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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04. 12. 18. 2) 장소 : <대한민국> (서울시 삼성동) 3) 참석자 :
행사 후기 (2004. 12. 22. 영윤(문), 정중(도) 제공) 18일오전9시 동서울 터미널을 향해 집을나선다 10시착 고속버스 예매를 해놓았다는 정중씨의 전화를 반은것이 그제다. 버스를 타며 전화를하니 예정보다빠른 9:30분 도착예정이란다. 계획에 없던 택시로 갈아타고 당도하여 이미 도착해있던 정중씨와 정겨운 해후, 잠시후 도착하신 영환형님의 승용차에 오른 3인은 아차산 기슭의 명빈묘역으로 향한다.
.이미 몇차례 다녀가신 영환형님의 안내에따라 지난번 발용씨가 겪었던 새가 되는 수고는 덜수 있었다(정문 철문에서 철장을따라 50여미터 왼쪽으로 오르면간이 출입문이 잠기지 않은채 지쳐저 있으니 후행인은 참고하시길...). 안정공의 따님으로 태종의 빈으로 들어가셔서 성종조 까지 7임금 재위기간동안 내명부의 어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던 할머님의 생애를 되새기며 참배의 예를 갖춘다. 주위 경관을 둘러보며 내려와서 다음 행선지인 구리시로 향한다.
구리시 도곡동에 위치한 후안동김씨 김번 묘역은 후김의 성지라 할수있는곳으로 옥호저수형의 당대최고의 명당이라는 영환형님의 설명이시다. 넓은 묘역엔 그의 후손인 김상용 김상헌 김극효등의 묘소가 둥그렇게 잇대어펼쳐져있다. 일행은 다시 차를몰아 남양주에 소재한 운길산 수종사로 오른다.
오르는길은 급경사 급커브로 차량의 교행이 어려워서 주말이나 휴일에는 초보자는 피하는것이 좋을듯하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등산삼아 걸어서 오르는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일행은 정해진 시간에 좀더 많은곳을 돌아보고 싶은 욕심에 차를 몰아 수종사 일주문앞까지 올라갔다. 짓고 있는 일주문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비탈길을10여분 오르니 탁트인 팔당호 장관을 앞으로 하고 급경사면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몇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바로 세조의 명에 의해 충창하였다는 수종사다.수종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홈 게시판을 참조하시길 바라며 생략하겠습니다 대웅전 앞으로 일망무제의 팔당호 전경을 감상할수 있도록 전망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옆으로는 500여년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절의 역사를 말해주듯 묵묵히 위용을 자랑한다 언제까지 머물고픈 미련을 떨치고 발길을돌린다. 정중씨는 사진을찍느라 뒤쳐진 발길을 재촉하여 따라붙는다
산을 내려와 조안면사무소앞 순두부집을 찾아 반주를 곁들여 점심을 해결하고 북한강을 끼고 환상의 드라이브길을 달리다 왼쪽으로 마석방향으로 접어든다 잠시후 닭박골(?)로 불리는 영환형님 고향에도착하였다. 양지바른 뒷산에 잘 단장된 묘역(증조부모 조부모)에 예를 갖추고 고속도로 공사로 천봉이 불가피하다는 말씀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심정을 헤아려본다. 무슨말을 드려야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마석 방향으로 길을재촉하여 흥선대원군묘로 향했다. 대원군의 묘는 초상당시 공덕동에 모셧다가 파주를 거쳐 50여년전에 지금의 남양주로 옮겨왔단다
근처에는 인근에 산재해 있던 묘를 한테모아 납골묘식으로 조성한 묘가 있다 주위엔 뽑혀진 석물들이 쌓여있다 대원군의 윗대와 자손등을 함께 모아놓은 현대식 묘를 보며 한때 정적이엇던 후안동김씨 묘역과 대조가 되며 많은생각을 하게된다 과연 어느것이 정답일까?훌륭한 조상의 평가에는 후손들의 역할에도 영향받는것은 아닐까?
일행은 4시를 넘겨 서울로 향했다. 5시에 삼성동 봉은사앞에서 영환형님과 헤어져 정중씨와 봉은사 경내의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봉은사 현판과 고 김태동 종친의 공덕비를 둘러보고 나와 길건너 코엑스로 향한다. 정중씨는 연실 셧터를 누른다 모처럼의 서울나들이를 기록하느라 정신없다 6시에 맞춰 송년회 장소인 음식점 대한민국으로 들어서니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관묵 사무총장님을 비롯하여 영환, 항용, 윤만, 주회, 우회, 태우, 주회씨 내외분, 용주(2),정중, 상석, 영윤, 발용씨 그리고 우회씨의 두자녀가 참석한 송년모임이 시작되었다 사무총장님의 인사가 있었고 항용님의 경과보고에 이어 건배제창으로 정담과 함께 2시간에 걸친 식사가 화기애애한 가운데 이어졌다. 안사연 활동이 시작된 이후 3년간의 회상에서부터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등 자유롭게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자연스럽게 2차로 이어져 단골집(?) 한끼한잔으로 자리를 옮겨 기나긴 겨울밤을 밝혔다. 그뒤는 노래방. 12시를넘겨 날은 바뀌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정중씨를 배웅하며 해산.
2004년12월 18일 밤은 그렇게 갔습니다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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