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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보정 김정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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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5-04-06 18:26 조회1,3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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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회 (1903~1970) --작가는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호는 [보정,연당]이라하고 해강[김규진1868~1933]에게서 그림과 글씨를 배웠다. 그는 학문에 많은 관심을 두어 [연당문호]라는 책도발간하고 행서,초서,해서등잘썼으나 사군자중에서 대나무와 란을 특히 잘그려 세간에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출처 : 안동김씨 홈페이지 익원공파>

 

1.김정회 선생에 대하여
보정 김정회 선생은 고창 도산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으로 조선 개국공신인 익원공 김사형의 후예이며 회천 김재종의 아들이다. 호는 '보정'또는 '연연당'인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자세가 단정하고 품성이 고와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커서는 현성균관 대학교의 전신인 명륜전문학원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졸업후에는 성군관 사성과 명륜전문학원 강사로 있으면서 당시 석학들과 함께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쳤다. 한편 육영사업에도 관심이 많아서 도산초등학교와 고창여중학교를 건립하는데 재정적인 도움을 많이 주셨으며 광복 후에는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또한 선생은 시서화에서 고루 능하여 특히 그의 대그림 솜씨는 스승인 해암선생 조차도 탄복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선생은 시문이나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어 국내외에서 이름을 널리 떨쳤다. 시,서,화에 능하여 삼절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보정 김정회 선생님의 고택
○1993년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9호로 지정
○위치: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151번지
○김정회 고택 전화 :0677-564-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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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정회 선생의 생가
도산리는 고창읍에서 약4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로 고창읍에서 아산방면으로 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도산마을이라 씌여진 입석이 있는 곳이다. 김정회 선생의 집의 대문에는 입춘대길이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사랑채와 행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 건물이고 동쪽 끝에는 문을 달아 안채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 동쪽끝에는 정면 5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사랑채가 안채보다 훨씬 훗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안채,사랑채,행랑채,사당,곳간으로 이루어진 가옥 형태는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볼수 있는 전형적인 것이라 할수 있다. 지금도 김정회 선생의 후손이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출처 : 고창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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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경에 지어진 이 김정회(1903-1970) 선생의 고가는 그의 고조때부터 살아온 집이다. 이는 조선조 상류 계층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로 안채, 사랑채, 그리고 행랑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간채, 사당, 안채를 중심으로 2동의 큰곳간돌은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이중 용마루를 가진 팔각 지붕, 홑처마, 그리고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잡고 있는 안채의 가옥양식이 보통 다른 집에 비해 아주 색다르다
 
안채 인근에 수채의 가옥이 있는데 그중 몇채는 한국 동란때 헐려 없어졌다. 보정, 김정회 선생은 조선 개국 공신인 익원공 김사형의 후예이며 대유학자이기도 하다. 한국 고등교육 기관의 하나인 현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인 경학원(명륜 전문학원)에서 경학을 가르쳤다.

보통때 그분은 매화,난초,국화를 즐겨 그렸지만 특히 대나무 그림은 아주 유명하다. 대학자로서,또 서예가로써 글씨와 그림은 지금도 세인으로 하여금 항상 진한 묵향을 느끼게 하고 있다. 보정, 김정회 선생은 상류 사회 출신이지만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으며 덕행으로 많은 주위 사람들을 계도하였다. 선생이 타계한 후에도 두터운 덕망은 많은 향리 사람들에 의하여 계속 기리어 지고 있다.

<출처 : 고창군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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