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안사연 여름캠프 해설자료4
페이지 정보
관리자 작성일11-10-26 14:49 조회1,580회 댓글0건본문
<자료4> 6. 경순왕 배위 경순왕은 왕위 재직 시에 죽방부인(소원왕후 죽주박씨)이 있었고, 935년 나라를 왕건에게 넘겨주면서 낙랑공주(왕건의 셋째부인인 충주호족 유긍달의 딸 소생)를 둘째부인으로 맞이하였고, 그리고 왕건으로 부터 또 한분 왕씨(왕건의 후비인 평주 호족 박수경의 딸 소생)를 셋째부인으로 맞이하였다. (1) 죽방부인 : 첫째부인 죽방부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남아있지 않고, 왕건이 931년에 경주를 방 문하고 돌아가면서 그녀에게 물품을 선물했다는 기록만 있다. 당시 신라 왕실의 관례로 봐서 그녀는 신라 왕족 출신일 것이다. (2) 낙랑공주 : 둘째부인, 태조 왕건과 신명순성왕태후(유긍달의 녀)사이의 딸 낙랑공주는 고려 태조 왕건의 맏딸이며, 셋째 왕비 신명순성왕후 소생이다. 신명순성왕후는 충주의 호족 유긍달의 딸이다. 그녀 소생 왕자 중에 제3대 정종, 제4대 광종 등 두 명의 왕이 나왔다. 낙랑은 혼인 전에는 안정숙의공주로 불 리었으며, 혼인한 뒤로 낙랑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또 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으 로도 불리었다. ☞ 낙락공주는 우리 안동김씨의 직계 할머니시다. (3) 개성왕씨 : 셋째 부인 셋째 부인 왕씨는 왕건의 후비 성무부인 박씨 소생이다. 성무부인은 평주의 호족 박수경의 딸이다. 박수경은 딸 셋을 왕건에게 시집보냈는데 성무부인은 둘째 딸 이다. 성무부인은 아들 넷과 딸을 하나 낳았는데 그 딸이 바로 경순왕의 세 번째 부인이다. 그녀의 시호는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다. (4) 순흥안씨 : 족보상 덕지의 모친으로 그리고 안산·시흥 전설에 나타난다.
7. 경순왕 자녀 ○ 소원왕후 박씨 소생 (1) 1남 김일 첫째아들 김일(金鎰)은 소원왕후(昭元王后) 박씨 소생으로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바치자 이를 통분히 여겨 금강산에 들어가서 움막을 짓고 산 마의태자를 가리키는데, 기록에 보면 그에게는 입산 전에 낳은 金較(김교)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마의태자와 관련해서는 KBS1TV 역사스페셜 홈페이지중 [2000.4.15 신라최후의 미스테리, 마의태자]를 보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고, 인제군청 홈페이지를 보면 김부대왕각 동제, 김부리와 군량리(軍糧里), 김부리의 옥새바위, 마의태자 유적지비, 김부 대왕각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의태자 김일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부령(부안)김씨, 부여김씨, 통천김씨이다. (2) 2남 김굉 장남 김일과 함께 소원왕후 박씨 소생인 차남 金鍠(김굉)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들어가자 자기도 머리를 깎고 화엄종에 들어가 중이 되었는데, 법명은 梵空(범공)이었으며 나중에 해인사에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이 범공이란 중이 마의태자의 막내아들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기미보(己未譜) 같은 족보에 보면 범공은 둘째아들 김굉이었던 것으로 되어 있고, 사가에 전하는 족보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김굉은 중이 되기 전에 낳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장남의 이름은 김운발(金雲發)이고, 차남의 이름은 김우발(金雨發이었다. 김굉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교하김씨, 울산김씨, 나주김씨, 안로김씨, 해주김씨이다 ☞ 2남 김굉의 후손에서 울산김씨가 분관되었다는 것은 2005. 1. 21. 울산김씨 김강씨의 주장과 요청에 의하여 일단 삽입하였으나 사실 여부는 계속하여 조사 연구 중에 있음. (3) 3남 김명종 3남 金鳴鍾(김명종) 또한 소원왕후 박씨 소생이다. 각간을 역임했으며 시호은 永芬公(영분공)인데 뒤에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경주김씨의 시조는 3남 김명종과 4남 김은열 두 명인데, 이처럼 경주김씨의 시조를 두명으로 한 것은 김명종이 소원왕후 박씨 소생인 데 반해, 김은열은 왕건의 장녀인 낙랑공주 소생이었기 때문이다. 3남 김명종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강화김씨, 경주김씨, 계림김씨, 낙안김씨,<이하 생략> 등이다.
