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김약제구용운(次金若齊九容韻) -박의중(朴宜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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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작성일18-09-17 22:39 조회666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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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고
박의중(朴宜中) 1337 - 1403
차김약제구용운(次金若齊九容韻) - 약재 김구용의 시운에 차운하다.
杜門終不接庸流 只許靑山入我樓
두문종불접용류 지허청산입아루
문을 닫아 속된무리 만나잖고 청산만 내 누대로 들게 하련다
樂便吟哦慵便睡 更無他事到心頭
낙편음아용편수 갱무타사도심두
즐거우면 노래하고 피곤하면 한숨 자고 그 밖의 다른 일은 마음에 두지 않으련다.
두문(杜門) ; 팔문(八門)중에서 흉한 기운이 드나드는 문.
밖으로 나다니지 않으려고 문을 닫아 잠금.
용류(庸類) ; 용렬한 부류의 인간.
지허(只許) ; 단지 ~ 만 허락한다.
편(便) ; 편하다. 소식.
여러패로 나누었을 때 그 하나하나의 쪽
사람이 오고 가거나 물건을 보내는데 이용하는 기회나 수단.
사물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했을 때의 한 쪽.
어떤 쪽.
문득.
심두(心頭) ; 마음
박의중(朴宜中)
1362년(공민왕 11)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의직장(典儀直長)으로 등용되었다.
그 뒤 헌납(獻納)이 되었고, 우왕 때 문하사인(門下舍人)·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대사성 등을 거쳐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었다.
1388년(우왕 14)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그들이 옛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설치한
철령위(鐵嶺衛)의 철폐를 교섭하여 성취하고 돌아와,
그 공으로 창왕 때 공신에 봉하여졌다.
공양왕 때 서운관(書雲觀)에서 이미 개경의 지운(地運)이 다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를 올리자,
음양에 의한 지리설의 허황됨을 역설하여 이에 반대하였다.
그 뒤 예문관제학 겸 대사성이 되었고,
1392년(태조 1)에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고려사』를 수찬할 때,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그 공정성을 기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뒤 태종이 검교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를 내려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특히, 성리학에 밝았으며 문장이 우아하기로 유명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정재일고(貞齋逸稿)』3권이 있다.
[출처] 문 닫고 - 박의중(朴宜中)|작성자 소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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