면 등운산에 있는 고운사를 꼭 찾아보게. 이 절에 가는 길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지.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있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길에 들어서면 숨통이 탁 트일걸세. 게다가 말이야, 절 입구까지 가는 길에는 다른 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상이나 가게가 하나도 없어. 시원한 공기 마시면서 사새가며 걸어가기에는 아주 그만이지. 아참, 자네 반딧불이를 아시는가. 환경이 많이 파괴되어 지금은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기 이 고운사 가는 길에는 아직도 많은 반딧불이들이 살고 있다네. 여름 밤 7시에서 9시 사이가 절경이지.
자 이제는, 고운사에 얽힌 이야기를 좀 해주겠네. 이 절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건립한 절이라네. 고려시대 때 가장 융성했을 때에는 366칸에 달하는 큰 절이었다지.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전승기지로 사용하기도 했고. 혹시 자네, 이 절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아시는가. 자그마치 1,400살이 넘었다네. 물론 건물들이야 새로 지은 것들도 있고 꽤 나이를 먹은 것들도 있네만, 1,400여 년 전부터 이 자리에서 많은 중생들을 보듬어 살폈던 것은 바뀔 수 없는 사실이지. 고운사 내에는 볼거리가 많은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가운루라네. 원래 옛날에는 이 절 한가운데로 내가 하나 흘렀다고 하는데, 이 아름다운 내를 훼손하지 않으려 다리 형태로 지은 누각이지. 아주 운치가 있다네. 자네한테 꼭 한 번 보여주고 싶구먼. 자네가 내 이야기를 아주 잘 들어주고 있으니까 말이야, 내 선물로 비밀 이야기를 두 개 해주지. 일반 관광객들은 잘 볼 수 없지만 고운사에는 아주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네. 철로 만든 비석이야. 이 비석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조선 초기는 철이 무척 귀한 시대였네. 지금으로 치자면 다이아몬드로만 비석을 만든 것과 비슷한 거야. 아주 귀한거지. 또 다른 비밀 얘기는 말일세, 명부전에 관한 이야기야. 사람이 죽어서 저 세상을 가면 말이야, 12번의 재판을 받는다네 . 그런데 이 명부전을 갔다 오면, 그 중에서 한 재판을 면죄받는다고 하더군. 그러니 꼭 한 번 다녀오시게. 고운사에는 또, 이 절을 찾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차를 한 잔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방도 있으니 차도 한 잔 마셔 보시게나. 가끔은 절에 기거하는 스님들이 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기도 하실테니.
위엄을 뽐내며 마을 한 가운데 떡 하니 서 있는 의성탑리 오층석탑도 볼만하네. 이 탑은 나이가 많아. 통일 신라 시대의 것이니 말일세. 나이에 비해 크게 부서진 데 없이 거의 완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그래도 말이야, 경주 분황사의 석탑 다음으로 오래된 석탑이라네. 자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사용된 앤타시스 양식을 아시는가. 이 탑에도 그 양식이 사용되었다네. 가운데 부분이 불룩하니 곡선을 그리고 있지. 그런데, 이 탑은 좀 희한하지 않은가. 보통 탑이 있으면 주변에는 절이 있어야 하네. 그런데 이 탑의 주변에서는 말이야, 절터와 같은 절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어. 도대체 왜 절도 없이 탑만 이렇게 덩그러니 세워놓았을까. 안타깝게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신기한 일이지 그려.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건강한 먹거리 내 고향에는 아주 좋은 먹거리들도 많다네. 의성,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마늘일 걸세. 예로부터 의성 마늘이라고 하면 전국에서도 제일로 쳐주는 마늘이었다네. 자네 혹시 아는가. 석회질이 마늘에게는 최고의 영양분이라는 걸 말일세. 화산이 있기 때문에 이 지방에는 유난히 석회질이 많네. 그래서 의성에서 나는 마늘이 그렇게 질도 좋고 맛도 좋은 것이네. 의성에 오면 마늘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네. 마늘을 넣고 푹 고은 닭이라던가, 통마늘이 들어간 요리들 말일세. 특히 요즘에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면서 만들어낸 흑마늘이 인기라네. 마늘의 매운 맛은 없애주면서 단 맛은 높인 마늘이지. 이 마늘로 만든 흑마늘액이 그렇게 몸에 좋다는구먼. 나도 올 겨울에는 좀 먹어볼까 생각중이라네. 마늘을 먹여 키운 마늘소도 유명하네. 얘기하려니 입에 침이 고이는구먼 그려. 마늘소는 말이야, 의성중앙지구대 근처의 마늘소 먹거리 타운에서 먹을 수 있다네. 싱싱한 상추에 고기 두어 점 얹어 쌈을 한 번 싸먹어 보게. 입 안에서 고기가 그냥 사르르 녹을테니 말일세. 어이쿠, 참. 하나 빼먹을 뻔 했구먼. 의성은 사과도 유명하다네. 사과를 수확하는 철에 오면 아주 달고 맛 좋은 사과를 먹을 수 있지. 특히 말이야, 사과 와인을 꼭 맛보시게나. 애플리즈라는 회사에 가면 아주 단 사과 와인을 먹어볼 수 있네. 사과 밭에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으로 라벨을 만들어 나만의 사과 와인을 만들어 올 수도 있지. 가격도 비싸지 않으니 부담 갖지 말고 꼭 들려보시게나.
에 헴. 말을 오래 했더니 힘이 드는구만. 내 나름 자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 노력했는데, 어찌 맘에 드셨는지 모르겠네. 혹시 말일세, 의성에 올 날짜가 정해지면 꼭 연락 주시게나. 내, 비싼 음식 대접하지는 못해도, 재미난 이야기들은 많이 해주노라 약속하겠네. 그럼, 연락 기다리겠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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