○ 낙랑공주 왕씨 소생 (4) 4남 김은열 4남 김은열(金殷說)은 왕씨 소생이다. 왕씨란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를 가리킨다. 대안군(大安君)에 봉해졌으며, 김명종과 함께 경주김씨의 시조로서 가장 많은 후손을 남긴 사람이다. 김은열에게는 김태화, 김숙승, 김염(→김품언, 김심언) 세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서 나오는 손자들이 또 분파를 해나갔기 때문에 많은 성씨가 나오게 된다. 1) 첫째아들 김태화는 김은열의 경주김씨를 이어받으나, 2) 둘째아들 김숙승은 안동김씨(구안동)의 시조가 되며, 3) 셋째아들 김염은 김해김씨(후김)의 시조가 되었다. 김은열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를 소개하기에는 너무 많아 생략하기로 한다. (5) 5남 김석 5남 김석(金錫)은 왕씨 소생이다. 김석은 김중석(金重錫)이라고도 불리며 의성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의성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석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개성김씨, 고령김씨, 광주김씨, 설성김씨, 의성김씨, 적성김씨 등이다. (6) 6남 김건 6남 김건(金鍵) 역시 왕씨 소생이다. 강릉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강릉김씨에는 두 파가 있는데, 하나는 무열왕의 후손인 김주원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고, 다른 하나는 김건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다. 이 두파를 구분하기 위해 김건의 강릉김씨를 후강릉김씨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김건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강릉(후)김씨, 강서김씨, 청주김씨, 홍주김씨 등이다. (7) 7남 김선 7남 김선(金繕) 역시 왕씨 소생이다. 언양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언양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선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담양김씨, 언양김씨, 예천김씨 등이다. (8) 8남 김추 8남 김추(金錘) 역시 왕씨 소생이다. 삼척군(三陟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삼척김씨의 선조가 되었다. 김추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진주(晋州), 영월(寧越), 경산(慶山), 남원(南原), 길안(吉安), 옹진(甕津), 진위(振威), 춘양김씨(春陽金氏) 등 8개 분파(分派)가 있다 ○ 순흥안씨 소생 (9) 9남 김덕지 9남 金德摯(김덕지)는 순흥안씨 소생이다. 학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뒤에 울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학성은 울산의 옛 이름이다. 김덕지 계열은 울산김씨 하나밖에 없다. ☞ 2남 김굉의 후손에서 울산김씨가 분관되었다는 것은 2005. 1. 21. 울산김씨 김강씨의 주장과 요청에 의하여 일단 삽입하였으나 사실 여부는 계속하여 조사 연구 중에 있음.
○ 경순왕에게는 아홉 아들 이외에 세 딸이 있었는데, 첫째 딸은 제5대 경종의 왕비 獻肅夫人이 되었고, 둘째 딸은 長水人 黃瓊(황경)의 부인이 되었으며, 셋째 딸은 신라 시중 李今書의 부인이 되었다. 라고 되어 있다. ☞ 딸 넷이란 설. ○ 월악산 국립공원내 미륵사지와 덕주사, 덕주산성, 덕주골 등지에는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과 마의태자와 관련된 전설이 산재해 있고,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 산 25-2에 있는 원주황산사지(原州黃山寺址) 전설에 의하면 경순왕의 공주가 이 절에 와서 부왕의 존상을 산정 석벽에 조각케 하였고, 그 후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존상을 보고 환경한 후부터 산명을 대왕산(大王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귀한 분이 왔다 하여 동리 이름을 귀래(貴來)라고 하였다. 그리고 첫째부인인 죽방부인이 3남 1녀 설이 있으니 덕주공주는 신라가 망하기 전의 신라공주로 볼 수 있다. (1) 소원왕후 박씨 소생 : 덕주공주 (2) 낙랑공주 완씨 소생 : 경종왕비, 황경의 부인 (3) 이금서의 부인 : 어느 소생인지 불분명하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