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글-상석 사진-발용 1. 일시 : 2008. 7. 13(일). 09:00--16:00 2. 장소 :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
아침 아홉시, 약속장소인 수원역에서 만나 경기대 입구의 등산로 초입에 도착하여 서울 쪽에서 버스로 오신 분들과 합류하여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오늘은 수원의 익원공파 참의공(휘彦沉)문중의 재영, 태철, 춘식종친께서 산행을 함께해주셨습니다.
함께하신 분들-재영,재구,은회,발용내외분,태우,태영,태철,항용,춘식,상석(11명)
10:00에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간밤에 험한 빗줄기가 얼마나 사나운 기세로 대지를 흠씬 두들겨 팼는지 등산로마다 물골이 패인 자리의 돌들은 날이 선채로 아직도 빗물을 머금고 있었고 바람 한 점 없는 능선은 후텁지근하고 습한 기운이 이어졌는데 그나마 해가 멀리 있어 견딜만 했습니다.
▲ 등산코스는 1번 등산로 반딧불이 화장실을 시작으로 형제봉 → 종루봉 → 시루봉을 거쳐 상광교 버스종점으로 내려오는 길입니다. 수원의 주산인 광교산(光敎山)은 수원 8경 중 제1경인 광교적설(光敎積雪)로 유명한 것을 보면 아마도 설경이 더 운치가 있는가 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광교산을 지날 때 빛이 가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조선 정조에 와서 화성이 세워지면서 수원은 계획도시로서 다시 빛을 발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체로 광교산의 능선은 완만하고 등산로 주위로 수목이 우거져 있어 좔좔 흘러넘치는 계곡물을 가까이 하면서 가족과 함께 당일 코스로 오붓하게 삼림욕을 즐기며 산행을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땀이 비 오듯 합니다. 드디어 첫 봉우리인 형제봉(448m)에 올랐습니다.
시야에 드러나는 이의동 인근과 두릉리 일대를 재영 종친께서 하나하나 일러주시며 익원공 계파도와 함께 선조님께서 광교산과 두릉리를 소재로 읊으신 <두릉한거 杜陵閑居>와 <광교산 추경 光敎山 秋景>의 시 두 수(首)와 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고향의 풍경을 선조님의 시에 차운하여 본인의 심경을 노래하신 7언율시를 소개해 주십니다. 형제봉을 지나 비로봉(종루봉)으로 가는 길에 <김준용 장군 전승비>를 만납니다. 기록에 의하면 화성축조 시 좌의정이었던 체제공(蔡濟恭)이 광교산에서 석재를 채취하다가 병자호란에 공을 세운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천연암반에 직접 썼다고 전해집니다.
▲ 시도기념물38호 김준용장군전승지및비(金俊龍將軍戰勝地및碑) - 이 비는 조선(朝鮮) 인조(仁祖) 때의 무장(武將)인 충양공(忠襄公) 김준용(?∼1641)장군의 전승비이다. 장군은 선조(宣祖) 41년(1608)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 등 여러 관직을 거쳐,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던 인조 14년(1636) 전라도(全羅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머물고 있었다. 난이 일어나자 장군은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여 이곳 광교산(光敎山)에 진을 치고 청군(淸軍)과 싸워 청의 대장 셋과 수많은 군졸(軍卒)을 사살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조(正祖) 18년(1794), 수원성(水原城) 축성을 총리하던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이러한 장군의 승첩(勝捷) 사실을 전해 듣고 전숭지인 이 광교산 자연암벽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에는 화성축조에 쓰인 석재는 인근의 숙지산, 여기산, 팔달산, 권동에서 채취해 사용했으며 모두 201,403덩어리라는데 돌들은 무게 때문에 멀리서 운반하지 못하고 아마도 이곳 광교산에서도 떠냈으리라고 봅니다. 비로봉을 지나자 산림 속에 빠끔하고 널찍한 바위가 있어 자리를 펴고 점심을 준비합니다.
재영 종친께서는, 오늘 점심은 내자가 새벽녘까지 퍼붓는 비를 바라보며 일기로 인해 산행이 될까 염려하며 손수 만들어 준 것이니 남기지 말고 찬 통까지 다 비워 달라하십니다. 더운 여름날, 참으로 달고 맛있는 점심이었습니다. 땀을 씻고 산행을 계속하여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582m)에 올라 백운산, 청계산을 바라봅니다.
하산길에 여름캠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은 캠프의 기획 총괄을 맡으신 태우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상광교 코스로 하산길을 잡아 장장 여섯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버스종점까지 내려와 대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올 해 안에 화성답사를 약속드리면서 수원을 빠져나옵니다. 등반대장의 기획에 의한 △수원 화성의 백미로 꼽히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과 함께 수원일대의 답사를 기다리며 광교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