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2005. 10. 1. 상석, 발용 제공) 안사연,백족산을 가다.
출발지:잠실 종합운동장앞 지하철 입구 참석자:영윤내외분,상석,윤만,은회,발용내외분,태우,태영,항용,용환,은교,행순(13명) 현지의 음성지역 문온공孫:相(영行)大,제만형제분(會항,윤만의 형님들)--3명.
아침 8시 정각 잠실 운동장엔 오래간만에 만나 서로서로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느라 잠시 시끌시끌 하였습니다.벌초와 성묘,추석명절의 분주함을 벗어 던지고 봉고차에 올라 장호원의 백족산으로 달려 갔습니다.일행은 모두 13명,10시에 백족산 입구에 도착하니 현지에서 제만종친님이 미리 오셔서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오늘 순조로운 행사와 더불어 현지의 구전과 설화,민담,백족산의 지형을 숙지하고 계신터라 특별히 부탁을 하였던 것이지요!.
무수한 사연을 담고 장호원 시내를 굽어 보며 그 치마자락엔 복숭아 나무를 한아름씩 숨기고 서 있던 백족산은 도시인들의 출현으로 잠시나마 한가함을 잊고 자리를 내어 주었지요!.옹달샘을 지나 마치 토성(土城)처럼 견고한 능선을 따라 오르니 정상이 나오더군요.기념사진을 찍고 제만님으로 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었지요.초등학교 시절에 소풍을 오기도 했었답니다.
오늘은 정상에서 특별행사가 있었습니다.다름이 아니옵고 영윤대부님 내외의 결혼기념일이라 공수 해 온 축하케이크를 놓고 촛불을 켜고 과일과 축하주,축하곡도 있었습니다.보통 보면 쑥스러운 것이지만 요즘엔 이런 것도 무슨,이벤튼가 뭔가 해서 크게 준비해서 서로간에 챙겨주며 즐긴다고 하였습니다. 하여튼 부족한대로 격식은 다 갖춘 일가들의 깜짝 축하연이었습니다.
정상을 조금 내려오니 지네굴이 있었습니다.낙서공(휘 자점) 할아버지의 설화(홈 참고) 탄생지이기도 하고 스님들과 관련 된 전설의 모태이기도 한 곳이었습니다.전설을 추적하여 묘터로 점지 해 놓았다고 하는 금반형(金盤型)을 찾아가니 오랜기간 방치 된 절터에 묵은 봉분의 흔적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역사는 함부로 확신을 갖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며 반정공신 운운하며 내려 온 전설 역시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볼 필요를 느끼며 하산을 하였습니다.
평소에 산행이 없는지 한산한 산길에 머루랑 다래(참다래로 한국의 키위)가 있기에 올라가 따서 나누어 주고 등산로가 막혀 우회 하다가 영지와 송이도 솎아 왔습니다.억새와 갈대가 어우러져 영화촬영장소로도 각광받는 하천길을 헤치고 거슬러 올라가 낙서공 할아버지께서 축조하신 자점보(현지에선 "ㅣ"모음역행동화로 자재미보)를 보고 왔습니다.
점심때가 되었기에 제만님의 도움으로 시내에 있는 유명한 전통순대집을 갔습니다.그토록 맛있는 별미는 처음이었습니다.오가다 한 번 들러서 또 먹고싶은 생각입니다.식사 후엔 인근의 안동권씨 양촌 권근선생 이하 3대묘역으로 가 보았습니다.널찍한 묘역엔 제대로 갖춘 석물과 신도비각,개무덤 까지 있었고 사당은 밖에서만 보고 들어가지는 못하였습니다.
특히 양촌선생의 손자이신 권람선생과 배위의 묘비에는 사위가 되시는 제학공의 현손이신 승지공(휘壽亨)의 휘자가 보여 남다른 감회가 있었습니다.좋은 기회가 되어 선초의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의 묘역(지방기념물 32호)을 본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지요.
묘역을 내려와 지척에 있는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상촌엘 갔습니다.동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옛날 누에를 치며 뽕나무를 많이 길렀나 봅니다.그 곳엔 문온공의 후손으로 음성공(휘 진강)과 하양공(휘 대화)의 묘소와 재실이 있는 곳이며 그 후로 지금까지 세거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참배를 하고 상대어르신과 제만형제분을 모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울로 올라와 헤어져 돌아 왔습니다.
점심식사를 제공 해 주신 제만님께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해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