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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김상사 윤선공이 김제현과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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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5-10 09:51 조회1,23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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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에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기회를 주신 영윤씨와 항용씨께 감사드립니다.

 

우선 김상사윤선공과 김제현이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항용선생님의 가설인 원문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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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齊賢의 跋文>에서

 

金氏世代 雖遠 未曾有譜 金上舍 胤先公 以草稿 托之先伯父 正言公 未及卒業而逝

 

김씨의 세대는 비록 오래 되었어도 일직이 족보가 없었는데 김상사 윤선공이 원고를 돌아가신 백부 정언

 

공에게 위탁하였던 바 공이 미처 끝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2

3. 1차 판단 및 과제

   . 胤先公에 대해서

      1)金齊賢(제학공파)일 가능성

        가)긍정적인 면과 가정 : 정언 김익을 백부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인물 중 족보 편집 작업에 관여했던 사람은 김제현이다.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먼저 김제현의 초명 또는 다른 이름으로 윤선이 있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나)부정적인 면과 한계점 :  족보 어디에도 김제현의 초명, 자, 호로 윤선이라는 기록이 없다

 

        2)金胤先(문온공파)일 가능성

        가)긍정적인 면 : 윤선이란 이름을 갖고 있으며, 1488-1544의 생존 연대는 원고를 전달해 준 김익(1468-1548)보다 약 20세 위이며, 생원과 진사에 합격할 만큼 학문도 갖추었고, 공주판관을 지냈다는 것은 본 족보 편집 활동의 주 무대인 중부지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서로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영환님께서 가설한  '....족보가 없었는데 김상사 윤선공이 갖고 있던 원고를 돌아가신 나(제현)의 백부 정언공(김익)에게 위탁하였던바...'라고 해석한 것은 설득력이 아주 높다.

 

          나)부정적인 면과 가정 :  김익을 백부라고 부를 수는 없고(김익보다는 한 항렬 위임), 족보에 경진보 발간 작업에 참여한 기록내용이 없으며,  영윤님의    "김윤선(1488-1544)선조님이 김익(1468-1548)선조님께 원고를 드렸으나 완성치 못하고.... "로의 해석은 "以草稿 托之先伯父 正言公"의  托之先伯父(돌아가신 백부 정언공께 위탁하였는데--)의 '백부 정언공'의 해석을 생략한 것에 문제가 있음.

 

    나. 해결해야 할 과제 : <金上舍 胤先公>의 정체를 밝히려면 먼저 '金上舍'의 의미를 밝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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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상사윤선공이 김제현이 아니라는 증명

 

이 발문은 김제현공이 쓰신 것인데  

 

[김씨의 세대는 비록 오래 되었어도 일직이 족보가 없었는데 김상사 윤선공이 원고를 돌아가신 백부 정언공에게 위탁하였던 바 공이 미처 끝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김상사윤선공이 김제현공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글을 썼을 것입니다.

 

김씨의 세대는 비록 오래 되었어도 일직이 족보가 없었는데 내가 갖고 있던 원고를 지금은 돌아가신 백부 정언공께 위탁하였던바 공이 .......

 

이와 같이 나=김제현=김상사윤선공이라면   본인을 지칭하기를 김상사윤선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 김제현공과 김윤선공이 같은 인물이라면 김제현공이 상사 즉 생원이나 진사이어야 하는데

 

김제현은 경진보의 발문을 쓸 당시의 직위는 [조봉대부 행호조좌랑 齊賢 跋 ]이라고 발문

 

끝에 적혀 있으므로 호조좌랑임이 틀림없다고 하겠습니다.

 

3.  항용선생님 글중에서

 

[2)金胤先(문온공파)일 가능성

나)부정적인 면과 가정 :  김익을 백부라고 부를 수는 없고(김익보다는 한 항렬 위임), 족보에 경진보 발간 작업에 참여한 기록내용이 없으며,  영윤님의    "김윤선(1488-1544)선조님이 김익(1468-1548).조님께 원고를 드렸으나 완성치 못하고.... "로의 해석은 "以草稿 托之先伯父 正言公"의  托之先伯父(돌아가신 백부 정언공께 위탁하였는데--)의 '백부 정언공'의 해석을 생략한 것에 문제가 있음.]

 

 

반론; 윗글중 백부정언공이라고 함은 김제현공이 나(제현)의 백부 정언공(김익)을 말함이 타당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윤선공의 백부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4.상사(上舍) 대해서

 

上舍=조선시대 진사나 생원을 이르는 말입니다.

 

 

5. 경진보상의 문온공 후손 윤선공의 기록을 보면

 

   胤先= 生員   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6. 그러므로 김상사 윤선공은 문온공 후손인 김윤선공이라고 생각됩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녜 옳습니다.
&lt;金上舍 胤先公 以草稿 托之先伯父 正言公 未及卒業而逝&gt;의 해석은
&lt;김상사(생원) 윤선공(문온공 김윤선)의 (족보) 초고를 (나의-김제현) 돌아가신 백부 정언공(김익)께 위탁하였는데 미처 일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시니----&gt;
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보며, 본 홈에 기술된 윤선공은 문온공 후손이신 &lt;김윤선공&gt;으로 수정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더 듣고 이를 확정, 본 홈 자료를 수정하려 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이런 중대한 문제를 제기해 주신 영윤대부님께 감사드리며, 바른 결론에 이르도록 분석작업에 함께 해주신 영환대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즉, 족보(경진보)의 김윤선공란에 김윤선공께서 경진보 초고를 처음 작성했었다는 기록이 있었더라면 오늘날 제작한 기미보(대동보)나 각 소파보의 앞부분에 계속되는 오류를 방지할 수가 있었는데 말입니다.----