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시 삼십오절 - 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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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22-07-25 09:20 조회429회 댓글0건본문
탐라시 삼십오절(耽羅詩 三十五絶) 중 제13絶 / 14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
∎탐라시 35절 제13절
候風島口金方慶 후풍도구김방경 추자도에서 순풍 기다리는 김방경
明月浦頭都統瑩 명월포두도통영 명월포 부둣가에 상륙했던 도통사 최영
前後旌旗盖海來 전후정기개해내 앞뒤로 많은 군사들 바다로 건너올제
渠心厭亂知相應 거심염란지상응 난리에 싫증나서 조마조마한 마음 서로 알겠도다
∎탐라시 35절 제14절
通精暴血濺池隍 통정폭혈천지황 김통정의 거친 피 쏟아져 웅덩이 이루고
哈赤頑魂飛劒鋩 합적완혼비검망 합적의 완악한 혼 서슬퍼런 칼에 날아갔네
綱盡鱣鯨付鼎鑊 강진전경부정확 큰고기 모두 잡아 가마솥에 삶았더니
年來無服海波揚 년내무복해파양 그 후 다시 거친 파도 일지 않았네
최부(崔溥, 1454~1504)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연연(淵淵), 호는 금남(錦南)이다. 아버지는 최택(崔澤)이고 어머니는 여양진씨(驪陽陳氏)이다. 최부는 단종 2년 나주 곡강면 성지촌[현 동강면 인동리]에서 태어났다. 1470년 해남정씨인 정귀감(鄭貴瑊)의 딸과 혼인하여 해남에 머물면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최부에게 배운 인물로는 녹우당 어초은 윤효정(尹孝貞)· 임우리(林遇利, 임억령의 숙부)· 유계린(柳桂隣, 유희춘의 부) 등이 있다. 최부는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문과에 급제하고 서거정·김수녕·양성지 등과 함께 『동국통감』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고 사가독서에 들었다.
최부는 1487년 9월 추쇄경차관에 임명되어 제주에 파견되었는데 1488년 1월 부친상을 당하여 나주로 돌아오던 중 초란도(草蘭島) 해안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한 끝에 명나라 임해현에 도착했다. 이후 북경으로 호송되었다가 5개월 만에 귀국하여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을 남겼다. 무오사화 때 김종직 문하로 붕당을 이루어 국정을 비방하였다는 죄명으로 함경도 단천에 유배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 때 처형되었다. 묘소는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에 있으며 해남의 해촌서원과 강진의 덕호사, 강덕사, 광주의 무양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저서로 외손자 유희춘이 엮은 『금남집』 2권 2책과 『표해록』 3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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